서문(- 왜 하필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는가)에서 딱 한 구절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래 구절을 고르겠다. 


⌈ 주체들이 "몰입" 상태가 아닐 때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저항적이며, 행동을 가능하게 하기보다는 차단한다. 그래서 불행한 주체들은 세상을 이질적인 것으로 경험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나는 칙센트미하이가 신체와 세상의 친밀성에 기초한 행복의 현상학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만약 세상으로의 몰입에 단순히 심리적 속성만 있는 건 아니라면 어쩔 텐가? 만약 어떤 신체들이 세상을 저항적인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 이유가 세상이 어떤 신체들을 다른 신체들보다 더 잘 "수용"하기 때문이라면 어쩔 텐가? 그렇다면 우리는 특정 신체들에게는 공간으로의 몰입을 가능케 하는 바로 그 삶의 형식들이 [다른 신체에게는] 스트레스로 느껴진다는 점을 숙고해 봄으로써 행복에 대해 다시 쓰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행복의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 경험,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 우리가 속한 공간에 섞일 수 없는 경험이 아마도 행복에 대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지 모른다. ⌋ (29~30) 



왜냐하면 나는 킬조이killjoy이고 싶기 때문이다. ㅋㅋㅋ 


대체로 무엇이든 어디에든 적응을 잘 한다고 여기고 살았으나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성향을 가졌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분위기 깨는 자'에 속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좀은 다른 방식으로 분위기를 깨는 자였던 듯하다. 그러니까 불만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내가 왜 불만을 갖게 되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런 사람. 자연스레 말투는 삐딱해지고 인상은 굳어졌다. 당연하지. 원인을 모르는데 어떻게 불만이라고 말하겠어. 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와의 대면에서도 같았다. 말도 행동도 엉뚱할 때가 잦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이해되지 않는 언행들이 그야말로 수두룩... 우리는 진짜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알아채는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나? 억누르는 교육만 받고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간단 말인가... 또르르... 

아무튼지간에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이런 부분들은 알 수 없는(던) 나를 좀 알게 해주고 어떤 면에서는 토닥거려 주기도 한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은, 어떤 사람에게는 매일 말과 글로 보고 들어야만 할 수도 있다. 


+ 몇 가지 언급해보자면. 


- 21쪽 '결혼'에 대한 이야기. 대표적 행복 지표 주자 되시겠다. 뭐 두말 하면 입 아프지. '그래도 해보는 게 낫다'에 격하게 반대합니다. 안 하고 행복하게 사세요.ㅋㅋㅋ 


- 25쪽 긍정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 "스스로의 행복 추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게 주로 여자들에게 강요되는 거잖아. 


- 28쪽 로렌 벌란트 언급됨. "로렌 벌란트는 이런 행복에 관한 판타지를 "어리석은" 낙관의 형태라 부르면서, "특정 형식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에 적응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행복이 보장될 거라는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이거 지금 읽고 있는 <정동 이론>에 나온다. 제목은 "잔혹한 낙관주의". 그러나 말이 어려워서 두 번 읽고도 정리가 안 되고 있음. 이해하고 싶다... 그래도 반가웠다. 로렌 벌란트. 


- 33쪽 각주의 용어 설명. 이것 참 곤란하네. 사라 아메드의 이 책에서 affect를 '정동'이라는 단어 대신 '정서'로 번역한다고 되어 있다. 처음부터 '정서'로 생각하고 읽으면 상관없는데 이미 <정동 이론>을 읽고 있어놔서 조금 헷갈림. 


- 41쪽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영화가 결말에서 보여 준 행복한 화해의 이미지였다" 괄호 안의 작은 글자인 이 문장을 보자 수많은 영화의 해피엔딩이 떠올랐지만 그 중 문득 <에에올>의 결말이... 만약에 말이야, 조이가 에블린에게 그래도 반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에블린에게 100% 감정 이입하면서도 결말의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3-04-0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주문한 책이 왔습니다^^

난티나무 2023-04-04 21:20   좋아요 2 | URL
😍 열공해요 우리~!!!^^

건수하 2023-04-04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동과 정서 가 같은 개념이라니 동-서 반대인데 말이죠 … (썰렁)

저도 좀 킬조이 경향이 있는데, 페미니스트면 다 경험도 그런 경향도 있을듯요. :)

난티나무 2023-04-04 21:22   좋아요 2 | URL
악 동/서!!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어쩐지~~~~~ㅋㅋㅋㅋ

맞아요 비슷하게 그럴 듯해요.^^
수하님도 킬조이! 저는 요즘 집에서는 완전 그렇고요.ㅋㅋㅋㅋ 분위기 깨부수는 자.ㅋㅋㅋ

시에나 2023-04-0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해보는 게 낫다‘에 격하게 반대합니다. 안 하고 행복하게 사세요.ㅋㅋㅋ >>> 아악, 너무 마음에 들어요. 딱 제 마음!! 이 책 2장으로 가면 결혼하면 그래도 행복해질거라고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서 킬 조이!! 해버리는데 으찌나 속이 시원하던지요.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이런 말들이(저 진짜 이 말 싫어했는데 이유를 알았!!) 어떻게 여성들에게 행복하기를-곧, 가부장제에 순응하기를 은연 중에 강요하는지도 말해주고요. 진짜 저의 인생 책입니다!! (같이 읽어가고 싶은데.. 열심히 댓글이나 달아야겠어요)

난티나무 2023-04-06 16:36   좋아요 1 | URL
오 저 지금 1장 다시 읽으면서 버벅거리는 중인데 2장에 대한 희망(?)으로 이겨내야 겠어요.ㅋㅋㅋ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왜 행복을 멀리(?) 했나(그러니까 행복이라는 말과 개념을)를 탐구(?)해보게 될 것 같아요. 답을 찾기보다는 탐구…ㅎㅎㅎ
 

이제 막 잠에서 깨어 아침을 먹으러 내려갈까 하며 폰을 들여다보던 참이었다. 갑자기 윙윙거리는 소리가 크게 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나 듣던 소리다. 이게 뭐더라. 잠시 혼란한 사이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실제 상황입니다. 화재 경보입니다. 모든 투숙객은 지금 즉시 대피하십시오. 실제 상황입니다."

