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또 오고 온그림책 16
아드리앵 파를랑주 지음, 이경혜 옮김 / 봄볕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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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은 직접 넘겨보며 느껴야 한다.
구멍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서글펐지만, 그것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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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12-19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서글프고 근데 또 제 경우에는 아이들이랑 같이 읽으니까 상보적이고.. 그림책은 정말❤️

건수하 2024-12-19 21:54   좋아요 1 | URL
아이들이랑 같이 볼 때는 서글프지 않겠네요 :)

참, 그와중 왜 세 살/두 살 에 첫 걸음마 하는지가 궁금했어요 (…)

유수 2024-12-20 08:33   좋아요 0 | URL
아이 시점에서 기억하는 거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저도 애들 깨고 방에서 책 꺼내와 다시 보니 깊게 생각안하고 봤나 봐요. 예리한 수하님!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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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 버섯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기후위기의 현 상황에 한 줄기 희망이 될 지도 모르는 사고방식 하나를 제시한다. 기후 우울을 겪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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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11-11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 부분과 인류세 관련하여 할 말이 많다면 많은데, 그때그때 쓰지 않고 빨리 읽는데 집중했더니 의욕이 없다.. 어쨌든 완독. 읽는 동안에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뭔지 의문점이 많았고 역자 해설을 읽고 나니 다락방님이 왜 한 번 더 읽으려 하셨는지 알 것 같다.

다락방 2024-11-11 1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고생하셨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수하 2024-11-11 19:09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잘 정리해서 (비교적 간결하게) 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작가가 의도한 바이겠지요? 이렇게 쓰지 않았더라면 작가의 의도가 저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겠지요? 역자 해설을 읽고나니 아주 잘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난민과 여성혐오 한권으로열다 2
국지혜 지음 / 열다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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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좀더 정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저자의 독자를 자극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 글 (특히 초반부) 를 읽기가 불편했고 쉽지 않았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대책없는 온정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환상‘ 에 찔려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 랟펨의 책은 처음이라 나의 현재 상태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어서 별 다섯 개. 사실 다섯 개 보단 네 개 반 정도.


난민을 무작정 수용하기에 앞서 여자들이 여성에 대한 안전 대책을 먼저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시민의 권리이며, 이런 논의 과정은 급격한 난민 수용에 따라올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 갈등에 대비하도록 하는 민주주의 절차다. - P45

좌파가 주도하는 여성 운동은 여성을 다른 의제 뒤로 밀어버리는 경향이 매우 강하고 스스로 매우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여기며 실제로 수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한다. ... 모든 각성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문제에만 집중해도 성폭력과 성착취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이 사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같이 확인한다. 그런데도 게이 사기 결혼 논쟁이나 난민 문제 등을 앞에 두고 기존 여성운동권이 여성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 축소하고 여성의 경험과 감정을 지워버릴 때 대중 여성들은 불쾌감과 함께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 P50

좌파의 인도주의라는 환상과 낭만주의는 국내 테러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경제적 갈등을 유발하여 극우주의 선동을 이롭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P55

예멘 난민 사태를 대하면서 한국의 지식인과 엘리트 집단은 독일 사례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문화가 다양성 속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환상인데도 난민 유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뭉뚱그려 극우 세력의 의견이라 매도하고 있다. 특히 여성 대상 성폭력에 대한 걱정을 인종혐오로 매도하는 좌파 운동권과 엘리트들의 대책없는 온정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환상은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57

이들이 전쟁을 피해 온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으러 온 가짜 난민인가 하는 문제 역시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 여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하다가 왔는가 하는 점이며, 그들 ‘조국‘의 사회 체제와 문화 속에 들어 있는 매우 극심한 여성혐오 사상이 그들 속에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 잡혀 있는가 하는 것이다. - P69

전쟁을 피해 한국까지 넘어온 예멘 난민 중 90%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예멘의 처참한 전쟁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보다 처참한 여성 인권을 보여준다. 예멘 여자들은 인권이 낮기 때문에 남자들이 먼저 탈출한 것이다. 남자들은 아내와 딸, 늙은 어머니를 인질로 넘기고 도망갔다. ... 피란길은 위험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먼저 국경을 넘어와서 난민 지위를 받고 일자리를 얻고 생활을 안정시키고 나면 가족들도 불러들일 것이라고 순진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멘 내 여성 인권을 보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들 중에 다수가 자기의 어린 아내나 딸이 지내야 할 집과 가축을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국경을 넘었으리라고, 심지어 딸을 조금 더 넉넉한 형편의 늙은이에게 팔다시피 시집보낸 돈으로 넘어왔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이 훨씬 개연성 있다. - P79

