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법의생태학이라는 분야를 알게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고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장을 읽는 맛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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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비오거나 흐리다가 햇빛 반짝 나고 하늘이 파랗게 되니 상쾌하구만

마당에 나리꽃이 한가득 폈다. 중간중간 원추리도 펴있고 한켠엔 플록스꽃도 한다발 화려하게 펴있다.

7월이 뭐 이렇게 안 덥냐 하는데 그래도 여름에 필 꽃들은 알아서들 잘 피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이 책을 읽고 있다. 사실 중간쯤 읽다가 멈춘 상태.

엄청 흥미진진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책이라 좀 그렇다ㅋㅋㅋ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이 쓴 책이라 그렇겠거니 하긴 하는데 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수사기법 이런걸 막 기대했기 때문에 약간의 실망을...

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그냥 추리소설을 읽었어야 했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시원할 거냐 여름.

난 덥고 땀 나서 숨막힐거 같은 뜨거운 여름이 좋은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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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간만에 날씨가 맑아서 가까운 구봉산에 놀러갔다.









하늘이 높고 파랬다 기온도 별로 안 높고 벌써 가을이 온건가! ㅋㅋㅋ

맑아서 멀리 산 골짜기도 선명하게 잘 보이고 시야가 탁 트인게 아주 좋았다.

후다닥 커피 한잔 마시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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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이 영화를 봤는데 잠들기전 내내 마음이 너무 아픈거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오늘은 게다가 비도 오고 영화의 웬디 생각도 계속 나고 더더욱 기분이 촤악 가라앉는다. ㅠㅠ



웬디는 알래스카로 가기 위해 인디애나주에서 운전해서 오리건주까지 왔다. 동행은 달랑 루시라는 반려견 뿐이다.

알래스카로 가는 이유는 취직을 하기 위해서다. 그곳에선 늘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현재 웬디는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가는 단출한 짐과 낡은 차와 몇푼의 현금만 있는 상태다. 

최대한 아끼고 아껴야 그나마 알래스카에 갈 수 있을텐데 오리건의 활기없고 쇠락한 마을에서 그만 발이 묶여 버린다. 20년은 훌쩍 넘은 차가 먼 길 오느라 고장이 나버린거다. 더이상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거기다가 빠듯한 예산 생각에 마트에서 개 사료를 훔치는 잘못된 선택으로 경찰서에 잡혀가느라 루시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개통조림 하나 훔쳤을 뿐인데 굳이 원리원칙대로 경찰을 불러야 한다는 마트 점원은 야박하기 그지 없었다. ㅜㅜ

경찰서에서 벌금을 내고 나온 웬디는 루시를 찾으러 다니지만 루시는 어디에도 없다. 

루시를 찾기 위해 웬디가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지만 루시는 찾을 수가 없다.


요즘 시대에 휴대폰 하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웬디는 그나마 낡은 차라도 있었기 때문에 밤에 들어가 잘 지붕이라도 있었던 셈인데, 차를 수리 맡겨야 하는 바람에 잘 곳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산에서 혼자 잠을 자는데 그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숙자를 만난다. 

노숙하면서 맞닥뜨린 이 공포에 주유소 화장실에 달려 들어가 울음을 터트리는 웬디를 보고 있자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영화는 조용하고 담담하다. 그래서 현실적이기도 하다. 

멀고 긴 여행 중인 가난한 웬디는 말을 걸어 오는 낯선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쉬운 길로 빠지려는 사람도 아니다. 길위에서 혼자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는,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성격의 사람이다. 우리 거의 대부분의 현실 속 사람들이 그러하듯. 

웬디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냥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웬디에게 가장 친절했던 주차장 관리원은 작별인사를 하며 그녀에게 돈을 쥐어 주는데 그가 베풀 수 있는 선의는 지폐 6달러 였다. 고마운 돈이지만 한편으론 가슴 아픈 액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때까지 보다 훨씬 더 가슴아픈 이야기는 결말에 있었다.ㅠㅠㅠㅠㅠㅠ

루시를 찾은 웬디는 이제 차도 없고 남아 있던 돈도 반이나 쓴 상태다. 이대로 알래스카에 가는건 지금까지 보다 더 고생 길이 될 게 뻔하다.

반면 루시는 푸른 잔디마당이 있고 사료 떨어질 걱정이 없는 집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 살고 있다. 웬디는 어떻게 해야 할까? 