맙소사. 내 생에 이런 일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하지,와 나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사이를 기타등등의 생각과 함께 두서없이 오갔다. 진짜 불이 난 건지, 경보가 실수로 울리는 건지, 전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컸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것은 실재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실재적이게 되어 있을 것이다. 위험이 존재했든 하지 않았든, 그 위협은 두려움의 형태로 느껴졌다. 실제로 실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위협은 현재에 임박한 현실성을 가진다. 이러한 실제적 현실성은 정동적이다.

두려움은 어떤 위협적인 미래의 현재에 속하는 예상적 현실이다.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느껴진 현실이며, 그 문제의 정동적 사실affective fact로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99)




급히 잠옷을 벗어던지고 바지를 꿰입고 배낭에 눈에 보이는 소중한(!) 것들을 쓸어담고 운동화를 끌고 복도로 난 문을 (열어도 되는지 겁이 났으나 일단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으므로) 열었다. 옆에서도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었다.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직원이 화재 경보 아니라고, 들어가라고 한다. 어휴. 


「위협이 물질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거짓은 아니다. 그것은 진짜로 느껴진, 어느 과거-미래의 모든 정동적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미래의 위협은 거짓이 아니다. 다만 연기된 것이다. 그 상황은 영원히 열려 있다[끝을 알 수 없다].」 (99)

「수행적 행위나 말a performative은 항상 자동-발효되는self-executing 명령으로 닥쳐온다. ...... 경보라는 기호는 아무것도 없음 이상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명령법에 불과하고, 여전히 자율적으로 하나의 명령을 발효시킬 뿐이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해서, 우리가 외부를 향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향해 하나의 사태 현실에 깨어 있게 한다. 그것은 계속 주의를 강제로 집중시키며, 다음 느낌으로 변이되면서 이전의 느낌을 깨뜨린다. 여전히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다. 하나의 기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실제 경험이며, '지각이 드러내는 것 이상'보다 더욱 많은 것을 포함한다.」 (121~122)




글로는 짧게 썼지만 방에서 허우적거린 시간이... 음. 실제 상황이었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떨렸다. 경보가 울리고 방송이 나올 때부터 그랬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려고 노력해야 했다. 위기대처능력 꽝인 나. 어렵거나 곤란하거나 난처하거나 힘들거나 위험하거나 한 상황에 놓이면 어쨌거나 나는 줄곧 이런 신체 반응을 보일 텐데 하는 생각에 소심해졌다. 이걸 뒤집으면 그동안 나는 꽤 안전(?)한 생활을 했다는 말일 테다. 아니 딱히 그렇지도 않... 흠 헷갈린다. 심장 두근거리는 것부터 어떻게 좀 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 아무 일도 없다는 직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호텔에 울려퍼지는 경보와 안내방송은 그 뒤로도 한참을 이어졌다. 물론 방문을 열기 전과 후의 내 마음은 당연히 달랐다.


「기호활동semiosis은 기호가-유도하는 되기이다. 그것은 어떻게 하나의 기호가 실제 경험에서 몸의 되기를 역동적으로 결정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은 하나의 추상적 힘이 어떻게 물질적으로 결정하는 힘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실수로 기표화된 현재 존재하지 않는 불에 대해서도,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미래-발생적 불에는 실수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선취적으로 옳을 것이다.」 (123)




경보의 시간이 지나고 옆지기와 나는 화재가 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묵고 있는 방은 건물 7층, 만약 중간 어디쯤에서 화재가 나고 복도가 연기로 가득하다면, 문을 열고 탈출할 수 없다면, 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리고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까지도.


「 선제행동이 명시적으로 생산하고자 했던 안전은 그것이 피하고자 했던 것을 암묵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에 입각하고 있다. 즉, 선취적 안전은 그 자체가 기여하는 불안전의 생산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제행동은 그 자체의 실행을 위한 조건을 생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선제행동은 본래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위협-잠재성에 내재된 자기-원인적인 힘을 그 자체의 작동을 위해 포획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109)

「위협의 정동적 현실은 전염성을 가진다. (107)

...

위협은 아무런 실제 지시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 선제행동이란 아무런 실제 지시대상이 없는 위협을 대상으로 삼는 권력의 한 양식이다. 선제행동의 정치학이 그 자체의 작동에 대한 위협의 잠재능력을 포착하면, 권력의 실제적 대상을 찾는 것을 중단한다.」 (111)




가끔, 내가 지금 죽을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었어, 하는 순간이 온다. 진짜로 불이 난 거였다면, 방에서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지만 내가 사라진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다.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위기대처능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끈기도 없고 수영도 못하는 나는 죽을 위험에 처하면 그냥 죽는 것인가. 몇 년 전의 나보다 죽는 게 좀 덜 억울할까. 그러면 몇 년 후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덜 억울하게 될까.

