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권 시작하자마자 마음 아픈 대목이ㅠㅠ
1권에서 월선이 데리고 떠날 용기도 없고 강청댁한테 미안한 기색도 없는 용이가 약간 비호감^^;;이었는데 2권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어린시절 용이는 안쓰럽네ㅠ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이 행랑 뜰에서 놀았던 일이 생각났다. 노상 치수에게 두드려 맞았었다.
‘옴마, 내가 심이 더 센데 와 밤낮 얻어맞아야 하노.‘
모친은 잠시 용이를 바라보았다.
‘심이 세니께, 억울할 것 없다.‘
‘나도 때릴란다.‘
‘도련님이 몸이 약하니께 니가 참아야지, 셈 찬 성이 참더라고 니는 심이 세니께..‘
‘그라믄 머 심만 세믄 밤낮 맞아야 하나?‘
"그러니께 니보다 심센 놈을 만나거든 그때는 지지 말고 때리주라모,‘
‘심센 놈이 그라믄 나겉이 맞아줄 기가?‘
‘어진 마음이믄.‘
- P14

‘안 어지믄 난 또 맞아야 하게?‘
‘나쁜 놈 되는 것보다 어진 사램이 돼야제."
‘그라믄, 그라믄, 그래도 옴마.‘
‘...‘
‘심이 세도 맞고 심이 없이도 맞고 맞고만 살라 카나?‘
말문이 막혔던지 모친은 말이 없었다. 한참 후 먼 산을 보면서.
‘상놈이 우찌 양반을 때릴 것고.‘
그 말을 듣고 용이는 울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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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전 토지 9권에서 멈춘지 수년 째
!
2021년 완독을 꿈꿨지만 ㅎㅎㅎ

망고님! 행복 가득 !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O
  い_cノ (ニニニ)
 c/・・ っ (>∀<* )
 (˝●˝ )___とと )
  ヽ  ⌒、 |二二二|
  しし-し ┻━┻

망고 2021-12-24 11:57   좋아요 1 | URL
저 토지 진짜 천천히 읽고 있어요 완독을 언제 할 수 있을지...ㅎㅎㅎ
스콧님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집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과 책사진)



사실 작년에 나온 패니 플래그의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그 책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속편이라고 해서 내려놓았었다. 아직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읽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되었다. 90년대에 나온 영화도 있어서 제목을 많이 들어봤는데 그동안 왜 읽을 생각은 안 했을까 몰라^^

책은 따뜻한 이야기였고 재미도 있었다. 근데 이 책을 읽고나니 굳이 그 속편까지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서 작년에 나왔다는 그 책은 읽지 않기로 했다. 

그냥 완벽하게 이 책으로 모든 이야기가 완성된 느낌이라 속편이 궁금하지가 않다. 


책을 읽었다는 기록은 인상적인 문장들을 옮겨 놓는것으로 하겠다. 




"있잖아요, 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만약 누가 루스를 해치려 한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죽여 버릴 거예요."

"오, 이지, 말만 들어도 끔찍해"

"아뇨, 그렇지 않아요. 증오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사랑 때문에 죽이는 편이 낫지 않아요?"

(119쪽)



늘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루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지가 환하게 웃으며 벌꿀이 든 병을 건네주려 했을 때, 그토록 억제하려 했던 감정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이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날 울음을 터뜨렸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터였다.

(121쪽)



슈퍼마켓에서 그처럼 심한 욕설을 들은 뒤, 에벌린 카우치는 능욕당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말로 당한 강간이었다. 완전히 발가벗겨졌던 것이다.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었으나 불쾌한 남자들과 마주치면 늘 겁이 났고, 욕설을 듣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목장 울타리를 넘어와 치마를 들추어 대는 유의 사람들 주변에서는 늘 몸을 사리고 조심했다. 작은 빌미만 주어지면 언제라도 그런 상스러운 욕설들이 날아올 태세를 갖추고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313쪽)



머리를 겨누고 내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총, 그 힘, 그 음험한 위협......욕먹는 것에 대한 그 공포는 무엇일까?

에벌린은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라는 말을 들을까봐 순결을 지켰다. 노처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결혼을 했다. 불감증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오르가슴을 연기했으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가졌다. 괴상하다거나 남성혐오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고, 못된 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바가지를 긁지도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실행해 왔음에도 그 낯선 사람은 화가 난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욕설을 던짐으로써 그녀를 시궁창 속으로 밀어 넣었다.

