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책상 앞에 앉아있기가 힘든 날씨다. 손발이 시리는 것은 당연하고 좀 오래 있으면 온몸이 떨려온다. 올 가을엔 왠지 내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다.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11월이고 추우니까 책을 사자. 한글로 된 종이책이 집에 쌓여가는 건 나몰라라 할 테다. 이번엔 마구잡이 구입인 듯. 뭘 샀는지 기억도 안 나 적어보기로 한다. 



어마무시한 배송료를 생각하면 나는 무조건 저렴한 헌책을 사야 하는데, 요즘은 헌책값도 만만치 않다.ㅠㅠ 알라딘 직배송중고와 우주점중고를 싹싹 뒤지고 금액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오래 걸린다. 지쳐...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을 읽고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중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소설 아니고 산문집. 앞으로 조금씩 더 읽어봐야지.

















줌파 라히리, [내가 있는 곳]과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작은넘이 아빠 읽히라고 해서 한글판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산다. 요즘 나는 소박한 밥상에 관심이 많기에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토바이어스 리나트르, [비건 세상 만들기]. 채식 초보의 좌표를 정하기 위해. 

그리고 하비 다이아몬드,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 선물용. 이 책보다 [지방이 범인]이 더 사고 싶었으나 적절한 발견의 타이밍을 놓침. 
















보관함에 책들을 넣어두고 왜 넣어두었는지 이유는 자주 까먹는다. 너무 오래 보관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단편 모음집이다. 





새책 구입. 














이 책도 보관함에 오래 있었다. 조선희, [세 여자]. 굿즈로 주는 문진도 탐났다. 지난달 못사고 이번달에 사네. 
















다시 로크먼,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세 여자]와 함께 보관했던 책. 


















김행숙, [1914년]. 시집을 사고 싶어 기웃거리다 현대문학 시집이 눈에 띄어 이걸로 골라보았다. 
















이라영 외, [비거닝]. 채식 초보의 비거닝 기웃거리기. 다른 사람들의 비거닝이 궁금하다. 

















잡지 두 권. 다산북스 [에픽] 창간호. 할인쿠폰 주길래 궁금해서 구입해 본다. 그리고 [컨셉진]. 잡지들은 궁금하면 한두 권씩 사보는 편이다. 
















커피는 요즘 안 마시게 되기도 했고, 맛이 아주 쬐금 궁금하기는 했으나 굳이 배송료 내가며 받을 필요는 없으므로, (실은 집에서 생두를 볶아 내려마시는지라 다른 커피맛은 웬만해선 성에 차지 않는다는) 그동안 쿠폰이 있어도 그러려니 했다. 이번에 주문하면서 커피쿠폰이 똭 왠지 막 눈에 띄어서 동생 마시라고 한번 사보았다. 


발이 얼고 있다. 얼른 책 한 권 들고 따땃한 주방 라디에이터 옆에 붙어앉으러 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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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1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이라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눈에 띄네요. ㅎㅎㅎ 한국은 이번주는 추웠는데 담주에는 괜찮다고 하네요. 저도 겨울이 별로인 사람이라 수면양말과 항상 함께 한답니다^^

난티나무 2020-11-13 15:08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페이퍼 책구입에 도움 많이 되는데 그 책도 땡투를 잊었네요.ㅠㅠ 으아 땡투 챙기기 늠 힘들어요..
수면양말은 세뚜죠 세뚜. ㅎㅎ 저는 보온물주머니 없이는 침대 못 들어가요.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11-1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여자 친구 주고 저도 다시 사려구요, 문진 땜시;;;; 에픽 창간호 궁금해요. 저도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는데 아직 살지 말지 갈등중. 집에서 생두 볶아 드신다는 말 듣고 완전 눈 번쩍. 라디에이터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언니!!

난티나무 2020-11-13 15:14   좋아요 0 | URL
세상에 내가 문진을 탐내다니, 이러면서 샀어요.ㅎㅎ 취향은 변하는 것. 소설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에픽은 할인이 15일까지던가 그럴 걸요?
우리집 커피 맛있어요.ㅎㅎ Lyon의 잘나가는 까페들보다... (머니까 완전 대놓고 자랑.. 어쩔. ㅋㅋ)

라로 2020-11-14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있는 책은 3권이 보이네요, 줌파 라히리의 책과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의 커버가 바뀌어 나오니 낯설어요. ㅋㅋ 그 책에서 요리법은 배운 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삶의 자세라고 할까요? 뭐 그런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아하고 아직도 집에 있어요. 문진,,이런 거 저는 여전히 좋아하는데 사고 싶지만 방법이 없는데 님은 동생분이 이렇게 책을 모았다가 보내주시니 얼마나 좋아요!!
근데 중고책이 예전 중고책 같지 않아서 일반인에게 사면 배송료가 붙어서 정말 알라딘 중고 같은 것을 이용하면 좋은데 그건 또 비싸고,,,올리신 글이 정말 우리 해외에 사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네요!! ㅠㅠ 저는 그래서 그냥 사은품 이쁘고 갖고 싶어도 전자책으로,,,쓸쓸함. ㅎㅎㅎㅎㅎ

