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


저번에 이런 https://blog.aladin.co.kr/suha/13780881 글을 썼고 직후에 작가의 사정으로 내가 보던 로맨스 소설의 연재가 중단됐다 (역시 연재물에는 손을 대는 게 아니라는 교훈). 구글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이 내가 웹소설을 읽고 있다는 걸 아는 듯 나에게 새로운 웹소설을 자꾸 들이밀었다. 그래서 또 새로운 걸 읽게 되었고, 그것도 연재중이고, 하루에 아주 짧은 분량 올라오는데 사실 그닥 재미가 없는데도 결말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고... 


그리고 이제는 <어글리 러브>와 브리저튼 시즌2까지 (언젠가) 읽고 볼 예정이다.   


왜 이렇게 내가 요즘 로맨스에 빠지게 되었는가 이유가 좀 궁금해서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책을 읽어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실 아주 관계가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얻은 지식이 있어 밑줄을 남겨보기로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도널드 시먼스와 캐서린 새먼으로 둘다 심리학자이며,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캐서린 새먼이 다른 학교의 교수 도널드 시먼스에게 슬래시 소설 slash fiction을 연구하는 데 조언을 구하는 것을 계기로 이 연구를 시작하고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슬래시 소설이라는 명칭을 처음 들었는데, 그것은 매우 성적인 그림이 자주 나오는 일종의 로맨스 소설로, 여성들이 주로 읽으며 소설 속의 연인은 모두 남자라고 한다. 슬래시라는 이름은 셜록홈즈/왓슨 처럼 미디어에서 짝을 이룬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이름 사이의 구분 기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의 '야오이' 와 비슷한 개념일 수도 있을 것 같으나 내가 슬래시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고 하여 확신할 수는 없다. 


전반부에서는 진화적 관점에서 짝짓기(재생산)에 대한 남녀의 입장을 알아보고, 후반부에서는 짝짓기에 대한 남녀의 상반된 심리가 에로물 (포르노, 로맨스, 슬래시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낭만 전사>라는 이름의 이 책은 '여자는 왜 포르노보다 로맨스 소설에 끌리는가?'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꼭 등가의 개념은 아니라 하더라도 남성이 즐기는 포르노에 대응되는 것이 여성의 로맨스일까 하는 생각을 나도 해본 적 있다. 사실 내가 왜 포르노보다 로맨스 소설에 끌리는 지가 궁금하진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왜 하필 요즘 로맨스 소설을 자꾸 읽게 되느냐 (그러느라 다른 책도 못 읽고) 하는 것인데..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최근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을 알게 되어서일 수도 있고, 사실 이것보단 두번째 이유가 더 맞을 것 같은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고 하면서 내가 뭘 하고 싶더라도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랑에 대해서 이미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인생에서 사랑보다 중요하고 재미있는 게 많으며 (그래서 에바 일루즈 책들은 의식적으로 관심 가지려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연애를 안하는 것도 아닌데 취미생활까지 사랑에 치중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제는 그냥 내가 궁금하면 읽고 재미있으면 더 읽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연애라는 단어는 나와 하등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또 읽는 페미니즘 책들에서 (개인으로보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갈등을 자주 접하면서도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는 것에는 약간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로맨스 소설의 행복한 결말이 결혼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아무리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이성애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에 죄책감 씩이나 느낄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다고 하면서 그걸 안 읽고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한편으로는 로맨스 소설이 "여주인공이 인간 진화의 역사 속에서 높은 짝 가치를 이루는 신체적, 심리학적, 사회적 특징을 가진 남주인공을 알아보고, 획득하고, 결혼하기까지 장애물을 극복하는 여성 짝 선택의 연대기적 이야기." 라면 내가 로맨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와서 새로운 로맨스를 바라는 걸까.. 이러다가 중년의 위기가 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농담이다).  


나는 진화와 심리를 연관시키는 부분에 좀 회의적이고, 이 책의 내용이 좀 구닥다리라는 생각도 한다. 남기는 밑줄은 나중에 다른 책을 읽을 때 비교 참고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 내용에 내가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성교에 관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짝짓기 욕구 관점이 그렇다. 인간에게 있어 짝짓기 욕구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짝짓기 외에 쾌락 관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 물론 피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 때는 쾌락을 위한 성교의 부담이 매우 컸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 이 부분에 관한 책을 더 읽어보고 싶고 무슨 책이 더 있는지는 아직 찾아보지 않았다. 

