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우리집에는 가정 폭력이 있었으니... 

큰냥이 (프로필 이미지의) 가 갑자기 자고 있는 나의 눈꼬리 쪽을 앙 물고서 침대에서 쿵 소리를 내며 뛰어내린 것. 

어제 너무 피곤해서 털도 안 빗어주고 초저녁부터 자버렸더니 삐진 것 같기는 한데. (그래 내가 잘못했지) 

어쨌든 피는 나지 않았지만 너무 아파서 잠이 확 깨버렸고, 눈 근처 살이다보니 광대뼈 근처에 빨갛고 긴 흔적이 남았다.  

그렇게 4시 전에 일어나 고양이들 밥을 주고, 다음달 여행 기차표를 끊고, y모 서점에서 주말 상품권을 받아 요 네스뵈의 맥베스 전자책을 결제하고.. 이제 책 좀 읽어볼까? 하는데 


어제 공쟝쟝님 페이퍼 (링크있음), 아니 정확히는 그 페이퍼의 댓글에서 진정한 사랑과 섹스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그 뒤로 괜히 머리가 복잡해진 김에 <어글리 러브>를 읽기로 했다. 

아직 9월 초잖아. 마음이 한가한 지금 읽어야지. 어차피 말쯤 되면 읽을 책 밀려서 못 읽지. 나는 원래 숙제 먼저 하고 노는 학생이 아니고 놀다가 기한 맞춰 (아니면 지각)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책 읽는 시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왜 시간대별로 읽기 적당한 책이 있는 건가요? 네???? 

다락방님이 얼마 전 쓰셨듯 아침에 두뇌가 가장 맑을 때니까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콜린 후버의 로맨스 소설이 미국과 유럽에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라고 한다. 국내에는 여섯 권이 번역되었고 그 중 세 권은 절판되었는데, 내가 읽은 <어글리 러브>가 절판된 책 중 하나다. 위 이미지에는 안 보이지만 한때 띠지에 <노트북>과 <그레이> 사이라고 쓰여 홍보되었는 모양인데 그레이는 읽어봤지만 노트북은 안 읽어봐서 이 소설이 로맨스 소설 중 어느 정도의 위상에 속하는지 잘은 모르겠다. 

일단 아주 빠르게 잘 읽혔다. 전개도 빠르고 재미있고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남녀 모두의 속마음을 대놓고 다 독백으로 보여준다. 주인공들도 전형적이다. 남자의 직업은 조종사, 여자의 직업은 간호사. 남자는 괴로운 과거가 있고.. 또 남자는 사랑 없는 섹스만을 원하는 반면 여자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아닌 척 하며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레이랑 비슷하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이 그렇듯) 해피엔딩이 되려면... 결국 남자가 생각을 바꾼다는 설정이 되겠지?


서너 시간 만에 금방 집중해서 읽었고 (최근 읽은 책들 중 가장 잘 읽혔던듯) 콜린 후버가 왜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왜 다락방님 외 여러 분들이 이걸 원서로 읽으시는 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중간중간 번역의 한계인지 아니면 한국어 어휘의 부족인지 감정 표현이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고 그게 영어로 어떤 표현일까 궁금했기 때문에. 한동안 그 분들의 페이퍼를 봐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 영어 책을 좀더 읽게 될까? 잘 모르겠다.. 



딱 한 페이지 사진을 찍어뒀는데 거기 나오는 대사는 이런 것이다. 


"섹스를 하게 되면 헤어질 때 더 힘들 거야. 너도 알잖아."


141쪽


단발머리님은 


사랑의 정점은 섹스이며, 사랑의 종국은 파멸. 그러니 섹스라는 정점을 지난후에 사랑은 결국 모두 내리막길이다.

완벽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섹스 하지 않은(않았던) 사랑, 정점을 지나지 않은 사랑.... 


이라고 하셨다. (위 링크의 글 댓글에서) 


그래서 나는 그럼 사랑의 정점에서 섹스를 한 다음에 바로 헤어지면 완벽한 사랑이란 또라이 같은 소리를 했는데 

(이런게 저의 농담코드...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고 완벽한 사랑이 섹스하지 않은(않았던) 사랑이란 이유가 여기 나와 있었던거다. 섹스를 하게 되면 헤어질 때 힘드니까. 음.. 그렇다고 헤어질 수 없다는 건 아닌데? 이게 아닌가? 



"그러면 섹스만 금지한다는 거네? 그 말은 삽입만 안 된다는 거지? 그럼 오럴은 괜찮은 거네?"


141쪽


.... 고등학생이라 그런가. 

얘들아 삽입 '섹스' 오럴 '섹스' 라고 못 들어봤니? 


얼마전 서재 어딘가에 난티나무님께서 삽입섹스 말고 다른 것도 섹스라고 쓰셨던 것 같은데... 사실 '섹스' 가 한 단계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키스 다음이 섹스라고 한다면... 그 안에 다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단순하게... ^^;;



이언이 후반부에 마일스에게 했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너한테 네 기억에서 그날 밤 일을 전부 지워줄 수 있다고 했다 쳐. 

그런데 조건으로 좋았던 일도 전부 다 잊어야 한다면 어떡할 거야?" 


