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상처나 난다. 흉터가 생긴다. 누구나 갖고 있다. 아픈 기억과 나와 다른 환경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충격들은 나와 섞이지 못하고 동거한다. 불쑥불쑥. 트라우마다. 한가롭고 싶지만, 정작 한가한 시간들이 주어지면 못참는다. 지루한 것이다. 인간은 그렇다. 좋다가도 말고, 나쁘다가도 좋아진다. 생명은 그렇다. 그렇게 자신을 지워내며 남을 이겨내며 면역이 생기며 살아가는 존재다. 


능동태와 수동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존재들은 이렇게 언어에 의해서도 갇혀있다. 그들에게는 나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줘야 한다. 주어와 가끔 명사만 반짝거리고 그렇게 반짝여야 한다. 대명사의 사소한 그것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지금을 살아내는 존재는 그래서 경계가 없다. 심문의 언어, 자책의 언어만이 있어, 정작 자신이 어디에 처해 있는지 볼 수 없는 환경이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교과서에나 있다. 역사와 기억을 가진 존재는 말과 환경이라는 폭력에 끊임없이 자가교정을 하는 존재다. 그러니 교과서 밖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만성통증이라는 것은 신경에도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기억이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다스리는 것이기도 하다. 


윤과 국힘 정권의 삼년은 이런 배제와 이분의 늪과 같은 과정이었다. 끊임없이 혐오와 수치심과 자극으로 한편을 적으로 몰라내고 폐기시키려는 것이 본질이었다. 한 번도 품으로 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언론과 미디어의 지난 십년의 수사를 보라. 심문과 자책의 단어, 그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늪에서 누군들 온전하겠는가. 지금 우리는 어쩌면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트라우마다.


당사자연구라는 것이 이 책들 사이 여러 번 나온다. 정신병, 우울. 나의 서사를 타인에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내 병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섞여나가면서 알아지며 달라지는 관계, 그러면서 정작 갇힌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쯤에서야 달라지고 낫는다 한다. 


숫한 비평과 날선 정치인들에겐 책임의 언어가 부재하다. 비난과 비판만 있지 회복적 비평이 없는 세상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의 일상의 미세한 틈의 말들도 바꾸ㅕ야 조금씩 바꿀 수 있고, 타자의 반면도 나라는 사실을 알아채가는 과정이 있어야 바뀐다. 우리는 우리를 너무도 험하게 몰아부쳤다. 


헌법수호의 날. 민주회복의 날에 지금을 너머서는 우리를 상상해본다.


볕뉘


정정. 실수, 실패. 우리는 무수한 환경과 면역을 이루어내는 존재다. 순간순간 실수, 실패가 우리를 이겨내는 전부다. 인정한다는 전제아래. 이 암울이 비처럼 내리는 세상에는 질투가 힘이 아니라 실수을 정정해내는 힘. 실패를 인정하는 분위기. 자신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힘들이 우리를 겨우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회복해야 한다. 말할 기회를 변론할 기회를 인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타인과 그릇된 자신을 함께 비추거나 봐 줄 광장도 필요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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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으로 가다가 돌아선다. 한밤 중에도 꽃들은 지천이고 흐드러진다. 오르는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나눈 이야기들의 단맛이 입안에 남아있고 환한 맛도 섞인다 싶다. 오랜만에 들른 선술집의 고정석에 앉아 나눈 얘기들. 팝스 사장님은 클로즈 문패를 걸어두고 열심히 노래 연습중이다. 일찍 문을 연 라이브 카페의 깔끔한 곳에서 한잔과 한보따리 얘길 나눈다.


