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했다. 막막하다. 여전히 진행형인 일들. 먹먹함을 잊은 자들. 연민이라는 것의 의미마저 모르는 사람들. 눈물을 잊은 자들. 눈물을 잃은 자들. 다리가 무너져야 다리가 튼튼해지고, 배가 가라앉아야 배가 뜬다. 배는 또 바다로 떠날 것이고, 다리가 없는 다리는 또 허공 위에 지어질 것이다. 매듭을 모르는 순환의 고리.
활자. 텍스트. 글. 중독이라고. 글을 읽는 사람, 글을 해석하는 사람, 글을 보는 사람, 글을 무서워하는 사람, 글을 찾는 사람, 글을 어지러워하는 사람. 글을 모시는 사람들까지.
글에서 찾아낸 밑줄의 마음들을 녹여내고 싶다. 돌멩이 하나하나 돌탑을 쌓듯이 빈 공간을 활자로 채우고 나니 화병이 볼만해진다. 네 손 끝과 내 글끝이 닿도록 펜을 그린다.
날리거나 불리거나 걸리거나 네 마음이다. 내 마음이다. 그 색색의 마음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펄럭인다. 그림자에 텍스트를 넣어볼까 하는 오만을 접는다. 리폼 패브릭 스티커를 이용하거나 면섬유에 색을 입혀 오리고 붙인다.
간절함들이 어서 닿길 바란다.
내다보거나 그리워하기만 할 뿐, 다가갈 수 없는 풍경들. 그런 그리기 방식에 물린 화가들이 찾는 다른 방법들. 웨인티보의 그림들이 다가오고, 한국화, 동양화의 다시선 작품들이 동시에 들어온다.
붓은 될 수 있으면 쓰지 않고, 찍고 밀고 물감을 물컹하게 올린다. 꿈으로 들어서는 출입문과 무지개 색방울에 마지막 심혈을 기울인다. 떨지마. 손끝도.
8여 년 전 대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을 앞두고 대동역에서 내린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하늘 공원으로 오르는 골목길. 어부바하는 이 층모습을 한 대동작은도서관이 나온다. 그 겨울, 그곳에 머무르면서 글도 쓰고, 락서(樂書)도 하고, 구석구석 마실 삼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둔다.
작업실에서 누군간의 손을 떠난 남은 물감들을 모아 밑바탕을 그려둔다. 대전역 빌딩 숲들 사이로 바쁘게 쫓겨 가는 우리들의 회색빛 뒷모습. 골목골목 따스함을 그려보고 싶다. 기다리거나 기댈 수 있는 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