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이 작년에 출간되자마자 한 번 읽었고, 책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한 번 더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자꾸 <나를 보내지마>와 비교하게 되었고 스토리에 집중하느라 자세히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재독하니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문장이나 표현도 좀더 눈에 들어왔다. 작가가 왜 이야기의 세부 설정을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고 (답은 찾지 못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클라라와 태양>에서 아쉬운 점은 <나를 보내지마>에 비해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이었다. <나를 보내지마> 에서 직접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도 독자로 하여금 파악하게 만드는 그 신비한 문체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읽는 재미가 좀 덜하다 생각했지만 이 친절함 덕분에 좀더 많은 독자들이 가즈오 이시구로를 만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에게도 많이 권장하는 듯).
처음 읽었을 때는 클라라의 태양에 대한,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것에 대한 추론 방식이 귀납적이라서 인간이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 특히 과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가능성 중 하나로 뻗어나가는 추론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했는데, AF나 유전자 조작이 등장해서 그랬던건지 나의 관심분야라 그랬던 건지 모르지만 다시 읽으니 이 부분은 상당히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지. 태양에게 '비는' 행위가 특히 그랬다.
.... 머릿속에서 말을 대충 만들어 밀어내듯 빌었다.
"제가 여기까지 온게 얼마나 주제넘고 무례한 행동인지 압니다. 당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고 제 부탁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아주 넓은 마음이 있으니 한순간만 멈춰서 제 제안을 한 번 들어 봐 달라고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만한 일. 만약 제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는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인공지능을 가진 인간형 생명체와 인간의 다른 점은 그래서 무엇일까. 작가는 인간 개인에게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그 특별함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결국 '사랑'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나는 처음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다른 점은 '이기심'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
그런데 책모임 때 이야기하면서 AF에게 이기심이 없는 이유는 AF의 존재 이유가 '좋은 친구가 되는 것' 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클라라가 자신의 용액을 기꺼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때에도 자신의 기능이 떨어져 조시에게 누를 끼칠까봐 걱정한다. 인간은 이에 반해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하고, 헤매야 한다.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고..
조시의 주변인물들을 보면 사랑도 있지만 이기심도 두드러진다. 주로 인물들의 갈등은 이기심 때문에 빚어지는 것 같다. 아이를 잃을까 두렵지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하는 (아이를 위한 거라고 보기에는 어머니 자신의 욕망도 있다) 어머니, 아이의 상실을 대비해 대체물을 만들려는 어머니,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옛 애인에게 청탁을 하는 어머니,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AF의 희생을 방치하는 아버지 등.
이기심 아니 자기애라고 하면 그도 어쩌면 사랑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사랑이라는 것은 모두 긍정적이고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관계는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인데. 작가가 직접적으로 던진 한 마디가 지나치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관계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느냐, 관계에서 자유롭고 싶어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다만 관계에 덜 의존하며 살고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러면 갈등도 적고 삶이 조금 더 단순해지지 않을까 해서.
나의 '자양분'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당황했다.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책모임 멤버 모두 아이를 둔 어머니이기에 '아이'를 제외하고 이야기하자는 말에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나는 아이를 나의 자양분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항상 의무, 책임의 대상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양분'을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이라기 보다 '어떤 자극을 주는 것' '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까지 확장해 생각한다면, 아이가 나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고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힘이 되는 것은.. 책읽기, 혼자 보내는 시간. 이 두 가지가 큰 것 같다.
책읽기는 혼자 하지만 그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게 좋다.
결국 나의 자양분도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아침에 단발머리님 서재글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3634594 에서
그리고 나는 이러한 비판 중 최선의 버전은 자신이 비판하는 이론에 자신도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비판은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자원을 이론으로부터 끌어내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의 실천에 관한 도덕적, 윤리적 입장과 함의를 더욱 깊이 탐구한다. 비판과 해체를 위해 반드시 파괴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진지하고 강인한 겸손에서 이득을 얻는 경우도 많다.
이 구절을 읽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관계가 없지만 맥락만 보자)
부정하고 싶지만 나도 '관계'에 의존하고 있고 그걸 인정함으로써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유전자 편집이 합법화된 영국에서 다룰만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는 유전자 편집을 왜 굳이 처음 (태어날 때) 가 아닌 중간에 선택하는 방식으로 도입했을까? 기술적으로도 어려울 것 같고 사실과 다르게 조정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애들이 릭한테 무례하게 굴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만약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뒤떨어진 아이라는 뜻이겠지."
나는 조시에게 ‘달라지는‘ 면이 있다는 것, 내가 그것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런 특성이 조시에게만 있는 게 아님도 알게 되었다. 매장 쇼윈도에 디스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면을 마련해 놓으려 한다는 것, 또 그 순간이 지난 다음에 그런 일시적 모습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며 눈을 가늘게 떴고 어머니 얼굴이 폭포를 담은 가장자리 상자만 빼고 상자 여덟칸을 채웠다. 한순간 상자마다 어머니 얼굴 표정이 다르게느껴졌다. 어떤 상자에서는 눈이 잔인하게 웃는데 바로 옆상자에서는 눈에 슬픔이 어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냥 제가 좀 놀랐어요." "음? 왜 놀랐는데?" "그게, 저는… 솔직히 말해서 릭과 관련한 헬렌 씨의 요청에 강한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놀랐어요. 사람이 자신에게 외로움을 가져올 방법을 원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게 놀라운 일이야?" "네. 전에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외로움을 피하려는 소망보다 더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우리는 감상적인 사람들이죠.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지니고 살죠. 마음 한편에서 그걸 붙들고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믿고 싶어 해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당신도 알고요.
"그러면 다른 것도 좀 물어보자. 이런 걸 묻고 싶어. 너는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만약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네, 그럼요."
"내가 카팔디를 미워하는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 카팔디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카팔디의 주장이 실은 옳다고. 내 딸만의 고유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현재 기술로 파악해 복사하고 전송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사람들이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내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며 함께 살았지만 모두 잘못된 가정에 근거해서 그랬던 거라고. 우리가 무지했기 때문에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온 거지. 카팔디는 그렇게 생각해.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카팔디가 옳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 두려운 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