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접어든 유명한 연극배우 액슬러는 갑자기 한순간에 연기의 재능이 사라졌다. 무대에서 더 이상 예전같이 연기를 할 수 없게 되고 관객들도 배우의 연기에 더 이상 감동하지 않는다. 마술같이 갑자기 그렇게 재능이 사라졌고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된다. 이에 액슬러는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자살충동을 느끼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싶었다. 현실에서도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직을 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리고 삶의 의욕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어떤 심정인지는 알 거 같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있어 특이한 점은 연기를 못 하게 된 후 정신적 고통을 겪는 와중에 옆에 있어 줄 하나 뿐인 가족인 부인이 그 고통은 혼자서 감내하라며 그만 떠나버린다는 거다. 이것만 봐도 액슬러의 그간의 삶을 나는 좀 알거 같았다. 그는 연기가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했다. 현실에서도 연기를 하며 살고 무대에서도 연기를 하며 살았다고도 했다. 현실과 무대 어느 쪽에서도 그는 배우였다. 그런 사람에게 진정한 관계란 것이 존재 할 수 있었을까? 누구보다 가까이 있어야 할 가족에게 조차도 연기를 하며 살았다면 부인이 그가 가장 힘들 때 떠나버린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는 그동안 현실의 남편 역을 연기했을 뿐일 테니까...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 혼자 적적하게 지내던 중에 다시금 그가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다. 친구의 딸 페긴과 사귀면서 돈 많고 성에 개방적이고 25살 연상의 너그러운 애인 역할을 연기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러자 다시 삶의 의욕이 솟는다. 페긴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는 희망까지 솟아난다. 하지만 원래 레즈비언이었던 페긴은 액슬러와의 이성애 실험에서 자신의 성향만 더 똑똑히 확인하고서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모든 희망이 꺾인 인물이라는 현실에서의 마지막 연기를 불태우고 있는 액슬러는 이제 비극적인 결말만 남겨두었다. 그는 기꺼이 스스로 그 결말을 연기하고 생을 마감한다.

 


삶을 하나의 커다란 무대처럼 연기를 하며 살았던 한 인간의 전락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될까? 연기가 현실이 되어버린 배우의 비극적인 삶이라고 해야 되나?

액슬러라는 인물이 두루 공감 받는 보편적인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통해 사실 우리도 모두 이렇게 연기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라는 성찰까지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생을 연기하며 살았던 사람의 삶의 마지막은 옆에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텅 빈 무대 (사실은 다락방)였다는 결말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명연기로도 옆에 사람을 둘 수는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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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고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망고 2021-09-19 13:35   좋아요 0 | URL
스콧님도 송편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항상 소개해 주시는 좋은 음악 잘 듣고 있어요^^
 



추석 연휴 전 책이 왔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추석빔으로 책 사니까 기분이 좋네






도서관에서 빌려읽은 김유담 작가의 "이완의 자세". 

작가이름 기억해야지. 이 소설 너무 좋았다. 

목욕탕 때밀이 엄마와 딸의 이야기. 

목욕탕이란 곳은 모두가 이완의 자세를 취하며 쉬다 가는 곳인데, 그런 공간에서 뻣뻣하게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마음을 헤집는 문장들도 참 좋았고 주위에 있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점도 좋았다.

조만간 이책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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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니야 넌 정말 착하고 예쁜 고양이였어. 

안녕.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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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거리를 본 적이 있다. 마치 드라마 와이어의 한 장면처럼 쓰레기더미가 나뒹구는 지저분한 거리 모습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약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거리가 정말 세트장이 아니라 실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에 몹시 심란했다. 미국은 도시 한구석에 우범지역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거리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나니 그 심각성이 너무 확 와 닿았다.