429쪽 


나쁜 기억이 있어도 다른 좋은 기억으로 그 나쁜 기억을 조금씩 잊을 수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 뭐 그런 이야기 많은데, 사실 나는 그냥 좋은 기억도 지우고 나쁜 기억도 지우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다. 나는 감정의 진폭이 적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어글리 러브>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주인공들의 속마음이 독백으로 다 자세히 표현되는 게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다. 감정을 조금 암시적으로 표현해주는 편이 더 좋달까. 생각의 여지도 있고? 이게 콜린 후버 소설의 공통된 스타일이라면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아쉬운 게 있었다면 결말 부분이... 좀 진부했다고 해야하나... 열쇠만 줘도 되지 않았겠나? 이 부분에서 내가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로맨스 소설 혹은 로맨스 판타지를 읽는걸 마음에 걸려하는게, 결국 이런 소설들이 가부장제 정상가족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취미로 스릴러를 많이 읽었는데, 내가 읽던 당시에는 보통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 좀 거부감을 느꼈고 (요즘은 꼭 그렇진 않다고) 어느 순간 사람이 죽는 걸 재미로 읽는데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서 요즘은 읽지 않고 있다. SF는 가볍게 읽기에는 무거운 것들이 많고 초기 설정 부분을 이해하기까지의 장벽이 있어서 재미로 읽기는 조금 부담이다. 그래서... <그레이>와 <어글리 러브>를 아니까, <노트북>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왠지 상당히 순한 맛일 것 같긴 한데...


그런데 판타지적 요소가 없는 리얼 로맨스 소설은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제 로맨스는 나와 관계없어서 거리를 두고 편히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자꾸 실존인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는 결혼제도 내부에 있으니 왠지 나쁜짓 하는 것 같고 마음 불편하고. 100살 시대에 한 명하고만 60년 이상 사는게 너무 고루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혼 제도 안에 있는 자로서 왠지 현재 같이 사는 사람 (이자 내가 낳은 아이의 아빠) 말고 다른 사람 생각을 하는 것은 불편하달까...  물론 보통 그 생각이라는게 되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ㅋㅋ 주로 이불킥할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맨스 소설 보다는 로맨스 요소가 있는 <오만과 편견> 정도가 기분전환하기에 좋을지도. 어차피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어야 하므로 제인 오스틴을 조금씩 읽어볼 생각이다. <폭풍의 언덕>이 나에게 사랑에 대한 불신(?) 을 키워준 책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서 이것도 다시 읽어보고 싶고. 


아, 그러고보니 내일 로맨스+스릴러 장르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예매해뒀다. (이제서야)

두 장르의 결합은 어떨런지. 



+ 책을 보내주신 다락방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여러 분이 함께 읽고 계신 <Ugly Love> 에 대해 쓰신 글에 읽지도 않고 댓글을 달았는데 원서가 더 좋다 권해주셨지만 번역본을 읽겠다 고집했더니 선뜻 보내주신 것. 무엇으로 은혜에 보답하면 좋을까... 그건 차차 찾아보기로 하고. 언젠가 양재천 근처 캐나다뷰 맛집에서 다부장님과 1인 2메뉴(?) 식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ㅋㅋ


++ 혹시 <어글리 러브> 읽고 싶으신 분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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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사랑이란 섹스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말은 왠지 남자 중심의 말인듯 느껴져요. 뭔가 다하지 못하고 여한이 남아서 두고 두고 생각난다는??? ㅎㅎ 여성의 입장에서는 보통 섹스가 사랑의 마지막이 완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듯한데, 남자 입장에서는 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
저는 아직은 로맨스를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드니까 나중에 진짜 기분이 좀 더 꿀꿀해져서 뭔가 확 잊고 몰입하고 싶은게 생기면 이 분 책을 찾아보는걸로요. ^^
아 가정폭력의 결과 난 상처는 잘 아물고 계신지요? 조 아리따운 녀석을 혼내시려면 마음이 좀 아프겠습니다. ^^

건수하 2022-09-04 19:21   좋아요 0 | URL
사랑의 완성, 단계의 끝이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섹스라는게 아무래도 많이 친밀한 행위이다보니 하고/안하고의 차이가 있긴 할 것 같아요. 저도 딱히 로맨스를 읽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은데..비소설 페미니즘 관련 책만 읽다보니 조금 가볍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네요 :)

상처는 물릴 때는 엄청 아팠는데 피가 안쪽에서만 나서 좀 쓰리기만 해요. 거의 아물었을텐데 빨간 줄이 보여서 괜히 부끄럽네요 ^^;;


다락방 2022-09-04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삽입섹스 말고 다른 것도 섹스라고 말한 건 제가 아니라 난티나무 님 같습니다. ㅎㅎ 그분도 꼭 그렇다기 보다는 남자들이 섹스로 쾌감을 얻는, 삽입 외에 다른 방법도 있지 않겠냐, 였고요. 저는 삽입 섹스가 사회적으로 세뇌된 것이라는 난티나무 님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러나 남자들에게는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열등감으로 인한 세뇌가 일어났으며 그러므로 가해자이다, 라고 얘기했고 난티나무 님은 그들에게도 다른 방법이 있을텐데 알려주질 않아 그런 것이므로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이기도 하다 라는 뉘앙스로 저와 댓글을 나눴었어요.


저는 이 책이 정말 잘 읽히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과했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마일스의 과거의 사랑 이야기도 과했고 마일스가 그런 상처를 갖게 된것도 과했고 무엇보다 작가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콜린 후버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건지, 왜 이 책이 많이 읽히는지는 알겠지만, 저는 좋아할 순 없는 작가예요.