그 와중에도 물건을 챙기려고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대책 없다. 옷도 갈아입었고 책도 쓸어담았다. 챙기지 않은 물건들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화재였다면 나는 내 목숨을 아까워하는 귀신이 되었을지도...@@


「신체적인 활성화 사건은 아직 능동성과 수동성의 구분이 없는 거듭-깨어남의 문턱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몸이 자신의 '본능'과 기호의 구성적 수행에 의해 전달된 거듭-깨어남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124) (*마치 꿈과 사건의 경계처럼)

「선제적 논리는 정동적 기재에 기반하여 작동하고 현재와 미래 사이를 돌고 도는 비선형적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규범적 논리에서와 같은 무모순noncontradiction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규범적 논리란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선형적 인과관계에 특권을 주며 현실의 효과에 대한 원인을 미래성에서 찾기를 꺼린다.」 (105)




밖으로 나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벽에 박힌 글자들을 보았다. 무심히 지나치던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화재시 절대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시오." 그 옆에서 소화기가 빨갛게 빛나고 있다. 내가 저걸 사용할 줄 알던가. 


 "만일 우리가 [과거에] 위협이 있었던 것처럼 [현재] 위협을 느낀다면, [미래에도] 위협은 항시 있을 것이다. 한 번 위협은 영원한 위협이다once and for all, 자기 스스로 원인이 되는 비선형적의 시간 속에서." (100)






** 인용문 : 2장 정동적 사실의 미래적 탄생 (브라이언 마수미) 중에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4-04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화재가 아니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지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던 그 시간의 떨림은 쉬이 가라앉질 않겠죠.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 순간은 자꾸 떠오를 거예요. 저도 교통사고를 목격했던 것,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것들이 여전히 수시로 떠오르거든요.

인용하신 정동이론의 문장들은 정말 다 맞춤하네요. 그리고 어쩐지 이런 순간들의 불안을 좀 다스려주는 느낌도 들어요. 정동이론 사야겠네요. (왜 결론이..)

난티나무 2023-04-04 15:33   좋아요 1 | URL
그런데 좀 웃긴 건요, 그 순간엔 다리가 후들후들 정말 무서웠는데 몇 개월 지난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무엇일까요? 일단 미시트라우마로라도 기억을 간직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으로 보면 그건 또 나름 칭찬(?)할 만한 반응인데, 만약 위험에 처했던 경험이 없어서 혹은 위기대응방식에 무지해서 그 공포를 잊은 거라면?? ㅠㅠ 그렇다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게 작동한 거잖아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책 재밌다니깐요? ㅎㅎ 2장에서 제가 겪은 일과 엮으려고 인용문 뽑아왔지만 대테러대응 등 정치적 위협과 정동을 연결지어 이야기하거든요. 뒷장들도 재밌어요. 저는 5장까지 읽었지만 정리하려니 끙 힘이 듭니다…ㅋㅋ

그레이스 2023-04-04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셨겠어요.
우리 아파트 화재경보는 일상이어서 듣고 무심히 지나요.
정동이론 읽어보고 싶네요
수동과 능동 깨어남...!

그런데 막상 위기의 순간엔 제 기질과 습관만 발휘될듯 ㅠ

난티나무 2023-04-04 15:39   좋아요 2 | URL
아이쿠 경보가 일상이면 어쩌나요… 양치기 소년 생각나요.ㅠ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여성들의 (형편없는) 위기대처능력을 욕하는 사람으로 ㅠㅠ 저도 비슷하다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일단 팔뚝힘을 키우는 걸로!(읭?)

책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3-04-04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화재경보가 오보여서 다행이고요.
그런데 그런 순간을 저렇게 막 이론과 연결시켜 글을 쓰는 난티나무님의 능력에 깜짝 놀라고요. 역시 열심히 공부하는 분의 글은 다르구나 막 느끼면서 보고나면 다 까먹고 글은 글이고 생활은 생활인 저를 또 막 반성하고요. ㅠ,ㅠ
그래도 정동이론 어려울거 같아서 안읽을거같은걸 또 미리 반성하고요. ㅠ.ㅠ

난티나무 2023-04-04 15:50   좋아요 1 | URL
작년 가을에 있었던 일을 대략 써놓았었는데 책을 읽다가 똭 나와서 끄집어내 보았습니다. 짜맞춤이죠.^^;;;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생각은 계속 했거든요. 아마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실제로’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겠죠. 경험을 풀어내주는 글을 만나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여러 가지로요.^^

책은 끌리면 읽는 거지요. 반성이라니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4-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재 경보ㅜㅜ
놀라셨겠어요ㅜㅜ
가슴 두근거림!
오늘 지인을 만나 나이 들수록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우리는 왜 심장 두근거리는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가? 그런 얘기를 나눴었는데 난티님의 화재 경보 울림으로 인한 급박한 상황이었다면.....ㅜㅜ
암튼 다행입니다.
이게 정동이론과 연결된다니?
띠용~ㅋㅋㅋ

난티나무 2023-04-04 21:43   좋아요 1 | URL
심장 두근거림! 그러고 보니 그런 신체현상도 억압교육의 결과로 볼 수 있겠네요.ㅠㅠ 뭐 하나 연결 안 된 것이 없어요...@@
알고 보면 모두가 ‘정동‘인 것이죠....ㅋㅋㅋㅋㅋㅋㅋ
 

5장 힘의 행사



(5장 중간에 바타유의 소설 이야기가 나온다. 토 나오는 긴 줄거리와 소설을 심오하고 훌륭하다고 한 비평가들이 나온다. 인용하고 싶지 않아서 패스한다. 다 미친 것 같다.)

