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들마치>의 약 1/15을 발췌했다고 한다. 현재는 절판 상태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 책을 낸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줄여서 지만지라고도 쓰는데)는 '지만지고전천줄' 이라고 해서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고전의 일부를 발췌-번역하여 출간해왔고 요즘에는 지만지 소설선집, 지만지 드라마 등 좀더 다양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다. 고전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책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책, 또 동아시아나 영어-불어-독어권 외에 아프리카나 익숙하지 않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출간하는 등 독특한 자기만의 노선을 걷고 있다. 


번역은 역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 권 읽어본 결과 조금 딱딱하고 학문적이긴 하다. 그래도 궁금한데 완역본이 없는 경우 유용하다. 아무래도 취미로 독서를 하는 사람보다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시리즈인 것 같다.



이것은 6.7% ( = 1/15) 발췌했다고 하고 역자가 같은 걸 보니 같은 책인 것 같다.









사실 <미들마치>는 2년 전 나온 완역본이 있기는 한데, 일단 매우 두껍다. <나니아 연대기> <듄 1권> <율리시스> 등에 맞먹는 두께랄까... 집 근처 도서관에 내가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비치가 되어있기는 한데, 이걸 대출해서 2주 혹은 3주 안에 읽을 수.. 있을까? 엄두가 안 나 한 번 대출했다가 바로 반납했다. 










그리고 이 책은 1990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었었고 역자인 이가형은 2001년에 사망했는데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 2019년에 다시 나온 것이다. 2001년에 사망한 사람의 번역본이 2019년에 출간된 것의 의미는...? 번역자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해문 출판사의 추리소설 시리즈를 보았음에 틀림없다는 데 500원을 건다. 






어릴 때 해문 출판사의 이 시리즈들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작가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 사진은 없는데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은 왜 얼굴이 저렇게 크게 나오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는데, 알고보니 이 분이 추리소설 번역도 많이 했고 국제펜클럽 활동도 한 유명한 사람이긴 하더라. 문학박사에 교수이면서 장르문학계에서 저렇게 활동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 흥미로운 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2019년에 나온 완역판이라면 좀더 요즘 사람이, 요즘 말로 번역해 주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설마 나만 그런건가?) 그래서 분량도 부담스럽고 하여 일단은 지만지의 발췌 버전을 읽기로 한 것. 지만지 역자는 한애경 님으로, 이 분이 제인 오스틴 소설을 번역한 걸 읽어봤는데 나쁘지 않았었다. 



일단 나는 조지 엘리엇의 소설을 처음 읽어본다. 영문학 전공하던 친구가 읽는다길래 야심차게 <애덤 비드> 원서를 사서 아직 펴보지도 않은 채로 갖고 있기는 한데... - -; 올 연말까지 책 100권 처분하기로 했는데, 이 기회에 처분해야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재미있지만, 또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작가라는 걸 알지만 읽다보면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외모와 교양을 갈고 닦으며 결혼을 잘 하는 것이 목표인 여자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못생긴' 여자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예쁘고, 저렇게 매력적이고, 누가 더 예쁘다는 말은 하지만 다들 예쁘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결혼을 하면 꼭 얘기가 끝나고, 괴로운 결혼생활을 하는 부모나 선배들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결혼이 인생에서 중요한 이벤트일 수는 있지만, 끝은 아닌데, 또 모두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은 아닌데 결혼 이후에 대해서는 왜 얘기 안하는 건가. <레이디 수잔>은 좀 예외적이었는데 주인공이 미망인으로 설정되었고 결혼을 무조건 장밋빛 미래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았다.  




결혼은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이지만, 아담과 이브에게 그랬듯이 여전히 위대한 시작이기도 하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신혼을 보냈으나 황야의 가시밭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결혼은 아직도 가정이라는 서사시의 시작이다.


<미들마치 축약본>, 162쪽




조지 엘리엇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미들마치>는 그런 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달라서 좋았다. 여기엔 결혼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여자도 나오지만, 못생긴 여자도 나오고, 남편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도 나온다.



당신은 젊지만 친절한 분이세요. 하지만 저는 남편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전 이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미들마치 축약본>, 67쪽



이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보다 남편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가 더 놀라웠다.



그리고 실제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나온다. 외적 조건만 보고 결혼한 커플의 불행한 결혼생활, 또 상대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던 커플의 결혼 생활. 재미있었던 설정이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을 한 남자, 그리고 젊은 아내가 자기가 죽은 뒤 젊은 남자를 만날까봐 걱정(?)하는 남자를 나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 그걸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사실 그 남자가 나쁘게 그려진 건, 그가 걱정'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캐소본이 도로시아를 소개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말고 브룩 양도 똑같이 돌봐주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회는 자기를 즐겁게 해줄 아내의 자격을 고려하듯, 자신도 매력적인 여성을 행복하게 해줄 남편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걸 요구한다면 남자가 자기 아내뿐 아니라 아내의 남편도 고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또한 자기 자손을 위해 남자도 스스로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도로시아가 감격하면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을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캐소본 씨는 행복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미들마치 축약본>, 95쪽



맥락상 '남자가 자기 아내뿐 아니라 아내의 남편도 고를 수 있다' 가 아니라

'남자만 아내를 고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내도 남편을 고를 수 있다' 가 아닐까 싶지만...

