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밤에 이 소설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머릿속에 소설의 여운이 남아서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었다. 약간의 서운함과 슬픈 감정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내가 겪지도 않았지만 찰스와 세바스찬의 옥스퍼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옥스퍼드 근처에도 안 가봤는데 이게 대체 뭐람?
잠을 자기 위해서 슬픈 여운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구도 보지 못하는 나만의 상상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오글거리는 것들로 소설의 빈곳을 채워 넣는 구상을 하고 있자니 잠이 솔솔 왔다.
다음날 소설을 처음부터 찬찬히 한번 더 들여다봤다.
매우 재밌고 풍성하며 아름다운 문학이 다시금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 소설은 가톨릭이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매우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소설이기도 하다. 불가지론자인 찰스의 시선으로 영국에서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 가톨릭 귀족 집안의 가족 구성원의 삶을 따라가는데, 그들이 결국은 가톨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모습을 보며 찰스조차도 가톨릭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 소설이 고루하고 교훈적인 종교 소설인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종교를 말할 때 독실한 쪽의 논리와 불가지론자 찰스의 논리가 부딪히지만 독실한 쪽의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결코 호감이 가는 면면들이 아니다 보니 독자들은 종교에 순순히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다. 에벌린 워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쓴 소설이라 가톨릭에 긍정적인 태도를 고수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딱히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가톨릭에 대한 새로운 감화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절대적인 신이라는 존재가 이 힘든 세상 이런저런 부침을 겪는 인간들에게 위로를 주는 마지막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나는 이 소설 전반에 깔려있는 가톨릭을 이해했다.
종교적인 색채와 더불어 이 소설을 채우고 있는 강렬한 색채는 바로 사랑이다.
이 소설이 그토록 인기를 얻고 드라마화 되고 영화화 된 이유. 바로 그 사랑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찰스와 서배스찬의 여름 같은 사랑~
열아홉 옥스퍼드에서 처음 만난 둘은 상큼하고 푸릇푸릇한 에피소드들을 뿌리며 둘 만의 아르카디아에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아쉽게도 너무 짧았다.
찰스와 서배스찬의 사랑이 이토록 짧게 끝난 것에 대해서 표면상에 드러난 이유는 서배스찬의 알콜 중독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 서배스찬은 왜 그렇게 망가져야만 했고 그의 감정은 어떤 것이기에 찰스를 떠날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찰스의 시선으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문장 속 작은 단서들로 서배스찬을 짐작할 수밖에 없어 그에 대한 설명엔 빈칸이 많지만 이 소설이 설레는 이유는 그 빈칸을 독자 나름대로의 관찰로 채워 넣을 수가 있다는 데에 있다.
내가 채워 넣은 답은 이렇다.
서배스찬은 곰돌이 인형을 가지고 다니며 대학 생활을 할 만큼 어른이 되기를 거부해왔다. 그는 자신의 성적지향을 알았을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종교와 사회에서 허락되지 않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을 꺼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찰스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물론 그 둘은 아직 풋풋하기만하지 어른의 사랑은 아니었다.
시간은 흘러 서배스찬과 찰스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어른의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이제 찰스에게 달렸다. 찰스는 서배스찬의 가족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으로 사회적 규범 안으로 점점 들어가고 서배스찬은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배스찬은 술로 도피하고 결국 찰스를 떠나버린다.
외국에서 서배스찬은 돌봄을 받기만 하던 어린아이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게 하는 커트라는 남자와 비로소 진짜 어른의 사랑을 했을 것이다. 커트를 잃게 되자 서배스찬은 완전히 무너진다.
서배스찬과 헤어진 찰스는 어땠을까? 그는 화가가 된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는다. 하지만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크게 애정을 느끼지 못 한다. “서배스찬을 그리는 외로움”이 결혼한 이유 중 하나라고 찰스는 말한다. 그는 서배스찬 이후 다른 사랑에 빠지지 못 했다.
이때 서배스찬의 여동생 줄리아가 나타난다. 찰스는 줄리아에게서 서배스찬과 똑 닮은 외양을 본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나는 서배스천을 잊지 않았다. 그는 줄리아 안에서 날마다 나와 함께했다. 아니, 그보다는 그 옛날 아르카디아의 나날에 내가 서배스천 안에서 안 존재가 줄리아였다. (494쪽)”
종교 문제 때문에 결국 줄리아랑 헤어지게 되는 찰스는 줄리아를 통해서 느꼈던 서배스찬과의 사랑도 이젠 정말로 과거의 한때로 남겨둘 수밖에 없게 된다.
첫사랑, 달콤한 열정, 이루지 못한 사랑, 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겨진 사랑......
중년이 된 찰스가 전쟁 중 다시 브라이즈헤드 저택에 돌아와서 그토록 아름답게 회상하는 사랑.
바로 이러한 사랑 이야기를 이 소설은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과거 회상조의 문체가 그렇듯 찬란한 한때를 묘사하는 서정적인 문장들이 빛이 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감정에 빠져 있기만 하지는 않는다. 툭툭 튀어나오는 유머와 풍자가 소설을 맛깔스럽게 하기도 하고 개성 강한 인물들의 생생한 대사들이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특히 찰스 아버지의 그 뚱하고 무뚝뚝한 대사 속에 아들을 어떻게든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겠다는 악의가 담긴 비꼼의 대사는 진짜 너무 웃기고 재밌던 부분이기도 했다.
너무 만족스러운 독서였고 에벌린 워의 소설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망고야 뭐해?)
앗 쓰다보니 2023년이 되었네
2023년 첫 글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