성철학자들은 포르노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여자에 대한 사회적·성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자가 남자 이상으로 위험하거나 남자만큼 위험하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새디즘은, 남자에 의해서 관리되고, 남자에게 쾌락을 주기 위하여 조작될 수도 있다. 남자의 시스템에서 지배는 쾌락이다.
동시에 만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여자는 남자들에게 통제받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는 환상이다. - P219

사진은 또한 강간의 기록이다. 여자들을 배치하고 사용하였을 적에, 제1의 강간이 실현되었고, 그후에 독자가 사진을 소비할 때마다, 강간은 되풀이된다.
......
수잔 브로거가 적고 있듯이, 『강간의 본질은...... 심리적·육체적인 힘의 정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 남자의 여자에 대한 태도, 즉 위장된 강간이나 노골적인 강간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 안에 존재한다. 여자를 희생자로 고려하는 권리를 획득하기 전에, 여자가 죽음의 상태나 적어도 피를 흘리기를 요구하는 태도는, 위와 동일한 것이다.』
...... 강간의 본질은, 그러한 사진 - 어떠한 방식, 어떠한 정도도 포함한 - 이, 남자의 권력과 무관계하게 남성지상주의의 범주 바깥에, 남자의 힘에 오염되지 않고 존재하는 여자의 성욕을 보여 줄 수는 없다는 확신 안에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는 것처럼 보이도록 여자에 대해 카메라가 한 강간은, 현대사회에서 여자의 희생자성의 명확한 제1조항이다. 그녀는 죽거나, 피를 흘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 P221

중심적인 문제는, 힘이 무엇이고 자유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좋은 질문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잔혹성의 영역 - 역사의 영역 -에서 그것은 완전히 추상적인 의문이다. 중심적인 문제는, 힘이 인종적 및 성적으로 멸시당하는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을 때에는, 왜 힘이 힘으로서 절대로 인식되지 않는가이다. - P231

형이상학적인 희생자에 대해, 힘을 사용하는 자에 대해 그 힘을 정당화하고, 다음 그 힘을 불가시한 것으로 치부하는 이데올로기가 일견 모순되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히틀러는 유대인 남자를 강간자, 아리안 여성의 약탈자로 묘사한다. 그는 유대인 여자는 방종하고 난잡한 음란녀, 금발이고 순수한 아리안 여성의 심미적 대극으로 그리고 있다. 남녀 유대인은 모두, 성욕면에서 금수로서 특징지어지고 있다. 광포한 동물은 위험하므로 우리 안에 가두어야 한다. 히틀러가 반유대인적 행동을 호소할 때, 제일의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호소는 경제적인 면, 즉 유대인이 금전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면이었다. 독일인의 반응을 자극한 것은, 히틀러가 묘사한 유대인의 성욕이었다. 순수한 아리안 여성이 호색한 유대인 남자에 의해 강간을 당하지 않고, 또한 독일인의 정자가 음란한 유대인 여자에 의해 유혹받고, 혼혈아를 낳아 오용되지 않도록 성적인 금수를 복종시킬 것을 참남자다움은 요구한다. 이것은 인종차별주의자의 성적 이데올로기의 전형이고, 인종적으로 멸시를 당하는 모든 집단은 금수의 성적 본성을 부여받는다. - P232

공격자의 힘과 희생자의 의지간의 단순자명한 등식 - 힘=의지의 침해 -은, 침해당한 자가 여자일 때는 결코 수용되지 않는다.
......
박해의 본질은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한 규준으로 자기 자신을 우월한 자라고 정의한 사람이, 이외의 인간을 외부로부터 정의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매저키스틱하다고 - 남자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 규정되는 것이다. 매저키즘은 본질적으로 도발과 복종의 양면을 갖추고 있다. 여자에 대해 가해지는 힘을 정당화하고, 동시에 그 힘을 불가시한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는 매저키즘이 여자의 정상인 상태이고, 여자가 좋아하며, 여자가 모두 원하는 것이라고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다 명확하게 정의내려지기를, 고통으로부터 도출되는 성적 만족인 매저키즘이 소수의 남자에게서 나타나므로, 여자의 매저키즘은 - 똑같은 매저키즘조차도 - 남자의 매저키즘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된다. 해부학적 차이상, 남자의 성적 본성과, 그것과는 절대로 다른 여자의 성적 본능이 있다는 허구적인 이분법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 특히, 남자가 매저키즘을 나타낼 수 있다고 인식되었을 때 - 남자의 성적 우월성이 기만적인 것으로 지각될 수도 있다. - P234

바타유는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의 변형을 소개한다. 즉, 여자는 순결하기를 선택하거나, 매춘부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 여자가 이 선택권을 지녔다는 - 여자가 순결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 주장은 세계의 역사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강간이 남자의 끊임없는 성적 활동이다. 그가 말하는 섹스의 선택은, 매춘의 선택을 의미한다. 여자는 <매력적인 한> 먹이이고, 여자가 매력적이지 않는 한 순결을 선택할 수 있다. - P237

인종적으로 멸시를 받는 남자는 중요한 어떤 것 - 인종적 우위에 있는 남자가 선망하는 성욕을 지닌 것으로 승인됨 - 을 뇌물로 제공받기 위하여, 자기와 같은 인종의 여자의 전락, 모든 여자들의 전락에 공모한다. 남자에 대한 모욕에는 찬양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대단한 찬양 혹은 그 같은 필요불가결한 찬양이어서, 인종적으로 멸시받는 남자는 자기 자신의 남자다움의 신화에 의해서 현혹되고, 이 신화가 빈번히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섹스의 힘을 자신의 동일성으로 상정하는 이데올로기를 현혹되어 받아들인다. 그때의 해결책은 간단한 것 같다. 즉, 그는 금기禁忌된 성적 관계를 통해서 인종적인 우위에 있는 집단의 여자에 대해 복수를 하거나, 자신과 같은 인종의 여자를 취하여, 그 여자 파트너에게 자신의 성욕을 행사한다. 그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뇌물의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성적 공정을 바탕으로 여자와의 연대 - 자신과 같은 집단의 여자와의 연대 - 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였다. 남자다움을 여자와의 공감으로 오염시키는 것은, 그가 지닌 유일한 것인 남자다움을 약화시키거나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 P245