처음에는 저 거리도 저렇지 않았을 거다. 필라델피아 하면 미국에서는 오래된 역사적인 도시이고 그 도시의 일부인 저 곳도 꽤나 유서 깊은 거리일 텐데 저렇게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켄징턴 애비뉴. 내가 영상으로 본 거리이자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곳은 원래 공장이 많았고 철강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라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가정을 꾸려 안락하게 살던 주택들이 많이 있던 곳이었다 한다. 그러다 공장들이 다 문을 닫고 빈 집이 늘어나고 실업자가 많아지면서 거리는 점점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거기에다 결정적으로는 마약이 판을 치면서 이 거리는 중독자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마약이 모든 걸 망쳐 놓았다.

 

켄징턴 애비뉴를 매일 순찰 도는 경찰관 미키는 사연이 있다. 미키의 동생 케이시가 바로 이 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미키는 동생을 지켜보기 위해서 매일 이 거리를 순찰한다.

마약 중독자들은 자신이 구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약을 끊고 싶지 않는 거다. 약을 끊으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하고 그 시도는 실패하기 일쑤다. 실패하고 나면 더 큰 중독의 늪에 빠진다. 케이시도 수년간 이 패턴을 반복해 왔고 이제는 그냥 거리와 한 몸이 된 듯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언니인 미키는 그런 동생을 오랫동안 겪어 왔다. 이제는 멀리서 동생의 생사만 확인 하는 수준으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이 거리에서 여성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한 사람의 소행인 듯 보이는 연쇄살인.

미키는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케이시일지도 모른다고 예감한다. 거리 생활을 하는 케이시에게 그런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하지만 연달아 발견되는 시체에 케이시는 없었다. 다행이긴 하지만 몇 달간 케이시가 거리에 나타나지 않는 점이 수상하다. 케이시가 어딘가에서 죽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키는 너무 걱정이 된다.

 

형사도 아닌 순찰 경찰인 미키는 동생을 찾기 위해서 거리에서 잠복하고 미행하며 살인범의 실체에 점점 다가간다. 그러는 와중에 성인이 되어 독립한 이후 소홀했던 가족들을 찾아가 케이시의 실종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경찰인 미키를 믿지 못 한다. 왜냐하면 미키의 집안사람들도 무슨 일을 하던 모두 그 거리와 관련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찰에서도 외톨이, 가족 사이에서도 외톨이로 살아가던 미키는 동생을 찾는 일을 계기로 점점 자신만의 영역의 범위가 넓어진다.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조직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도 눈을 떠간다.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거리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름의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그들 사이에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거리의 질서를 더 어지럽히는 나쁜 경찰과 그것을 비호하는 조직적 세력도 있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은 이 거리와 무관하지 않은 미키의 가족사다. 미키의 부모는 중독자였고 동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중독된 상태로 태어났다. 어찌 보면 이 거리에서 태어난 이상 중독의 대물림은 피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부모대신 손녀들을 기르느라 생활고에 허덕이며 일만 했던 할머니의 사연, 10대 때부터 약물중독이 시작된 케이시의 지난한 중독의 역사,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으나 중독자 동생으로 인해 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언니 미키.

이 가족의 이야기들은 중독자들과 마약상들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 빈민층들이 뒤엉켜 생활하는 거리를 배경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던져준다. 어쩌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부차적이고 외면하고 싶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이 소설이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가족의 존재가 어려운 현실의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아울러 자매의 끈끈한 관계가 감동적으로 묘사된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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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소설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Abide with me"라는 장편소설이 남아 있었다. 번역되어 나온 적도 없어서 이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2006년 작이고 에이미와 이저벨다음의 스트라우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일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기 시작했다.

제목 번역하면 저와 함께하여 주소서이고 유명한 찬송가 제목이기도 하다. 어떤 노랜지 들어보니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곡조였다.

제목에서 흘러나오는 느낌만으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종교가 전면에 나온다. 그래서 약간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재미도 재미지만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푹 빠져서 읽었다.

 


1959년 메인주의 웨스트 아넷이라는 작은 타운이 배경인데 이곳은 스트라우트의 소설들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지명인 '셜리 폴스'에서 몇시간 떨어져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라는 설정이다. 스트라우트의 모든 작품들에서는 지명이며 사람들이 서로 공유되는데 그것들을 찾아내어서 서로 연결시켜 보는 것도 큰 재미중 하나다.

