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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제목도 작가 이름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오래도록 해온 책모임에서 8월 함께 읽고 얘기 나누기로 한 이 소설을 추천한 사람이 왜 추천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단톡방을 뒤져보니 '장편소설을 하려 했지만, 첫 두 작품 읽고 그냥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는 말을 발견했다. 이 책모임에서는 주제를 정해서 모임원이 한 권씩 책을 고르고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음 주제를 정한다. 이번 주제는 한국 소설이었고 나는 <자두>를 골랐었다.
어떤 책인지 찾아보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과연, 첫 두 단편이 강렬했다. 어쩌면 이렇게 드러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적나라하면서도 적확하게 썼을까 싶은 문장들. 그리고 한국 소설, 특히 한국 여성 작가 소설을 멀리하는 이유인 '감정을 드러내놓고 설명'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세 번째 소설, 단편집의 제목과 같은 <이중 작가 초롱>. 작가, 소설, 독자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절묘한 시기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을까. 내가 그 화두들을 잘 감당할 순 없었지만.
얼마 전 서재에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 에 대한 글이 몇 편 올라왔다. 서재에서 전에 어떤 작가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사람 싫어, 고양이 좋아!' 라고 말하는 사람 둘과 함께 살고 있고 그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차마 사람을 안 좋아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런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은*님?) 또 사람을 좋아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정도로 하자.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특정 작가를 좋아해 본 적은 별로 없다. 노래, 소설, 그림, 영화.. 이런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가수나 연주가, 작가, 화가, 배우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작가를 만난 적은 많지만 책에 사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작가가 궁금해서 북토크에 갔다 하더라도 목소리를 듣고 멀리서 본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기억하면 됐지 사인은 뭐하러.. 이런 생각. 소규모의 행사에서 다들 받는데 나만 가만히 있기가 곤란할 때 주로 받았고 그것도 몇 번 안된다. 아,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싫기도 하다. (정희진 선생님을 만난다면 줄 서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작품, 한 장르, .... 등 하나에 집중하는 편도 아니다. 또 어떤 것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단점을 더 잘 본다 (고치고 싶은 점이다). 몇 권 읽고 좋아하다가도 한 번 읽고 아니다 싶으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자 출신의 두 작가의 글을 나는 더이상 읽지 않는다. 한 작가는 소설에서는 고발하는데 주요 일간지 칼럼에서는 수줍다. 하다못해 책 소개마저 수줍다. 거기서 끝낼 게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끝낸다고? 물론, 주요 일간지 칼럼을 맡을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 작가의 상황을 존중하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안 맡아도 될 것 같지만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 모르니까. 다른 한 작가는 그냥... 나이든 한국 남자, 보수적인 한국 남자다. 그의 유려한 글 솜씨에 감탄했고, 그가 쓴 것이 예전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런 건 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이미 그런 글은 많이 읽었다.
나는 '가장' 이라는 부사에도 약하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가장' 좋아하는 음식... 그런 걸 어떻게 하나만 고른단 말인가. 이 세상에는 매력적인 것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래서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서재에서 받았을 때 당황했다. 물론 그 분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던 나의 자기검열도 고민을 더해 주었다. 한 때 좋아했지만 이제 안 좋아하는 하루키를 말하긴 부끄럽지 (이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여성주의 책을 같이 읽는 분인데 그래도 그 부분에서 좀 멋진 작가를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또 너무 무거운 건 싫고, 그러고보니 요즘 내가 어떤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지? 하다가 많이 읽었던 책들이 재미있었고, 딱히 깊이는 없었지만 저자의 기본적인 정서가 나름 맘에 들어서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그런데... 그 작가는 별로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었나 보다... 가 아니고 사실은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고... 물어보신 분은 무거운 책도 잘 읽는 분이었다. 물론 그 분이 내가 가벼운 책의 작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를 가볍게 판단하셨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겠지 하고 좀 아쉬웠다. 그래도 달리 떠오르는 작가의 이름이 없었고, 솔직한 게 좋은 거잖아? 하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생각이 났네).