인종차별주의의 바탕이 되는 필요불가결한 성적 적의敵意는, 여자 소유권이 쟁점인 것처럼 표현하지만, 근본적으로 적의는 동성애적이다.
......
남자의 가치체계에서 성적 쾌락을 높이는 것은 적의를 높이는 것이고, 위험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의 사회에서, 인종간의 다툼은 가장 예민하게 느껴지고 가장 위험한 적의다. 이것만이, 남자의 가치체계에서 인종간의 적의에 성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이다. - P246

그녀의 복종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이것이 포르노에 등장한 여자들 중에서 성적 상징으로서 백색 피부에게 주어진 특별한 관능적인 의의다. 그녀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보스이고, 힘과 폭력과 고통을 자신에게 주기를 요구하는 여자다. 그녀는 질릴 줄을 모른다. 그녀는 가장 비참한 전락 속에서 자신의 여자다움이 달성되는 진정한 복종자다. 여자가 힘을 요구했기 때문에, 힘은 현실적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간이나 구타는 여자의 의지의 표현으로 간주되고, 여자의 의지의 침해로 존재하지 않는다. 강간은 단순히 보다 질이 좋은 성교가 되고, 구타는 양질의 전희가 되어 힘의 찬양 - 필경 그녀가 힘을 찬양함 -으로 통한다. 백인 여자는 강간을 요구하고, 구타를 요구하고, 굴욕을 요구하고, 고통을 요구하기 위하여, 지신의 인종적 우월성을 사용한다.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바라고, 이 경험 안에서 흥겨워한다. 남자는 공모한다. - P253

남자들이 강간과 구타가 여자의 의지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 원인의 하나는, 영향력 있는 남자들이 수세기 동안, 사적인 세계에서 포르노그래피를 소비하여 왔기 때문이다. - P255

인간 여자가 관여하는 성적 행위에 관해 킨제이가 품는 관심은, 벌에 관한 그의 관심보다 작다. 인간 사이에서 그의 주요한 관심은 남자들의 계급층이다.
......
킨제이는 인간 남자에 대해, 자연에 반하는 사회적인 구속을 가한 책임이 여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
여자가 남자를 성적으로 거절하는 것은, 킨제이의 눈에는 전혀 여자의 권리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그에게 거절은, 성적 억제·도덕주의·성충동이 약하다는 증거로 보인다.
......
여자가 해야 할 일이란, 예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
아내와 매춘부의 목적은 동일하다. 목표하는 바는 남자의 성적 표현이고, 그것은 남자가 여자의 불복종에 의해서 좌절되지 않는다면 대부분 교접을 표현한다. ... 아내와 매춘부는 동일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내의 기능은, 섹스로써 남자에게 봉사하는 매춘부의 기능으로 유추하여 명확하게 규정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강간은 킨제이의 사고체계에서는 확실한 실재성을 지니지 못하고, 여자가 고발을 통해서 남자를 괴롭히고, 처벌하고, 제한하는 수단으로써의 억압적인 사회개념이다. ... 킨제이의 철학에는 근본적으로, 남자가 뜻대로 여자를 교접에 사용하는 것을 막을 정당한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P274

객관적인 과학자들과 포르노업자들은 동일한 견해를 선전한다 - 여자는 그것을 절실하게 원하고, 여자는 그것이 거칠기를 원하고, 여자는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도발한다. 그리고, 킨제이가 상정하는 여자의 성적 냉담은 단순히 여자의 의지의 무시를 정당화할 또 하나의 이유를 세운다. 왜냐하면, 여자측의 의지의 주장 - 정의상 거절하기 -은 여자 자신의 성적 본성을 그릇되게 진술하기 때문이다. 그 성적 본성은 여자가 남자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남자에게 성적으로 사용될 때, 특히 교접의 형태로 사용되는 경우에 실현된다고 한다. - P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장 물物·대상對象

심리학의 영역에서 남자의 동성애가 그렇게 불평을 사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현재 남자의 성 시스템 중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성적 반응으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대상·물로 보고 관련을 맺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의 권력과 존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그가 사용하는 대상·물에 둘러싸여 있고, 동산 추구형의 감수성을 지닌 인간의 중심핵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는 예를 들어, 다른 남자를 대상·물로 만듦으로써, 자신을 여자의 위치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남자의 섹스 전체를 타락시키는 것이며, 부적절하다. - P176

어머니는 구출 - 어원인 라틴어로 <달려가서 도와 준다>는 뜻을 지닌 - 하는 인간이자 물체이다. 남자 유아는 구출하러 달려오는 물체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여기서 현대의 남성지상주의적 심리학의 영역에 반향되고 있는 어머니의 동산적 의미를 본다. 즉, 어머니는 남자가 생애를 통해서 소유하는 최초의 물체, 구출하러 달려오는 움직이는 자산의 의미를 지닌다. - P178