 

타일러 캐스키는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이곳 웨스트 아넷의 회중교회에 부임해 온 젊은 목사다. 이 마을의 신도들은 바로 전에 있던 은퇴한 늙은 목사의 별로 열성적이지 못 한 목회활동에 익숙해 있었던 터라 젊은 목사가 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처음으로 목사부부가 마을에 등장했던 순간 신도들은 젊은 목사에게 반한다. 키가 크고 호감형인 외모와 명랑하고 사교성이 좋은 모습에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젊은 목사 좀 괜찮네~’ 하는 인상을 품는다. 하지만 목사의 부인은 전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 한다.


타일러의 아내 로렌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세련된 패션감각의 소유자다. 바로 이런 모습이 목사의 부인이란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신도들은 생각한다. 신도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쇼핑하는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면서 모두를 경악케 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나 목사부인이 쇼핑을 좋아한다고?'  '옷차림은 그게 또 뭐야? 한겨울에 끈만 달린 하이힐을 신고 오다니 ’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로렌에 대해 수군덕댄다.

부잣집에서 화려하게 살던 로렌은 타일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은 했지만 교회일이며 신과 관련된 어떤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교회 사람들과의 대화도 따분해 하고 교회 관련된 것들은 모두 적성에 맞지 않아서 답답해한다. 타일러는 로렌의 그런 모습을 이해해준다. 자신을 따라 목사부인의 삶을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둘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차차 이어가면서 두 명의 딸이 태어나고 두 사람의 성향차이는 말다툼으로 종종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로렌은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어린 딸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소설의 첫 시작은 로렌이 죽고 2년이 흐른 후부터다. 타일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전같이 열정적으로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신도들을 만나는 일도 피하고 싶어 한다. 내안의 고통이 너무 커서 타인의 고민을 들어줄 여력이 없는 거다. 요즘은 신이 어디든 곁에 있다고 느꼈던 예전의 벅찬 감정을 느낄 수도 없다. 늘 서재에 틀어박혀서 잠도 깊게 들지 못 하고 마음 한구석에 따끔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딸 캐서린에게 조차도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 하고 있다.

 

엄마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5살 캐서린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하며 어린 문제아가 되었다. 주일학교에서는 하느님 싫어라고 해서 신도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 어린애가 그런 말을 했단 건 분명 집에서 목사한테 들었던거 아닐까?'  '어떻게 목사의 딸이 그런 불경한 말을 교회에서 할 수 있을까?’ 등등 신도들은 또다시 뒤에서 수군덕댄다.

어린애가 엄마를 잃고 슬픈 마음에 하는 행동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 하는 교회 사람들. 정말 너무 못됐다 하면서 읽은 부분이었다. 근데 수군덕대는 대화 내용이란 게 있을 법한 생생함을 담고 있어서 어디에서나 뒷말 하는 사람들 말투는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한테만 잔인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목사 타일러에 대한 이야기도 호의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그 밝고 친절하고 열정 가득했던 목사는 어디로 가고 우울하고 신도들을 피하고 딸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으면서 딸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사람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내는 목사라고 흉을 본다.

 

이런 와중에 타일러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존재는 목사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코니다. 코니의 그 다 이해한다는 눈은 묘하게 타일러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그녀와의 대화는 타일러에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런 코니와 목사와의 우정은 심리 상담을 받던 어린 캐서린의 순간적인 거짓말로 연인 사이라고 폭로된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캐서린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고 그 비밀을 여기저기 퍼뜨린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하면서 퍼져나가는 소문들...

이제 온 마을에 목사와 가정부에 대한 지저분한 말들이 오간다. 수군수군 수군수군

 

한편 코니는 목사관 가정부로 오기 전에 일했던 노인 요양원에서의 도난 사건 용의자로 수사를 받게 되자 아무도 모르게 도망쳐 사라져 버린다. 코니를 걱정하던 타일러는 교회에서 누군가 자고 간 흔적을 찾게 되고 그게 코니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교회로 가서 코니를 만나게 된다.

