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책 <레이디 크레딧>을 이제야 다 읽었다. 분명 시작은 4월에 했는데 지금 8월... 이뭥미.
4월부터 8월까지 뭘 했는지..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긴 시간에 걸쳐 읽은지라 앞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져가고
같이 읽으며 이야기해야 시너지 효과도 나고 의미가 있는 건데 뒷북이 좀 아쉽지만 나만의 소감을 써 보기로 한다.
성매매 문제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페미니즘의 도전> 3부에서 잠깐 접했고
(<페미니즘의 도전>을 처음에는 분홍색 표지로 읽었고 지금 갖고 있는 것은 Y모 서점의 15주년 기념 리커버판인데 알라딘 리커버 판보다 맘에 든다. 강렬한 빨강색에 아래에는 금박으로 물결이 장식되어 있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페이스북의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 관리자 외 몇 명이 썼으며 이 책을 통해 성판매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이제 읽은지 좀 되었고 절판책을 빌려 읽고 넘겼기에 갖고있지는 않아 세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 이 책을 읽고서 쓴 글을 보면
1) 성판매 여성에게만 주로 책임을 묻는 성매매 방지법에 문제가 있으며
(성매매 방지법에 의하면, 성매매 피해자가 아닌 여성 즉 자발적으로 성판매를 하는 여성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성매매 피해자는 다음 네 가지로 정의된다.
가. 위계·위력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나.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보호 또는 감독하는 자에 의하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의 규정에 의한 마약·향정신성의약품 또는 대마(이하 "마약등"이라 한다)에 중독되어 성매매를 한 자
다. 청소년,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자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자로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유인된 자
라.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
즉 성판매를 하다가 적발되어 가-라의 상황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2)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구매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적발되는 경우 성구매 남성을 처벌하기는 하지만, 집주소로 벌금 고지서가 날아가는 정도라고 한다. 허위주소를 대는 경우가 많다고.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음주운전처럼 직장으로 고지가 가게 할 수도 있을텐데.)
3) 성판매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성을 판매할 수 있게 유도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것보다는 성판매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3번의 경우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상당히 입장이 갈리는 부분이지만 일단 나의 입장은 그렇다. 수요를 없앨 수 있다면 모를까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걸 양지로 끌어내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또 성판매 여성도 여성의 일부니까 끌어안고 싶었고. 여성운동 초창기에는 가사노동을 거부하다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보다 많은 여성을 아우르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런데 <레이디 크레딧>을 읽고 나니 현실을 (몰라서) 못 보고 관념적으로만 성매매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레이디 크레딧> 이전에도 이런 책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논문은 있었을 것 같다), 성매매 산업의 내부 구조를 드러내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성매매는 판매자와 구매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이며, 판매자의 몸이 성매매를 유발시키는 자원이고 구매자의 돈이 자본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그 외에 많은 사람이 성매매 산업에 관여되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포주와 사채업자, 조폭 등이 관련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업소 직원 외에도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과 채권추심업체 등이 관여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성매매 행위는 불법인데, 금융기관의 대출과 채권추심업체의 일은 합법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일저축銀, 유흥업소 1500억 ‘쩐주’ 노릇 | 세계일보 (segye.com)
양은이파(80년대 3大 조폭)의 풀살롱(풀 서비스+룸살롱)… 깡패가 1년반만에 331억 버는 나라 - 조선일보 (chosun.com)
책에서 언급되는 J저축은행의 유흥업소 대출을 다룬 기사와,
국내 3대 조직폭력배 '양은이파'의 조양은의 유흥업소에 관한 기사이다 (조양은의 유흥업소도 제일저축은행에서 거액 대출을 받았다).
이전의 성매매 산업 구조를 잘 모르지만 업소와 포주, 사채업자로부터 도망치면 (도망칠 수 있다면)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돈을 벌기 힘들면 다시 성판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업소와 계약을 맺는게 아니라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성판매를 통한 수익으로 그것을 갚아나간다. 업소를 그만두어도 대출채권은 계속 채무자(판매자)를 따라다니고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업소로 이동시킴으로써 성매매 산업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높은 대출 이자는 금융기관 및 채권추심업체 등의 이윤이 되며 그 구조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득과 소득을 얻게 된다.
자발적 성매매는 불법인데, 성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다루는 일은 합법이다. 그 금융기관이 성매매와 관련된 것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와 관계성은 드러나있지 않고 매우 버젓한 일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현재의 법이 성매매(의 불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와 금융 자본의 연관성을 눈감아 주기 때문이다. 행위는 죄이지만, 행위를 기능하게 하는 돈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판매자와 구매자를 처벌함으로써 성매매를 근절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6월초 나는 한때 잘 나가던 (그러니까 연세가 좀 있는 분이다) 언론인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이야기하며 그는 왜 여성들이 '구씨' 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므로 (보았더라도 답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드라마에 사채업자가 나오더니 이제는 호스트가 나오고..."
갈수록 더한다며, 맘에 안 든다는 뉘앙스였다. <레이디 크레딧>을 읽던 중이기도 했고 그날은 딱히 공-사적 이익과 관계없이 만났고 내 돈으로 대접하는 자리였으므로 나는 하고싶은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채업자보다 호스트가 더 나쁜가요?" 라고.
그러면서 제일저축은행과 조양은 얘기를 꺼냈다. 잘 아시지 않냐며. 왜 같은 일에 연루되어 있는데, 하나는 조장하고 하나는 직접적으로 연관한다고 덜 나쁘고 더 나쁜 것이냐고.
그 분이 내막을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말을 아끼며 그건 그렇죠...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그냥 그 순간을 빨리 넘기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의 한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으로 업소에 오는 사람들의 비중보다, 접대의 비중이 크다는 말을 한다. 금액의 규모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그렇다면 금융기관 등을 넘어서 각종 비즈니스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성매매를 판매자와 구매자의 일,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로 취급해서는 아무 진전이 없다. 근절하고자 한다면 관련 고리를 다 끊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겠지), 그렇지 않다면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성매매는 남녀 간의 일, 원초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여성 문제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런 연구를 하고 또 책을 내어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 이제 주말부터 <임신 중지> 읽을 겁니다... 이번엔 같이 얘기하고 싶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