캐나다는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에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독신 남성을 배제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여자와 아이들부터라는 대원칙을 만들었으며 독신 남성은 받지 않기로 한 후, 비용을 들여서 비행기를 띄워 바다 건너 먼 곳에서 난민들을 데려다가 인도적으로 수용하였다. 20-30대 독신 남성이 혼자서 넘어올 경우 장기적으로 사회 불안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 P84

박혜정은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 (열다북스, 2020)에서 성매매라는 단어가 여성의 자발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단어임을 지적하면서 성을 ‘매매‘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고 비판한다.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현실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대안적 용어로 ‘상업화된 성착취‘를 제안한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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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의 단상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서제인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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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의 모음이 300개 들어 있는 책. 내가 혹한 문구의 이미지만이 기억에 남았겠지만, 대체로 그 문장들의 모음은 조금 기발하거나, 많이 솔직하거나,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인생의 진리 같은 문장들 이렇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몇 개의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초반에 있었던 이 문구가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훌륭한 사진가는 자기가 꼭 시를 써야 한다고 우긴다. 어떤 멋진 에세이스트는 자기가 꼭 소설을 쓸 거라고 말한다. 천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어떤 가수는 자기가 작곡한 끔찍한 노래만 부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로서는 쓰고 싶지 않은 이런저런 것들을 글로 써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말할 때면 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앞의 세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주어가 달라서, 익숙해진 리듬에서 조금 당황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 꼬여 있는 듯한 문장 덕분에 집중해서 읽게 됐다. 그래서 사실 나도 그렇다- 라는 당연한 말인데 특별하게 보인다. 



몇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문구들이지만 맥락을 대략 알 수 있고 종종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성이나 돌봄에 관한 문구는 굳이 옮기고 싶진 않았지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 5년 일기라는 걸 쓰고 싶어했었는데, 거기에 일상이 아닌 생각들을 쓴다면 이런 글이 나오려나. 글을 쓰기 싫어 도망치는 마음으로 이런 짧은 문구를 쓰는 사람의 긴 글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어떤 훌륭한 사진가는 자기가 꼭 시를 써야 한다고 우긴다. 어떤 멋진 에세이스트는 자기가 꼭 소설을 쓸 거라고 말한다. 천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어떤 가수는 자기가 작곡한 끔찍한 노래만 부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그러니 사람들이 나로서는 쓰고 싶지 않은 이런저런 것들을 글로 써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말할 때면 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로마에서 내가 한 가장 가슴 설레는 경험은 포로 로마노로 걸어 들어가 고대의 돌 하나를 원래의 자리에서 집어 든 다음 다른 어딘가에 슬쩍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희망을 포기하고 괴로움에 굴복하는 일. 부처를 능가하는 완전한 초월에 이르는 일. 이 두 가지는 딱 한 가지 작은 특징만 제외하면 똑같아 보인다. 그것은 미소다. 미소 짓는 걸 잊지 말자.

덜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도둑질을 하는 기분이다. 많이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자선을 베푸는 기분이다.

나는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종종 놀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그 느낌을 즐기기 위해 나는 섹스, 약물, 우범지대처럼 사람들이 흔히 빠져드는 것들에 빠져들곤 했다. 그 갈망을 마침내 충족시킨 건 모성이었다. 모성은 멈추는 법도,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는 자기 소멸의 한 방법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더 외로워지는 동시에 덜 외로워졌다. 내가 덜 외로울 때는 이 특별한 외로움을 함께 느껴온 이름 없는 타인들, 알려지지 않은 수십억 명의 여성들을 떠올릴 때다.