저 말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지도 모르겠다.


발췌본으로 대충 줄거리는 파악하였으나 <미들마치> 전체를 읽고 싶은데, 지금 나와있는 완역본은 그리 맘에 안들고...

일단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을 읽어볼까 싶다.










(이것도 한애경님 번역) 


이것도 읽고 맘에 들면 <미들마치>를 사게 될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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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0-21 1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덤 비드> 처분한다는 말에서 빵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0-21 13:58   좋아요 2 | URL
제가 원서 샀을 때는 번역본이 안 나와 있었고요 ㅋㅋ 이제 번역본도 나왔고, 현대 영어도 아니고...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냐는...

잠자냥님 혹시 관심 있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실 것 같지만..

거리의화가 2022-10-21 1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들마치 완역본은 장바구니에 넣어놨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빼놨습니다ㅠㅠ 축약본이라도 읽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상 어려울 듯하고...ㅎㅎㅎ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읽으시면 소감 공유 부탁드립니다^^
저는 <빌레뜨> 읽기 시작해서 아무래도 이달은 그것 읽고 시간이 남는다면 <폭풍의 언덕>정도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ㅎㅎㅎ

건수하 2022-10-21 13:59   좋아요 2 | URL
<미들마치> 사기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일단 읽어보고 생각해 볼까나요?
축약본은 150페이지 남짓이라 금방 읽습니다 :)

아마 제가 <플로스 강~> 읽는 것보다 그 편이 빠를 것 같지만... 읽고나면 소감 공유할게요 ^^

Falstaff 2022-10-21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 서재 친구 **** 님께 들은 소식에 의하면 민음사에서 미들마치를 번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지, 번역하다 계약 끝났는지, 힘들어서 때려치웠는지, 아직도 나오지 않기는 했습니다만. 새털 같이 많은 나날인데 기다리시는 김에 좀 더 기다려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건수하 2022-10-21 14:00   좋아요 3 | URL
골드문트님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애덤 비드>도 5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읽을 책이 없는 것도 아닌데 좀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

프레이야 2022-10-21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들마치 완역본 가격이 사악해 담아만 두었어요. 1/15라도 읽는 게 낫겠죠. ^^
지만지 가격도 안 착하지만요.

건수하 2022-10-21 14:01   좋아요 2 | URL
두꺼우니 그 정도 가격 할만한 것 같긴 한데.. 번역이 어떨런지 ^^
지만지가 두께에 비해 가격이 센 편이긴 하죠 그래도 저 두번째 책은 7000원대 이더라고요... :)

페넬로페 2022-10-21 1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미들마치 완역본 읽기 시작했는데 출판사가 원망 되더라고요.
두 권이나 세 권으로 만들었으면 훨씬 실용적이었을텐데 읽기가 넘 불편해요.
한 책에 넣어 비싼 값을 받으려는 출판사의 꼼수도 보이고 초반부터 눈에 띄는 번역의 오류도 많아요^^

건수하 2022-10-21 15:04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읽기 시작하셨군요..!
1권만 사고 안 살까봐 합본한 거였을까요? 확실하게 팔려고...?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은 많지만..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나중에 글 올려주시길 기다릴게요 ^^

바람돌이 2022-10-21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도서관에 완역본이 있습니다. 저는 일단은 빌려서 앞부분이라도 읽어보고 결정할려구요. 한 50페이지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축약본으로.... ㅎㅎ 그런데 또 페넬로페님의 번역 오류가 많다는 말에 또 고민중.... 골드문트님이 말씀하시는 민음사판은 언제 나올까요? ^^

건수하 2022-10-21 15:28   좋아요 2 | URL
저는 플로스 강~을 읽어본 뒤 좋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려구요 ㅎㅎ
바람돌이님 책이 무거우니까, 어느날 시간을 내어 도서관에서 50페이지를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

바람돌이 2022-10-21 15:39   좋아요 2 | URL
저 팔뚝힘 좋아요. ㅎㅎ

건수하 2022-10-21 15:43   좋아요 2 | URL
아, 저는 어깨로 드는데 (가방에 넣어서) 바람돌이님은 손으로 들고 오시는군요 ㅎㅎ

저희동네 도서관 책은 대출중이네요. 읽어보시고 꼭 알려주세요!

