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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ㅣ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평점 :
이 책은 미국의 한 잡지의 편집자이기도 한 1974년생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 열네 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글들은 주로 유명 잡지들에 실렸고 사실에 기반으로 한 기사 형식의 글들이다.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한 현장감이 생생하면서도 보통의 기사 형식의 글들과는 다르게 상황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저자의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이 문장마다 흘러넘치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방식의 글들은 일찍이 미국에서 1960~70년대에 유행했고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과의 차이를 두기위해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실 위에다 소설적인 기법을 덧칠해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맛깔나게 가미해서 통찰을 이끌어 내는 좀 더 문학에 가까운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될까?
뭐라고 부르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거 같은 정보들이 이 글들 속에 있었고 글감을 다루는 저자의 글 솜씨가 유려해서 읽을 맛이 난다는 점이 아주 좋았다.
거의 백인들만 참석하는 사상 최대의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서 만난 독특한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저자의 형이 락 밴드 연습을 하다가 마이크에 감전을 당해서 죽다 살아난 이야기, 남부 문학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 진 노년의 작가 미스터 라이틀과 20살의 저자가 한때 동거 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 마이클 잭슨과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에 대한 이야기, 켄터키 주에 있는 미국 원주민들의 역사를 가득 품고 있는 수많은 동굴들의 이야기, 초기 블루스 음악을 했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밥 말리의 원년 밴드 멤버인 버니 웨일리를 만나면서 풀어놓는 자메이카의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집을 거액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빌려 준 경험 등등...
거의 모든 주제가 흥미진진했다. 어디 가서 이런 특별한 주제의 글들을 한꺼번에 다 읽어 볼 수 있겠는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책 한권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잡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글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다는 점이 좋았다. 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자의 따뜻한 인격은 이 글들을 쓸 당시 30대 였을 저자의 나이를 생각해 봤을 때 꽤나 예상외의 것이었다. 30대의 젊은 기자의 날카로운 냉소의 시선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해와 연민의 시선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 대한 글은 무신론자의 시선으로 페스티벌을 비판적으로 훑으면서 간간히 유머를 가미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는 그곳에서 자신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3년 동안 복음주의 교회에 푹 빠져서 활동 했다가 빠져 나왔던 경험을 털어 놓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와중에 신을 사랑한다는 그들을 이해한다.
액슬 로즈의 어린시절 고향 친구를 인터뷰 할 때 저자는 또 다른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빈부격차가 사람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 하던 어린 시절엔 다함께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는 친구와 아닌 친구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 이후 대학을 가지 않았던 친구들과는 평생을 만날 일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저자의 기억은 고향을 떠나 락 스타가 된 액슬 로즈와 고향에 남아있는 그의 친구의 관계 속에서 소환된다. 어릴 땐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커서 달라진 처지 때문에 영영 볼 일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그 씁쓸함에 대해...
저자의 글에서는 주제로 떠오르는 사람들, 인터뷰 한 주변인들 누구도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 깎아 내리면서 유머를 던지는 유의 글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리얼리티 출연자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빈정대며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글을 썼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출연자들이 방송 출연을 하지 않을 때 여기저기 파티에 불려 다니며 약간 우스꽝스러운 인플루언서로 사는 삶의 방식도 존중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지 하는 시선.
아 딱 한명 “양들의 폭력”에 나온 동물학자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건 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물 묘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읽으면 알게 된다. 아무튼 이 “양들의 폭력”도 거의 소설 읽듯이 참 재밌게 읽었다.
독특한 주제 아래에서 종교, 대중문화, 역사, 정치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까지 이루어내는 에세이였다. 최근에 몇몇 에세이를 읽었는데 대부분 사적인 경험에 치중한 것들이 많아서 식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취재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문학적인 성취까지 이룬 에세이를 읽다보니 너무나 새로웠고 지적인 호기심도 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재밌게 잘 읽었고 다른 뉴저널리즘 장르의 에세이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