(314쪽)



그러다가 에벌린은 멈칫했다. 이전에는 결코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기에 두려웠다. 그러니까 에벌린 카우치는 대부분의 여자들보다 20여 년 늦게 분노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에벌린은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처럼 뒤늦게 찾아온 분노는 낯설고도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벌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그토록 중히 여기는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단지 남자가 가진 힘만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욕을 하던 그 못된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 주었으면 싶었다. 물론, 그녀가 남자였더라면 애초에 욕설을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315쪽)



하지만 불알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남자들을 보노라면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맙소사, 에드는 아들의 그것이 적당한 모양으로 발육하지 않자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의사 말로는 모양이 그렇더라도 아이를 갖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에드는 마치 무슨 비극이라도 생긴 것처럼 행동했고 아들을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들이 스스로 남자도 아니라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벌린은 당시에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어처구니가 없군......성장기때 내 가슴은 절벽이었지만 누구도 나를 어디론가 보내서 어떤 도움을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어'

(361쪽)



한때 에드는 바로 그 여직원을 칭찬했다. 그녀가 사장에게 과감히 맞서는 걸 두고 베짱이 두둑한 불알 달린 여장부 같다고 떠벌이던 게 기억났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의아했다. 그 여자의 힘과 에드의 해부학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봐, 그 여자는 대단한 난소를 갖고 있어"라고. 그는 분명히 그 여자가 어떤 불알을 가졌는지 말했다. 난소에는 난자가 있다. 난자는 정자만큼 중요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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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30 0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영화가 인상깊었습니다 ^^

망고 2021-11-30 05:56   좋아요 2 | URL
아직 안 봤는데 조만간 꼭 보려고요^^ 근데 이지와 루스를 그냥 우정으로만 묘사했다고 해서 영화 보기도 전에 섭섭한 느낌이 들어요😁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 개정판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해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쉬운 문장으로 설명해 주는 책. 생생한 실제 사례들을 들어 전염병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글솜씨가 너무 좋아서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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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손가락에서 채취한 피 몇 방울로 200가지가 넘는 질병을 미리 검사해 볼 수 있는 획기적인 진단기기를 발명해냈다는 회사가 있다. 힘들게 주사바늘로 다량의 혈액을 채취할 필요 없이 단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도 질병을 알아낼 수 있고 거기에다가 기기의 크기가 작아 휴대까지 간편해서 집에서도 쉽게 진단을 받아볼 수 있는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만들어내는 회사. 그것은 바로 19살의 스탠포드 중퇴생 엘리자베스 홈즈가 세운 스타트업 테라노스.

엘리자베스 홈즈의 첫 시작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공상 과학 같은 생각이었지만 만약 정말로 피 몇 방울로 미리 병을 알아낼 수 있는 기기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할 수도 있는 혁신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테라노스는 거창한 아이디어만 있고 기술은 없는 거대한 사기였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테라노스를 세우고 약 15년 동안 기기를 발명했고 기술이 있다고 뻥을 쳐왔지만 실제로는 엉성한 오류투성이 기계만을 만들어 냈을 뿐이고 혈액 몇 방울만으로는 200가지가 넘는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금발에 파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매력적인 젊은 여성 엘리자베스 홈즈가 놀랄 만큼 낮은 목소리로 테라노스의 장밋빛 미래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그대로 그녀를 믿었다. 그녀에게 설득당했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쟁쟁한 투자자들은 테라노스에 앞다투어 투자를 했다. 결국 테라노스는 기업가치가 10조원에 달하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이 되었다.

진짜 기술도 없이 그저 엘리자베스 홈즈의 매력적인 이미지와 말발과 그럴듯한 거짓말로 테라노스는 승승장구했다. 이런 일이 이렇게 쉽게 가능하다니 참 기가 막혔다.

 

투자자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의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은 굉장히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던데(루퍼트 머독,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등등) 이런 사람들도 이렇게 쉽게 속는구나 싶어서 놀랍기 그지없었다. 하긴 속이는 사람이 나쁘지 속는 사람이 나쁜가 뭐......

그렇다하더라도 테라노스를 끝까지 놓지 못 했던 투자자들은 자신이 일단 믿기로 결정한 일은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 속성이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자신의 결정은 틀릴 리가 없다는 과신으로 주변의 옳은 소리를 차단해 버리는 모습들 말이다.

일례로 조지 슐츠는 테라노스에서 일하다 그만둔 손자가 그 회사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할아버지가 속고 있다며 증거를 아무리 얘기해도 손자 말을 안 듣고 자신이 처음부터 믿기로 한 엘리자베스 홈즈를 끝까지 믿는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그로 인한 자기 확신이 오히려 어떤 상황에선 독이 되는 경우. 그러니 절대 과신하지 말지어다...라지만 말이 쉽지 어디 그게 그렇게 쉽나?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때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사람이라면 특히나 더. 그러니 인생은 역시 쉽지 않은 것 크흐~

 

 

쟁쟁한 이사진들, 정치인들과의 친분, 위협적인 변호사 군단을 거느리고 거짓의 모래성을 쌓아가던 테라노스는 이 책의 저자가 폭로한 기사로 드디어 그 민낯이 드러나고 만다. 기사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테라노스에서 일하다 그만둔 양심적인 직원들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라노스 측은 기밀유지 문서에 직원들의 사인을 받아두고 퇴사한 후에도 회사에 관한 어떤 말도 못 하게 협박해 왔다. 무언가 낌새를 보이면 최강의 변호사들을 보내 퇴사자들에게 소송을 건다고 협박해서 입막음을 시도했지만 내부고발자들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했고 테라노스는 드디어 무너졌다.