단발머리 2022-10-21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모두 미들마치 한 번씩은 건드려 주시는 센스 ㅋㅋㅋㅋㅋㅋㅋ 저희 동네 도서관에 미들마치 어디에 있는지 전 알아요. 거기까지입니다. 저는 <교수> 읽고 있고요. 시간 나면 <빌레뜨>랑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다시 읽을까 싶은데, 가능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참, 저 수하님이 <실낙원> 주구장창 나온다고 빨간색으로 굵게 표시하셔서 저, 그것도 빌려다 놓았어요. 그렇다고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0-21 17:36   좋아요 2 | URL
저는 <실낙원>을 샀어요… 근데 펴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듭니다;;

저는 이제 노생거 사원 (읽을까 말까) - (실낙원) - 교수 - 빌레트 - 벗겨진 베일 이렇게가 목표예요 :)

단발머리 2022-10-21 17:47   좋아요 2 | URL
노생거… 얇고 재미있고 금방 읽을 수 있어요. 뒤에서 약간 힘이 떨어지기는 하는데요, 얇으니까요^^

건수하 2022-10-21 18:25   좋아요 2 | URL
제가 이번주 4장을 읽어야하니
4장을 슬쩍 훑어본 뒤 필요하면 읽고 아니면 패스해야겠어요 :)

독서괭 2022-10-21 17: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니아연대기만큼 두껍다고요.. 어마어마하군요! 인용해주신 부분들은 흥미로워보이는데.. 흠
근데 실낙원은 대체 무슨 내용인가요? 이름만 익숙하고 내용은 1도 모르는데 다미여에 많이 나온다니 걱정되네요;;

건수하 2022-10-22 07:44   좋아요 2 | URL
아담 이브 에덴동산 뱀 사탄 뭐 이런게 나오는… 종교적 성격이 짙은 서사시라고 합니다 ^^

단발머리 2022-10-22 12:23   좋아요 2 | URL
이 댓글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1. 어? 그럼 나는 안 읽어도 되겠네. 아담, 이브, 에덴동산, 뱀, 사탄... 이런 거 나는 다 익숙하잖아. 잘 알잖아 (교회 오래 다닌 사람)
2. 어? 그럼 나는 얼른 읽어야겠네. 아담, 이브, 에덴동산, 뱀, 사탄... 이런 거 나는 잘 알잖아. 재미있겠다. 책 어디 있지?

제가 어느 길로 갔는지 아시는 분은 제가 일전에 알려드린 오징어 굽는 냄새 나는 울타리 근처로 오늘 오후 7시까지 오시면 되겠습니다. 움하하하하!!!

건수하 2022-10-22 12:33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이 2번으로 가셨다에 500원을 걸겠습니다. 🙄

독서괭 2022-10-22 15:40   좋아요 3 | URL
저도 2번에 ㅋㅋㅋ
 
포르노랜드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7장 인종과 섹스, 섹스와 인종주의 : 포르노의 짙은 이면 


8장 아동 : 최후의 금기




남자는 (인종과 무관하게) 여자의 얼굴과 몸에 사정할 때 대개 그의 피부색을 언급하며, 이때 폄하된 여자의 지위는, 마찬가지로 폄하되는 유색인의 지위와 자연스레 섞이고 그것에 의해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유색인 여자의 인종과 성별은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그의 몸은 이중의 종속이라는 지위를 떠안는다. - P253

『AVN』 기사에 따르면 IP (Interacial Porno) 는 주로 백인 소비자를 겨냥해 생산, 광고, 배급되는 듯하다. 이는 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교적 가까운 과거만 해도 백인 남자들은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를 바라본다는 생각만으로 린치 패거리가 되어 광분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동의 세계에서는 여자-백인이든 유색인이든가 폄하되면 폄하될수록 이용자에게 더 나은 야동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을 이해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백인 남자의 눈에, 백인 여자가 성적으로 변태에다 야만인이며 난봉꾼이라고 지정된 자들에게 계속해서 삽입당하게 하는 것보다 그들을 폄하하기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 P273

이러한 백인 여성의 폄하는 물론 백인 이용자의 성적 흥분을 강화하겠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에 갖는 함의는 흑인 커뮤니티로 향해 있다. 성별, 인종, 계급 등에 기반한 모든 형태의 억압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행사하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신념 체계를 필요로 한다. 이 정당화의 과정은 대개 대상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형태를 통해 전개되는데, 이때 이들은 권력 집단보다 어딘가 덜 인간화된 존재로 그려지며, 이 인간보다 못한 지위 때문에 착취, 학대, 폄하당해야 마땅한 존재로 전락한다. - P279

인종을 섹슈얼리티와 혼합하는 포르노의 이미지는 섹스를 더욱 ‘야하게‘ 하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류 사회에 떠돌아다니던 오랜 스테레오 타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같은 스테레오 타입은 대개 과거의 산물이지만, 포르노 이용자가 그것을 보고 자위할 때마다 현재와 교착한다. 이는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대상 집단의 속성이라고 여겨지는 성적 문란함을 가시화할 뿐 아니라 실제 인종주의를 비가시화하는 방식으로 인종주의를 성애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대다수의 포르노 소비자와 소비자가 아닌 사람들 모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돈 아이머스가 해고되고 포르노 제작자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 P280