ㅠㅠ


웬디가 돈 벌어서 루시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분 좋은 결말을 나혼자 상상해 보려고 했는데, 이 영화가 현실을 단단히 딛고 있기 때문에 동화같은 판타지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서 그런지 상상이 잘 안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영화 내내 웬디가 범죄나 마약 같은 나쁜 길로 빠질 성향의 사람은 아닐거라고 거의 확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웬디는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혼자서 꿋꿋하게 잘 헤쳐나갈 것이다. ㅜ ㅜ



이 영화는 크고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길 위의 가난한 인생을 지그시 따라가기만 하는데도 사회의 빈곤과 소외라는 문제가 보는이의 가슴 속으로 아프게 파고 든다. 

가볍게 선택한 영화였는데 한 방 세게 맞은 느낌이다. 아주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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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0대 초반의 청년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알레스카의 숲속에서 죽은 채 발견 되었다. 4달가까이를 혼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하다가 결국엔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혼자 죽어간 것이다. 맥캔들리스는 스스로 그 숲에 찾아갔고 야생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위해 4달을 맨몸으로 버텼다. 최소한의 생존 도구들만 챙겨 갔지만 알래스카의 야생에서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맥캔들리스의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그 청년이 너무나 어리석었다고 비난했다. 자연을 우습게 보고 젊은 객기를 부린게 아니냐는 것이다. 맥캔들리스의 준비성 부족과 오만함이 가져온 비극이라며 청년의 죽음에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초반 이 책을 읽을땐 맥캔들리스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같은 편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무모할까? 애초에 감당도 못 할 야생으로 들어가는게 아니지! 알래스카 숲속이 무슨 애들 장난인가? 하는 생각으로 쉽게 그 죽음을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저자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말을 건낸다.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알래스카로 가기전의 삶을 추적해 20대 청년의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의 바람대로 로스쿨에 가는것 대신 무전여행을 다닌다. 그러면서 야생에 대해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똑똑하고 재능이 많으며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 애정을 듬뿍 쏟았던 한 노인은 맥캔들리스를 양자로 삼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저녁 초대로 처음 만나 몇시간이나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며 인상깊은 청년이라고 회상하던 노부인도 있었다.



이토록 그를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전도유망한 청년이 왜 혼자서 알래스카 오지에 가서 생활하려고 했던 것일까?
저자는 그게 젊음의 열정이 과도하게 표현된 예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20대 젊은 시절 미친짓을 한다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숙한 젊음은 그게 호르몬의 농간이든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든 아무튼 열정폭발의 단계를 거치지 않느냐고.
저자도 젊은 시절 알래스카의 산들을 등반하며 그 열정을 분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위험해서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어쨌든 운이 좋아서 살아 남았다고.
저자는 맥캔들리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고 함부로 이 열정가득한 청년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맥캔들리스를 비난하는 많은 어른들도 자신들이 미숙하고 바보같은 행동들을 하던 무모했던 그 시절을 이 청년이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몇년전 여행을 갔을 때 인생 처음으로 사막에 가게 되었다. 나는 그곳이 참 좋았다. 뜨거운 태양과 황무지가 펼쳐지는 풍경도 물론 좋았지만 이런 시각적인 느낌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많은 간접 체험을 해봤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상하던 느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았던건 고요함이었다. 이런건 정말 예상도 못 했었다. 고요함이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아니 몇 날 며칠이고 있고 싶었다. 이런 고요함과 함께라면 혼자 남겨져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경험을 미루어 이 책을 읽다보니 만약 맥캔들리스처럼 열정 넘치고 행동력 강한 청년이라면 내가 느꼈던 그런 고요함 비슷한 자연의 강한 이끌림을 좇아 어디든 가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남을 쉽게 비난하기는 쉽다. 그 사정들이 무엇이었는지 한 인간의 성향이 어땠는지 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벌어진 상황만 보고 어리석다 치부해버리는 건 너무나 쉽지만 각박하다. 

알래스카 오지에 가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했던 한 인간을 따라가다 보니 목표를 위한 고집스러운 열정이 보였고 그리고 젊음이 보였다. 젊다고 모두 그처럼 위험한 모험을 불사하지는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젊음이 맥캔들리스가 했던것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뿐이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젊음이란 것엔 무모함을 조금씩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게 죽음의 극단까지 가지는 않았더라도 젊음은 어느순간 엉뚱한 용기로 표출되기도 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지 않을까?
그런 이해에서 이 책을 덮을 즈음엔 맥캔들리스의 도전에 내가 했던 처음의 비난이 누그러지는 경험을 했다.
너무 젊었던 그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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