로맨스를 더 시도하신다면 번역본으로 나와있는 것 중에 <헤이팅 게임>을 추천하겠습니다. 콜린 후버 말고요. ㅎㅎ

건수하 2022-09-04 21:45   좋아요 1 | URL
앗 그렇군요. 얼른 수정을 하고.. 난티나무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건 ‘섹스’라는 범주에 대충 다 포함될 수 있지 않나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좀더 심오한 이야기를 두 분이 나누셨네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으려면 아무래도 자극적인 요소를 넣는 것 같아요. 저는 여러 분들이 콜린 후버 몇권째 읽으시길래 + 인기있다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했는데.. 사실 저는 과한 부분이 특별히 마음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다락방님 추천하시는 로맨스를 시도해보고 싶어요.

읽어야 할 책 좀 시작했다가 <헤이팅 게임> 읽어보겠습니다. 추천 감사해요 다락방님~

독서괭 2022-09-06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고양이가 눈 주변을 물었다구요?? 왜 하필 거길 물까요.. 신기.. 상처 안 남아야 할텐데요.
이른 아침에 로맨스소설을 읽으시다니.. 그러니 이런 건전한 분석글이 나오는 걸까요? ㅎㅎㅎ 저도 콜린 후버 아직 안 읽어봤는데, 원서로 읽기 괜찮다고 해서 나중에(언제?) 영어공부 할 때 읽어보려고 합니다..
섹스가 엄청나게 환상적이었던 게 아니면 섹스한다고 헤어지기 더 어려운 건 아닐 것 같은데.. 오히려 실망스러워서 멀어질 수도 있지 않나요?흠.

건수하 2022-09-07 11:01   좋아요 2 | URL
상처는 안 남았구요.. 딱 힘 조절해서 무는 것 같아요. 전에도 같은 부위 한 번 문 적 있어요 ㅠㅠ
어쩌면 귀신같이 젤 아픈 곳을 무는 건지;;
큰냥이가 나이도 많고.. 뭐랄까 능구렁이 같달까 좀 그런 구석이 있어요.

이 로맨스 주인공들이 20대 중반이다보니 20금쯤 나오긴 하는데 사실 섹스만 하자는 약속 빼고는 되게 순수하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더라고요 ^^;;

어 저는 섹스가 어땠는지와 관계없이 뭔가 하나를 더 함께 했다는 데서 친밀함의 정도가 커지지 않나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 섹스가 워낙 별로였다면 바로 마이너스로 치달을지도 ^^;;;; 근데 여기 나오는 섹스는 다 환상적이었던 걸로 나옵니다 ㅎㅎ

독서괭 2022-09-07 11:03   좋아요 1 | URL
로맨스에는 환상적인 섹스가 없으면 안 돼죠.. 그러고보면 섹스가 그렇게나 중요한 것인 걸까요!

건수하 2022-09-07 13:31   좋아요 1 | URL
없어도 되던데… 섹스가 안 나온다기보다는 했다.. 하고 넘어가는 것도 많지 않나요 ^^;;;;

근데 일단 성인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면 디폴트로 있어야 한다- 인 것 같아요 :)

단발머리 2022-09-07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머머머머! 이 아름다운 글을 왜 지금에서야 발견한 것입니까. 제가 등장한 글인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하님께서 보여주시는 귀한 통찰에 새삼 감사말씀 드리오며.....

필립 로스(제가 사랑했던 남자)가 프로이트주의자 같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어요. 남녀 사이의 가장 중요한 일이란 섹스다, 섹스 말고 두 사람 사이의 다른 긴박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섹스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미혹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막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할 때요. 전 그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정교화된 문화 양식 속에서 섹스야말로 인간의 동물성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걸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위의 인용해주신 저의 댓글은 너무 ‘섹스 지상주의‘ 같네요. 생각의 수정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콜린 후버가 자극적이죠. 지적해주신 대로 결론이 좀 정해져 있구요. 근데 제가 최근에 읽은 소설 대부분이 결혼으로 결론 짓더라구요. 물론 동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연속적인 관계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근본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나,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수하님의 로맨스 소설 탐독을 응원해야겠네요. 진심입니다 ㅎㅎㅎㅎ

단발머리 2022-09-07 14:08   좋아요 2 | URL
순간적으로 저의 집 와이파이 이상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제대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09-07 14:18   좋아요 2 | URL
통찰... 이랄 게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단발머리님께서 칭찬해주시니 읽으면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필립 로스 좀 어릴때 읽긴 했는데 저는 잘 안 맞았어서 한두 권 읽다 말았어요. 저도 섹스가 동물성.. 그래서 친밀함이 매우 커지는 단계라고 생각은 하는데. 근데 저는 완전히 친밀해지기보다 약간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ㅎㅎ 그래서 섹스 하기 전이 완벽한 사랑이라는 단발머리님 이론이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


- 2022-09-10 23:31   좋아요 0 | URL
저 섹스 까먹어서 필립로스 주장에 동의 안됨 ㅋㅋㅋㅋ 아 진짜 섹스 뭐냐고 ㅠㅠㅠㅜ 하지도 않는 데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 자신이 괴롭다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9-07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판타지적 요소가 없는 리얼 로맨스 소설은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제 로맨스는 나와 관계없어서 거리를 두고 편히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자꾸 실존인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는 결혼제도 내부에 있으니 왠지 나쁜짓 하는 것 같고 마음 불편하고. 100살 시대에 한 명하고만 60년 이상 사는게 너무 고루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혼 제도 안에 있는 자로서 왠지 현재 같이 사는 사람 (이자 내가 낳은 아이의 아빠) 말고 다른 사람 생각을 하는 것은 불편하달까... 물론 보통 그 생각이라는게 되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ㅋㅋ 주로 이불킥할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이 문단 너무 좋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 거 같고요. 그리고 이 문장....