성적 물체를 사랑하고, 욕망하고, 강박관념을 갖는 것은 남자의 문화에서는 물체 자체의 특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간주된다. 최초의 관심사가 물체의 형태이므로, 남자는 육욕과 성교능력을 자극하는 특정의 형태를 강하게 요구한다. 성심리학의 분야에서 베커가 신뢰할 만한 반응의 형식으로 부르는 것은, 대체로 대상화objectification라고 불린다. 대상화는 달성된 사실이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형태 - 남자의 추측과 경험 안에서 발기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만큼의 형태 - 에 대해 남자에게 주관화가 되고, 거의 변하지 않게 고정화된 반응이다. ...... 대상화 - 필연적으로 발기를 일으키는 다른 사람의 형태에 대한 고정된 반응 - 는 진정으로 사정을 순간적이라 할지라도 냉혹한 대단원으로 갖는 가치체계이다. 그것이 마치 남자 개인의 본성일 뿐만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인 것처럼, 남자에 의해서 실천에 옮겨지는 대상화는 다음의 세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첫째, 남자가 누구를, 무엇을 증오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둘째, 남자가 누구를, 무엇을 소유하고, 영향을 미치고, 정복하고, 그에 대극하여 자신을 정의내리고 싶어하는가. 셋째, 남자가 어디에 그 자신의 종자를 뿌리고 싶어하는가이다. 대상화의 첫번째 표적은 여자다. 남자의 문화에서, 남자는 대상·물화의 타당한 범위에 대해, 특히 남자가 다른 남자를 대상·물화하는 것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한다. 그러나, 남자가 대상·물화하는 것 자체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성적 반응이 구체화된 반응, 즉 존재 안에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대상·물이 환기시키는 반응이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 P188

자신의 물화物化에 관한 여자의 지식은, 보통 필연적으로 표충적인 이해의 지점에서 멈춘다. 즉, 미는 보답받고, 미가 결핍되면 처벌받는다고 이해한다. 처벌은 개인적인 불운으로 이해되고, 체계적·제도적·역사적인 불운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는 또한 아름다운 것이 성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가 처벌과 모독·파괴를 하고 싶은 호색의 욕망을 유발하지 않는 못생긴 여자에 의해서, 남자 자신과 그의 사회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추한 여자를 추방하는 정도를(어쨌건, 남자는 못생긴 여자를 처벌하고, 모독하고, 파괴하지만) 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 P193

인간을 물物로써 강렬하고 강박관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 인간의 소외의 원인도 아니고, 소외의 가장 마비적인 증거도 아니다 - 인간의 소외의 해결법으로 간주된다.
<사랑은...... 대상을 수단으로 하여 자기를 확대해> 간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물화하는 - 생명을 지각하고, 생명에 반응하는 능력을 감소시키는 능력 - 사실이 인간의 개별적 특성의 관건이며, 다이내믹한 요소로 간주된다. 남자들은 성적 단편, 조각조각, 이러저러한 옷을 입은 육체의 부분들에만 특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실로 편린에만 반응하는 이 무능력이, 사랑의 미덕적 정의의 하나로 끊임없이 변형되어 간다. - P197

<페티시fetish>라는 낱말은, <마력charm> 혹은 <만들어진 물건made thing>의 의미를 지닌 포르투갈어의 feitiço에서 유래한다. ... 성적인 의미에서, 페티시의 마력은, 페니스의 발기를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힘을 지닌다. - P200

속옷으로부터 부츠, 그리고 레인코트로부터 가죽 벨트, 긴 머리 그리고 온갖 종류의 신발에 발을 집어넣는 것과 신발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그리고 그 이외의 더 많은 것이 남자 페티시스트의 소재가 된다. 남자는 무엇이나 페티시화할 수 있고, 실제로 페티시화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떠한 여자도 특정의 남자의, 특정의 페티시와 합치하는 방법을 알 수 없고, 페티시의 반응의 성적 환기를 <도발하는> 것을 예측하는 것도, <도발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도 절대로 알 수 없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여자들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은, 남자의 공통적인 페티시가 여자의 패션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남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드레스를 통해서 남자들을 매료시킨다는 것은, 한 사람 이상의 남자가 공통적으로 갖는 페티시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 P202

중국인은 1천 년간 발에 사로잡혀 왔고, 그동안에 소녀의 발을 속박하고 불구를 만들어, 그 변형된 발이 성적 흥미의 첫번째 중심이었다. 속박된 발은 페티시였다. 여자를 속박하고 불구로 만들어, 그 불구가 된 발을 성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속박과 정복이 가치를 지니는 당시의 상황을 지배하였다. 구미의 남자가 하이힐에 매혹되는 것이, 불길하기는 전족보다 덜하지 않다.
성적 페티시는 종종 발기를 일으키는 마력적인 의미를 애매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일례로, 여자들은 신발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해하지만, 신발이 남자에게 발기를 일으키는 마력으로 이해된 적은 거의 없다. - P204

각각의 문화적 레벨에 나타난 모든 페티시는, 발기된 페니스의 권력을 명시하고 - 특히, 성적 본성뿐만 아니라 윤리적 본성을 지닌, 남자 자신의 감수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발기된 페니스가 지닌 권력을 명시한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태도의 정의성을 기초로 하여 윤리능력을 판단하는 법이 결코 없으므로, 페티시의 성적인 의미는 지하에 숨어 있다. 한편, 문화적 레벨에서 페티시는 신화·종교·사상·미학으로까지 확대된다.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이고 본질적으로 남성지상주의로 간다. 그것을 통일하는 주제는 여자를 향해 표현된 증오다. - P205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자로 만들어진다. 여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녀의 인간성은 파괴된다. 여자는 이러저러한 것의 상징이 되어, 대지의 어머니와 우주적 매춘부인 여자가 된다. 그러나 결코 그녀 자신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굳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어떠한 행동도, 여자가 일관되게 지각되어 온 방향을, 다른 물物로 지각하게끔 전복시킬 수 없다. 여자 자신의 목적이라는 이념이 궁극적으로 여자의 목적에 관한 남자의 지각 - 남자가 살아 있는 남근의 권력을 경험하도록 하는 바로 그 물物로서의 - 을 대신할 수는 없다. 포르노그래피에서, 남자의 목적의 이념은 십분 실현된다. ...... 포르노 소설과 포르노 영화에서, 여자는 그러한 물物이 되도록 교육을 받는다. 즉, 여자는 강간당하고, 매를 맞고, 속박되고, 사용되어 마지막에는 여자가 자기 자신의 참된 본성과 목적을 인식하고, 그에 따르게 - 행복한 마음으로, 탐욕적으로, 더해 줄 것을 바라며 따르게 - 될 때까지 가르친다. 여자는 자신이 사용되기 위한 물物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할 때까지 사용된다. -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고 싶은 책들을 꺼낸다. 자꾸 꺼낸다. 어느 순간 행동을 멈춘다. 다시 꽂는다. 행동을 반복한다. 이것은 루틴이 아니라 습관이며 욕심이다. ㅋㅋㅋㅋ 