난티나무 2020-11-14 16:47   좋아요 0 | URL
진짜 전자책은 굿즈도 못 사고 ㅠㅠ 그러고 보면 알라딘은 느무 굿즈로 고객들을 유혹하는군요.ㅎㅎㅎ
책을 비행기로 받는 건 정말 작년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요, 몇년 전까지는 아주 가끔 아이들 책 사서 배로 부쳤거든요. 오는데 석 달도 걸리고 배송 추적도 안 되고... 그런데 올해 들어서면서 뭐랄까 인생 뭐 있나 싶은 게 ㅎㅎ 그동안 책 못읽은 한풀이를 하나 봐요.ㅠㅠ
헬렌 니어링은 생채식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요리법이라고 할 만한 게 없을 수도...^^ 저도 삶의 자세 배우고 싶어요. 못 배우면 엿보기라도.ㅎ
 
[eBook] 컬러 퍼플 - 세계문학전집 187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7
앨리스 워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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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forward is with a broken heart.
(2000년에 출간되었다는 앨리스 워커의 소설집 제목으로 감상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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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예약판매 할 때부터 눈독 들이던 책이었는데. 

역시 책은 제목과 목차를 잘 뽑아야 하는 것인가. 50%는 낚였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사실 청소년들 특히 남성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공감하기 교육이다. 섹스 이전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아가고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데 사랑이 되나. 이런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성교육 책이 아니라 공감하는 법 책인가. ㅎ 

아니 근데 브래지어 잘 벗기는 방법이라니, @@ 지은이의 의도를 왜곡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부분도 한쪽에 주도권(?)을 주는 것은 아닐까? 브래지어 착용법이나 생리대 사용법은 여자아이들이 배울 때 남자아이들도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이지!!! (브래지어는 할 필요가 없는 속옷이라고 교육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함께 배우세요~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 벗기는 법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현실적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론과 현실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너무 이론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아이들에게 반작용이 될 테니. 아무튼 남자아이 대상의 성교육 책인 것을 확실히 하고는 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 남자를 좋아하는 경우, 둘 다 좋아하는 경우, 관심이 없는 경우 모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높이 살 수 있겠다.)

아이들이 프랑스어로 먼저 읽은 이 책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흠흠. 흠흠흠. 

그나저나 이런 책도 번역해서 팔면서 얼마전 논란이 된 어린이용 성교육책들은 뭐가 그리 문제라고? 살짝 엿본 바로는 그 책들도 내용이 뭐 썩 좋지는 않았지만(너무 오래전에 나온 것들이라), 섹스가 즐겁자고 하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반대하는 이유도 참. 이 책도 학교에 비치하자고 하면... 아주 난리 나겠어. 
















동생과 조카를 위해 책을 고르느라고 위의 두 권도 빌려보았다. 비슷비슷. [부모의 첫 성교육]이 조금 더 나은 느낌. 그나저나 [일단, 성교육...] 책을 읽어보라고 동생에게 추천해 놓았는데 왠지 동생은 책을 집어던질 것 같은.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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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겨 좁은 집(방) 어찌 안 될까 요리조리 궁리 중이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보인다. 크지도 않은 몸을 숨길 곳이 없다. 숨고 싶을 때 숨을 만한 장소를 찾지 못하면 슬프고 허무하다. 아이가 어릴 때 자주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이불을 식탁에 씌우고 그 안에 들어앉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아무도 아무 소리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책을 읽는다. 공간욕과 더불어 오랜만에 분위기 바꾸기용 인테리어 욕구도 뿜뿜. 이것도 사실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글쓴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내가 사는 집을 꾸미기 좋아한다. 벽지 위에 페인팅 몇 번 해본 정도. 두번째 신혼집의 내가 꾸민 거실 인테리어는 한 면을 그대로 누군가가 사갔다. ㅎㅎㅎ 프랑스 온다고 온갖 살림을 다 정리하던 때였는데 아파트에 벼룩시장 연다고 광고를 붙이고 집에서 죄다 팔았었다. 그 때 내 예쁜 샌들 계산 안 하고 그냥 집어가신 그 분!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시면 안 됩니다! 아직도 기억난다.ㅋㅋ 

임대하는 집이지만 내 맘에 들게 최소한의 금액을 들여 고쳐서 사는 모습이 뿌듯하게 좋았다. 남들이 뭐라건 내가 좋으면 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부럽기도. 밑줄친 구절은 없지만 통째로 나의 취향인 책이라 잘 읽었다. 