내 생각에 여기 있는 남자 대다수는 어린 십대 트렌드가 기괴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들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얘기해 주니까. 뭔가가 해롭고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보고 흥분한다면 그건 당신이 남자로서 어떤 인간이라는 뜻이겠는가? - P283

대중문화가 점점 더 포르노와 닮아 가면서, 진짜 포르노 산업은 「MTV』나 『코스모폴리탄』, 광고판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와 차별화하기 위해 더욱 하드코어해져야만 했다. 포르노 제작자들이 겪는 문제는, 이용자의 관심을 계속 잡아 둘 새로운 수단이 빠르게 소진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그들이 풀어야 할 큰 숙제는 소비자들이 상품에 점점 더 무뎌져 가는, 이미 공급 과잉 상태인 시장에서 이윤을 계속 극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포르노 업계의 주요 과업은 새로운 틈새시장과 소비자층을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탐색하는 동시에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 혹은 그 대신 법을 바꾸는데 힘쓰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주류가 된 포르노 업계가 점점 더 많이 택하고 있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 P284

PCP 사이트에서 더 순한 용어를 쓰는 것은, 이 여자들이 야동의 세계에 사는 다른 여자들과는 어떻게든 구분되며 그들처럼 언어폭력을 당해도 싼, 이미 ‘버린 몸‘인 창녀가 아직은 아니라는 개념을 이용자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이트에서 ‘소녀‘들을 아직 섹스로 더럽혀지거나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거기서 제공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그들이 ‘순수함’을 잃는 장면을 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 P292

긴장, 키득거림, 미소, 얼굴 붉힘 등이 보여주는, ‘귀여운 것‘이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그 순수함에도 불구하고 ‘소녀‘가 카메라 앞에서 자위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건 약간의 부추김뿐이며, 야동의 세계에서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소녀’는 별 무리 없이 ‘자기 안에 숨어 있던 걸레’를 드러낸다. 결국 책임은 그 소녀에게 있기 때문에 이용자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P294

여기서 목격되는 것은 단순히그들의 첫 포르노 영화일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처음으로 질에 삽입당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이 여자들은 포르노 산업에 의해 자신의 첫 성 경험을 기록당하며, 이 기록물은 남자들이 자위하며 얻는 쾌감을 위해 계속해서 유포된다.) - P298

이 포르노 제작자들은 ‘소녀‘와 남자 사이의 나이 불균형을 에로화하는 것으로 모자라,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끌어다 남자가 여자에게 훨씬 더 큰 권력을 행사하게 할장치로 활용한다. - P302

PCP 사이트를 클릭해서 들어가는 순간 이용자는 글과 이미지의 융단 폭격을 받으며, 이들은 이용자에게 아동에 대한 성적 욕구를 합리화하고, 묵인하고, 찬양하는, 내부적으로는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전달한다. 사회 내에서 순환하는 규범과 가치는 성인과 아동 간의 섹스를 비정상과 폭력으로 규정하지만, 이는 PCP에서는 부재하며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동과의 섹스가 모두에게 즐겁고 재미있는 거라는 메시지다. - P310

이런 PCP 사이트는 이용자를 한시적으로는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이용자는 점점 거기에 무감각해지면서 지루함을 느끼고, 결국 더 하드코어하고 극단적인 포르노를 찾게 된다. 당연히 그다음 단계는 실제 아동 포르노다. 여기에는 진짜 아동이 나오는 데다 실제로 불법이기 때문에 포르노의 그 비밀스러운 속성이 이제는 다소 무감각해진 이용자에게 훨씬 더 큰 성적 자극을 준다. - P312

많은 남자가 자신의 포르노 취향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더 폭력적이고 기괴한 장르 쪽으로 향해 가는지에 대해 충격을 표출했다. 이전에는 불쾌하다고 느꼈던 장르를 이제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들 장르 중 다수는 성인 여자가 대상이지만 - 배뇨, 수간, 심한 결박 신 등- 일부 남자의 경우, 아동이 성적 욕구의 대상이 된다. - P313

퀘일과 테일러는 아동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다음과같이 밝혔다. "일부 응답자에게 포르노는 실제 가해를 대체하는 대용물이었지만, 다른 일부에게 그것은 실제 가해를 위한 청사진이자 자극제로 작용했다."
아동 포르노 이용자 중 실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비율은 연구마다 다르며 낮게는 40%, 높게는 85%까지 나타났지만, 이러한 증거가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는 아동을 성애화한 이미지를 보고 자위하는 행위는, 상당 비율의 남자에게 있어 실제 아동 성범죄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2007년 미국 정부가 아동 포르노 소지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아동 포르노 소지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자 중 85%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부적절한접촉에서부터 강간에 이르는 성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아동 포르노가 남자 개인의 행동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심리학 연구 외에도, 우리는 미디어 학계의 연구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가 소비하는 미디어로부터 현실에 대한 관념을 구축하고, 그 메시지가 더욱 통일되고 일관될수록 그것을 진짜라고 믿을 확률이 더 높다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PCP에 나오는 여아의 이미지는 사회적 진공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동화된 성인 여자, 성인화된 여아, 과잉성애화된 젊은 여성 신체 이미지가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생산되고 소비된다. - P315

우리 문화가 점점 어린 여아를 성애화하는 쪽으로 향해 가는 현상은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아동을 남성의 성적 도구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선을 긋는 사회의 규범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러한 문화 규범의 기반을 점점 더 약화할수록 여아를 ‘여자‘의 범주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셈이며, 이 포르노 포화 상태의 세상에서 여자가 된다는 것은 대개 남자의 멸시, 이용, 학대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성적대상물이 된다는 의미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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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0-20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고지가 바로 앞입니다. 부럽사옵니다, 수하님!!!

