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근력운동 방법을 검색하고 보다 걸려든 것이 타바타이다.  몇 번을 보고 일터 사무실 앞 뒤에 순서를 걸어둔 것이 한 달이 넘은 듯하다. 어쩌냐. 너의 무관심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이라는 것이 한 두동작 따라하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느낀다. 그러다 다쳐 다친다구.


날개도 온전치 못하면서 어떻게 날겠다고 하는 것인지 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리하지마. 절대야라고 나의 한편은 속삭인다. 


러닝의 준비운동에도 요즘 대세는 동적 스트레칭이구나 한다. 국민체조 방송이 옆의 제일연마 점심시간 끝날 무렵 들려오고, 신세계체조까지 연식을 가능하는 나는 정적 스트레칭밖에 할 줄 모른다. 그나마 스무해 전 러닝은 그렇게 끌어주는 러너가 멋져보였다.  


영상으로는 쉽지만 막상 따라하려면 멋적고 힘들다. 그래 맞다. 그래서 아직도 밍그적거리고 있는거야. 바보처럼.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더 길게 걸어주고, 더 많이 각도를 주면서 몸을 까닥까닥해보면 빈 몸공간들의 흔적이 느껴진다.


팔을 벌리고 앞으로 손을 뻗어 8번씩 3세트 돌리고 흔들고, 손을 귀빝으로 올려서도 돌리고 흔들고....그래그래 짬짬이 빈틈을 채우는거야.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며....타바타까지 가볼거야. 해보자.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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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한방을 노리는 양관석의 아들, 은명이가 떡파는 장면을 본다. 그 때 유투브의 헐레벌'떡"이 겹친다. 어릴 때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사십대는 떡짐을 지고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이른 시간에 사전 영업을 한다. 하지만 취재진이 그를 인터뷰하고자 쫓지만 빠른 속도를 당해낼 수 없다. 그렇게 시작한 인터뷰를 보다나니 끝까지 닿게 된다.


그는 죽을 결심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살게 만든 것은 단 한 권의 책이다. 키에르케고르를 펼치면서 다시 살아낼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헐레벌떡 사장님은 택배로 받아서 하나하나 포장을 한다. 그 무게를 감당하려는 보통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그것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더 빨리 팔려는 방법으로 영업의 묘가 생각해낸 듯하다.  그는 동정하는 돈은 받지 않는다. 폭싹 속았수다와 다른 결론이다.  그는 매일 목발(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부목, 깁스를 검색하다니)을 짚고 매일 산에 오른다. 가파른 언덕을 쏜살처럼 날라다닌다. 그는 족구도 거침없다. 


우울과 실패를 우리의 시대에는 자신탓을 한다. 수면제와 불면을 지새우는 청년들이 너무도 많다. 갇혀 살고 싶지 않지만 갇혀 산다. 건강도 그런 환경으로 인해 더욱 더 좋지 않아진다. <건강을 팝니다>란 책은 이런 우울의 역사가 자본과 환경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내탓만이 아니다. 팔할은 시대의 탓이다. 좌절과 불면은 하루 아침에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조금씩 다르게 만드는 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대여 이불을 걷어차라. 햇볕을 쏘여야 된다. 몸을 비틀어야 된다. 중력을 거슬려야 한다. 관절에 붙은 근육을 늘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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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의 밑줄을 옮겨적는다. 약간의 멈춤기간. 사라진 기억들은 밑줄 속 단어들로 희미하게 이어진다. 시간은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활활 불타오른 것들은 강한 기억으로 남고, 그러지 못한 것은 그러지 못한대로 맥락을 새로 찾아간다. 더디지만 다시 삼키는 작업은 새맛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계약서의 뒷면에 간 인을 찍다. 그리고 성실, 비밀유지서약서에도 회사 명판을 찍고 서명한다. 안전 관련서류에 산재 재해율도 기록하게 되어있다. 빠뜨리지 않고 덧붙인다. 다른 주인을 만나,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법취지를 새기면서 어떤 자신감을 갖게 된다. 중소기업이라는 것이, 갑질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시대의 노력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운영하고 있는 대표역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된다. 공정거래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뒷면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자본가로서 난망함도 있지만 거꾸로 일상에서 해낼 수 있거나 보호하고 막아낼 수 있는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몸을 펼치고 있다. 지난 여름 오십견으로 어깨동무 한의원을 다니며 고생한 적이 있다. 지금도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굽은 등과 날개뼈를 움직여주는 것이 나은 일상이란 걸 느낀다. 지금을 살아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무라는 틀과 의자에 갇혀있기도 하다. 이동하는 순간에도 늘 좌석에 붙박고 있는 셈이다. 그림작업으로 그래도 경직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여겼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몸밖에서 내몸을 바라보는, 아니 바로잡는 법을 몰랐던 것이기도 하다. 미니벨로 라이딩으로 좋아지기는 했지만 나아지지는 않는다. 십여분도 달리기가 힘들었던 지난 여름 몸통과 하체가 따로 놀고 있음도 느꼈다.