책꽂이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하게 꽂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나는 아직 읽을 책이 많아! 그러니 눈도 아껴야 하고 체력도 비축해야 해! 목과 허리 완전 쇼듕하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안 읽은 책(음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하자, 엄밀히 말해 안 읽은 책은 늘 있기는 했으니까. 다만 그것이 내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이 없어서 읽은 책 또 읽기를 반복했으니 지금은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야. 아, 이 시점에서 그 반복 읽음이 철학서이거나 페미니즘이론서였으면 참으로 정말이지 좋았을 거란 짧은 생각을 해본다. 어쩔. 소설들이었지만 그 또한 열 번 이상을 읽었다면 그 안에서 뭘 찾아도 찾았을 텐데, 그렇다, 어떤 소설도 열 번까지는 못 읽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책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므로 잠깐 해보자면, 여러분의 눈은 안녕하십니까? 나는 좀 안녕하지 못한 것 같다. 요즘 눈동자의 각도에 따라 자주 어지러움을 느낀다. 안경을 써도 안경을 벗어도 그렇다. 뒷머리를 자른다고 눈알을 있는 대로 옆으로 돌렸더니 그만 확 어지러워졌고, 김밥을 만다고 아래를 계속 내려다봤더니 어지러웠고, 바깥에서도 갑자기 예고없이 어지러웠다. 작년에 비슷하게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그땐 그런 증상이 처음이어서 눈에 이상이? 뇌에 이상이? 혹시 귀에도 이상이? 막 이러면서 건강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아이고 내 눈 또 늙는구나, 한다. 참 다행히도 책을 읽을 때는 어지럽지 않... 다고 말하려 했더니 글쎄, 가끔 어지럽네? 독서대의 높이를 올려야 겠다. 눈이 아래로 가면 어지러워... 왜때문일까? 눈이 안녕한 생활이면 좋겠다. 뭐 눈 뿐이겠어. (노안과 관련해 어지러운 증상 겪으신 분들 체험담이 궁금합니...)


일단 읽고 싶은 책을 꺼내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읽을 책 아니고 읽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찍어놓고 다시 이 책 저 책 들쑤시다가 조용히 세 권을 뺐다. 나의 4월은 유한하고 할 일도 많은 달인 것이다. 뺀 책은 <여성의 수치심>과 <상상적 신체> 그리고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여성의 수치심>은 지금 읽고 있는 <정동 이론> 3장이 수치심 챕터여서 급 생각나 꺼냈고 <상상적 신체>는 이 전에 읽은 책(이 뭔지 지금 기억나지 않는데 ㅠㅠ)에도 나왔고 읽고 있는 책들에도 가끔 언급되는지라, 안 그래도 꺼냈다 넣었다 했던 책인데 이번에도 미뤄지게 생겼다. ㅋㅋ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는 음 나중에 가볍게 낭독으로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해서 일단 뺌. 


그래서 4월에 시작하(려)는 책은 <행복의 약속>(여성주의읽기 4월), <말과 사물>, <미디어의 이해>이다. 4월 완독이 목표가 아니라 4월 시작이 목표다. <행복의 약속>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문장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라서 읽을 수 있을 것인데, <말과 사물>은 솔직히 조금 자신없다. 얼마 전에 2장 앞부분까지 읽으면서 물음표를 마구 찍어댔던 흔적이(기억이 아니고 흔적이 ㅎ) 있더라. 흠. 어떻게 읽을 것인지 대책은 없지만 일단 시작해 보는 것으로. 

<미디어의 이해>는 이번에 구비한 사람이 많을 듯하다. (나도 그랬..) 이 책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토론도 하고. 

<말과 사물> <미디어의 이해> 두 권을 어떤 방법으로 언제부터 읽을 것인지 고민 좀 해보고 결정해야 겠다. 4월 안에 시작하면 다행일 듯. 



읽고 있는 책들(이 뭐 이것뿐이겠냐만은...)도 일단 이만큼. 



3월 안에 다 읽으려고 용(?)을 썼으나 결국 하지 못한 <마녀>, 조금 남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무엇이든 가능하다>(이거 상품에서 찾으려고 제목 뭐라고 쳤냐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ㅋㅋㅋㅋㅋ)는 프랑스어판이기 땜시롱 언제 다 읽을지 기약이 없고, <정동 이론>은 머리 뽀개지게 읽고 있으니 아마도 (별 이변이 없다면) 4월 안에는 끝낼 것 같고.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마저 읽어야 하는데 참 펼치기 어렵다. <글 읽기와 삶 읽기 2>는 독서모임 책이라 일주일에 한 번씩 천천히 읽고 있고. 아 다른 독서모임 책인 <불처벌>은 전자책으로 갖고 있어서 사진에 빠졌다. 