건수하 2022-10-20 19:42   좋아요 2 | URL
거의 다 읽었는데… 글을 못 쓰겠어요 ^^;;

공쟝쟝 2022-10-2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르노 진짜 유해해…
 

6장 포르노 문화에서 여자로 성장한다는 것

<포르노 랜드> 가 알라딘에서 품절이다.
경쟁사 Y모 사에는 있다.
혹시…. 설마….?



현실에서 여자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고도 그것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늘날 포르노의 이미지, 재현, 메시지가 대중문화를 통해 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자들은 여전히 하드코어 포르노의 주요 소비자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게 모르게 포르노의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고 있으며, 대개 이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하면 섹시하고, 도발적이고, 쿨하게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또 가능하다면 붙잡아 둘 수 있는지)에 관한 충고의 모습으로 위장한다. - P217

대중문화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현상이 이전 세대들이 보고 자란 것과 다를 바 없고, 단지 양만 많아졌다고 추측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어떤 세대는 일반 사람들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산 ‘섹시 스타‘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날 달라진 점은 대량 생산된 이미지가 과잉성애화되고 있을뿐 아니라, 그러한 이미지가 다른 대안적인 여성상을 압도하고 몰아낸다는 점이다. 오늘날 소프트코어 포르노 이미지가 해일처럼 밀려들면서, 포르노 스타의 외양이 일상의 문화로 스며들어 그보다 덜한 것은 촌스럽고, 고지식하고, 그저 지루할 뿐이라고 여겨진다. 지금 브리트니, 패리스, 린지를 제외한 다른 대안을 찾으려는 여아나 여자 청년이있다면 ‘박을 만한‘ 상대로 보이지 않는 유일한 대안은 아예 보이지 않는 것밖에 없다는 암울한 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P224

포르노 문화를 대중화한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섹스 앤 더 시티」가 있는데, 이 시리즈는 남자로부터 독립적인 여성상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언뜻 보면 여자의 우정을 비추는 방식이나 여자들이 연대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다른 시리즈와 차별화된 듯하다. 또한 여자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이며, 이러한 욕구는 세련되고, 도발적이고 재미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여자들이 주창한 섹슈얼리티는 궁극적으로는 저항이 아닌 전통에 속한다. 남자를 차지한 후 붙잡아 두는 법이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매주 들리는 건 네 명의 백인특권층 이성애자 여성의 고난과 역경으로, 이들이 찾아낸 남자는 포르노에서 섹스의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 P224

이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에 관해 비평가들이 주목한 점은 소비상품이 여자의 삶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다. 미디어 학자 앤절라 맥로비에 따르면 이 시리즈는 구두, 액세서리, 패션 라인의 성공적인 출시를 위한 텔레비전 잡지나 쇼윈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섹스앤더 시티의 여자들이 독립적이라고 그려지는 이유는 남성의 권력에 순응하기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고액의 상품을 스스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의 섹슈얼리티는 그들이 소비하는 상품에 달려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여성의 소위 독립성이라는 것이 이성애 관계에서의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적 세계관이 아닌 소비력과 자연스레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 - P227

헤드라인을 보면, 여자들은 진정한 성적 쾌락을 경험할 수 없는인간인 듯하다. 대신 남자가 원하고 즐기는 것이 곧 여자가 원하고 즐기는 것이 된다. 직장 내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를 다룬 특이한 기사가 가끔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잡지는‘그이’와 ‘그이’의 요구, 필요, 욕망, 취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오르가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스모폴리탄은 대중문화가 대개 그러하듯, 여성의 쾌락이 욕망하는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욕망되는 대상이 되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 P228

이러한 성적대상화의 대가를 치르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여아와 여자 청년들은 주류 문화에 반하는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러한 여아와 여자 청년의 곁에는 문화적 메시지에 일종의 면역을 길러준 누군가-어머니든, 연상의 여자 멘토든, 혹은 코치든-가 존재했다. 하지만 대개 이러한 면역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또래집단이 사회화의 힘을 가장 두드러지게 발휘하면서 여아도 더 전통적인 여성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년기는 발달단계상 무리에 속하는 것이 전부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소년기의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과 똑같이 보임으로써 가시적인 존재가 되고, 다르게 보이거나 행동하는 순간 비가시화된다.
이 여자 청년과 여아 다수가 지배적 문화에 꾸준히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 맞는 또래 집단과 더불어, 현 시대의 여성성이 지닌 허위와 착취, 소비주의적 본질을 고발하는 이데올로기다. - P237