이 과정이 정말 짜릿하고 긴장감이 넘쳐서 마치 영화를 한편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그래도 제니퍼 로렌스 주연으로 영화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현실이 픽션보다 더 하다는 걸 또 이렇게 새삼 깨닫는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를 똑같이 따라했다고 한다.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다녔고 애플이 맡겼던 광고회사에 테라노스의 광고를 맡기고는 매주 수요일마다 회의를 하는 것도 스티브 잡스를 따라한 거였다. 그녀의 남자 같은 바리톤의 낮은 목소리도 실제의 목소리가 아닌 꾸며서 낸 목소리라고 하니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를 목소리까지 베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는 의심도 든다. 겉모습은 따라했지만 진짜로 중요한 알맹이는 전혀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그녀는 계속해서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을 협박하며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역할을 연기했다.

불안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거짓말로 살아 갈 수 있을까? 19살부터 시작해서 30중반까지 그렇게 살았다는건데 어휴~ 간도 크다. 

여러모로, 안 좋은 의미로 참 대단한 인간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근황을 보니 코로나와 출산으로 연기 되었던 재판이 요즘 다시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벌써 감옥에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재판도 안 했다니 또 한 번 놀랐다. 그녀는 실패한 것이지 사기가 아니라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동안 공개적으로 했던 그 많은 거짓말들은 다 뭐야? 

아무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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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주의자 대산세계문학총서 168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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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는 집요하게 정상성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정상성이란 그 나이 또래의 남자라면 거의 비슷하게 할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보통의 정상적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사회의 주류 집단에 소속되어 군중 속에서 안락하게 순응하며 사는 삶. 마르첼로의 삶의 목적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근데 이런 정상적인 삶이란 것을 마르첼로처럼 굳이 의식하며 꼭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굳건히 결심하며 사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정상성이란 것은 그냥 살다보니 옆에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지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보편적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그런 거 아닌가 말이다. 누가 마르첼로처럼 이토록 비장하게 정상적인 삶을 살겠다고 자신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며 사느냐 말이다.

 

마르첼로는 남들과 똑같은 담배를 사며 만족해하고 버스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정상적인 것이라며 좋아한다. 또한 당시 이탈리아의 주요 정치 세력은 파시즘이라 스스로 파시스트가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논리를 세우며 정부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다.

근데 가만 들여다보면 마르첼로가 정상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성에의 집착이 약간 좀 부자연스럽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았고, 모든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같은 몸짓으로 같은 상표의 담배를 사는 사람들, 심지어 빨간색 옷을 입은 여인이 지나가면 얇은 옷 아래 풍성한 엉덩이가 흔들리는 것을 훔쳐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남자들과도 똑같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동작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의도된 모방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101쪽)


여자를 훔쳐보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남자들이 하는 걸 보고 모방해야지만 할 수 있는 마르첼로는 과연 꽤나 금욕적이고 예의바른 남자라서 그런 걸까?


노인은 친밀한 몸짓으로 마치 여자에게 그러듯 남자의 팔이 아니라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란히 대기실 안을 걸으면서 매우 낮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무심한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본 마르첼로는 갑자기 노인에게 미친 듯 한 증오심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는데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10쪽)


남자에게 다정하게 행동하는 노인에게 마르첼로는 왜 증오심이 생길까? 동성끼리 스킨쉽 하는 장면에 과하게 화를 내는 마르첼로는 대체 왜 그럴까?

 

마르첼로는 단추를 채우지 않은 상의에 총검이 흔들리게 둔 채 연인처럼 서로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걸어가는 군인 두 명을 보며 그날 밤 처음으로 경멸과 매우 흡사한 감정이 생기는 걸 알게 되었다.  (419쪽)

 

거리에서 흐트러진 수많은 군인들을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다가 유독 다정하게 걷는 저 두 군인들을 볼 때 마르첼로는 분노가 인다.

이쯤 되면 마르첼로가 집착하는 남성성이란 것에 묘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무릇 혐오란 두려움에서 싹트는 것이 아니던가? 마르첼로는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이 없는 것을 넘어 내면에 어떤 의문이 내내 자리 잡고 있다는 두려움이 이 소설 곳곳에서 포착된다.

