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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비타와 디아만테의 삶은 어디서부터 갈라지게 된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애초에 둘은 하나 일 수가 없다. 그러나 비타와 디아만테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배에 올랐을 때 어쩐일인지 서로가 한 몸이라고 느낀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인생에서 타인과 내가 한 몸 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그리 자주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마술같은 순간이 찾아왔을때 그건 틀림없는 사랑일 것이다. 불과 디아만테 11살, 비타 9살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평생을 이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비타와 디아만테의 삶의 방향이 결국엔 같지 않았듯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에서도 둘은 한 몸 일 수 없었다.
사랑을 지키는 방법에서 비타와 디아만테는 서로 달랐다.디아만테가 레나와 심상찮은 관계라는걸 눈치챘을때 비타는 레나를 제거해서라도 사랑을 되찾아 오고 싶어서 절절 끓어오르는 불꽃이 된다. 그에 반해, 비타가 로코와 눈이 맞아 도망갔을 때 디아만테는 그 둘 모두에게서 도피한다. 그리고 다시 비타에게 돌아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사랑에 있어서 도망자였다. '지금 바로 여기서 사랑하자' 라고 말하는 비타에게 '기다려줘 꼭 다시 돌아올게' 라고 말하는 디아만테. 이 둘의 사랑은 이토록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들을 태운 배 안에서 서로를 하나라고 확인한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데에는 냉혹하고 비참한 현실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배에서 내려 뉴욕의 뒷골목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속에 내던져 졌을때 이 둘은 서로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배고픔, 부당한 노동착취, 망가진 건강, 마피아의 시달림, 무시와 천대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도시 빈민층이라는 상황, 이 모든것이 어린 연인의 달콤한 시간을 방해했다. 그것은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이 역사가 이 어린 연인을 짓누르지 않았다면 그때 그 댄스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마법같은 순간이 비타와 디아만테에게 다시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졌을 때 한 몸 이었던 두 연인은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사안에서 또다른 각자의 역사를 만들어가며 사랑했다가 멀어져간다. 그러나 평생 서로를 잊지는 않았다. 이들이 다른 삶 속에서 그래도 끝까지 서로 놓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그 이름은 어쩌면 인생에서 늘 추구하려고 하는 '해피', 어린시절 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영어단어 '해피'의 다른이름이지 않을까.
작가가 자신 집안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엮은 이 소설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사를 어린 연인의 흥미진진한 애정사에 잘 직조해 넣었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와 직접 발로 뛰어 조사한 기록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는 와중에 이 둘의 사랑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다층적 시점도 그 당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면서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블록버스터급 대서사시를 한 편 읽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