거진 머리 아픈(?) - 그러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 책들이라 중간중간 쉬어도 줘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한다. 4월인데!! 놀아야 하는데!!! 하늘은 푸르고! 꽃들은 피어나고! 오늘치 걷기를 돌풍과 비가 방해하고 있어 못 나가고 있다. 창밖에서 요동치는 나무가 무서워서(나무 그 자체가 아니라 나무의 움직임이 가져올 일어나지 않는(을) 미래가 불안하여 ㅋㅋ 이렇게 말하는 건 <정동 이론> 읽는 후유증(?)이다...ㅋㅋㅋㅋ) 덧문을 내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쨘 햇살이 나더니 이내 어두워지고 가볍게 우박도 뿌리고 또 말끔하게 개었지만 바람은 여전하다. 소리로 위세를 알린다. 팔뚝운동이나 해야겠다. 아, 4월이 되면 좋지 않은 점이 있다. 그거슨 꽃.가.루. 하. 어제 바람 센 동네 한바퀴 돌고 들어와 30분동안 재채기, 콧물, 눈물, 다 뺐다. 가려움은 덤이다. 바야흐로 꽃가루의 계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3-04-0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꽃가루 알레르기 있으시군요. 봄되면 고생이 많으시죠. 꽃보고 막 좋아서 흥분해야 하는데 알러지때문에 힘드니 참..... ㅠ.ㅠ
오늘 산에 가면서 제가 또 얘기한게 나이가 든다는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먹을 수 있는게 줄어드는 그런거라고 말햇거든요. 물론 제 말의 주 타켓은 등사과 술이었지만요. 눈도 그렇죠. 노안때문에 어지러운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근시여서 노안이 오면 이 근시는 또 오히려 편해지는 지점도 있는지라....

저는 뭐 늘 그랬지만 4월에는 어려운 책은 행복의 약속만 읽고 좀 가볍게 가볍게 읽으려구요. 날이 가벼워지고 옷도 가벼워지니 제 정신도 가벼워지라구요. 말인지 뭔지 ㅎㅎ ㅠ.ㅠ

난티나무 2023-04-02 23:40   좋아요 1 | URL
꽃은 좋으나 꽃가루는 으...ㅎㅎㅎ 제 주변에는 송화와 겨자꽃이 최고봉인 듯합니다.^^
등산과 술!! 등산 후 술 한 잔!! 크...
저도 어쩌면 4월에는 책 많이 못 읽을 수도 있어요. 계획만 늘 거창하죠.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4-02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지러운게 노안이 원인일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어지러움은 귀쪽의 문제더라고요. 이명이나 이석증을 앓는 주변 지인들이 있어요~~
눈에 안 좋은게 책이 맞는데 워낙 오랫동안 책을 읽어와서 노안인데도 읽어야만 하니 이제 비문증상까지 있어 괴로워요 ㅠㅠ

프랑스는 지금이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인가요? 딸아이가 계속 비 오고 바람분다고 하고, 파업이 심해 기차예약이 계속 취소된다고 그러네요^^

난티나무 2023-04-02 23:42   좋아요 1 | URL
이명은 뭐 잔잔하게 늘 친구하고 있고요.^^;;
이석증 어지러움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눈을 의심하고 있어요.
프랑스는 이 즈음이 우기 삘이거든요. 원래가 비오고 바람불고 우박 쏟아지고 하는 봄인데 최근에 이상기후가 늘어나면서 작년 봄 날씨는 아주 좋았었죠. 요즘 원래 날씨로 돌아가려는지 일주일 내내 흐리고 비오고 바람 불어요.ㅎㅎㅎㅎ
여기는 시골이라 파업 분위기는 기차 취소 정도인데 대도시는 시위하고 하느라 난리예요...

책읽는나무 2023-04-03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개를 숙이면 어지러운 증상이 좀 있긴 합니다. 몇 년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생리하기 직전이라 그런가? 늘 그리 생각하기도 했어요. 빈혈인 것도 같아서요.
빈혈수치는 그리 나쁘진 않은데, 철분 저장소? 뭐 그런 곳이 수치가 안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지럽다고 여겼었는데... 작년부터 눈이 넘 침침하고 눈이 시려 시력저하인가? 싶어 안경점에 가서 안경 렌즈를 다시 손봤거든요. 그 때, 사선 각도라고 해야 하나요? 암튼 각도에 따라 시력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노안은 더 심해진 단계라고 하고...암튼 렌즈 다시 교체하니까 고개를 숙여 책을 읽으니 어지러운 증상이 좀 덜해진 것도 같구요?! 정확한 건 잘 모르겠네요. 그러다 몇 달 지났다고, 다시 눈이 침침해진 것 같고, 또 어지러운 것도 같고? 심리적인 건지? 노안이 심해져 시력이 안맞는 건지? 좀체 알 수가 없네요^^;;;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하다> 저도 난티님과 비슷한 제목으로 <모든 것은 가능하다>로 항상 그렇게 튀어나오더라구요ㅋㅋㅋ
제목이 왜 자꾸 헷갈릴까? 그런 생각 했었어요ㅋㅋㅋ

<정동 이론> 그 유명한 <정동 이론> ㅋㅋㅋ
피가 살이 된다는 말씀 명심하고 갑니다^^

난티나무 2023-04-03 19:28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책읽는나무님, 각도에 따라 시력이 달라진다는 거, 실감하는 요즘입니다.ㅠㅠ 노화의 한 단계인 듯해요... 퓨퓨
안경 다시 하면 또 적응하느라 어지러울 텐데 ㅎㅎㅎㅎ 어쨌거나 안과 검사 약속은 잡아놨으니 안경을 다시 하든지 무슨 수를 내야지 못 살겠어요...^^;;

책 제목 진짜 어떻게 해도 안 외워지는 거 있잖아요.ㅋㅋㅋㅋ 물론 스트라우트 책은 가끔 헷갈리는 쪽에 속하지만 ㅎㅎ 예를 들면 지난 달 책 <남성 특권>도 그렇고요. 크크
<정동 이론>이 유명한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