마르첼로가 동성애자인지는 소설 속에서 명확하게 다루진 않지만 성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었던 흔적은 보인다. 그가 정상성에 집착하게 된 이유도 근원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런 고민들 때문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가 무겁게 가지고 있는 동성애 기질에 대한 고민은 어린 시절의 사건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13살 무렵 곱상한 외모 때문에 학교에서 여자아이 같다고 놀림을 당하던 마르첼로는 어느 날 집에 가던 길에 아이들에 의해 강제로 치마를 입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그때 리노라는 남자가 마르첼로를 구해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마르첼로는 리노의 차에 타게 되고 리노는 총을 주겠다고 유혹해 마르첼로를 집에 데려가 강간 하려 했다. 그때 마르첼로는 리노를 총으로 쏴 죽이고 도망쳐 나왔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사건은 마르첼로를 내내 지배한다. 리노를 죽였다는 원죄에 더해 리노의 차에 올라탔다는 것, 리노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으로 보아 자신에 대해서 자신도 다 알 수 없는 부분이 혹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늘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비정상성이라는 의문을 떨쳐내기 위해 정상성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성이라는 것이 마르첼로의 머릿속에 얼마나 지독하게 들어차 있는지는 마르첼로와 줄리아의 결혼 후 첫날밤의 일화에서 맛볼 수 있다.

줄리아는 마르첼로와의 첫날밤을 치르기 전 고백을 한다. 아버지의 친구인 늙은 변호사가 어린 그녀를 강제로 범했고 그 관계는 몇 년간 계속되어 왔다고 마르첼로가 첫 남자가 아니라고. 마르첼로는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리아의 고백을 들으면서 화가 나거나 동정심 같은 감정은 일지 않으면서도 줄리아가 이렇게 고백하는 게 바로 정상성이지 않느냐며 내심 흡족해 한다. 자신은 리노와의 일을 절대로 고백할 수 없는데 반해 줄리아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줄리아의 정상성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거다. 마르첼로는 이런 정상성의 여자와 결혼 한 자신은 정상성의 완성을 위해 아기를 생산하는 것에 매진하면 된다는 기이한 논리를 편다.

 

난 다른 모든 남자와 같은 남자야. 난 사랑을 했고, 여자와도 관계를 가졌고, 또 한 사람을 만들었어

 ( 227쪽)


첫날밤을 치른 후 매우 뿌듯한 마르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굉장히 정상적이지 않은 마르첼로의 사고의 흐름. 너무나 모두와 같은 남자이고 싶은 마르첼로의 우스운 집착.

 

정상성을 위해 파시스트 정부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마르첼로는 파리로의 신혼여행 중 대학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를 암살하는 일에 공조하기로 한다. 그런데 교수의 집에 방문한 마르첼로는 교수 부인인 리나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된다. 리나에게 사랑의 감정이 들자 마르첼로는 흥분한다. 자신이 그토록 가장하고 싶었던 정상성이 리나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획득된다는 것이 마르첼로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리나와의 사랑이 성공한다면 사랑하지 않지만 정상성 때문에 결혼 했던 줄리아도 버리고 정부 비밀요원 일도 다 버릴 수 있다고 마르첼로는 생각한다.

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드디어 정상이 되었다! 마르첼로의 진심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하지만 리나는 동성인 줄리아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마르첼로는 자신의 사랑이 응답 받을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한다.

확신하지 못 하는 남성성 때문에 정상성을 갈망해야 했던 마르첼로 인생에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여자는 하필이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였다는 이 아이러니.

마르첼로는 다시 정상성 추구라는 습성으로 돌아온다. 정부의 비밀요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시간이 흘러 줄리아와의 사이에서 6살 난 딸을 둔 마르첼로는 이제 20년 이상 지속되어 왔던 파시즘 정권이 무너지는 현장을 본다. 그가 추구해왔던 정상성이란 것이 공식적으로 비정상성이 되는 순간을 맞이한 이때 마르첼로는 정상성이 신기루였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가족들과 도망을 치는 와중에 정상성이라는 집착을 끊어내고 새로운 삶에 대해 낙관하던 마르첼로는 다시 시작된 전쟁의 공습을 받고 최후를 맞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파시즘 정권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파시즘이 위세를 떨쳤던 그 어리석은 시대의 인간군상을 이야기 하는 건 작가로서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이 소설은 결국 파시즘에 순응하는 인물을 내세워 당시 정상이라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를 보여주면서 파시즘을 비판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마르첼로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확실하게 자신할 수 없어서 오히려 과도하게 집착하는 남성성 이라는 특징과 내재된 폭력적 기질이 만나면 파시스트가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바로 이런 것이 파시스트의 커다란 자격 요건일지도 모른다는 짓궂은 암시를 주기도 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인물의 사색이 주가 되는 소설로 문장이 단번에 싹 읽히지 않아서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몇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도 있고... 내 이해력 문제인가 번역의 문제인가ㅠㅠ

그래서 좋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별4개닷

 


(책은 깔끔하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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