읽고 옮기고 찍고 펼치는 일들은 내 몸과 마음으로 통한다. 

이런 일들로, 사건들로 더 촘촘한 시간들과 세밀한 분석과 유연한 움직임들로 그 시공간들이 채워지면 재미나겠다는 마음도 자리잡는다. 


꽃들로 만개한 주변은 새순들까지 배경으로 자리잡아 더할 나위가 없다. 계약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나누다가 몸은 일터를 뛰쳐나오다시피한다. 이런 날은 구경삼아 날아다녀야지. 몸이 얼마나 감당할지 모르지만, 오버하지 않고 천천히 달린다. 푸르름과 풀, 풀 색, 구름색, 강 색, 바다 색 어느 것 하나 마음의 불편들을 가라앉히는 재주가 있다. 21.1k 2시간 반


시대의 우울과 족쇄가 걸려있지만, 새삼 칭칭동여매여져 있단 사실도 알게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날, 또 새로운 일상이 다가선다.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세세히.


어두운 생태학

 1


인간 조건의 변화에 관한 모든 서사는 에너지원 착취에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서사거나 대사적 체제에 대한 설명이다여기에 인간에너지를 아우르기 때문에 한 차원 더 일반적으로 확장된다인간이이제 자신이 모든 종류의 비인간적 장소의 규모에 압도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그 장소에 사로잡히고 그 장소는 더 이상 인간적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57

 

원인과 결과는 사물들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앞에” 있으며이 앞은 공간적 앞이 아니라 존재론적 앞입니다이는 인과성이 있기 위해서 언제나 이미 객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포스트뉴턴주의 세계에서 인과성은 미적 차원 속에서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볼 수 없으며그 사물의 인간-풍의 상관항을 볼 수 있습니다. 61

 

초월론적 주체칸트주의적 주체에 대한 일련의 희망에 찬 대체물이 발생합니다예를 들어 정신(헤겔), 의지(쇼펜하우어), 권력의지(니체), 현존재(하이데거)가 바로 그것입니다맑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경제적 관계들이 사물들을 실재적으로 만듭니다본격적인 헤겔주의적 라캉주의적 알튀세르주의 버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종심입니다이런 문화적 맑스주의자에게는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경제적 관계들이 있게 됩니다. 68

 

지구’ 규모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기이한 일입니다낯설게 낯익고 낯익게 낯선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내가 좀비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은데혹은 차라리 내 의지에 상관없이 내가 좀비의 구성요소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71/실재한다는 것은 모순된다는 것여러분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입니다실재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항상 현재하는 식별하기 쉽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73

 

우리는 여전히 1만 2천 년의 현재” 순간지질학적 시간의 한 섬광의 내부에 있습니다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이것이야말로 <<어두운 생태학>>이 우리를 메소포타미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이유입니다.78/글루텐-프리 다이어트구석기 다이어트 paleo diet 구석기라는 용어는 우리가 포스트에소포타미아 인간 사회 형태에 사용하는 용어인 신석기neolithic에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합니다. 79

