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동 평전 2
4. 인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프루동은 혁명의 정치 원리가 사회 원리와 다르다고 자신의 책에서 얘기했고, 1848년 초기에 불기 시작한 폭풍을 토크빌만큼 잘 알아챘다. 241
<<사회문제의 해결>> <<민주주의>> ㄱ. 경제적 빈곤의 근원인 기본 모순들을 건드리지 않고 사회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것이 실수. ㄴ. 보통선거권을 신성시하는 것은 중요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소치라는 것 ˝결코 사회개혁은 정치개혁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정치개혁이 사회개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ㄷ. 사회개혁을 위한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제안들 <<과세와 대부, 정화, 지폐, 가격통제, 징세, 파산, 농지법, 빈민법, 국립 작업장, 조합, 주식이나 국가 개입이 없는, 상업과 산업을 방해하지 않는, 소유를 공격하지 않는 사회문제의 해결, 신용대부와 유통의 조직>> 노동자 이름으로 요청하는 것은 교화에서의 공정성과 호혜성, 신용대부의 조직화이다. 251, 252 고리대금에 종속되지 않게 노동자들의 실제 생산품이 통화로 사용되고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생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교환권, 생산성을 기준으로 각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교환권의 사용으로 실현될 수 있다. 253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적인 이해관계들이 사회를 거스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것은 보통선거권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통선거권은 공화국을 물신화한다. 이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경제혁명은 계속 미루어지고, 그럴수록 우리는 왕정과 독재, 야만주의로 퇴보할 것이다. 258 그 시대의 사람들 중에서 사회악을 없앨 최고의 치료제라는 보통선거권의 환상의 위험성을 즉시 파악했다는 것이 프루동의 명예이다. 259
모든 새로운 이념은 세례를 받는다. 잘못 이해되고 성급하기에 맨 먼저 이념을 퍼뜨리는 사람은 지나친 철학적 독립성 때문에 그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다. 266
총소득을 없애서 소유를 점유로 환원시키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낡은 사회의 폐지가 정파의 열정과 선악의 신념에 따라 폭력이나 평화로 결판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가 그 첫 단계로서 소득에 세금을 매기자는 자신의 제안에 동의해서 평화로운 이행을 이루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가진 자들은 스스로 혁명적인 사업에 기부해야 하고, 만일 거절한다면 그 결과를 책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273
프루동은 역사를 네 단계로 나눴다. 기독교 혁명은 신 앞에서 인간의 평등을 선포했다. 르네상스는 이성 앞에서 평등을 선포했다. 계몽의 시대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선포했다. 19세기의 네 번째 혁명은 일할 권리에 바탕을 뒀으며, 그 모토는 재산 앞에서의 평등이고 그 목적은 박애였다. ˝오늘날 노동은 자본의 통제 하에 있다. 혁명은 그 질서를 바꾸라고 말한다. 자본은 노동의 우위를 인정하고, 생산도구는 노동자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 281
인민은행은 노동자들의 조합을 장려할 목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총연합˝으로 알려진 자회사와 제휴할 예정이었다. 287
5. 감옥에 갇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혁명의 원리는 해방이다. ㄱ. 보통선거권을 조직화하고 사회 기능의 집중을 독립적으로 만들며 헌법을 지속적이고 영구적으로 개정함으로써 정치적인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 ㄴ. 신용대부와 판매를 상호 보증함으로써 산업에 대한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인간이 권력을 축적해서 다른 인간을 더 이상 지배하지 않는 것이자 인간이 자본을 축적해서 다른 인간을 더 이상 착취하지 않는 것이다.308
아이러니의 정신: 아이러니, 참된 해방! 권력에 대한 야심에서, 정파에 대한 종속에서, 판에 박힌 일상에 대한 존중에서, 학문의 현학성에서, 위대한 인물에 대한 존경에서, 정치의 신비화에서, 개혁가에 대한 맹신에서, 이 위대한 우주에 대한 미신에서, 자아도취에서 나를 해방시킨 것은 바로 아이러니이다. 309
<<19세기 혁명의 일반 이념>> 이 책에서 미슐레의 가장 소중한 희망을, 즉 인간의 궁극적인 자유, 영원히 재조직되는 대중의 주도권, 농민에게 보장되는 토지 ㅅ유를, 분할과 합병, 임대, 소작, 저당, 남용 때문에 처음부터 분명치 않았고 이제 확실히 반공화주의적이고 부도덕해진 제도를 만들었던 모든 원인들이 제거된 토지 소유를 실현하려는 시도를 보게 되리라고 감히 믿습니다. 330
혁명은 침울하게 정해진 운명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지자들의 핏물 사이로, 친구들이 뿌린 꽃을 밟으며, 적의 시체를 밟으며....혁명이 통역사들은 정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봉건제의 부괴가 요청했던 경제구조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옛날 왕의 지배을 흉내 낸 정부 지배와 봉건제, 군부 지배의 자리에 새로운 산업구조가 세워져야만 한다. 이렇게 절실한 혁명을 낳을 수 있는 수단은 조합이다. 331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합은 유용하다. 노동자들의 조합은 사소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난번 혁명이 건드리지 못하고 남겨 둔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332 계약이라는 개념은 정부라는 개념을 배제한다. 계약하는 당사자들 사이에는 반드시 각 개인들의 진정한 이해관계가 있다. 한 인간은 자신의 자유와 재산을 동시에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협상한다. 반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는, 제 아무리 정부의 대의나 위임 체계를 만든다 해도 반드시 시민의 자유와 재산의 일부를 빼돌린다. 332 법은 더 이상 다수결이나 심지어 만장일치로도 결정되지 않는다. 각 시민과 각 마을, 각 산업 연맹은 자신의 법을 만들 것이다. 정치권력의 자리에 우리는 산업조합을 놓을 것이다 경찰의 자리에 이해관계의 일치를 놓을 것이다. 정치의 중앙집권화라는 자리에 우리는 경제적인 집중화를 배치할 것이다. 법정은 중재재판으로, 국가 관료제는 분권화된 직접 관리로 대체될 것이다. 노동자의 조합들이 대규모 산업이나 운송을 관리할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교육을 통제할 것이고 도제 교육과 분리될 수 없는 교육, 직업 교육과 분리될 수 없는 학문교육이라는 통합 교육이 전통적인 연구를 대체할 것이다. 333
6. 정의의 협객이 되다.
