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미국에 있는 혈육이 영어 소설책을 몇 권 보내 줬는데 그중에 이 책도 있었다. 그동안 번역된 제니퍼 이건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새로 나온 이 신간 소설도 재밌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책을 딱 펼쳐서 읽는데 초반부터 ‘이거 참 만만치가 않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단어도 어렵고 쉽게 도전할 원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책 속 인물들과 그 인물의 일대기가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싶은 거다. 가만 기억을 떠올려보니 제니퍼 이건이 퓰리쳐상을 탔던 “깡패단의 방문” 속 인물들이 이 소설과 겹치는 것 같은 거다. 당장 원서 읽기를 중단하고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 10년쯤 전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 기억이 거의 안 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다 읽고는 이 책 “캔디 하우스”를 바로 펼쳐서 읽었어야 하는데 그때 뭔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고 만만치 않은 난이도에 골치도 아파서 그냥 덮어두고 안 읽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올해 2월초부터다. 근데 또 웃기는 사실을 고백하자면 작년에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읽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또 많이 까먹어 버려서(뭐냐 내 기억력ㅡㅡ) 또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작을 뒤적거리며 이 인물이 누구더라 하면서 되짚어 읽어 봤다는....머리가 나쁘면 이렇게 고생을 한다.
자 그래서 어렵게 이 책을 다 읽었다. 초반이 힘들었는데 점점 이 소설 스타일에 적응을 하게 되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고 중반 넘어가서는 속도도 붙어서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감동과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이 책 내 기준으로 원서 난이도 꽤 높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막 튀어 나오고 시점이 왔다 갔다 해서 내용도 다소 복잡하다. 그나마 문장은 길지 않고 평범한 수준이라 단어만 잘 넘기면 문장 읽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왜 자꾸 책 어렵게 읽었다는 얘기를 하냐면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못 쓸 거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형식상 내용을 요약하기 힘든 소설이고 이 책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정리해보려 하면 약간 복잡하게 느껴져서 뭔가를 쓸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근데 이토록 어렵게 읽었는데 아무것도 안 쓰고 넘어가면 너무 섭섭할 거 같은 거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하는 중이라는 거?
이 소설은 여러 인물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등으로 나름대로 다 얽히고설켜 있고 그 관계가 “깡패단의 방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지 쉽게 파악이 된다. 뭐 안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깡패단의 방문”을 먼저 읽는 게 좋기는 하다.
각각의 인물들이 한 챕터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의 완벽한 단편 소설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한 챕터 당 이야기가 독립적이다. 하지만 물밑에선 이 인물들이 모두 다 연결 되어 있고 배경으로는 “집단적 의식” 즉 기억 공유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이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독립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하나의 큰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 소설은 현실과 다른 평행우주 같은 현재 세계와 미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약간 SF적인 냄새도 난다.
이 소설속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머리에 센서를 부착해서 뇌에 저장된 기억을 만다라 큐브라는 장치에 업로드를 하면 누구나 그 기억을 볼 수가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 있었던 기억이 있다고 치자. 그 당시 똑같은 때에 똑같은 장소에 있던 다른 사람도 자신만의 기억이 있다. 이들이 모두 큐브에 기억을 업로드 했다면 서로의 시점으로 그때의 기억을 공유해서 볼 수가 있다는 식이다. 내 기억은 이런데 저 사람 기억은 저렇구나 하고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 기억에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보면서 불확실한 부분을 채워 넣을 수도 있다.
이 기술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누구나 타인의 기억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에 A가 B를 마음속으로는 싫어하지만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 했다면 이제 그 기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B는 A의 진실한 속마음을 알아버리게 된다는 식이다. 이런 기술이 과연 좋기만 할까?
그냥 딱 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아주 심각해 보이는 무서운 기술이 아닐 수 없는데...현실에 이런 게 있다고 생각해보면... 와.... 안돼!!
그래서 이 소설 속에선 이 기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활동을 한다. 집단 의식에 기억이 업로드 된 사람들은 그것에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또 다른 기술을 이용하는 비영리집단 몬드리안을 이용한다. 만다라와 몬드리안은 서로 양극단에 있고 거기에서 주력으로 일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니 근데 여기까지는 그냥 이 소설의 배경일 뿐이다. 중요한 건 이런 기술이 스며들어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연결해 주는 건 만다라의 창업자 빅스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도록 영감을 준 아이디어, 즉 인류학자 미란다 클라인의 연구 논문이다. ‘친밀함’의 패턴에 대한 연구.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신뢰하고 좋아하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미란다는 사람들이 서로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을 때 친밀감이 형성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을 토대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성공을 거둔 빅스는 기억을 공유하는 만다라 큐브까지도 개발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친해지기 위해서 정말로 그렇게나 많은 서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은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조용한 깨달음의 순간과 함께 찾아온다.
어느 날 어떤 장소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에 다른 혼자인 사람에게 손을 뻗어 친구가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으로 평생의 좋은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죽을 위기 앞에서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소망할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하다가 불쑥 만나게 된 친구는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보이고 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 평생 추구했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순간도 있다.
우연히 남의 가방을 맡게 되어서 가방 주인이 올 때까지 오도가도 못 하고 길거리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밤, 옆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의 존재에 위안이 되는 순간도 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 거렸던 두 이웃은 그 중 한명이 깊은 실의에 빠지자 다른 쪽 한명이 갑자기 적의를 내려놓고 실의에 빠진 쪽을 위로해 주는 순간도 있다. 이들은 그 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함께 오랫동안 앉아 있곤 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던 친척의 우울한 낌새를 눈치 채고 내내 같이 있어 주다가 자살 시도에서 생명을 구해주고는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되는 순간도 있다.
비록 각자의 이익을 위해 소통했지만 그 소통으로 얽힌 사람들이 모두 만족한 결과를 얻었을때, 개인의 성취란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집단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술을 이용 하는 인물들은 죽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두 딸들의 이야기뿐이다. 그것마저도 내 트라우마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죽은 아버지의 기억이 필요했던 것이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아니다.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은 직접 접촉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다. 내가 아팠던 이야기는 상대의 우울한 이야기와 공명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그냥 정보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기술은 사람들을 달콤함으로 유혹해서 낚는 캔디 하우스일지도 모른다고 이 소설은 많은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해준다.
이 소설은 참 독톡하다. 인물이 바뀌면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그 인물에 꼭 맞게 휙휙 바뀐다. 어떤 인물은 보고서 형식이나 이메일의 나열 등의 새로운 서술 형식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독특한 인물에 독특한 형식을 차용하지만 결국 인간 보편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들이라 공감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어떤 부분은 아름답기도 하고 따스하기도 하고 감각적이기도 해서 읽는 재미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려움)
번역서가 나온다면 다시 읽어 봐야지. 우리말로 어떻게 이 소설을 옮겼을지 매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