이 모든 것에서 여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어디로 갔을까? 1960/년대, 70년대 성 해방을 위해 싸운 페미니스트들은 성을 원하고, 욕망하고, 즐길 권리를 위해 싸웠으나 이때 그 성은 그들 자신이 세운 기준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여자의 섹슈얼리티가 남자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주장했고, 그것을 돌려받기를 원했다.
보글이 인터뷰한 남자 중 한 명은 원나잇 문화를 "남자의 파라다이스"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포르노랜드는 그런 남자에게 진정한 파라다이스다. 그 어떤 구속도 없는 섹스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에게는 일상의 세계다. 남자들이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규정하며, 그 방식은 자기들에게 좋을 대로일 뿐 우리를 위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섹슈얼리티는 오늘날 힘을 키워준다며 우리에게 팔리고 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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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10-16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혹시 설마 뭐예요?ㅋㅋㅋㅋ궁금!!
저도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수하님! 오늘 중 다읽으실것 같아요^^

건수하 2022-10-16 17:31   좋아요 1 | URL
서재에서 자주 언급이 되어서 품절된 건… 아닐까요? ㅎㅎ

얄라알라 2022-10-18 13:12   좋아요 1 | URL
하하하....그런 건가요?

혼자 엉뚱한 상상...했네요.^^;;; 전.

건수하 2022-10-18 13:13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님의 엉뚱한 상상이 궁금합니다... 공유 부탁드려도 될까요? ^^!

얄라알라 2022-10-18 13:19   좋아요 2 | URL
저는 어제서야 책 받아서(대출하기 너무 어려웠던 이유로...) 이제 1/2 지점 갔는데요

제가 이해한 대로라면, 포르노랜드에 폭탄 투하하는 척 하면서 동시에 잘 되라 잘되라 비료 퍼붓는 교묘한 전략이 같이 가기도 하는 거죠?^^:;; 아닌가...

그니까 저는 품절을 음모론적으로 이해했어요 ㅎㅎㅎ
[포~랜드] 품절시켜서 일부러, 호기심 증폭. ^^;;;;

아닐 겁니다. 수하님 말씀처럼 서재에서 자주 등장하니 인기상승일 겁니다^^;;

건수하 2022-10-18 13:38   좋아요 2 | URL
어.. 저는 한 챕터 남겨두고 있는데,

품절시켜서 호기심 증폭- 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데 품절되는 걸 많이들 알려나요?)
폭탄 투하하는 척 하면서 동시에 잘 되라 잘되라 비료 퍼붓는 교묘한 전략-은 잘 이해가 안되네요.

제가 띄엄띄엄 읽었을 수도 있어요... 마지막 챕터를 읽어보며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공유 감사해요 얄라알라님.

다락방 2022-10-16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뭐라고요?!😱 우리가 품절시킨걸까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0-16 18:45   좋아요 1 | URL
사실 확인은 할 수 없지만 많이들 읽는가보다 싶어 반갑네요 ^^

얄라알라 2022-10-18 13:12   좋아요 2 | URL
제가 사는 지역 도서관에 이 책은 희귀합니다. 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는 저는 품절 사태에 보탬이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독서괭 2022-10-16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다락방님 여성주의도서읽기의 힘인가요!!

건수하 2022-10-17 13:56   좋아요 2 | URL
그런 걸까요? ^^ 읽다보니 글도 너무 좋고 정리도 잘 되어 있고.. 많이들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5장

포르노는 어떻게 남자의 삶에 스며드는가



많은 남자들이 반성적 질문을 던질 기회를 거부하는 이유는, 포르노가 자신의 섹슈얼리티, 여자와의 관계와 소통에 미치는 영향에 좌절하며 고통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포르노 세계 속 엄격하게 통제된 형태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 포르노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미친 영향을 감정적 측면에서 재고하는 영역으로 진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문화가 남자에게 포르노는 재밌고 무해하며 그 본질은 판타지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 P184

미디어 학자들은 이미지가 현실 세계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이미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별화된 존재로 바라보는 방식과 더불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요소는 하나의 특정 이미지가 주는 노골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미지의 기저에 존재하고 그체계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의 점증적 효과로, 이들은 합쳐져서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문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로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 감각을 발달시키며, 포르노는 섹스, 관계, 섹슈얼리티에 관한 유일한 이야기꾼은 아닐지 몰라도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 P185