적당한 책을 아시는 분은 추천 바랍니다.


+ '포르노'와 '로맨스' 키워드로 검색하니 이런 책이 나왔다. <낭만전사>의 저자 중 한 명인 캐서린 새먼이 추천사를 썼는데.. 이 책도 역시 품절이다. 목차를 보니 약간 가벼워 보이긴 하지만 더 읽어볼까 한다. (도서관에 있기를) 




다른 성을 위해 만들어진 에로물을 접할 때는 성별 간에 서로 다른 심리의 심연을 응시하게 되며, 더 끔찍한 일은 다른 성의 이상적인 판타지에 못 미치는 자신의 단점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과 포르노 비디오 간의 차이점은 무수히 많고 너무나 커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남녀가 함께 생활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아이를 기르기까지 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 P13

효과적인 남성의 재생산 전략은 가능한 빨리 아내를 얻고, 또 가능하다면 아내를 추가로 더 얻고, 위험이 충분히 낮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아내와의 성교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다. .. 효과적인 여성의 재생산 전략은 짝 가치가 높은 남성에게 선택되고 선택하는 것, 그리고 되도록 그 사람의 유일한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출산과 양육의 부담 때문이다) - P49

많은 이성애자 남성들이 정기적으로 낯선 이와 성교하지 않는 주요 이유가 여성들이 이런 성교에 관심 없기 때문이라면, 많은 게이들이 낯선 이와 성교하리라고 충분히 에측할 수 있다 (반면에 레즈비언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그들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78

레즈비언이 이성애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다소 더 많은 성 파트너를 가지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레즈비언은 임신의 위험도 없고, 성병에 걸릴 확률도 더 낮아보이며, 신체적 강압의 위험도 적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아 성행위에 더 개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79

로맨스 소설 속 여주인공의 목표는 결코 자신만을 위한 성교가 아니며, 낯선 이와의 감정 없는 성교는 더더욱 아니다. 로맨스 소설 줄거리의 핵심은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적합한 한 남자를 알게 되고, 그의 마음을 얻어서, 결국 그와 결혼하기까지 장애물을 극복해나가는 사랑 이야기이다. 바로 그렇기에 같은 여주인공이 계속 나오는 로맨스 소설은 시리즈로 만들 수 없다. 각각의 로맨스 소설은 영원한 결합을 맺으며 끝나야 한다. 남성용 포르노와는 달리, 독자들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시점을 가진 등장인물의 존재가 로맨스 소설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 P94

성공적인 로맨스 소설의 남주인공의 성격은 여성들의 짝 선택 심리를 상당히 잘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은 다정하고 감수성 있는 남주인공을 결코 그리지 않는다. 로맨스 소설에서 대성공한 한 작가는 여성들이 "강하고,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이 여성에게 복종하는 순간이 오는 것"에 대한 판타지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 P96

남주인공의 신체적 특징을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쓰인 형용사는 근육질의, 잘생긴, 힘센, 큰, 햇볕에 그을린, 남성적인, 정력적인 등이 있다. ... 남주인공은 성적으로 대담하고, 차분하며, 자신만만하고, 추진력이 있다. ... 가장 일관되게 기술되는 남주인공의 특성은 여주인공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가장 일관되게 기술되는 남주인공의 특성은 여주인공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성적으로 원하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과거에 원하던 다른 여성보다 더 여주인공을 원하고, 이전엔 결코 사랑에 깊게 빠진 적이 없고, 여자 주인공에 대한 생각이 밀려오는 경험을 하고, 일반적으로는 아니지만 여주인공에게만은 다정하고, 여주인공을 아주 특별하다고 여기고, 여주인공을 보호하고 싶어하고, 여주인공에게 사로잡혀 있고, 성적으로 여주인공을 지키려고 애쓴다. - P97

남성은 상상을 하든 실제로 하는 경우든 간에, 새로운 여자와의 저비용 성교에 흥분하고 그런 성적 기회를 만들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성 심리를 진화시켰다. 포르노토피아는 진화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의해 가능해진 판타지 세상으로, 그 안에서는 높은 짝 가치를 가진 여자들과의 감정 없는 성교가 드문 일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이 된다. - P101