프루동은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보편 운동의 긍정을, 그 결과 모든 변하지 않는 형식과 공식을 부정하고, 영원이나 영속성, 완전무결함에 관한 교리를 부정하며, 우주의 질서를 포함해 모든 영원한 질서를 부정하고, 변하지 않는 영적이거나 초월적인 모든 주체와 객체를 부정한다....인간에게도 최종적인 결말이란 없다. 규칙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진보는 계속된다...프루동에게 진보는 연방주의, 인민의 직접 통치와 같은 의미였으며 진보라는 개념이 사회관계에서 ˝헌법과 교리문답˝을 대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367
<<증권 거래 교본>>
우리는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믿고, 그 변화가 자유와 개인이 평등, 인민의 연방을 향한다는 점을 믿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폭력이나 강탈로 이루어지는 것을 웒지 않는다. ..조건이 불평등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 정부가 착취당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계급에 맞서, 착취하고 소유한 계급을 보호하는 체제로 변질되었다. 369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
정의를 그렇게 중요하게 만들고 인간 존재와 사회구조, 인간과 사회가 움직이는 세곙 관한 역동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은 정의라는 이념의 균형안에서의 동요와 끊임엇는 운동, 불규칙한 변화이다. 392 프루동은 이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성을 넘어서는 신비도 받아들였다....신을 무자빈 적이라 부르고 신과 인간의 증오 때문에 기독교가 존재한다고 선언했던 키르케고르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393
집단적인 존잴ㄹ 구성할 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인간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에게서도 자신의 존엄을 느낀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자기 자신보다 우월한 도덕원리를 담고 있다. 도덕 원리는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고 내재되어 있다...정의는 사랑처럼, 미와 유용성, 진리, 모든 권력과 능력처럼 인간 속에 존재 한다...인간 의식의 발저이나 인간 경험의 발견과 관계가 없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공식을 전제하는 초월적인 정의론은 권위를 좌우명으로 삼는 신권에 의지해 국가 행정부와 도덕적인 통제, 사상의 구속, 인류애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라는 체계만을 낳는다. 395 오직 하나의 상수만을 따르고 더 이상 변수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운동은 획일적이고 직선적으로 될 것이다. 396
너 자신을 존중하라를 규칙으로 삼는 개인의 존엄이라는 원리가 생긴다. 일단 이 원칙이 확립되면, 이치에 맞는 결론ㅇ은 우리가 자기 자신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사랑과 구별되는 정의의 본질이다...모든 사람의 이성이 동일하다는 점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이끄는 존중감에서, 정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397
프루동은 지금처럼 순전히 영토나 정치적인 고려보다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인민이 건설하는 행정 구조를 구상했다. 이 행정은 지배하거나 중앙 권위를 강요하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를 서로 협동하도록 배치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혁명은 출신이나 인종을 인정하지 않는다....한 곳에서 혁명을 실현하면 세계가 뒤따를 것이다. 그 경제 제도의 힘과 신용대부라는 선물, 사상의 탁월함은 전 세계를 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399.모든 실용적인 도덕과 마찬가지로 교육은 개인의 양심에 행동 기준을 두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내적 자아를 빼앗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끊으며 죽음 앞에 이른 인간의 사기를 꺾고 정의의 토대인 인간의 상호존중을 파괴한다..인간 생활이 다음의 조건들을 만족시킬 때 그 삶은 충만해진다..ㄱ. 사랑, 부성, 가족 ㄴ. 노동 또는 산업생산 ㄷ. 사회적인 참여 또는 정의, 즉 집단생활과 인류애의 발전에 참여하는 것. 400
프루동이 보기에 근대사회를 재앙에 빠뜨리는 측면 중 하나는 이념과 노동의 분리이다. 철학과 학문들은 인간의 노동 생활에서 나왔고 이념은 행동에서 생겨났기에, 이 둘은 분리되면 안 된다. 따라서 철학과 학문은 산업과 재통합되어야 한다. 실천적 수단으로 경작자에게 땅을, 장인에게 기술을, 자본을 이용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본은, 생산자에게 생산품을, 이익에 기여한 사람들, 즉 사회 전체에게 집단적인 권력의 이득을 줘서 평등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전문화된 도제살이보다 제자에게 인간 산업의 보편 원리를 전수하는 공예식 도제살이가, 청년 노동자가 모든 공정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러다 마침내 동료로 참여하는 것을 인정받는 작업장 조직이 필요하다. 401