살다보면 우리를 막다른 골목을 만나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어쩌지도 못하는 아이러니나 수수께기 같은 상황들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일상이고 대부분이다. 식사 메뉴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만든 상황일까 만들어진 상황일까? 그래, 섞여있다. 그래 우리는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다. 꼬이기도 하고 얽히기도 하고, 삶의 능선에서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막 이어진 새로운 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일조를 했고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굳이 당연한 이야기를 왜 늘어놓는 것이란 말이야. 한 나라의 역사가, 각 나라의 역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르게 만나고 다르게 넘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기점을, 드러나 사건들을 색다르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무수한 산불, 수해, 태풍에 대한 피해 등등 산사태에 이르기까지 선을 넘는 것들의 행태와 양상이 우리의 상식이란 고속도로와 더 멀리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갇는 시야와 폭을 훨씬 초월하여 다른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는 더욱 옭죄이고,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쓰레기더미를 찾아 일자리를 구한다. 정상적인 판단도 줄거나 부재하며 논쟁이나 회의나 하물며 토론 같은 것들도 갈수록 드물어진다. 그러니 기획기사같은 것도 미디어에서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다. 갈수록 메인을 벗어나는 것들의 품질은 떨어진다. 어쩌면 사람들은 뇌를 밖에 꺼내놓고 살아지는 좀비들 같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피맛만 찾을 뿐, 자기가 왜 여기 이렇게 서 있는지를 묻지 못한다. 물어보지 못한다. 답하지 않으려한다. 이런 와중에 내새끼 우리새끼는 그나마 귀여운 맛이라도 있다. 더 챙겨준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하는 것 아니야. 그러면서 가혹했던 지난 날들을 지워버린다. 맥락이라고는 개나 줘버려하고 자신을 지우고 살아낸다. 그래서 좀비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그렇게 맞닿아 있다. 맹신의 끝엔 자신을 돌아보거나 밖에 서서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만의 예외다.


총칼을 들고 국회에 난입한 일들. 사건. 세계민이 모두 보았는데도 없던 일이란다. 그래서 그 혐오의 끝은 바른 사고를 할 수 없다. 이건 제 자식이 또 그런 짓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무수한 사람들이 한 배에 탄 듯, 선장이 가르키는 곳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리도 많이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말은 거품이 되고 법은 누더기가 되고 신조어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파고 후빈다. 말인지 된장인지. 어처구니 없는 언론과 매체 미디어는 홍수가 범람하듯 한다. 






































  여기 서 너분은 여기 지금의 문제가 구석기가 아니라 신석기때부터라고 한다. 농업혁명때부터 정착하면서부터라고 말이다. 구석기의 유전자가 지금처럼 공복을 부르짖고 꺼르륵 소리를 몸에 챙겨줘야 하듯이 아직 신석기이후를 유전자를 갖을 준비를 못하고 있다한다. 1만 2천년전부터가 문제다.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300-400년전 자본주의부터 출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찬찬히 들여다보자. 우리는 폭탄을 가슴에 품고 다니지는 않지만 시동이라는 버튼을 매일 매순간 말 50마리 백마리를 끌고 누비고 다닌다. 이 비좁은 지구 안을 돌아다닌다. 이렇게 말을 걸기도 한다.


좁은가 비좁아지는가 우리 일상이 어떻게 되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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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고정비를 받지 않고, 없던 일로 하고 계약을 검토해보겠다란 말은 처음으로 그들의 공문을 받아든 연후다. 


사과를 하지 않는다. 진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 계약 당사자인 대표에게 청구할 수밖에 없다. 그 외의 인물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얘길 흘려도 흘려버린다. 며칠 내내 아니 몇 주 내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재계약을 이어가는 것도 맞고, 돈을 받아내는 것도 맞다. 직원들에게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왜 남을 위해 이걸해야 돼. 그건 아니다. 무엇이 분하게 하는지 명확하게 해야한다. 전날 밤새 생각에 생각을 해내며 몸은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게다. 아침이 밝자마자 무도인 경험이 있던 변호사친구를 찾아간다. 나중에, 뒤에서 이건 아닌 것 같고, 앞에서 드러내놓고 내용증명이라도 받고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듣는다. 그들 입장에서 대안도 대체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문서 작업을 시작하고 일주일내 회신요청 문구를 넣는다. 그렇게 온 것이 그 서류다. 대책회의를 하고 네트워크가 움직여지는 것이 조금은 느껴진다. 그게 처음이다. 조직은 의견이 흐르기나 하는 것인지, 중간에서 다 잘라먹은 것은 아닌지, 왜 그토록 나은 결정은 못하는지 3종세트가 읽혀진 것이다. 


청주무심천 마라톤을 나간다. 다소 쌀쌀한 날씨 몇 분전에 준비운동을 마치고, 몇 분 전에 출발 대기선을 서거나 몇 번째 줄에 서는 것이 나은지 하나하나 계산의 연속이다. 5분에 가까이 가고자 하나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그만 둘 생각이다. 그만두자.  

계약을 이어나가봤자 그 친구들은 더 빼먹을 궁리만 한다고 치고 나오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받다. 건설토목업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왔을 수도 있다고 또 다른 분의 충고도 받다. 더 이상 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면 당신이라도 계약을 하겠느냐.