나는 감정의 진폭이 적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수하님과 제가.... 진짜 비슷한 과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건수하 2022-09-07 14:20   좋아요 2 | URL
아무래도 기혼 유자녀 여성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로맨스와 페미니즘은 관계없지만.. 배우자와 자녀가 페미니즘의 실천에 있어서도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리고 감정의 진폭 부분은... 저도 단발머리님 글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

- 2022-09-10 23: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글 왜 이제 봤냐며ㅠㅋㅋㅋ

어쨌든 결혼제도가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는 안전한 길이긴 하니깐요…. ^^ 안전과 안녕을 원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두분 처럼 지내시면서 로맨스 읽고 그럴 것 같아요.😉

건수하 2022-09-11 14:17   좋아요 0 | URL
안전과 안녕을 원한다기보단 결혼을 원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했는데…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할 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에바 일루즈 언니에 대해 알아보지 않으려 했으나 조금씩 궁금해지는 중 ^^
 
드립백 브라질 산타 루시아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진하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신맛을 안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드립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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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9-02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커피 그동안 산미 있어서 산미에 길들여진 것 같았는데 없으니까 또 없는대로 좋더라고요? 후훗.

건수하 2022-09-02 12:19   좋아요 0 | URL
저는 원래 좀 촌스럽게 산미 안 좋아해서 ㅎㅎ 이번꺼 아주 맘에 들어요.
 

얼마 전 알라딘 앱에서 알림받는 설정을 좀 바꿨던 것 같은데, 그 때문인지 

(그러니까 전에는 나에게 안 오던 알림들이 갑자기 마구 오고 있는건지)


아니면 요즘 알라딘이 기대별점 적립금을 마구 뿌리고 있는 건지 

(이런 알림 처음 받아본다) 

하루가 멀다하고 적립금을 주면서 

안쓰면 적립금이 며칠 남지 않았다며 또 알림을 보내주니 


책을 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래서 저번에 8월 책 그만 사겠다고 글 쓰고 그 뒤에도 샀었는데 

1일이 되자마자 또 책을 샀다는 이야기. 


기대별점 적립금 요즘 생긴게 맞나요?

아니든 맞든 알림 설정을 다시 바꿔야 할 것 같다............. 



책 사는 걸 멈추고 

버릴 책 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어제 잠자냥님 댁 사진 보고 반해버림)

나도 산뜻하게 살고 싶은데 


자꾸 책만 사들이고

서재와서 구경하고 보관함에 추가하고 

....

리얼 서재도 알라딘 보관함도 어수선하기만 하다. 



어쨌든, 그래서.. 9월 첫날부터 택배 상자 하나 뜯었고, 책도 샀다는 이야기 되겠다. 

뭘 샀는지는 비밀. 누군가 땡투 적립금을 받으실겁니다 (먼산)


추석 연휴에 시간이 남으면 (그럴리 없지만) 책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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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9-01 11: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오늘도 또 천원 줬어요! 이런이런... 그 적립금이 정말 안 사면 그만인데, 안 사면 뭔가 손해보는 거 같아서 책을 자꾸 사게 되더라고요. ㅠㅠ 기대별점은 예전부터 있었어요.(그동안 놓친 거 아깝죠?ㅋㅋㅋㅋ)

건수하 2022-09-01 11:17   좋아요 5 | URL
맞아요 어차피 살 책은 많은데 적립금이 아까워서 ㅋㅋㅋ 저 오늘 주문완료하기 직전에 또 주겠다고 알림 와서 다시 주문절차를 시작했다며 (…)

세상에… 전 도대체 얼만큼의 적립금을 놓친 것인가요….

(설정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다락방 2022-09-01 12: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천원 쓰려고 몇만원 결제하는 이런 삶... 언제까지 해야할까요? 껄껄.
기대별점 적립금은 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하.
저도 오늘 집에 가면 아마도 택배 상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ㅜㅜ

잠자냥 2022-09-01 12:48   좋아요 3 | URL
폰으로 접속하면 다달이 뜸

건수하 2022-09-01 13:26   좋아요 1 | URL
저도 이틀? 삼일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 몰랐던 적립금인데요...
앱 알림으로 자꾸 뭐가 옵니다.

읽지 않은 책에 기대별점이라며 별 세개 기본으로 찍혀있고 (홍보를 위한 것인듯)
동의만 누르면 천원을 줘요...
다음엔 별 하나 찍어도 주는지 눌러봐야지...

청아 2022-09-01 12: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구매전 매달 주는 기본 적립금하고 퀴즈 하면 주는 적립금도 잘 챙기고 계신거죠?
저 그런것들마저 처음에 몰라 ㅠ.ㅠ
이웃분들 냥냥이 많이 키우셔서ㅡ수하님 고양이의 저 도도함과 깜찍함까지ㅡ 나중에 저도 키워보고 싶은데
잠자냥님네 냥이들 책 테러?얘기 읽고 저 사실 고민중입니다.ㅋㅋㅋㅋㅋㅋ(외양은 지킴이들처럼 생겼는데)

저도 오늘 바로 책 사고 싶은데 참는중이예요. 하루라도,아님 5일이라도 인내심을 가져보려고요 후.....