 

공존 없이 출현한 것처럼 문명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아테나 여신 같이 아무런 지원도 없이 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인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을 시작했다는 착상이 겹칩니다. 87/인간 초객체는 초객체들의 생성을 위한 기계가 되었습니다. “문명” 개념과 실제로 현존하는 사회적 공간 사이의 날카로운 불균형그리고 이 차이를 만들어낸 농업로지스틱스 자체 때문에 문명은 생래적으로 유약합니다. 88

 

더 많은 행복이 더 낫고더 많이 현존하는 것이 내가 어떻게 보이든 더 나은 것입니다이 착상은 현존함 자체를 위해 현존함으로서 행복으로 압축표현할 수 있습니다이 생각하기 쉬운 윤리학은 오염방사성 물질인간종과 관련된 문제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101

 

2


-석기 arche-lithic는 결코 증발한 적이 없는 인간과 비인간의 원초적 관계성을 가리킵니다라투르가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한 것처럼 아마도 우리는 결코 신석기인이었던 적이 없습니다이는 구석기 또한 원-석기를 완전히 차단하려고 분투하는 그 농업로지스틱스적 구조 내부에 있는 원-석기의 반짝임을 억제하는 개념이라는 걸 의미합니다우리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수렵-채집 정신을 결코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117

 

-석기가 1만 2천 년의 현재에 붙어 따라다닙니다-석기는 대문자 구의 폭력과 오만을 일소합니다-석기와 그 에코그노시스에는 선과 악필요와 원함자연과 문화인간과 비인간생명과 비생명자아와 무아현전과 부재유와 무의 이분법이 없습니다. 150/-석기는 선형적 시간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인간과 관련된 것이 아닐 따름입니다흐릿한 고리처럼 제멋대로 퍼져 있는 시간성의 기묘한 논리적 우선성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 대 비인간 또는 과거 대 현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그렇기에 우리는 인간 문화’ 외부에서 원-석기의 증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박테리아이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그리고 미래의 생명체로부터 생성되거나 인간에 의해 합성된 화학물 사이의 원-석기 관계입니다. 151/구조들이 사유한 것이 농업로지스틱스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그 목소리들은 그냥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목소리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습니다바뀐 것은 목소리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그리고 이것은 자아-개념으로부터 의식을 벗기는 것과 같습니다에코그노시스적 관점에서여러분은 자기에 관한 특정적 관념 없이도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157

 

/-석기의 목소리들은 비모순율에 따른 한 귀결흑과 백예와 아니요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배중률을 위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일상 경험 중 극히 일부만이 이러한 배제에도 존립합니다예를 들어자기 자신이 방 안이나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출입구에 있을 수 없습니다운동은 불가능해 보이기 시작합니다너무도 많은 생태적 존재자가 배중이고 너무도 많은 생태적 행위가 그다지 하지는 않음과 약간의 영역에 있습니다. 158 문명의 질서정연함은 완전히 미쳤었고 완전히 미친 것입니다. 159

 

사물은 스스로에 의해 가려지기 때문에 다른 사물에 의해 가려집니다재귀는 전체론적이지 않는 전부-아님 즉생태적 가능성 공간에서의 공존을 가리킵니다메타언어는 공존함의 역설-우리는 서로를 함의하며 서로가 아니다-을 환원하려고이 가능성 공간을 탈출하려고 시도합니다. 164 실체와 우유성은 사물이 현존하는 방식이 아닙니다사물에는 지각적 시공간 어디에도 없는 비가시적 균열이 있습니다나는 그 균열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습니다이는 사물이 어떤 것인지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사이의 균열이지만균열 안으로 내 손가락을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둘을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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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으로 가다가 돌아선다. 한밤 중에도 꽃들은 지천이고 흐드러진다. 오르는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나눈 이야기들의 단맛이 입안에 남아있고 환한 맛도 섞인다 싶다. 오랜만에 들른 선술집의 고정석에 앉아 나눈 얘기들. 팝스 사장님은 클로즈 문패를 걸어두고 열심히 노래 연습중이다. 일찍 문을 연 라이브 카페의 깔끔한 곳에서 한잔과 한보따리 얘길 나눈다.