반대로 조상 여성들은 무작위로 낯선 이와 감정 없는 성교를 하고 자신만을 위해 다양한 성적 대상을 찾다보면 얻을 것은 거의 없고 잃을 것은 많았다. 그녀들은 신중히 짝을 선택해야 많은 것을 얻는다. 로맨스 소설은 여주인공이 인간 진화의 역사 속에서 높은 짝 가치를 이루는 신체적, 심리학적, 사회적 특징을 가진 남주인공을 알아보고, 획득하고, 결혼하기까지 장애물을 극복하는 여성 짝 선택의 연대기적 이야기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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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8-23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하님도 드뎌!! 철학자가 되어가시는 군요 ㅋㅋㅋㅋ 서재에서 글 쓰다 보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더라고요 ㅋㅋㅋ 이런 공부, 이런 궁금, 이런 사색 너무 응원해요 🔥🔥🔥

건수하 2022-08-23 16:34   좋아요 2 | URL
철학자 씩이나요 ㅎㅎ 부끄럽..

근데 정말 궁금하니까 더 찾아보게 되고 재밌고 그렇네요.
역시 즐기는 사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 ^^

공쟝쟝님 응원 댓글 감사해요!

공쟝쟝 2022-08-23 17:02   좋아요 1 | URL
이런 시절에 태어나 사는 여성, 우리는 자기 문제로 읽고 쓰고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철학하는 멋진 사람들!! (심지어 노동도 하고 재생산노동도 함 ㅋㅋㅋ) 자부심 뿜뿜!

다락방 2022-08-23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이 책이 저에게 답을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저도 읽어볼게요!!

건수하 2022-08-23 16:35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의 질문은 잘 모르지만 이 책에서 답을 아니면 힌트라도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절판책이긴 하지만 아직 중고로는 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다락방 2022-08-23 16:36   좋아요 2 | URL
중고 최저가 24,000원 이네요? 껄껄.....

건수하 2022-08-23 16:41   좋아요 2 | URL
앗 진짜요?!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는데…. 어휴 그 정도 가격을 주고 살 책은 아닌 것 같아요;;;

얇으니 주변 도서관에 있나 찾아보시면 어떨지..

청아 2022-08-23 17:15   좋아요 1 | URL
아 다락방님 껄껄.....댓글 슬픔이 묻어나지만ㅋㅋㅋㅋㅋㅋ너무 재밌습니다. 보면서 실실거리다가 걍 남겨봅니다.
도대체가 단점이 안보이는 분ㅋ

단발머리 2022-08-23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꼼꼼히 인용문까지 읽다가 97쪽에서 빵 터졌어요. 그런 분 만나시면 연락 좀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최근에 로맨스 많이 읽어서 고민(?)스러울 때가 있어서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자주 부탁드려요^^

다락방 2022-08-23 16: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97쪽 너무 좋네염........................

건수하 2022-08-23 16:52   좋아요 1 | URL
저게 원래는 저 형용사구 뒤에 숫자가 있어요. 모집단 45권의 로맨스 소설 중에 몇 권이 해당되는지… 제가 그건 귀찮아서 빼고 타이핑했는데. 숫자를 넣어야 하나…

45,45,45,45,44,44,43,41,39,36입니다. 그러니까 로맨스 소설에선 흔히 만나실 수 있…

단발머리님이나 다락방님이 제게 짠 하고 책을 추천해주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다락방 2022-08-23 16:55   좋아요 2 | URL
제가 그냥 닥치고 로맨스 소설만 읽었네요..... ( ˝)

건수하 2022-08-23 16:57   좋아요 1 | URL
… 그렇게 말씀하시니 매우 죄송해지지 말입니다… 그럼 로맨스 소설을 다수 읽으신 경험으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써 주셔도 좋…

다락방 2022-08-23 17:12   좋아요 4 | URL
저는 올려주신 인용문 모든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음 그런데 포르노와 로맨스의 차이라고 한다면 이 책에 얼마나 더 기술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포르노에서 여성은 학대받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겁니다. 포르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성교를 하고 얼마나 대단한 쾌감을 얻느냐이며 거기에 폭력이 들어가죠.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여자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하고 또한 학대당합니다. 성기를 무는것부터 시작해서 폭력과 멸시가 그 안에 있죠. 그런 포르노를 보면서 여자가 ‘내가 저 입장이 된다면‘ 이입해서 쾌감을 느끼는 일은 (거의)없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화면을 중지시키고 싶겠죠. 반면 남자의 경우는 포르노로부터 자극을 받죠. 더한 자극을 받고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현실세계에서도 그것을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써먹으려고 하고요. 여기에서 괴리가 생깁니다. 여자친구나 애인, 아내여도 그것을 하기는 내키지 않거든요. 내가 사랑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나는 이 남자가 요구하는 대로 해줘야 하나. 사실 왜 이런 기이한 것들을 요구하나, 수락하거나 혹은 거절하면서 그것이 그냥 이 남자의 욕망인줄로 알거든요. 그러나 그 행동과 폭력성의 출처는 포르노입니다.


