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소설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Abide with me"라는 장편소설이 남아 있었다. 번역되어 나온 적도 없어서 이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2006년 작이고 ”에이미와 이저벨“ 다음의 스트라우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일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기 시작했다.
제목 번역하면 “저와 함께하여 주소서”이고 유명한 찬송가 제목이기도 하다. 어떤 노랜지 들어보니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곡조였다.
제목에서 흘러나오는 느낌만으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종교가 전면에 나온다. 그래서 약간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재미도 재미지만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푹 빠져서 읽었다.
1959년 메인주의 웨스트 아넷이라는 작은 타운이 배경인데 이곳은 스트라우트의 소설들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지명인 '셜리 폴스'에서 몇시간 떨어져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라는 설정이다. 스트라우트의 모든 작품들에서는 지명이며 사람들이 서로 공유되는데 그것들을 찾아내어서 서로 연결시켜 보는 것도 큰 재미중 하나다.
타일러 캐스키는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이곳 웨스트 아넷의 회중교회에 부임해 온 젊은 목사다. 이 마을의 신도들은 바로 전에 있던 은퇴한 늙은 목사의 별로 열성적이지 못 한 목회활동에 익숙해 있었던 터라 젊은 목사가 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처음으로 목사부부가 마을에 등장했던 순간 신도들은 젊은 목사에게 반한다. 키가 크고 호감형인 외모와 명랑하고 사교성이 좋은 모습에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젊은 목사 좀 괜찮네~’ 하는 인상을 품는다. 하지만 목사의 부인은 전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 한다.
타일러의 아내 로렌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세련된 패션감각의 소유자다. 바로 이런 모습이 목사의 부인이란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신도들은 생각한다. 신도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쇼핑하는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면서 모두를 경악케 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나 목사부인이 쇼핑을 좋아한다고?' '옷차림은 그게 또 뭐야? 한겨울에 끈만 달린 하이힐을 신고 오다니 ’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로렌에 대해 수군덕댄다.
부잣집에서 화려하게 살던 로렌은 타일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은 했지만 교회일이며 신과 관련된 어떤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교회 사람들과의 대화도 따분해 하고 교회 관련된 것들은 모두 적성에 맞지 않아서 답답해한다. 타일러는 로렌의 그런 모습을 이해해준다. 자신을 따라 목사부인의 삶을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둘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차차 이어가면서 두 명의 딸이 태어나고 두 사람의 성향차이는 말다툼으로 종종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로렌은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어린 딸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소설의 첫 시작은 로렌이 죽고 2년이 흐른 후부터다. 타일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전같이 열정적으로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신도들을 만나는 일도 피하고 싶어 한다. 내안의 고통이 너무 커서 타인의 고민을 들어줄 여력이 없는 거다. 요즘은 신이 어디든 곁에 있다고 느꼈던 예전의 벅찬 감정을 느낄 수도 없다. 늘 서재에 틀어박혀서 잠도 깊게 들지 못 하고 마음 한구석에 따끔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딸 캐서린에게 조차도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 하고 있다.
엄마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5살 캐서린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하며 어린 문제아가 되었다. 주일학교에서는 “하느님 싫어”라고 해서 신도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 어린애가 그런 말을 했단 건 분명 집에서 목사한테 들었던거 아닐까?' '어떻게 목사의 딸이 그런 불경한 말을 교회에서 할 수 있을까?’ 등등 신도들은 또다시 뒤에서 수군덕댄다.
어린애가 엄마를 잃고 슬픈 마음에 하는 행동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 하는 교회 사람들. 정말 너무 못됐다 하면서 읽은 부분이었다. 근데 수군덕대는 대화 내용이란 게 있을 법한 생생함을 담고 있어서 어디에서나 뒷말 하는 사람들 말투는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한테만 잔인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목사 타일러에 대한 이야기도 호의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그 밝고 친절하고 열정 가득했던 목사는 어디로 가고 우울하고 신도들을 피하고 딸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으면서 딸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사람에게 기분 나쁜 티를 내는 목사라고 흉을 본다.