"포르노가 강간으로 이어지는가?" 여기서 묻히는 건 포르노가 문화와, 그 이용자인 남성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하는 지를 묻는 더 예리한 질문이다.
내가 아는 반포르노 페미니스트 중 그 누구도 단일한, 혹은 소수의 특정 이미지가 비강간범이 강간하도록 이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장은, 포르노 이미지가 총체적으로 작용할 때,
최소 여자에게 적대적이고 최악의 경우 여자의 신체와 정서 건강에 매우 위험한 세계를 구축한다는 논리다. …
앤드리아 드워킨과 캐서린 매키넌은 포르노는 남성 섹슈얼리티에 복잡하고 다층적인 영향을 미치며 강간은 단순히 포르노 때문에 발생한다기보다 남성 지배적 사회구조와 얽힌 문화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논리는 포르노가 그러한 사회의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이며, 포르노가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를 너무도 완벽하게 담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하게 무조건 강간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포르노가 성차별적 이미지와 이데올로기로 넘쳐흐르는 사회의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간과한다는 주장이었다. - P191

포르노 이용을 문화적 맥락 안에 위치시키면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지가 비로소 보인다. 남아가 성인 남자로 자라는 동안 미디어는 이들에게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쏟아붓는데, 이 메시지는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며 동시에 여자를 남자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성적 대상물로 묘사한다. 남아와 성인 남자는 비디오 게임, 영화, 텔레비전, 광고, 남성잡지에서 그러한 이미지를 접하며, 그 이미지는 그들에게 여성, 남성, 섹슈얼리티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포르노의 역할은 이 같은 여성에 대한 문화적 메시지를 가져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간결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 P192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집단이라면 누구나, 미디어 이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사실, 즉 미디어 이미지가 억압당하는 집단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안다. 이 이미지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집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의 더 광범위한 체계 안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가진 권력은 대개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묵인하는 이데올로기를강화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나온다.
이 주장을 포르노에 적용해 본다면, 포르노가 미치는 어떤 영향은 태도와 행동의 즉각적 변화보다 더 미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남자가 처음 포르노를 접할 때쯤이면 대부분은 우리문화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이미 내재화한 상태고, 포르노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대신 그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을 굳히고 공고히 한다. 게다가 이는 그들에게 강렬한 성적 쾌락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섹시하고 화끈한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행위는 포르노에, 다른 형식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여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자격을 부여한다. … 포르노는 분명 그것을 보고 자위하는 남자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 P194

내가 남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자기가 성적으로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들은 대학에 가면 섹스기회를 쉽게 얻을 거라 기대했고, 당연히 다른 남자들은 "하고 다닐" 거라 생각하며, 결국 자기한테 뭔가 문제가 있거나 혹은 자기가 한번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들은 자기가 충분히 잘생기지 않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혹은 남자답지 않아서 점수를 따지 못하는 걸까 봐 걱정하며, 포르노의 세계관이 여성을 언제나 접근 가능한 존재로 그리는 탓에 거절에도 몹시 당황한다. 그들은 대개 여자와 자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깊은 수치심을 표출하며, 이 수치심은 ‘야동녀‘와는 다르게 ‘싫어’라는 어휘를 가진 여자 학우들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 P196

이들이 현실 감각을 잃는순간은 어느 정도로 그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섹스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야동의 세계에서는, 여자와의 교류라면 그것이 어떤 형태든 -학생이든, 의사든, 가정부든, 교사든, 혹은 그냥 모르는 사람이든 무조건 성애로 귀결된다. 또한 남자들이 서로 최근의 정복사례를 공유하며 즐거워하는 얘기, 마치 이들이 방금 본 포르노 영화처럼 들리는 얘기가 덧붙여져 남자가 여자를 마주칠 때마다 여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 현실 세계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때 실망과 분노가 치솟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간다. - P197

그간 꾸준히 드러난 일종의 패턴은, 이들 남자 중 대다수가 섹스 파트너가 원나잇 상대라는 조건하에선 포르노 이미지가 자신의 성생활에 침투하는 걸 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관계를 쌓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는데 포르노 이미지를 떨쳐낼 수 없을 때 비로소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포르노 영화의 장면이 성적 흥분을 느낄 때마다 밀려 들어온다. 그들은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포르노 배우와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이때 여자친구가 더 못한 존재가 된다. - P199

살과 살이 맞닿을 때 생겨나는 친밀감, 깨어나는 감각, 유대감은 아예 부재하거나 이들 남자가 성적 쾌락을 얻는 데 의존하게 된 산업의 상품에 압도당한다. 포르노 문화에서는 섹스를 친밀감과는 분리된 행위로 바라보도록 훈련받기 때문에, 이용자는 섹스를 정서가 아닌 수단적 측면에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남자 이용자가 포르노를 "여자 안에다가 자위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202

이들 남성 집단에게 일반적인 곤조 포르노는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폭력적이고, 페티시적 성향이 강한 포르노로 점차 눈을돌렸고, 대개 그야말로 고문으로 보이는 행위를 찾아 나섰다. 이것도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들 대부분은 아동 포르노로 넘어갔다. 아동 포르노를 처음 내려받은 시점과 실제로 아동에게 성폭력을 가한 시점 사이의 기간은 평균 1년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기 이전에는 아동에게 성적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 P205