로맨스는 달라요. 로맨스는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습니다. 로맨스에서 설사 위 인용문에서처럼 좀 강압적이라거나 강한 남성, 날 휘어잡을 남성이 나온다해도, 그 남성은 근본적으로 날 아끼고 존중하고자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로맨스 내에서 다툼이 일어나죠. 너 왜 나를 존중하지 않아? 여자는 말하고 남자는 그 싸움의 과정에서 뉘우치고 반성하며 더 좋은 남자사람이 됩니다. 더 나은 애인이 될 수 있는거죠. 로맨스에서의 남자가 돈이 많거나 근육질이거나 매너가 좋은 까닭은,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죠.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몸을 꾸미고 그리고 애를 씁니다. 저는 그래서 로맨스를 읽습니다. 그런 남자들이 나와서요. 저는 기본적으로 로맨스를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이 읽는다는 걸 알지만, 사실 거의 백프로가 여성독자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로맨스를 읽어야 하는 독자는 남자들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왔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애를 써야한다는 것이, 다툼의 과정에서 협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로맨스에서 나오거든요. 여자들은 현실에서 그런 남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현실에 그런 남자가 없는데 로맨스 안에서는 여자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매력적인 남자들이 나오죠. 그게 로맨스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포르노 따라하고 싶은 남자들이 나를 만나서 내가 사는게 포르노 세상인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로맨스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엔 내가 호감을 가진 남자와 나 사이에 성욕과 성적 긴장감이 있고 거기에 따른 쾌감이 있죠. 남자들의 포르노는 쾌감을 위한 자극과 시도라면 여자들의 로맨스는 사랑에서 얻어지는 덤으로의 쾌락이 따라오고요. 저는 남자들이 로맨스를 봐야 말이 통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이 포르노를 보지 않는 만큼이나 남자들은 로맨스를 보지 않죠. 이 괴리감을 어째야할지 모르겠어요.

건수하 2022-08-23 17:30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재생산과 관련된 각자의 조건에 따른 결과이다- 하고 그냥 취향으로만 이야기하는데
동상이몽이라는 점 외에도 포르노는 다락방님 말씀하신 대로 착취되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포르노 랜드>를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결국 늘어만 가는 읽어야 할 책 리스트.. 아 10월의 책이군요)


다락방 2022-08-23 17:43   좋아요 2 | URL
포르노랜드 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10월 도서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이렇게 멀리 봅니다. 움화화핫.

단발머리 2022-08-23 20:54   좋아요 1 | URL
우아! 수하님 글도 엄청 좋았고요. 다락방님 댓글도 이 페이퍼랑 잘 어울리네요. 두 분이 포르노랑 로맨스,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시네요. 먼댓글로 책 넣으시고 따로 페이퍼로 이사가시길 제안드립니다^^
 
[eBook] 샤일록은 내 이름 호가스 셰익스피어 2
하워드 제이컵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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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에서 생각보다 비중이 낮은 (얼마 전까지 베니스의 상인이 샤일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샤일록은 상인이 아닌 고리대금업자다. 베니스의 상인은 안토니오다. 사실 포샤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샤일록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본 이야기. 얼마전에 읽은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안타깝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는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그리고 이미 유대인이 추방당한지 오랜 영국에서 어떻게 샤일록의 심리를 잘 알 수 있었는지의 의문에서 시작하여 유대인 작가인 하워드 제이컵슨은 사실 셰익스피어는 유대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가정도 하고, 유대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해본다.

오랜 세월동안 미움받아온 민족이 종교와 율법이라는 버팀목이 있다 해도, 어떻게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작가는 유대인은 주로 결과로 판단받지만, 이런 생각으로 살아간다- 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대인은 2차대전 이후 흔하디 흔한 주제라 익숙하기도 하고, 상대적 약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도 공감이 되었다.