그만두자. 나는 내 길이 있는 것이고, 직원들은 직원의 길이 있는 것이다. 사무실의 짐들이 빠져나갈 생각을 하자 먹먹해진다. 정든 바닷가와 바닷가 사람들도 헤어진다는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 스며든다. 


버렸다.

또 다른 서류를 가지고 온다.

정말 그만두실거냐고 묻는다. 긴장이 실낱처럼 비친다.


소소아트시네마 로비에 책장을 만든다. 집의 책들을 옮긴다. 좀더 위까지 한, 두 단을 더 올려 만들자고 한다. 책들도 채워지고 화분과 화환도 놓여지니 전시의 배경이 잘 만들어진 셈이다. 전시를 위해 오고가는 길, 이 상황의 스토리가 나눠진다. 한 두 서너 친구들의 의견이 얹혀서 내려온다. 그러길 몇 회. 소소의 공간이 익숙해진다. 앞 대학교 풍경도 더 친해진다. 봄으로 향하는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아이들이, 아니 지은이까지 꽃다발을 해서 온다. 밖의 콜라쥬 작품부터 설명을 이어나간다. 모임이나 공동체, 아니 단체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기 그릇에 담겨있기도 하고, 그동안 바램들이기 하다. 서로에게 뭐라도 하나 들고가서 만나라. 선물이어야 한다. 달라지지 않는 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이 사회에서 여기에 있기도 하다.고. 그래도 다른 전시보다는 마음이 가까이 스며가고 있구나 한다.


이렇게 풀어진 주말을 안고 내려오면 여전히 팽팽한 일터가 다가온다.

그만둔다. 빨리 내놓으라고 한다.

어려워. 어려우면 분납하는 안까지 제시해둔다.

논의되지 않는 항목까지 넣어둔다.


내년을 위한 일이다. 만일을 대비하는 일이다.


이렇게 간간이 깊고 반복되는 숙취도 곁에 있다.

폭삭 속았수다 16회까지 많이 취하는 봄밤이다.


몸도 취해

빨아서 널고싶을 지경이다. 

집 청소를 하고 환기시키고 걸레로 닦는다.


햇볕에 널고싶다. 뽀숭뽀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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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보일 듯한, 아니 끝이 보이는 고개인 줄 안다. 하지만 한 고개가 남아있다니, 아불싸 


문구센터를 오가며 걷는 길에 봄꽃들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눈도 나빠진 연유도 있지만 맑은 햇살은 꽃술 하나하나를 드러내며 AI 사진이나 영상처럼 솜털하나 놓치지 않고 움직이는 것 같다. 기괴함을 넘어서는 현실감을 맞고 있다. 계절은 동전의 양면처럼, 앞장이란 봄은 없고, 바로 여름이다, 뒤장인 겨울만 움츠러들고 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 교육을 받은 것만이 아니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낮한낮, 한틈한틈 우리는 그 상황을 잊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날리면과 입틀막의 장본인들은 애써 자신을 숨기려는 듯, 지우려는 듯 더 큰 일들로 자신을 뒤짚어 엎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뒤에 서서 앵무새처럼 맞다맞다 옳다옳다 맞장구친 국가의 짐인 세력들이 오늘도 아우성이지 않는가? 범죄를 범죄로 덮고 나라까지 덮으려 안간힘을 쓰는 범죄인들은 오늘도 입에 거품을 물 듯, 거짓을 꺼리낌없이 뱉고 있다. 여전히.


채권, 채무 관계가 법의 기본이다. 어쩌면 죽어간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진 것이 또한 그 법일 것이다. 숱한 상처와 일상들이 날아간 실제상황이 법에 묻어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왜 만들어진 것이란 역사도 중요한 것이다. 


상식이 뒤돌아 도망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무도하게 힘앞에, 헤쳐먹을 궁리 앞에 넙죽넙죽 절하거나 아부떨기를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과 군상들의 토악물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그 토사물이 진주라고 금이라고 은이라고 받쳐 써주는 언론과 미디어도 넘치지 않는가? 양심이라고도 부르는 상식의 불씨를 그들에게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자기가 얘기한 동영상과 증거가 넘치는데도 아니란다. 싸다귀를 날리고 싶은 세상이다.