살다보면 우리를 막다른 골목을 만나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어쩌지도 못하는 아이러니나 수수께기 같은 상황들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일상이고 대부분이다. 식사 메뉴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만든 상황일까 만들어진 상황일까? 그래, 섞여있다. 그래 우리는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다. 꼬이기도 하고 얽히기도 하고, 삶의 능선에서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막 이어진 새로운 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일조를 했고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굳이 당연한 이야기를 왜 늘어놓는 것이란 말이야. 한 나라의 역사가, 각 나라의 역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르게 만나고 다르게 넘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기점을, 드러나 사건들을 색다르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무수한 산불, 수해, 태풍에 대한 피해 등등 산사태에 이르기까지 선을 넘는 것들의 행태와 양상이 우리의 상식이란 고속도로와 더 멀리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갇는 시야와 폭을 훨씬 초월하여 다른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는 더욱 옭죄이고,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쓰레기더미를 찾아 일자리를 구한다. 정상적인 판단도 줄거나 부재하며 논쟁이나 회의나 하물며 토론 같은 것들도 갈수록 드물어진다. 그러니 기획기사같은 것도 미디어에서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다. 갈수록 메인을 벗어나는 것들의 품질은 떨어진다. 어쩌면 사람들은 뇌를 밖에 꺼내놓고 살아지는 좀비들 같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피맛만 찾을 뿐, 자기가 왜 여기 이렇게 서 있는지를 묻지 못한다. 물어보지 못한다. 답하지 않으려한다. 이런 와중에 내새끼 우리새끼는 그나마 귀여운 맛이라도 있다. 더 챙겨준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하는 것 아니야. 그러면서 가혹했던 지난 날들을 지워버린다. 맥락이라고는 개나 줘버려하고 자신을 지우고 살아낸다. 그래서 좀비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그렇게 맞닿아 있다. 맹신의 끝엔 자신을 돌아보거나 밖에 서서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만의 예외다.


총칼을 들고 국회에 난입한 일들. 사건. 세계민이 모두 보았는데도 없던 일이란다. 그래서 그 혐오의 끝은 바른 사고를 할 수 없다. 이건 제 자식이 또 그런 짓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무수한 사람들이 한 배에 탄 듯, 선장이 가르키는 곳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리도 많이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말은 거품이 되고 법은 누더기가 되고 신조어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파고 후빈다. 말인지 된장인지. 어처구니 없는 언론과 매체 미디어는 홍수가 범람하듯 한다. 






































  여기 서 너분은 여기 지금의 문제가 구석기가 아니라 신석기때부터라고 한다. 농업혁명때부터 정착하면서부터라고 말이다. 구석기의 유전자가 지금처럼 공복을 부르짖고 꺼르륵 소리를 몸에 챙겨줘야 하듯이 아직 신석기이후를 유전자를 갖을 준비를 못하고 있다한다. 1만 2천년전부터가 문제다.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300-400년전 자본주의부터 출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찬찬히 들여다보자. 우리는 폭탄을 가슴에 품고 다니지는 않지만 시동이라는 버튼을 매일 매순간 말 50마리 백마리를 끌고 누비고 다닌다. 이 비좁은 지구 안을 돌아다닌다. 이렇게 말을 걸기도 한다.


좁은가 비좁아지는가 우리 일상이 어떻게 되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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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고정비를 받지 않고, 없던 일로 하고 계약을 검토해보겠다란 말은 처음으로 그들의 공문을 받아든 연후다. 