초반 진입이 좀 걸리고 영국식 유머에 적응해야하며 샤일록과 사이먼 스트룰로비치의 대화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좀 있었으나 (영국과 유대인 문화의 장벽도 있다) 읽어볼 만했다. 작가의 부커상 수상작 <영국 남자의 문제>가 궁금하긴 한데, 유대인 문제보다도 영국 남자의 문제에는 더 관심이 없으니 과연 읽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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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책 <레이디 크레딧>을 이제야 다 읽었다. 분명 시작은 4월에 했는데 지금 8월... 이뭥미. 

4월부터 8월까지 뭘 했는지..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긴 시간에 걸쳐 읽은지라 앞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져가고 

같이 읽으며 이야기해야 시너지 효과도 나고 의미가 있는 건데 뒷북이 좀 아쉽지만 나만의 소감을 써 보기로 한다. 



성매매 문제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페미니즘의 도전> 3부에서 잠깐 접했고 




(<페미니즘의 도전>을 처음에는 분홍색 표지로 읽었고 지금 갖고 있는 것은 Y모 서점의 15주년 기념 리커버판인데 알라딘 리커버 판보다 맘에 든다. 강렬한 빨강색에 아래에는 금박으로 물결이 장식되어 있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페이스북의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 관리자 외 몇 명이 썼으며 이 책을 통해 성판매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이제 읽은지 좀 되었고 절판책을 빌려 읽고 넘겼기에 갖고있지는 않아 세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 이 책을 읽고서 쓴 글을 보면

 

1) 성판매 여성에게만 주로 책임을 묻는 성매매 방지법에 문제가 있으며 


(성매매 방지법에 의하면, 성매매 피해자가 아닌 여성 즉 자발적으로 성판매를 하는 여성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성매매 피해자는 다음 네 가지로 정의된다. 


가. 위계·위력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나.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보호 또는 감독하는 자에 의하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의 규정에 의한 마약·향정신성의약품 또는 대마(이하 "마약등"이라 한다)에 중독되어 성매매를 한 자

다. 청소년,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자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자로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유인된 자

라.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


즉 성판매를 하다가 적발되어 가-라의 상황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2)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구매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적발되는 경우 성구매 남성을 처벌하기는 하지만, 집주소로 벌금 고지서가 날아가는 정도라고 한다. 허위주소를 대는 경우가 많다고.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음주운전처럼 직장으로 고지가 가게 할 수도 있을텐데.)  


3) 성판매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성을 판매할 수 있게 유도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것보다는 성판매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3번의 경우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상당히 입장이 갈리는 부분이지만 일단 나의 입장은 그렇다. 수요를 없앨 수 있다면 모를까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걸 양지로 끌어내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또 성판매 여성도 여성의 일부니까 끌어안고 싶었고. 여성운동 초창기에는 가사노동을 거부하다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보다 많은 여성을 아우르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런데 <레이디 크레딧>을 읽고 나니 현실을 (몰라서) 못 보고 관념적으로만 성매매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레이디 크레딧> 이전에도 이런 책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논문은 있었을 것 같다), 성매매 산업의 내부 구조를 드러내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성매매는 판매자와 구매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이며, 판매자의 몸이 성매매를 유발시키는 자원이고 구매자의 돈이 자본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그 외에 많은 사람이 성매매 산업에 관여되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포주와 사채업자, 조폭 등이 관련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업소 직원 외에도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과 채권추심업체 등이 관여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성매매 행위는 불법인데, 금융기관의 대출과 채권추심업체의 일은 합법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일저축銀, 유흥업소 1500억 ‘쩐주’ 노릇 | 세계일보 (segye.com)


양은이파(80년대 3大 조폭)의 풀살롱(풀 서비스+룸살롱)… 깡패가 1년반만에 331억 버는 나라 - 조선일보 (chosun.com)



책에서 언급되는 J저축은행의 유흥업소 대출을 다룬 기사와, 

국내 3대 조직폭력배 '양은이파'의 조양은의 유흥업소에 관한 기사이다 (조양은의 유흥업소도 제일저축은행에서 거액 대출을 받았다). 


이전의 성매매 산업 구조를 잘 모르지만 업소와 포주, 사채업자로부터 도망치면 (도망칠 수 있다면)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돈을 벌기 힘들면 다시 성판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업소와 계약을 맺는게 아니라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성판매를 통한 수익으로 그것을 갚아나간다. 업소를 그만두어도 대출채권은 계속 채무자(판매자)를 따라다니고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업소로 이동시킴으로써 성매매 산업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높은 대출 이자는 금융기관 및 채권추심업체 등의 이윤이 되며 그 구조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득과 소득을 얻게 된다. 


