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벌린 워의 "한 줌의 먼지"를 다 읽었다.
이 책 엄청 차갑고 풍자적인 소설이었다. 사람들이 다 감정이 없고 그냥 무슨 종이인형들 같다. 그래서 우스꽝스럽고 하찮아 보인다. 그당시 영국의 상류층을 바라보는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차갑고 씁쓸한 쓴웃음이 지어지는 순간은 이 소설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어린 존의 죽음에 대한 부부의 반응이었다. 아버지 토니는 아들이 죽었는데도 슬퍼하거나 울지도 않고 동물 울음소리를 내는 카드게임을 하고 손님 접대에 대한 걱정이나 하고 있다. 나중에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 있겠거니 기대했지만 전혀 그런건 없었다.
어머니 브렌다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자신의 애인과 이름이 같아서 애인이 죽은 줄 알고 놀라다가 아들이라는 걸 알고는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순간을 맞이한다.
바로 이 문장.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조크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 하는 듯했다. "존이......존 앤드루가....... 난......, 오, 세상에......" 그러곤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앉은 채로 몸을 돌려 금칠된 의자 등받이에 이마를 대고 한참을 흐느겼다. (183 쪽)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 문장만 보면 브렌다가 좀 정상적인 반응을 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She frowned, not at once taking in what he was saying.
'John … John Andrew … I … oh, thank God … ‘ Then she burst into tears.
She wept helplessly, turning round in the chair and pressing her forehead against its gilt back.
요렇게 나와 있다. 브렌다는 애인 존 비버가 죽은게 아니라 아들 존 앤드루가 죽었다는 걸 알고는 순간적으로 oh, thank God 이라 말하며 안도한다. '오 정말 다행이에요' 이런식으로 번역을 했다면 순간 속마음이 튀어나오는 브렌다의 비인간적인 반응을 훨씬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지 않을까?
너무 착하게 번역한 느낌~
에벌린 워가 정확히 의도하고 쓴 브렌다의 말실수가 이 순간의 묘미일거 같은데 말이다.
뭐 아무튼 이 소설 재밌게 읽었다.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랑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에벌린 워는 처음부터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을 쓰던 작가는 아니었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차가운 유머는 늘 간직하고 있었던 듯하다. "다시 찾은~"에서도 그런 유머는 간간이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음.... 그래도 둘 중에 뭐가 더 좋았냐고 한다면 난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가 더 좋았다!
낄낄거리고 냉소하며 웃는 재미보다 간질간질하고 가슴 아린 연애소설 읽는 느낌의 소설이 더 내 취향인듯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