포르노가 강간에 개입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포르노를 이용하는 모든 남자가 강간을 저지르는 건 결코 아니지만, 포르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상화하고, 합리화하고, 묵인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이 ‘강간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대량 생산된 이미지 대다수가 여자에게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신체 온전성이나 영역, 경계가 없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들 이미지는 총체적으로 작용해 그러한 경계선을 넘는 행위를 여자가 원하고 즐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포르노가 그 이용자에게 전파하는 다양한 강간 신화 중 일부이다. … 포르노에는 다른 수많은 신화가 내재해 있는데, 모두 성폭력을 폭력의 행위가 아니라 합의에 기반한 행위로 묘사하는 게 목적이다. - P208

포르노는 사회화의 유일한 행위자는 결코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 덕분에 강력한 설득의 도구가 되었으며, 남자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자기가 당연히 갖는 인권을 마찬가지로 당연히 가지는 존재로 보는 능력을 잠식하고 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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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포르노의 주류화

3장 포르노라는 거대 비즈니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포르노에서 ‘외설‘이라는 요소를 벗겨내고 포르노를 재밌고, 세련되고, 멋지고, 섹시하고, 화끈한 것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수년간 자신들의 상품을 미화한 포르노 산업의 치밀한 전략과 마케팅의 결과물이다. 포르노 산업은 거듭 미화될수록 대중문화와 우리의 집단의식 속에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 P94

"여자들은 대부분 첫 촬영을 곤조 영화로 시작한다. 이들은 미션힐스에 위치한 형편없는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여자의 이름을 ‘개년‘이라고 생각하는 난폭한 개자식들한테 구멍이란 구멍에 전부 삽입당한다. 그리고 이들은.… 촬영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서 다시는 찍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정말로 끔찍한 경험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걸 찍기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어서, 그들은 남은 평생 친척이나 동료, 자식이 그걸 알아낼까 봐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그런 일은 결국 일어난다." - P114

포르노 제작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이 업계에서 그런 종류의 포르노가 연인을 위한 포르노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덜트 엔터테인먼트 엑스포」에서 나와 얘기를 나눈 몇몇 제작자들에 따르면, 남자들이 이런 종류의 포르노를 구매하는 이유는 여자의 포르노 입문용으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특정 행위를 해 달라고 요구할 때 쓰는 한 가지 수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행위는 파트너로서는 딱히 하고 싶지 않은 행위일 수 있다.) - P122

(포르노는) 그보다는 특수한 자본의 논리에 맞춰 상품을 진화시키는 비즈니스로서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놓인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포르노는 정치인 로비와 고액의 법적 분쟁, 홍보와 선전을 이용해 여론에 영향을 주는 게 가능한 비즈니스다. 담배 산업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비즈니스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정교한 마케팅 수단을 동원할 능력을 더욱더 철저히 갖추어, 소비자에게 상품을 더 많이 들이밀 뿐 아니라 업계 이미지 자체를 긍정적으로 비추려 하고 있다. 주류 산업으로서 포르노 비즈니스는 단순히 상품을 구성하고 파는것에 그치지 않고 상품이 팔릴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한다. - P126

포르노는 새로운 기술혁신을 견인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며, 기술 발달을 구성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선도하여 더 큰 경제구조에 널리 퍼뜨렸다. 그다음에는 발전한 기술과 사업 전략이 포르노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했다. 포르노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방대해지는 가치 사슬 안에 깊숙이 뿌리내려, 제작사와 유통사뿐 아니라 은행업, 소프트웨어, 호텔 체인, 휴대전화와 인터넷 기업을 연결하고 있다.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포르노는 자본시장과 경쟁의 원칙에 지배받고, 시장 세분화와 산업 집중이라는 추세와 함께 간다. …
역사학자 조너선 쿠퍼스미스 Jonathan Coopersmith에 따르면, 이렇게 다양한 기술에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면, 포르노가 먼저 길을 뚫고, 그 후 그 미디어가 성장함에 따라 포르노는 전체 비즈니스의 일부로 점점 줄어들어 더 보편적인 상업용도를 개발한다는 점이다. - P130

경마장에서부터 카지노에 이르기까지, 도박 산업이 ‘게이밍 gaming‘ 산업이라는 명칭을 쓰고 정부 수입에 기여하는 바를 강조하며 새로운 포지셔닝을 시도했듯, 포르노 산업도 엔터테인먼트와 ‘라이프스타일‘ 부문의 일부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제는 많은 홍보업체가 포르노를 주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홍보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 P139

포르노는 확실히 거대 비즈니스가 되었고, 국내 및 국제 시장에 더욱 과감히 진출하며 직접적인 정치적, 입법적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소유집중이 점점 심화되고, 브랜드 파워와 광범위한 운영을 자랑하는 더욱 거대하고 자본화된 기업이 출현하면서 포르노 산업의 영향력은 극대화될 것이다. 더 나아가 주류 금융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더욱 강력한 동맹을 얻을 것이다. 포르노 산업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 사회의 포르노화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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