코니는 자신의 죄를 타일러에게 고백한다. 요양원에서 일할 때 너무나 불쌍한 할머니 둘을 죽였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저 누워서 떠먹여주는 죽만 먹는 반 송장상태의 노인이 불쌍해서 질식해 죽였다고...

코니의 고백에 타일러는 놀라지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에 괴로워한다.

바로 타일러 자신도 부인 로렌의 죽음에 코니와 비슷한 행동으로 일조하지 않았던가 하는 괴로움. 진정제를 더 달라 소리치던 로렌에게 늘 적정량만 주어왔지만 그 마지막 날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로렌 옆에 진정제 한통을 두고 방을 나왔던 타일러. 몇 시간 후 방에 들어갔을 때 죽어있던 로렌. 내내 타일러를 괴롭혀 왔던 아무한테도 말 할 수 없었던 비밀.

타일러는 코니를 연민한다. 어떻게 코니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날의 진정제 한통이 마음속 한부분을 찌르고 있는데......

 

결국 코니는 자수를 하고 도둑이 아닌 살인범이라는 사실에 온 마을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떠오르는 대화 주제는 목사가 코니를 숨겨줬을까 아니면 몰랐을까, 목사가 정말 코니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게 맞을까?  하는 목사와 코니의 스캔들에 관한 얘기다.

 


타일러는 소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준엄한 설교를 준비한다.

주일이 되자 교회는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모두가 목사 타일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소문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궁금한 사람들.

드디어 타일러는 설교석에 선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 한다. 타일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그동안의 마음의 고통과 시달림 그로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닥쳐와 목사 타일러는 서서 울고 있다.

타일러의 그 진심의 눈물 앞에 신도들은 가책을 느낀다. 깊은 반성의 시간이 밀려온다.

그중에서도 애송이 목사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던 찰리 오스틴은 그를 부축해 목사실로 데리고 내려가고, 목사의 관심을 못 받아서 화가 나 있던 오르간 반주자 도리스는 타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abide with me를 쳐주면서 그를 위로한다.

 

이 소설의 절정부분인 이 장면에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던 착한 목사 타일러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이 부인을 잃고 우울함에 빠져서 자신들에게 소홀하게 대한다고 금방 그 사랑을 미움으로 바꾸는 모습들에 너무 화가 났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타일러의 눈물에 순식간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런 순간을 표현해낸 작가가 너무 좋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순간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 바로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결국 웨스트 아넷에서의 목사직을 그만 두려는 타일러에게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타일러는 다시 목사 타일러로 돌아간다.

 


타일러는 이 모든 일들을 겪고 나서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들은 구체적인 감정으로 대체되었다. 바로 설교석에 섰던 그날 타일러에게 손을 내밀어준 찰리와 도리스에게서 예전에 내곁에 신이 계신다고 느꼈던 그 감정을 느꼈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삶에서 서로가 서로를 연민할 때 그래서 서로 손을 잡을 때의 바로 그 순간이 신의 은총이라고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는 거 같다.

결국엔 인간에 대한 연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에서 늘 강력하게 등장하는 주제를 이 소설에서도 참 아름답게 표현해 내었다.

 

 

 


이 이야기 속의 타일러 캐스키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아주 조금 힌트를 준다. 소제목 범죄자에서 타일러 캐스키의 손녀 이야기가 나온다. 타일러는 딸들이 어느정도 다 성장한 후 재혼을 했다고 한다. 캐서린도 이 단편에 나온다ㅎㅎㅎ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세계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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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0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고 님처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소설을 다 읽지는 못해도 이름은 알아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망고 2021-09-08 21:13   좋아요 0 | URL
네^^ 읽어 보시면 아마 좋아하시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굿밤되세요^,,^

scott 2021-09-2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 만쉐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