이런 와중에 타일러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존재는 목사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코니다. 코니의 그 다 이해한다는 눈은 묘하게 타일러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그녀와의 대화는 타일러에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런 코니와 목사와의 우정은 심리 상담을 받던 어린 캐서린의 순간적인 거짓말로 연인 사이라고 폭로된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캐서린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고 그 비밀을 여기저기 퍼뜨린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하면서 퍼져나가는 소문들...
이제 온 마을에 목사와 가정부에 대한 지저분한 말들이 오간다. 수군수군 수군수군
한편 코니는 목사관 가정부로 오기 전에 일했던 노인 요양원에서의 도난 사건 용의자로 수사를 받게 되자 아무도 모르게 도망쳐 사라져 버린다. 코니를 걱정하던 타일러는 교회에서 누군가 자고 간 흔적을 찾게 되고 그게 코니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교회로 가서 코니를 만나게 된다.
코니는 자신의 죄를 타일러에게 고백한다. 요양원에서 일할 때 너무나 불쌍한 할머니 둘을 죽였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저 누워서 떠먹여주는 죽만 먹는 반 송장상태의 노인이 불쌍해서 질식해 죽였다고...
코니의 고백에 타일러는 놀라지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에 괴로워한다.
바로 타일러 자신도 부인 로렌의 죽음에 코니와 비슷한 행동으로 일조하지 않았던가 하는 괴로움. 진정제를 더 달라 소리치던 로렌에게 늘 적정량만 주어왔지만 그 마지막 날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로렌 옆에 진정제 한통을 두고 방을 나왔던 타일러. 몇 시간 후 방에 들어갔을 때 죽어있던 로렌. 내내 타일러를 괴롭혀 왔던 아무한테도 말 할 수 없었던 비밀.
타일러는 코니를 연민한다. 어떻게 코니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날의 진정제 한통이 마음속 한부분을 찌르고 있는데......
결국 코니는 자수를 하고 도둑이 아닌 살인범이라는 사실에 온 마을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떠오르는 대화 주제는 목사가 코니를 숨겨줬을까 아니면 몰랐을까, 목사가 정말 코니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게 맞을까? 하는 목사와 코니의 스캔들에 관한 얘기다.
타일러는 소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준엄한 설교를 준비한다.
주일이 되자 교회는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모두가 목사 타일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소문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궁금한 사람들.
드디어 타일러는 설교석에 선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 한다. 타일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그동안의 마음의 고통과 시달림 그로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닥쳐와 목사 타일러는 서서 울고 있다.
타일러의 그 진심의 눈물 앞에 신도들은 가책을 느낀다. 깊은 반성의 시간이 밀려온다.
그중에서도 애송이 목사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던 찰리 오스틴은 그를 부축해 목사실로 데리고 내려가고, 목사의 관심을 못 받아서 화가 나 있던 오르간 반주자 도리스는 타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abide with me를 쳐주면서 그를 위로한다.
이 소설의 절정부분인 이 장면에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던 착한 목사 타일러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이 부인을 잃고 우울함에 빠져서 자신들에게 소홀하게 대한다고 금방 그 사랑을 미움으로 바꾸는 모습들에 너무 화가 났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타일러의 눈물에 순식간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런 순간을 표현해낸 작가가 너무 좋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순간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 바로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결국 웨스트 아넷에서의 목사직을 그만 두려는 타일러에게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타일러는 다시 목사 타일러로 돌아간다.
타일러는 이 모든 일들을 겪고 나서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들은 구체적인 감정으로 대체되었다. 바로 설교석에 섰던 그날 타일러에게 손을 내밀어준 찰리와 도리스에게서 예전에 내곁에 신이 계신다고 느꼈던 그 감정을 느꼈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삶에서 서로가 서로를 연민할 때 그래서 서로 손을 잡을 때의 바로 그 순간이 신의 은총이라고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는 거 같다.
결국엔 인간에 대한 연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에서 늘 강력하게 등장하는 주제를 이 소설에서도 참 아름답게 표현해 내었다.
이 이야기 속의 타일러 캐스키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아주 조금 힌트를 준다. 소제목 “범죄자”에서 타일러 캐스키의 손녀 이야기가 나온다. 타일러는 딸들이 어느정도 다 성장한 후 재혼을 했다고 한다. 캐서린도 이 단편에 나온다ㅎㅎㅎ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세계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