잠자냥 2022-09-01 12:54   좋아요 5 | URL
책 테러 안해요. 누가 그런대요????? ㅋㅋㅋㅋㅋㅋ 케바케고 저 녀석은 아직 집 적응을 못해 저 피해서 급히책장 올라가다가….. 첫째가 오줌 한 번 지린 건 아마도 다른 냄새(중고책 샀더니 한 번 그랬어요) 나니까 자기 영역 표시한 거 같아요. 근데 즤집 첫째는 동물적인 놈이라 아주 가끔 그래요. ㅋㅋㅋ 다른 애들은 전혀 안 그래요!! 참고하세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2-09-01 12:54   좋아요 4 | URL
이제 고양이도 권하는 알라딘서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2-09-01 13:20   좋아요 3 | URL
미미님 0.1프로가 안사면 누가사?🥺 왜이래? 다들 자제 안하면서 자제하는 척해? (아침에 9월치 천원 다쓰고 온자 ㅋㅋㅋ)

건수하 2022-09-01 13:28   좋아요 4 | URL
/미미님 그 적립금은 잘 챙기고 있어요.
편집장 퀴즈 적립금도 가끔 귀찮아서 패스할 때가 있었는데
기대별점은 이번주 처음 알았네요.

저희집 냥이들은 책에 관심이 없어요 ㅋㅋ 책장에 잘 넣어두시면 아무일 없을거라는..
큰냥이는 같이 산 지 14년째인데 제가 밤에 책 읽고 있으면 옆에 와서 몸 착 붙이고 있는답니다 ^^

미미님 힘내세요~ 언제까지 참았는지 꼭 써주세요 ㅋㅋ

건수하 2022-09-01 13:30   좋아요 3 | URL
맞아요 책테러 안하죠! 잠자냥님이 뚜껑없는 윗칸에 책을 세워두셔서 그런걸 거라며 ㅋㅋ

저렇게 높은데 쭉 이어져있는 곳에 올라가는 거 좋아하거든요.
전에 책장 두 개 이어놨더니 자꾸 올라가서 (먼지 구덩이인데..) 지금 집에는 천장까지 책장을 짰습니다 ㅋㅋㅋ

건수하 2022-09-01 13:30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좋은 것은 권해야! :)

건수하 2022-09-01 13:31   좋아요 3 | URL
/쟝님 9월치가 왜 천원밖에 안돼요 2천원이 기본아니냐며 ㅎㅎ

청아 2022-09-01 13:59   좋아요 5 | URL
잠자냥님/제가 선량한 잠자냥님네 냥이들을 크게 오해할뻔 했군요ㅋㅋㅋㅋㅋㅋ
희망적이네요!! 저는 제가 책에 물 엎지르고도 하루 종일 기분나빴다가 그 책 가격만큼 책 사고 겨우 누그러진 사람ㅋㅋㅋㅋ

쟝쟝님,수하님/0.1프로의 위신?이 있으니 5일 내에 지르는 것으로, 여기 알리는것으로 하겠습니다ㅎㅎㅎ

- 2022-09-01 14:04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독려하며 ㅋㅋㅋㅋ 자제력을 버리는 이곳 ㅋㅋ 서재 ㅋㅋㅋㅋ

새파랑 2022-09-02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깟 적립금 천원 쯤이야!

하기에는 왠지 유혹이 장난아니긴 합니다. 9월 5일전에 책을 사야할거같은 의무감이 듭니다 😅

건수하 2022-09-02 19:16   좋아요 2 | URL
저는 얼마전 4500원까지 모였었어요 ㅎㅎ 안살 수가 없더라고요 :)

그레이스 2022-09-02 19:29   좋아요 3 | URL
1일전 메시지 오면 장바구니를 들여다보게 되요. 이 메시지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는게 아니라 제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거겠죠?
알라딘 탓이 아님!ㅋㅋ

건수하 2022-09-03 04:35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네 그 메시지…. 확실히 알라딘이 마케팅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살 책이었겠죠….? ;;
 



8월에 8-1권을 읽었다. 


베니스의 상인 - 샤일록은 내 이름 

제인 오스틴의 미출간작 모음 - <레이디 수전> 외에는 완성이 안 되어 중간에 끊기니 읽는 맛이 좀 없었지만..


페미니즘

레이디 크레딧

낭만전사 (포르노와 로맨스 ...)

임신중지 


페미니즘 - 레이디 크레딧 - 임신중지 좋았고 

페미니즘이 특히 좋았다. 한 번 정리하고 가는 느낌. 





9월에는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중요도순 아니고 마감일순) 


그리스 로마신화 (한숨) 옛날 감성.. 이윤기님 자의적 해석에 동의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읽기 싫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는지.. (이미 많이 밀려있음)


9월의 여성주의책 같이읽기 책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은 들춰봤는데 글씨와 내용이 눈에 잘 안 들어와서 약간 걱정되지만. 

<임신중지>보다는 짧은 것 같고 글씨도 덜 빽빽하다. 


이것 말고는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 



<임신중지> 읽고 나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모성' 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읽어볼까 하고 







콜린 후버의 로맨스 소설 읽고 싶고 

(여기에다 브리저튼 시즌2까지 보면 마음이 좀더 가벼워질 것 같다) 






 일하는 마음을 좀 다잡고자







 퇴근길의 마음은 출근길의 마음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북토크를 하신다기에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으니 







읽어보고 싶다. 



+ 아, 정희진님 책도 읽어야 하고 <살림 비용>도 읽어야 하는데.. <다락방의 미친 여자> 참고도서도 읽어야 하는데...