한 달을 살아도 내 맘에 드는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지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니 옆에서 제동을 걸면 아무래도 망설이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의 망설임을 접자 싶었다. 집안 구석구석 맘에 안 들어 맘에 안 들어 이러면서 7~8년 살고 있는데 이사는 요원해 보이고 계속 이러고 살 거면 페인트칠이라도 내 맘대로 하겠다! 선포를 했다. 역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즐거운 법이지. 그러나 날은 춥고 봉쇄령은 내리고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슬그머니 또 꺼려진다. 인테리어의 기본은 정리하며 버리기인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집안은 온갖 잡동사니로 넘쳐나고 통일되지 않은 제각각의 가구들이며 어디부터 손대야 할 지 막막할 뿐이고. 



















윤성근, [작은 책방 꾸리는 법] 

서점이든 북카페든 도서관이든 아니면 개인 서재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아무 형태의 책방을 나도 갖고 싶다. 그래서 읽어보았다. 딱 좋습니다. 길이가 조금만 더 길면 더 좋았을. 책에서 제안하는 대로 나도 내 생각대로 컨셉을 만들어 표를 그려보았다. 오! 한번에 다 써지는데? 책방 내도 되겠어! 라는 엉터리 생각을 했다는. 푸핫. 이런 책 더 읽어보고 싶다. 

















이유미, [자기만의 (책)방] 

목차와 리뷰를 꼼꼼히 살피고 인용 문구도 다 읽어보고 책을 고르는 편인데, 이번 선택은 실패. 내 기대를 채워주진 못했다. 


















김민채, [언젠가는, 서점] 

아직 안 읽음. 언젠가는, 책방. 
















쓰지야마 요시오, [서점, 시작했습니다] 

사놓고 다음 배송을 기다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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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가장 깊숙이까지 꺼내 볼 줄 모르는 눈으로는 세계를 응시하는 깊이에 한계가 있을 터였다. 무의미한 일상을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데에 미흡했고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직조 능력도 부족했다. 인생의 얕은 경험은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했고, 좁은 시야로는 너른 세상을 생생한 삶의 언어로 압축하지 못했다." 

-이 구절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미흡하고 부족한지도 모른 채 무조건 살았던 날들. 책 끝부분의 부침글에서 구병모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그 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확보하는 데에만 최소 10년이 걸리며 소설 속에 나오는 조카들은 4세와 6세이니 아직 한참 남은 듯싶어 보는 내가 다 까마득해질 무렵, ..." 최소 10년. 나의 10년. 그 10년. 


"어른들의 반찬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따로 했고, 아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으로 업고 뛰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은 결코 단순하거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육아는 체력 싸움이었다. 그 시기의 내 꿈은 딱 세 시간만 통잠을 자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둘째가 깰 때마다 엄마는 동생이 자는 방문이 꼭 닫혔는지 확인하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동생은 출퇴근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 '어른들의 반찬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따로 했고'라는 문장을 읽으면 음식을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반찬을 따로 만들었다는 이 구절은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그 수고로움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만들어진 반찬을 먹기만 한 사람에게는 그저 힘들다는 뜻의 구절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아주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까. 모든 문장이 그렇다. 한두 문장으로 써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 한 문장 안에 끝도 없는 문장들이 들어서 있는. 


"이 길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멀리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청소와 빨래와 밥 준비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 그러니 주부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달라. 이틀도 아니고 하루다. 숨통이 트이지 않으면 결과는 비슷하다. 미치거나 사라지거나. 


"3년쯤 지나니 엄마가 별소릴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첫해 동안엔 정말 사소한 것까지 엄마가 시켜야 할 줄 알았다." 

- 집안일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3년. 옆지기와 아이들이 하나같이 서투른 이유는 3년을 매번 숙제처럼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수십 번을 해도 늘 같은 결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 일이라 생각하면서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손에 익는 일. 


"매일 한 편씩 필사를 하고, 줄곧 시집만 읽어댄다고 실력이 늘 리 없었다. 계속 써왔어야 했는데, 쓰지 않으면 늘지 않는 것이 글인데, 알면서도 마음처럼 못 했다. 늦은 줄 알고 출발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데. 공부를 할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낳고,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새로 만나는 것 모두가 그 시기에 걸맞은 때에 행하는 것이 보편의 삶인데. 내가 보편의 삶을 살지 못해서 나에게는 늦거나 이른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적인 벽에 맞닿으면 자꾸 잘못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걸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자꾸 어쩌지 못했다." 