자발적 성매매는 불법인데, 성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다루는 일은 합법이다. 그 금융기관이 성매매와 관련된 것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와 관계성은 드러나있지 않고 매우 버젓한 일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현재의 법이 성매매(의 불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와 금융 자본의 연관성을 눈감아 주기 때문이다. 행위는 죄이지만, 행위를 기능하게 하는 돈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판매자와 구매자를 처벌함으로써 성매매를 근절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6월초 나는 한때 잘 나가던 (그러니까 연세가 좀 있는 분이다) 언론인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이야기하며 그는 왜 여성들이 '구씨' 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므로 (보았더라도 답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드라마에 사채업자가 나오더니 이제는 호스트가 나오고..." 


갈수록 더한다며, 맘에 안 든다는 뉘앙스였다. <레이디 크레딧>을 읽던 중이기도 했고 그날은 딱히 공-사적 이익과 관계없이 만났고 내 돈으로 대접하는 자리였으므로 나는 하고싶은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채업자보다 호스트가 더 나쁜가요?" 라고. 


그러면서 제일저축은행과 조양은 얘기를 꺼냈다. 잘 아시지 않냐며. 왜 같은 일에 연루되어 있는데, 하나는 조장하고 하나는 직접적으로 연관한다고 덜 나쁘고 더 나쁜 것이냐고. 


그 분이 내막을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말을 아끼며 그건 그렇죠...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그냥 그 순간을 빨리 넘기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의 한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으로 업소에 오는 사람들의 비중보다, 접대의 비중이 크다는 말을 한다. 금액의 규모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그렇다면 금융기관 등을 넘어서 각종 비즈니스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성매매를 판매자와 구매자의 일,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로 취급해서는 아무 진전이 없다. 근절하고자 한다면 관련 고리를 다 끊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겠지), 그렇지 않다면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성매매는 남녀 간의 일, 원초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여성 문제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런 연구를 하고 또 책을 내어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 이제 주말부터 <임신 중지> 읽을 겁니다... 이번엔 같이 얘기하고 싶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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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9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책을 읽은 것이 대화에 힘을 실어주었네요 수하 님. 너무 좋은 경험입니다. 물론 성매매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은 시간이었겠지만 말예요. 알게 되면 사는 일이 더 불편해지는 것 같아요. 싸울 일도 많아지고요. 그래도 계속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일요일에 본격적으로 임신중지 시작할건데요, 이번엔 같이 얘기하도록 합시다, 수하님. 화이팅요!!

건수하 2022-08-19 16:07   좋아요 0 | URL
네,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 안다는 것이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조금 알기 시작하니 모르는 상태로 놔두기가 힘들어서라도 읽게 되네요.

네 <임신중지>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2-08-20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0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0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0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8-21 15:26   좋아요 0 | URL
방금 택배 접수하고 왔습니다. 아마 화요일쯤 받으실 것 같아요.
:)

2022-08-21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미니즘
데버라 캐머런 지음, 강경아 옮김 / 신사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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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을 읽을 수록 페미니즘은 대체 무엇인가, 페미니스트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상충하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연대가 가능한가- 등의 혼란을 갖게 되었다. ‘복잡한 것’ 인 페미니즘에 대해 잘 정리해놓은 책. 자신감있게 (원래 개론서 혹은 일반론은 대가가 쓰는 것) 일반적인 제목을 붙일만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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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8-1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도면 페미니즘 필독서라고 생각해요. ^^*

건수하 2022-08-18 11:09   좋아요 0 | URL
진짜 필독이요!

완전 입문서로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좀 읽어본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어요.

단발머리 2022-08-18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안 읽어봤는데, 찜해둡니다. 수하님, 감사감사감사링!!

건수하 2022-08-18 11:11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진짜 강추합니다 ㅎㅎ
얇지만 알차요.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마녀 D의 사법연대기
D 지음, 김수정 외 감수 / 동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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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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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8-10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어요? 저도 읽고 있어요!^^

건수하 2022-08-12 10:11   좋아요 2 | URL
일단 훑어보기만… 진지하게 읽어야 할 것 같아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