  (일단 막 넣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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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31 1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중요도순 아니고 마감일순..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마감일순 너무 웃겨요. 저는 마감일로 치면 디지털 미디어가 제일 늦습니다. 훗.

건수하 2022-08-31 13:20   좋아요 3 | URL
이래야 읽을 순서를 기억할 수가 있어서...
디지털 미디어 다음 책은 마감이 10월이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입니다 ㅎㅎ

mini74 2022-08-31 1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옛날감성 ㅎㅎ 그렇죠 아무래도 ~ 맥베스 표지가 강렬하네요. ~

건수하 2022-08-31 13:20   좋아요 3 | URL
그만두고 싶지만 그리스 신화는 여기까지라며 읽고 있습니다
맥베스 기대돼요 ㅎㅎ

청아 2022-08-31 12: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맥베스 표지가 눈에 똭!ㅋㅋㅋㅋ오디오 북으로 들었는데 좋았어요. 이건 요네스뵈의 소설이군요? 담아갑니다.^^

건수하 2022-08-31 13:21   좋아요 3 | URL
맥베스 원작을 오디오북으로 들으셨다는거죠?
요 네스뵈 무서울 것 같아서 한 번도 안 읽었는데 맥베스로 처음 만나게 되었네요 :)

잠자냥 2022-08-31 13: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로마신화 (한숨) 옛날 감성.. 이윤기님 자의적 해석에 동의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읽기 싫다˝ 이 구절 정말 극공감이요. 얼마 전 다시 읽을 일 있어서 조금 읽었는데... 와...................... 말잇못.. ㅠㅠ

건수하 2022-08-31 13:50   좋아요 4 | URL
아 정말.. 괴롭습니다… 흑흑
때려치울까 몇 번 생각하다가 (같이 읽는 분들과의) 의리로 읽고 있어요.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임신중지'는 감정 각본을 통해 통제된다 라는 것인 것 같다. 


임신중지와 관련된 법안을 이야기하며 3달, 22주, 15주... 그리고 태아가 생명인가 아닌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지만 임신중지와 관련된 일들은 기본적으로 '감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집단(안티초이스)은 물론이고 찬성하는 집단(프로초이스)조차 그렇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에게 적대적이라는 비판에 대응해, 임신중지의 감정 경험에 호소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를 방어했다. 한편 프로초이스 활동가들은 '이기적인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전형에 맞서고자 감정 경험에 눈을 돌렸다. (242쪽)



모성적 행복, 애통함과 후회, 피임에 대한 책임, 죄책감, 수치감...



모성적 여성성은 애통함과 수치가 뒤따르는 어려운 임신중지라는 서사를 유도하고, 애통함과 수치는 모성적 여성성을 자연화하는 근거가 된다. 이 자기영속적 순환고리는 왜 똑같은 감정이 다양한 담론장을 가로질러 임신중지에 자꾸만 들러붙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5쪽)



저자는 프로초이스의 논리가 모성적 행복을 전제하고 있다는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프로초이스 진영이 (맘에 쏙 들지는 않지만)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법안 지지자들은 이 감정 각본(임신중지의 애통함과 트라우마)을 인용해, 입법의 맥락과 별개로 여성은 임신중지가 일으킬 끔찍한 효과 때문에 그 조치를 피할 것이므로, 임신중지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임신중지가 '가장 큰 트라우마를 안기는 과정'이고 '장기적인 정신-신체의 위험'을 수반하기에, 어떤 여성도 '단지 임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신중지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166쪽)



위 논리가 잘 이해가 되는가? 단지 임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신중지를 선택하진 않을건데, 그러니까 임신중지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 구체적인 내용은 더이상 나와있지 않지만, 이 이유가 임신중지를 비범죄화 해야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최소한 개선하지 않고 놔둬도 되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프로초이스는 잘 설득해냈다는 이야기 아닐까? 

감정 각본은 여성을 세뇌(?)하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정치에서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프로초이스가 저런 논리를 폈다고 해서 프로초이스 진영의 속마음까지 모성적 행복을 전제하고 있었을까? 그건 일종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내 생각이다) 정치란 순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니까. 올해 대선을 치른 한국 사람들은 이 부분에 특히 공감하리라 본다. 



엠마 왓슨이 UN의 'He for She' 캠페인을 위해 한 연설 (링크있음) 을 보고 나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데 남성의 지지 혹은 호감을 꼭 얻어야 하나? 그러나 인류의 반은 남성이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는 남성이 더 많다. 법안을 만들건 예산을 따건 남성의 동의와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작년 <시녀이야기>를 읽고 한 순간에 경제권과 직업을 잃고 남성에게 종속되는 일화, 한낱 생식도구로만 이용되는 이야기가 정말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그렇게 쉽고 굳건한게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갑자기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들이구나 하고 경각심이 들었다. 여성의 권리가 더 확대되기를 바라지만, 요즘처럼 여성 혐오가 공개적으로 표현되는 세상에서 지금 갖고있는 걸 지키는 안전장치도 잘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현재 임신중지가 수술로만 가능하고, 책에 나오는 RU486-미프진-미페프리스톤 같은 약물은 허용되지 않는다)



로 대 웨이드: '낙태권 보장' 미국 대법원 판결 49년 만에 뒤집혀 - BBC News 코리아 (링크있음)