우정, 결혼, 부모 됨, 자기 자신의 삶. 이런 것들처럼 끝나는 지점이 어딘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일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헌신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내 삶의 중심은 글쓰기라고 주장하며 살아왔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내 삶의 중심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니 나로서도 쉽지 않다.
나는 그저 당신이 여기 이 세상에, 냉정할 만큼 완벽하고 확고하게 자아를 유지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세상에 나와 함께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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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0-1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별이네요!....엥? 아깐 5별이었던 거 같은데 4별로 수정?!
˝우정, 결혼, 부모 됨, 자기 자신의 삶. 이런 것들처럼 끝나는 지점이 어딘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일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헌신이다.˝ 이건 정확히 저도 밑줄 그은 문장..... (수하님하고 저랑 겹치네요! 은곰탱이는 안 했을 거 같은데...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10-14 13:21   좋아요 1 | URL
제가 대체로 후한 경향이 있는데 ㅎㅎ 5별 하려다 너무 후한가 싶어서 4별로 바꿨어요.
하나 더 번역되어 있는 <망각 일기>가 궁금해지네요.

잠자냥 2024-10-14 13:37   좋아요 1 | URL
<망각일기>도 저는 4별 줬어요. 일기 쓰고 싶어짐...ㅋ

건수하 2024-10-14 13:51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은 일기 안 쓰시나요? 전 써보고는 싶은데 게으르....

잠자냥 2024-10-14 14:0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일기랑 다이어리 안 써요.

독서괭 2024-10-14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3년일기 사서 쓰고는 있는데.. 맨날 오늘 뭐했고 뭐했고 밖에 없어요 ㅋㅋ 이런 단상은 절대 안 나오더라고요. ㅋㅋ 전 그냥 스케줄 기록으로라도 써보긴 하려고 합니닼

건수하 2024-10-14 15:25   좋아요 2 | URL
오늘 뭐했고 아닌걸 써보려고 하면.... 안되려나요 ㅎㅎㅎ
일단 일기를 쓰시는 독서괭님 칭찬해드립니다!

저도 5년일기 써봐? 하다가 3년이라도 써볼까 말까 하는 중..

희선 2024-10-15 0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보는 일기는 늘 비슷한 거 써도 다른 사람들이 본다 생각하고 쓰는 건 비슷한 거 덜 쓰는 것 같기도 해요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쓴 거 또 쓰지만... 새롭거나 다른 거 쓰는 건 쉽지 않네요


희선

건수하 2024-10-16 16:37   좋아요 1 | URL
희선님 일기를 쓰시는 군요... 하긴 매일매일 새로운 걸 쓰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가끔은 저런 단상을 건질 수 있다면 일기 쓸 맛이 나겠어요.
 
교만의 요새 - 성폭력, 책임, 화해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박선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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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책같이읽기 9월의 책. 


MBTI 중 S 성향이라 그런가, 페미니즘을 생각할 때도 제도적 장치로 보장받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인간의 선함을 별로 믿지 않기에 제도가 생기면 의식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가 생기려면 많은 사람의 의식이 깨어있어야 하기에 제도가 먼저 생기는 일은 없을거라 절망적이라고. 


이 책은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칸트를 얘기했던가? 나도 원리원칙주의자라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그러면 뭘하나 현실이 아닌데. 마사 누스바움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매우 정제된 언어로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더러운 말은 굳이 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세상을 먼저 떠난 딸에게 바친다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고 둘 다 일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다. 마사 누스바움 자신도 '나는 다르고 싶은' 교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서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모두를 위해 존재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어떤 서사보다도 위에 있어서(있어야만 해서) 편견이나 편애로부터 면역력을 가진 체제를 만들겠다는 더 큰 목표를 독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관념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이 작업이 고결한 도덕관념을 구체화하는 일이라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14쪽)



나도 그런 도덕관념이 구체화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근시일내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실은 영원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게 가능하길 바란다. 


이 바로 뒤에 나오는 문장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지만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닌, 모두를 화해시키고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결과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14쪽)



그렇지만 이 문장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모든 여성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페미니즘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나는 그러고 싶지만. 사실 모두는 아니다, 모두를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내가 이렇게 더러움을 참고 난 더럽지 않으려고 공부하고 애쓰고 있는데 기왕이면 아름다운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그것도 안되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성폭력의 피해자이든 아니든,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든 아니든, 왜 여성은 항상 바르고 아름다운 결과를 추구해야 하나? 왜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행동해야 하나? 


