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포드의 "스포츠 라이터"
한 3년쯤 전인가... 신간서적으로 소개되었을때 한번 읽었었다. 나는 퓰리처상 수상작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당시엔 실망을 금치 못했었다. 도대체가 책속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케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는 했다. 문제는 그저 눈으로만 읽었다는거.
그렇게 이 책은 내 책꽂이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놈을 다시 꺼냈다. 한번 더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갑자기 생겼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처음으로 읽는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장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거다. 처음 읽고나서 이건 도통 내 취향이 아니로군 생각하고 작가를 탓하며 책을 버리다시피 책꽂이 깊숙한 곳에 유배보냈던 때와는 다르게 이 소설이 내 가슴속에 쏙 들어오는 거다.
이 책은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는 류의 소설이 아니다.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주욱 따라가면서 과거가 툭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현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그렇다. 주인공이 뱉어 내는 감정들을 공감하고 이해한다면 이 책이 마음에 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루하고 무의미한 책일 뿐일 것이다.
주인공 배스컴은 고독하고 어쩌면 좀 이기적이기도 하다. 처음 읽었을때는 이 주인공이 참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 소설속에서 주인공이 이런식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뚜렷하게 설명하고 있다는걸 발견했다. 그것은 배스컴의 성장과정에 있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기숙 학교에 보내진다. 어머니는 재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고, 그 가정에 배스컴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던 듯 하다. 내내 기숙학교에서 지내다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세상에 혼자가 되었을때... 배스컴은 이미 고독과 고립감에는 이골이 나있었을 것이다.
소설가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자신의 일가를 이루었지만 그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을때 배스컴은 가족안에서 자신의 슬픔을 달래고자 하지 않는다. 속으로만 슬픔을 삭히고 외도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슬픔을 분출한다. 당연히 아내는 배스컴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 한다. 배스컴은 아마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듯 하다. 자신의 슬픔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고 그것을 나누어봤자 어떤 해결도 하지 못 한다는 고독감은 이미 배스컴의 삶의 지침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 보였다.
배스컴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친구가 되고 싶어했던 월터에게도 배스컴은 냉정하기만 하다. 자신의 몫의 슬픔은 온전히 자신만이 감당하고 살 수 밖에 없다는 듯 배스컴은 월터의 고민에 어떤 위로도 동조도 보여주지 않는다. 매정하고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이게 주인공의 삶의 방식이고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좀 슬펐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한 모습이기도 하니까...
배스컴의 사회적 관계맺기란 그저 필요에 의한 교류뿐이고 거기에 감정의 교류가 끼어드는건 견뎌하지 못 하는 모습. 내 슬픔을 말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라고 냉소하는 모습.
건조하게 버석거리기만 하는 주인공의 삶의 모습들... 어쩌면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배스컴은 좀 과장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외로움을 보여주진 못 하지만 그 속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존재는 가족이 아닐런지... 라고 나는 생각한다. 배스컴에게 가족은 어린시절부터 완전하게 갖추어지지 않았었다. 가족을 제대로 배우지 못 한 성인이 가족을 이루었을때 서툰느낌... 딱 그런게 배스컴에게 느껴졌다. 기본적인 가족안에 포함되어 있지 못 했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대한 냉소는 배스컴이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된 듯 하기도 했고...
배스컴의 고독한 인생은 앞으로도 쭉 이어지겠지만 소설의 말미에 가서 배스컴은 아주 조금은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애초에 시작된 배경이 배스컴의 가족붕괴에서 부터인데 그 끝은 자신의 희미한 뿌리를 찾아 가족안에 약간 포함될 수 있었다는 인상을 풍기면서 맺고 있다는건 의미심장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고독한 존재에게 가족의 의미는 그래도 미약하나마 위로가 된다고 말하는듯한 끝맺음이랄까.
소설을 두번읽은 결과 배스컴은 건조하기만한 이해못할 인간은 아니었다.
나이를 한살한살 먹으면서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화두가 가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내가 이 소설을 그전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