지난 6월 24일 미국에서 24주 이전 낙태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면서 낙태권에 대한 미 연방 차원의 헌법적 보호가 폐지되었다. 트럼프 정권에서 보수적 성향의 대법원 판사를 여럿 지명한 영향이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의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현 한국 정권의 성향을 고려할 때 또 이후 정권 교체가 가능할지 불투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녀이야기>가 막연히 놀랍고 암울한 이야기였다면 <증언들>은 그 놀랍고 암울한 이야기의 사이사이를 조금씩 채워주는 이야기이다. 스토리의 완성도는 조금 아쉬우나 <시녀이야기>를 읽었다면 이것도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읽고나면 덜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


<증언들>은 <시녀이야기>에도 나왔던, 아주머니 of 아주머니인 리디아 아주머니, 캐나다에 사는 한 여자아이, 그리고 길리어드에서 태어나 자란 한 여자아이의 회고록이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알라딘 서재의 많은 분들이 길리어드의 여성이 된다면 주저없이 아주머니가 되는 길을 택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여성들과 달리 아주머니는 책을 읽을 수 있다 (...) 



마침내 나는 '금지된 세계문학' 구역 깊은 곳, 내부의 성소에 다다랐다. 나만의 개인 책장에 하위 직급은 볼 수 없는 금서들을 골라 꽂아 두었다.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더버빌가의 테스>, <실낙원>, <소녀들과 여자들의 삶>, 탄원자들 사이에 풀어놓으면 저 책들 한 권 한 권이 얼마나 엄청난 도덕적 공황을 유발하겠는가!



우리는 장례식에 갈 때 말고는 그곳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망자의 이름이 묘석에 새겨져 있어서, 잘못하면 읽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읽기는 여자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어요. 읽기의 힘을 감당할 정도로 강한 건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주머니도요.



같은 여성을 체제에 순응하도록 교육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 일을 하지만 읽고 쓸 수 있다는 특권을 갖고 있는 아주머니는 일종의 지식인이자 권력의 하수인이기도 하다. 아주 개운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아주머니가 될 것 같다. 읽고 쓰는 것도 그렇고, 뭔가를 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아주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총명하고 야심찬 젊은 여성으로 그려 본다. 당신의 시대가 되면, 동굴처럼 어둡고 메아리만 들리는 학계가 여전히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그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틈새를 찾고 있을 것이다.

(중략)

당신은 내가 쓴 이 기록을 거듭해서 읽고 오류를 뒤지며 전기 작가들이 집필 대상에 대해 자주 느끼게 되는, 선망과 지루함이 뒤섞인 증오심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서툴게, 그렇게 잔인하게,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렇지만 당신에겐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가 많지 않았기에 이전 세대의 여성들 그리고 동의해준 남성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다음 세대들은 해야 할 '그런 일' 이 더 적길 바란다. 



임신중지를 감추지 않고 소리내어 이야기하는 #ShoutYourAbortion 캠페인은 개별적-공개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의식을 고양한다고 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읽고, 이야기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권리의 확대를 얻어내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본심을 조금 감추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 그것에 실망하지 말자. 정치에 진실을 기대하지 말자. 마음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제 시간에 8월의 책을 다 읽어 기쁘다. 이제 밀린 일도 하고 다른 책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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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30 1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 일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남자가 여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서는 안될 짓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안된다고 말하기 위해 왜 굳이 ‘니 여자친구라고 생각해봐, 니 여동생이라고 생각해봐‘ 라는 예시까지 들어야 하나. 누군가의 동생이거나 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되는거기 때문에 안되는거다, 그건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라고 제가 말햇는데, 제 남자사람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까지 이해하지 못하는게 남자들이니 굳이 네 애인이라면, 네 아내라면, 이라고 해줘야 그나마 범죄가 좀 줄어들지 않겠느냐고요.


저는 오늘 수하님의 이 글을 읽으니 그 일이 생각나네요. 이번 선거를 비유해주신 것도 적절했다고 보여지고요. 저는 여전히 근본적으로 안된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이런 사정이 있으니까, 어떤 목적을 이뤄야 하니까, 라는 이유로 중요한 것을 뒤로 슬쩍 밀어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고요. 아마 그래서 저는 분류를 하자면 급진적인 쪽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수하 님이 이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나 현실적으로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것들은 고려하고 가야 한다, 안고가야 한다, 그것이 이성적이다 라는 주장은 어떤 것인지 이해했습니다.


정말 (특히나 문장이)어려운 책이었는데 기한 내에 다 읽으신 것 축하드리고요, 고생하셨습니다. 함께 읽어서 기쁘고 또 읽은 후에 이렇듯 생각을 정리해주셔서 그것도 너무 좋습니다. 우리 9월에도 함께합시다, 수하 님!!

건수하 2022-08-30 18:03   좋아요 2 | URL
제가 잘 모르긴 하지만, 프로초이스의 역할이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만큼 평가절하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결과가 있었고 그로 인해 그 다음이 있는 거니까요.

페미니스트들이 굳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정치적으로 공식석상에서 필요할 때, 결정적일 때는 조금 더 발언을 지능적으로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밀어둔다기보다는 내세우지 않는다 혹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도? 어차피 그들이 페미니즘 책을 읽거나 하진 않을 거니까..