사과를 하지 않는다. 진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 계약 당사자인 대표에게 청구할 수밖에 없다. 그 외의 인물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얘길 흘려도 흘려버린다. 며칠 내내 아니 몇 주 내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재계약을 이어가는 것도 맞고, 돈을 받아내는 것도 맞다. 직원들에게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왜 남을 위해 이걸해야 돼. 그건 아니다. 무엇이 분하게 하는지 명확하게 해야한다. 전날 밤새 생각에 생각을 해내며 몸은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게다. 아침이 밝자마자 무도인 경험이 있던 변호사친구를 찾아간다. 나중에, 뒤에서 이건 아닌 것 같고, 앞에서 드러내놓고 내용증명이라도 받고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듣는다. 그들 입장에서 대안도 대체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문서 작업을 시작하고 일주일내 회신요청 문구를 넣는다. 그렇게 온 것이 그 서류다. 대책회의를 하고 네트워크가 움직여지는 것이 조금은 느껴진다. 그게 처음이다. 조직은 의견이 흐르기나 하는 것인지, 중간에서 다 잘라먹은 것은 아닌지, 왜 그토록 나은 결정은 못하는지 3종세트가 읽혀진 것이다. 


청주무심천 마라톤을 나간다. 다소 쌀쌀한 날씨 몇 분전에 준비운동을 마치고, 몇 분 전에 출발 대기선을 서거나 몇 번째 줄에 서는 것이 나은지 하나하나 계산의 연속이다. 5분에 가까이 가고자 하나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그만 둘 생각이다. 그만두자.  

계약을 이어나가봤자 그 친구들은 더 빼먹을 궁리만 한다고 치고 나오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받다. 건설토목업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왔을 수도 있다고 또 다른 분의 충고도 받다. 더 이상 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면 당신이라도 계약을 하겠느냐.


그만두자. 나는 내 길이 있는 것이고, 직원들은 직원의 길이 있는 것이다. 사무실의 짐들이 빠져나갈 생각을 하자 먹먹해진다. 정든 바닷가와 바닷가 사람들도 헤어진다는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 스며든다. 


버렸다.

또 다른 서류를 가지고 온다.

정말 그만두실거냐고 묻는다. 긴장이 실낱처럼 비친다.


소소아트시네마 로비에 책장을 만든다. 집의 책들을 옮긴다. 좀더 위까지 한, 두 단을 더 올려 만들자고 한다. 책들도 채워지고 화분과 화환도 놓여지니 전시의 배경이 잘 만들어진 셈이다. 전시를 위해 오고가는 길, 이 상황의 스토리가 나눠진다. 한 두 서너 친구들의 의견이 얹혀서 내려온다. 그러길 몇 회. 소소의 공간이 익숙해진다. 앞 대학교 풍경도 더 친해진다. 봄으로 향하는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아이들이, 아니 지은이까지 꽃다발을 해서 온다. 밖의 콜라쥬 작품부터 설명을 이어나간다. 모임이나 공동체, 아니 단체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기 그릇에 담겨있기도 하고, 그동안 바램들이기 하다. 서로에게 뭐라도 하나 들고가서 만나라. 선물이어야 한다. 달라지지 않는 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이 사회에서 여기에 있기도 하다.고. 그래도 다른 전시보다는 마음이 가까이 스며가고 있구나 한다.


이렇게 풀어진 주말을 안고 내려오면 여전히 팽팽한 일터가 다가온다.

그만둔다. 빨리 내놓으라고 한다.

어려워. 어려우면 분납하는 안까지 제시해둔다.

논의되지 않는 항목까지 넣어둔다.


내년을 위한 일이다. 만일을 대비하는 일이다.


이렇게 간간이 깊고 반복되는 숙취도 곁에 있다.

폭삭 속았수다 16회까지 많이 취하는 봄밤이다.


몸도 취해

빨아서 널고싶을 지경이다. 

집 청소를 하고 환기시키고 걸레로 닦는다.


햇볕에 널고싶다. 뽀숭뽀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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