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들마치>의 약 1/15을 발췌했다고 한다. 현재는 절판 상태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 책을 낸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줄여서 지만지라고도 쓰는데)는 '지만지고전천줄' 이라고 해서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고전의 일부를 발췌-번역하여 출간해왔고 요즘에는 지만지 소설선집, 지만지 드라마 등 좀더 다양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다. 고전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책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책, 또 동아시아나 영어-불어-독어권 외에 아프리카나 익숙하지 않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출간하는 등 독특한 자기만의 노선을 걷고 있다.
번역은 역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 권 읽어본 결과 조금 딱딱하고 학문적이긴 하다. 그래도 궁금한데 완역본이 없는 경우 유용하다. 아무래도 취미로 독서를 하는 사람보다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시리즈인 것 같다.
이것은 6.7% ( = 1/15) 발췌했다고 하고 역자가 같은 걸 보니 같은 책인 것 같다.
사실 <미들마치>는 2년 전 나온 완역본이 있기는 한데, 일단 매우 두껍다. <나니아 연대기> <듄 1권> <율리시스> 등에 맞먹는 두께랄까... 집 근처 도서관에 내가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비치가 되어있기는 한데, 이걸 대출해서 2주 혹은 3주 안에 읽을 수.. 있을까? 엄두가 안 나 한 번 대출했다가 바로 반납했다.
그리고 이 책은 1990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었었고 역자인 이가형은 2001년에 사망했는데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 2019년에 다시 나온 것이다. 2001년에 사망한 사람의 번역본이 2019년에 출간된 것의 의미는...? 번역자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해문 출판사의 추리소설 시리즈를 보았음에 틀림없다는 데 500원을 건다.
어릴 때 해문 출판사의 이 시리즈들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작가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 사진은 없는데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은 왜 얼굴이 저렇게 크게 나오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는데, 알고보니 이 분이 추리소설 번역도 많이 했고 국제펜클럽 활동도 한 유명한 사람이긴 하더라. 문학박사에 교수이면서 장르문학계에서 저렇게 활동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 흥미로운 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2019년에 나온 완역판이라면 좀더 요즘 사람이, 요즘 말로 번역해 주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설마 나만 그런건가?) 그래서 분량도 부담스럽고 하여 일단은 지만지의 발췌 버전을 읽기로 한 것. 지만지 역자는 한애경 님으로, 이 분이 제인 오스틴 소설을 번역한 걸 읽어봤는데 나쁘지 않았었다.
일단 나는 조지 엘리엇의 소설을 처음 읽어본다. 영문학 전공하던 친구가 읽는다길래 야심차게 <애덤 비드> 원서를 사서 아직 펴보지도 않은 채로 갖고 있기는 한데... - -; 올 연말까지 책 100권 처분하기로 했는데, 이 기회에 처분해야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재미있지만, 또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작가라는 걸 알지만 읽다보면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외모와 교양을 갈고 닦으며 결혼을 잘 하는 것이 목표인 여자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못생긴' 여자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예쁘고, 저렇게 매력적이고, 누가 더 예쁘다는 말은 하지만 다들 예쁘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결혼을 하면 꼭 얘기가 끝나고, 괴로운 결혼생활을 하는 부모나 선배들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결혼이 인생에서 중요한 이벤트일 수는 있지만, 끝은 아닌데, 또 모두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은 아닌데 결혼 이후에 대해서는 왜 얘기 안하는 건가. <레이디 수잔>은 좀 예외적이었는데 주인공이 미망인으로 설정되었고 결혼을 무조건 장밋빛 미래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았다.
결혼은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이지만, 아담과 이브에게 그랬듯이 여전히 위대한 시작이기도 하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신혼을 보냈으나 황야의 가시밭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결혼은 아직도 가정이라는 서사시의 시작이다.
<미들마치 축약본>, 162쪽
조지 엘리엇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미들마치>는 그런 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달라서 좋았다. 여기엔 결혼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여자도 나오지만, 못생긴 여자도 나오고, 남편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도 나온다.
당신은 젊지만 친절한 분이세요. 하지만 저는 남편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전 이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미들마치 축약본>, 67쪽
이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보다 남편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가 더 놀라웠다.
그리고 실제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나온다. 외적 조건만 보고 결혼한 커플의 불행한 결혼생활, 또 상대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던 커플의 결혼 생활. 재미있었던 설정이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을 한 남자, 그리고 젊은 아내가 자기가 죽은 뒤 젊은 남자를 만날까봐 걱정(?)하는 남자를 나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 그걸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사실 그 남자가 나쁘게 그려진 건, 그가 걱정'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캐소본이 도로시아를 소개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말고 브룩 양도 똑같이 돌봐주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회는 자기를 즐겁게 해줄 아내의 자격을 고려하듯, 자신도 매력적인 여성을 행복하게 해줄 남편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걸 요구한다면 남자가 자기 아내뿐 아니라 아내의 남편도 고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또한 자기 자손을 위해 남자도 스스로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도로시아가 감격하면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을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캐소본 씨는 행복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미들마치 축약본>, 95쪽
맥락상 '남자가 자기 아내뿐 아니라 아내의 남편도 고를 수 있다' 가 아니라
'남자만 아내를 고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내도 남편을 고를 수 있다' 가 아닐까 싶지만...
저 말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지도 모르겠다.
발췌본으로 대충 줄거리는 파악하였으나 <미들마치> 전체를 읽고 싶은데, 지금 나와있는 완역본은 그리 맘에 안들고...
일단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을 읽어볼까 싶다.
(이것도 한애경님 번역)
이것도 읽고 맘에 들면 <미들마치>를 사게 될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