타이틀 세븐이 일찍이 통과되고 개정되어 타이틀 나인까지 만들어진 미국에서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차별금지법도 통과되지 않은 한국에서 아직 모두의 화해는 당연히 이르다. 

누스바움은 8장 스포츠 업계에 관한 부분에서 '이 업계 전체를 좀먹는 성적 부패와 학계의 부패는 고칠 수도 없다.' 라고 했다. 문제를 고칠 수도 없고 구조화되어 있어서라고. '꾸준히 노력하면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등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 라는게 가능한 곳도 있지만 아닌 곳도 있다. (사실 미국에서도 안 될 것 같지만)


'교만' 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초반부도 좋았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점잖아서, 적어도 페미니스트들에게만 이 책을 권할 생각이다. 아, 남성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을 생각이다. 더 교만해지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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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10-07 18: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고 갸웃했던 부분들을 수하님이 날카롭게 적어주셨네요!
˝더 교만해지면 안되니까˝ ㅋㅋㅋㅋ 아 너무 좋네요 ㅋㅋ
저도 첨에 연옥 나오고 교만 나오고 할 때는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음.. 너무 모두를 안아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법치주의, 제도화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뭐랄까.. 너무 ‘중립적이어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쓴 것 같기도 하고. 모두를 안고 가려다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고런 느낌...
그리고 뒤에 업계 관련은 지루했어요. 저는 <혐오와 수치심>이 더 관심이 가네용

건수하 2024-10-09 08:48   좋아요 1 | URL
뒤에 업계 부분은..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본인이 잘 알 것 같은 극 분야 외에는 정말 그 분야 사람들도 동의할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혐오와 수치심> 하나 더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4-10-07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수하 님의 리뷰가 참 좋네요. 꼬집을 건 꼬집지만 점잖은 리뷰에요. 잘 읽었습니다!

건수하 2024-10-07 21:31   좋아요 0 | URL
사실 이 글을 쓸 때 전 꽤 화가 난 상태였거든요. 그래야 이 정도 쓰는 거라서.. 그래서 저도 교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어요. 🥲

잠자냥 2024-10-08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는 누스바움 언니... 좋아하는 이유가 그 온건함 때문인 거 같기도 해요. 책 읽다 보면 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역시 착한 사람인가... 싶어서 어느 순간 그냥 마음이 녹아짐 =_=

건수하 2024-10-08 10:51   좋아요 0 | URL
저도 싫은 건 아니고... 이상이 있다는 건 좋은거죠.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하는데 법 관련해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사실이 좀 슬프네요. 좋은 책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책 읽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까봐 권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누스바움 책을 하나 더 읽는다면 잠자냥님은 뭘 추천하시겠나요?

라고 쓰고 찾아보니 누스바움의 마니아 1위시네요!

잠자냥 2024-10-08 10:5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추천하기에는 저도 누스바움 언니 책 사놓기만 하고 안 읽은 게 수두룩해서;;
<교만의 요새> 읽기 전에 <타인에 대한 연민>, <혐오에서 인류애로> 이거 두 개 읽었는데요,ㅡ 제목에서부터 약간 순한 맛인 거 예상되지 않나요? ㅋㅋㅋㅋ <혐오에서 인류애로>가 <교만> 포함해서 3권 중에는 가장 좋았어요. 근데 저는 왠지 수하 님이 읽고 싶다던 <혐오와 수치심> 이거 재밌을 거 같아서 다음에 누스바움 책 읽는다면 이것부터 읽을 것 같습니다... <동물을 위한 정의>는 제가 반려동물하고 같이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누스바움 언니가 너무 뻔한 소리할 거 같아서;;; 책조차 안 사게 되네요;

엥?! 제가 마니아 1위라니 ㅋㅋㅋㅋ (산 책 소개를 많이해서 그런 듯요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10-08 11:02   좋아요 0 | URL
아, <동물을 위한 정의>가 딸이 하던 작업인 것 같네요...

<혐오와 수치심> 위에 독서괭님이 말씀하셨는데 흥미로울 것 같아서.. 그럼 저도 그걸 기억해둬야겠어요. 다른 건 읽더라도 나중에.. :)


건수하 2024-10-08 15:35   좋아요 1 | URL
혐오와 수치심... 728쪽... ;;;

2024-10-10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0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0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