불법 도급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하도급법이다. 원사업자의 갑질을 막기위해 11개의 의무사항과 4개의 금지사항을 넣어 만든 것이 현재의 법이다. 공정거래위의 관할아래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 손해배상과 처벌이 뒤따른다. 


공장 주인이 바뀐 이래, 원사업자가 조바심을 내고 일년내내 직장괴롭힘방지나 도급에 무개념으로 일원을 아까워하는 행태가 계속된다. 그 불 손이 경계를 너머서려고 한다. 그래서 담당참모에게도 제발 빨리 원가분석이래도 하셔라, 그렇게 바닥을 보고나서야 계약을 다시하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라고 붙어 채근한 것이 몇 달동안이다. 움직이지 않는 그는 오너의 지시를 거꾸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겨우 움직인 것이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떼어먹을 수도 있다.라는 확신아닌 확신이 생긴다. 그렇게 문서를 뜨문뜨문 보낸 것도 몇 달이다. 그들은 모든 우려를 불식하고 헤쳐먹는다. 양심도 상식도 없이 낼름해드신 것이다. 마지막 카드인 회계년도 변경까지 무시하면서 감액을 지정해주기까지 한다.


유난히 추운 봄이다. 하루하루 불안한 겨울이 섞여있는 봄들이다. 영하의 언저리는 그래도 작업복차림으로 달릴 만하다. 소화 겸해서 움직여주면 몸에 조금조금 되갚아준다. 그렇게 라이딩이나 달려주지 않으면 이런 긴장과 압박에서 견뎌나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반복과 퇴행. 퇴행과 퇴행. 회의록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은 참모들은 기계같다. 생각이라는 것은 밖에 두고 온 것 같다. 받은 지시가 중요한 것이지, 같이 나누는 대화의 맥락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다. 기계처럼 말하고, 기계처럼 회의록을 남기고 올린다. 대체 뭐가 결정되고 뭐가 소통되는지 알 길이 없다. 


모든 자료와 모든 한계가 동시에 나온다. 속셈도 드러난다. 협의가 애초에 필요가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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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조팝나무

매화

동백

개나리

벚꽃

백목련

자목련

복사꽃


마음은 준비도 되지 않아 마주치기가 저어하다. 대체 뭘 본 건가. 이래도 되는 건가. 묻지 않던 질문들이 나온다. 마음은 볼록해져 본 것들을 밀쳐내기만 한다. 


매화

동백

개나리

개나리

목련

진달래

조팝나무

벚꽃


그리고

도화


해본다. 순서도 아래위도 법도 질서도 진실도 없는 세상을 보면서 뭐라고 해야하나.



 짬을 내어 오를랑 하이브리드 전시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세계시민으로 자신을 예술에 바쳤다라는 표현은 알맞다.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시키는 모습도 놀랍다. 끊임없이 읽기와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일상도 안이하지 않다. 철저하고 예리하게 현실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수많은 우려가 현실로 전화되는데도 국가의 짐이 되는 군상들은 자신의 근거없는 이념적 야욕과 힘과 권위와 권력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무리들을 끊임없이 끌어모은다. 사실과 현실은 분별을 잃고 혐오을 부추키고 선동에 하루하루를 지운다. 행정은 위기를 앞서나갈 수 있어야 한다. 순환하는 기후위기에 넋놓고 무책임한 집단들은 처음본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그저 국짐을 좋아만 하는 좀비족속들은 어찌하랴.


봄이 제자리를 잃은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한단 말인가? 포월, 초월이 아니라 저월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을 뿌리깊게 귀 기울여야, 아니 몸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한 자연이란 없다. 이 지구는 수백마리의 말을 끌고 나오는 증기기관덩어리다. 그 덩어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이란, 사고의 파격을 원한다. 대체 생각이 자랄 곳은 어디란 말인가. 법마저 갈 길을 잃은 지금이란 자리에서 한 걸음을 어찌 디뎌야한단 말인가.


 '오를랑'


1947-

성형소식은 들었지만

뿔까지 한 줄은


책이 쌓여있더군요

한 단어를 위해 그렇게

노력한 줄은


친밀성의 소멸을

예견해서 그런 줄은 몰랐네요

슬로우 댄스를


목소리가 아름다웠다는


세계의 시작이란

그림은 알지만

전쟁의 시작이란

그림도 알고 말았다는


많은 게

한 꺼번에

다가온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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