내가 어떤 책을 읽다가 이 작가의 책(특히 소설)을 더 읽고 싶다- 라고 할 때는 크게 두 경우다. 생각이 나와 비슷하거나,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도 아주 자세히 잘 표현할 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는 작가의 경우 금방 질린다. 그런데 막연히 느끼고 있지만 나는 말이나 글로 옮길 수 없는 것을 표현해 주는 작가의 책은 계속 읽고 싶어진다. 그 작가가 내가 관심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더 그렇고, 그걸 새로운 관점으로, 그것도 여러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미상 작가의 <이중 작가 초롱>에 실린 단편들이 그랬다. 나를 자극하고,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속시원하게 표현해주었고, 내가 관심있는 주제인 '여성' 그것도 '지금 한국의 여성' 을 다루고 있었다. 외국 작가들의 소설보다 한국 작가의 소설은 더 가깝고 때로는 뼈아프게 다가와서, 피하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좀 '촉촉'해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이미상 작가의 소설은 건조하다기 보다는 단단하다. 그래서 더 맘에 든다. 참신한 자기만의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것도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평대'. 이게 무엇의 준말일까요? 궁금하죠? 궁금하면 (만오천) 오백원..
찾아보니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은 이미 여러 번 상을 수상한 것들이었고 여러 개의 문집, 소설집에 실려있는 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쌓아온 것을 한꺼번에 접해버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버겁게 힘들게 읽었다. 작가가 경장편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몹시 기대된다. 좀처럼 재독이란 것을 하지 않지만, 그 때까지 이 소설집을 더 읽고 생각해볼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의구심이 든다. MSG는 처음부터 남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 남자 죽일 거요, 말만 해놓고 자신도 자신의 맹세를 믿지 못한 것이 아닐까? 봤죠? 나, 하긴 했어요, 결과야 어찌되었든 간에... 식의 소시민적 예의바름! 당신은 그런 부류가 되고 싶은가? 남자를 죽이기로 해놓고 여자를 죽이는, 아버지를 때리고 싶지만 어머니를 패는, 영원히 하향 지원하는, 제발,
쥐겹다! 쥐꼬리만한 야심들! - P193
처음에는 남이 나에게 했던 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색무취였던 말이 뒤늦게 악취를 풍겨 때늦은 앙심을 품게 했다. 그러다 다행히-계속됐다가는 유치원 시절 문방구 아주머니를 수소문해 칼을 들고 찾아가게 된다-점차 내가 남에게 했던 말 때문에 괴롭게 되었다. - P234
(해설) 여자아이는 세계에 항상적으로 도사리고 잇는 폭력적 남성성의 공포를 경험하고, 그에 저항할 경우 가해지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순수한 욕망과 그 포기를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하는 통과의례를 거치지만 단속되지 않는 그 생의 활력은 밤마다 소생한다. - P325
(해설) 세계의 물리적 표면에서는 감지되지 않지만 그 내부에 분명히 실재하는 위험을 형상화한 이 스릴러는 여성이 일상에서 수없이 감지하는 남성의 폭력을 적확한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이유를 제시하는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당사자성과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토록 중요함을 역설한다. - P331
(해설) 전통적으로 남자는 여성의 외모 꾸미기를 자신을 향한 구애의 표현으로 해석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꾸밈의 과정과 그 이전의 모습은 철저히 숨겨져야 하고 오직 그 결과물만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무의식을 탑재한 남성은 화장을 고치는 익명의 여자를 보며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사이에 강렬한 욕망의 구도가 생기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인데도) 그녀가 자신을 욕망의 대상으로 전혀 보지 않는다는 ‘수치스러운‘ 사실을 전송받는다. 위축된 자신의 남성성을 마주한 그는 분개하며 익명의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개별 사건들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무차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수많은 여성 살해와 염산 테러를 이미 안다. 이때 발휘할 수 있는 여성의 방어술은 공격을 통한 적극적 자기방어가 아니라 사력을 다한 탈출이다. - P331
(해설) 타인의 머릿속에 생각을 심을 수 있다는 믿음은 겉으로 능동적인 자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정폭력 피해자, 가령 가스라이팅을 오래 당해온 아내들에게서 발견되는 착각이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남자의 마음은 너에게 달렸어. 네가 저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거야." 125쪽).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때 단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판단과 행동을 가해자의 인격에 맞추려는 최후의 몸부림이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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