- 매일 한 편 필사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닌가. 계속 읽는다는 것도 대단한 것 아닌가. 보편의 삶은 없다고 믿자. 개인의 삶일 뿐이다. 대체로 다 비슷한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거다. 늦었다고 말하면 서글프다. 늦은 때는 없다. 


"세상은 무섭고, 사람들은 더 믿을 수 없으며, 자연은 매 순간 황폐해지고 있었다. 이런 세계에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어른들의 이기심은 아닐까, 무책임하고 무모한 선택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 때 되면 결혼하고 때 되면 아이를 낳는 거라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말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작은 세계 하나를 구축하는 일이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지 못한 꽃, 아직 발화하지 못한 꽃, 아직 제대로 맺히지 못한 꽃. 내가 꽃이라면 한 번은 피워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정말 식구들에게 발목이 잡혀 땅에 묻히기 전에. 나는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식구들과 거리감을 둘 공간이 필요했다." 

- '거리감을 둘 공간', 절실한 공감. 아버지, 좀더 딸을 알아봐줬어야 해요. 뒤에 물러서있지 말고 함께 해야 했어요. 그러나 앞으로도 뒤로도 물러설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주인공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 집을 나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시인은 누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시인이 아니라 시인의 애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나를 보며 시를 쓰게 만드는,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다음 생의 바람이라면 이번 생에서는 어떻게든 시인이 되어야 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시인이라고. 시심을 품은 자가 시인이니 시를 읽을 줄만 알아도 시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음 생애에 시인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말만큼이나 허황된 표현 같았다." 

-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 어릴 적엔 제법 시라고 끄적이곤 했었는데 아주 짧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도 시를 잊었다. 세상을 보는 또다른 눈을 잃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게 만든다. 대학 시절 어떻게 써도 등단을 할 수 없다며 신춘문예 낙방 소식만을 전하던 선배의 소주잔 같은 것. 그런 것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눈을 이제는 좀 찾아봐야 겠네.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나는 현생에도 미래의 생에도 예술가의 애인(여자로서)은 하기 싫다. 이미 알려진 예술가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내가 이래저래 아는 예술가들과 그 예술가의 부인들이 정말 끔찍(!)하게 사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허황된 표현'이라는 말만큼이나 그들의 삶은 허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쓴다는 포즈만 취해왔던 것이다. 시와 같은 편이 되거나 시와 같이 어울려야 하는데 나는 늘 속내를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멀찍이서 노려보기만 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나를 그려 넣고, 나를 새겨야 하는데 그마저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시를 쓰지도 못하면서 시 쓰기를 꿈꿨다는 건 시의 그림자에 숨어 내 언어가 사라지는 줄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 그러니까 나는, 인생을 산다는 포즈만 취해온 건 아닌가... 



***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걸리는 부분들에 다 밑줄 표시를 했다. 위의 구절들은 밑줄 그은 것의 절반 정도. 주로 마음에 와닿거나 깨우침을 주거나 인상깊은 구절들이 밑줄인데, 이 소설에는 자꾸 토를 달고 싶어졌다. 그 또한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와닿았다는 말이겠지. 휘몰아치듯이 읽고 났으니 이제 숨을 좀 고르고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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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06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이설 작가의 책이군요. 그분을 알라딘에서 알던 시절이 벌써 오래 되었네요. 작가가 되어 알라딘에 뜸하신 분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지네요. ^^;

난티나무 2020-11-06 12:31   좋아요 0 | URL
오 몰랐어요! 저도 보고 싶은 닉넴들이 많은뎅. ㅎㅎ 잘 지내고 계시겠죠 모두?

다락방 2020-11-06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작가의 이 책 읽으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위로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티나무님께 제대로 가서 꽂혔네요. 김이설 작가의 위로가 난티나무님께 닿은 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0-11-06 12:40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면 위로,보다는 낙담? 좌절? 이랄까 그런 감정이 더 많이 듭니다. 공감하지만 이렇게 쓴 글이 많은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아는 사람 말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짊어져야 하는 돌봄의 무게는 결혼하거나 안 하거나와 상관없다는 현실이 ㅠㅠ 조카들 양육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또 어머니를 돌보게 되겠죠....
왠지 [82년생 김지영]보다 두어 단계 더 나아간 것 같은 느낌? 그러므로 그건 또 의미있는 나아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 소설 읽고 잘 우는 편인데 이 소설엔 눈물이 나지 않더라고요.ㅎㅎㅎ

수이 2020-11-06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작품만 읽었었는데 이 책 읽어봐야겠구나 싶어져요. 얼마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을지 그 갈피 잘 헤아리면서.

난티나무 2020-11-06 12:44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 좋아요! 한밤중에 잠이 완전 깨버려서 읽고 있던 황정은의 [계속해 보겠습니다]를 마저 읽었는데 좋아요!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아름답네요? 만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