할 말이 많은 책이었지만 이 정도로 줄이려고 해요. 옮긴이의 말을 보니 참 매끄럽던데... 원문 그대로 옮기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라고 생각하려고요 :)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 책을 읽게 되어 참 행복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9월책 얼핏 봤는데 만만치 않아보이네요 ^^

다락방 2022-08-30 18:18   좋아요 3 | URL
사실 저도 읽으면서 그 생각을 했거든요. 프로 초이스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 다음이 있었던 거 아닌가, 그러니까 뜻을 이루기 위한 단어와 맥락의 선택이라고 본거죠. 이렇게 말해야 그나마 될 것이다, 라고요. 우린 어쨌든 원하지 않은 임신에는 임신중지가 필요하니까요. 그렇지만 저자가 그걸 몰라서 평가절하 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이만큼 왔고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이만큼 더 와야한다 는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것이 그러나 받아들여질지는, 수하님 말씀대로 아직 대부분의 남자들이 직업적 우위에 있는 이상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다고 보면 프로초이스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보여집니다.

9월 책, 저는 아직 안펼쳐보고 상대적으로 얇으니 쉽겠지, 라고 생각했네요? 껄껄.. 번번이 얇은 책에 뒷통수 맞으면서도 이렇게 또 편견을… 😩

건수하 2022-08-30 18:22   좋아요 2 | URL
이제는 더 가야한다는 말이 맞죠. 미국의 판결 뒤집기 충격이 컸던 것도 같아요 ^^;

<임신중지>와 비교하여 좀 얇긴 한데 판형이 크고.. 그런데 글씨가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읽어봐야 알겠지만 :)

다락방 2022-08-30 18:23   좋아요 3 | URL
한국 사람들이 썼다는 것에 제가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잘 읽힐 것이다, 처음부터 한글이었다…..

청아 2022-08-30 1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수하님 잘 읽었습니다.우선 이달안에 완독하신것 축하드리고요.이래서 페미니스트들 간에도 대화가 많이 필요하구나 느낍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여성들간의 대화자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요) 링크도 제목으로 바로 누르면 들어가도록 (저는 항상 주소가 뜨는데;;)하셔서 더욱 멋져요^^*

저도 기본적으로 남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여성들과 함께 남성들도 자유로워져야 진정한 평화가 있다라고요) 에리카 밀러는 어떤 모호한 지점들이 오히려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현상을 ‘감정정치‘를 예로 잘 지적해준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도 많았고 더 많은 공부의 필요성도 갖게됐어요

같은 책을 읽고도 여성들마다 의견이 다양하게 나뉠것 같은데 너무나 바람직하고 그러므로 페미니즘의 미래가 더 밝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이곳에서 같이 읽고 글로 대화나누는것도 큰 행복!) 앞으로도 계속 같이 쓰고 함께해요 수하님!^^*

건수하 2022-08-30 20:35   좋아요 3 | URL
미미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에리카 밀러가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주었고 특히 학문적으로 중요한 성취를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중요성을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감정에 좀 무딘 편이기도 한데.. 저는 현실적으로 가시적인 결과를 얻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편이라서 지금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좀 조급하다고 할까요?

여러분들 글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보게 되어 저도 좋아요. 계속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건수하 2022-08-30 20:35   좋아요 3 | URL
참, 링크는… 글을 써놓고 ‘url’을 눌러서 주소를 입력하면 저렇게 됩니다 :)

단발머리 2022-08-30 20: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본심을 감추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에 백번 공감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감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부단히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맘에 안 든다고 테이블 엎고 나가는 거 말고요) 필요하다고 봅니다.
잘 정리된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저는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하는 슬픈 소식 ㅠㅠㅠ

건수하 2022-08-31 00:23   좋아요 2 | URL
네, 우리나라 진보세력이 못하는 것 중 하나잖아요. 정말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걸 프로초이스가 해내서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단발머리님 3장 지나면 좀 수월합니다. 분량도 적고요. 힘내세요!


얄라알라 2022-09-01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시녀들> 읽으며 충격은 받았어도 우울하진 않았는데 <증언들>을 추천해주시니 읽으며 <임신중지>와 논의 연결점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짝짝짝!!! 8월 안에 완료하시다니 더욱 멋지십니다

건수하 2022-09-01 15:52   좋아요 2 | URL
<증언들> 읽으시면 좀더 기분이 좋아지실 겁니다 ^^!

근데 <임신중지>와의 논의 연결점은… 음 잘 모르겠네요 (…)

얄라알라님 글 기다리고 있을게요~

- 2022-09-10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로초이스가 50년 전에는 맞는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전략적 타협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맞붙는 담론이 더 본질적(?) 되었다는 생각예요. 신자유주의에 모바일 시대잖아요? ㅡ 아 ㅠㅠ 망했다 댓글이 ㅠㅠㅠ 저는 인식론까지 생각하게 되서 너무 멀리가요 ㅠㅠ (힘들어요) ㅠㅠㅠㅠㅠ

현실 정치에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묻어두고 넘어가는 지점이 바로 창끝이 돌려져서 여성 스스로를 공격하게 되는 담론으로 수월하게 바뀌는 것이 지금의 사회경제적 미디어적 상황이라는 뜻!! 그러니, 저도 별 수 없이 래디컬입니다 ㅋㅋㅋㅋ

건수하 2022-09-10 16:15   좋아요 1 | URL
지금 프로초이스처럼 하자는 건 아니고, 이론도 중요하나 실제로 뭔가를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였어요 :) 투트랙으로!

- 2022-09-10 16:33   좋아요 2 | URL
투트랙!! 아휴 ㅋㅋㅋ 왤케 똑똑해?

건수하 2022-09-10 16:44   좋아요 2 | URL
말하기는 쉬운 그러나 실천하긴 힘든 투트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