우리의 마음에서 절대자를 몰아내면, 모든 이념을 고정되고 획일화된 하나의 개념에 끼워 맞추는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사회의 활기와 역동성만이 아니라 균형과 암묵적인 평화를 이뤄서, 이념과 능력의 적대적인 반응이나 상호적인 반응을 수용하는 사유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사회 내에 합의와 조화를 지속시킬 수 있고, 동시에 영원한 투쟁 상태에 있는 사회 에너지를 유지시켜서 모든 종류의 독재를 피할 수 있다. 402
자유의지나 필연성 모두가 절대명사로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논쟁은 언제나 잘못 이해되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인간 사회를 설명할 수 없고, 해방과 필연성 모두가 자기 역할을 최대한 수행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때 진실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해방의 계열과 필연성의 계열은 평행선을 그리며 동시에 존재한다. 인간은 그 내부에 모든 자연적인 자발성을 담고 있는 인위적인 결합에 자신의 해방을 빚지고 있다. 즉 사회구성체의 자유는 그 모든 다양한 구성 요소의 조화로 나타난다. 404
7. 망명을 떠나다
<<전쟁과 평화>> 옛날에는 전쟁이 사회 진화의 한 요소로 기능했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전쟁이 그 원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되고 더욱더 그 기능을 남용하게 된다..프루동은 극도의 빈곤과 가난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만든다. 가난은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충분히 일을 함으로써 도달하는 이상적인 조건이고, 강자의 탐욕은 자신들의 부를 위해 극도의 빈곤을 낳았고, 이것은 국가가 무자비한 전쟁에 탐닉하면서도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지 않는 내부의 불균형이 가져올 결과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근대 시기에 전쟁은 경제 혼란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의 결과이다. 441 프루동의 기본 입장은 전쟁이 하나의 사회 현상이기 때문에, 전쟁을 수동적으로 반대하는 전통적인 평화주의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능동적인 깨달음이 생겼다. 442
소유는 개인주의를 대변하고 국가는 개인의 해방을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따라서 프루동은 인간이 국가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을 돕도록 소유개념을 조정하려 했다. 자유로운 신용대부와 조합으로 이루어진 상호주의 제도는 소유의 남용을 막을 것이다. 분권화와 연방 기구는 국가의 강제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근본 원리가 없는 소유는 사악하다. 그러나 근본 원리가 통제하는 소유는 고삐 풀린 산업주의의 공격에 맞서는 사회의 지원군이 될 수 있다. 450
나는 소유를 이해할 수 있고 합리적이며 정당하게 만드는 고려 사항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 고려 사항 밖에서는 여전히 소유가 강탈이자 증오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조건에서도 소유는 여전히 내게 잘 맞지 않느 이기적인 무언가를 계속 지니고 있다. 증오와 힘의 남용을 거부하는 나의 평등주의적이고 통치에 반대하는 이성은 소유를 하나의 보호 장치로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소유를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심장은 결코 소유를 충실히 대할 수 없다. 451
이탈리아 통일: 마치니와 가리발디, 이탈리아 혁명가들 대다수는 드디어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듯한 자유를 포기하고 중앙집권화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 정책은 자살행위였다..일단 통일 이탈리아가 세워지면 반동 세력이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고, 해방의 진정한 문제인 사회 문제는 오랜 시간 뒤로 미뤄질 것이다 455
8. 고통스러운 노년을 보내다
자유로운 도시들의 연합: 통치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의 결론인 아나키로 1840년을 시작했다면, 나는 유럽 인민들의 권리이자 나중에 모든 국가조직의 필수적인 기반이 될 연방으로 끝을 맺으려 해...시민의 해방과 양심인 아나키, 모든 제한과 경찰, 권력, 판사, 군대 드이 없는 아나키에 직접 의존하는 공공질서는 최상의 사회 미덕과 비슷한 말이자 더 나아가 인간적인 정부의 전형이 될 거야. 466
내 정신의 본성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어. 유동성 그 자체, 하지만 언제나 균형으로 돌아가려 하지. 474
<<예술의 원리>> <<문학적 재산>> 아카데미의 비현실성에 대한 건강한 문제 제기이자 예술가들에게 주변 생활의 풍부하고 영감을 주는 현실성을 꼭 회복하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되야 한다. 예술이 그 영감을 생활에서 끌어내어야 한다고 봤다면, 프루동은 반대로 예술이 생활을 빛나게도 한다고 봤다. 공업과 노동이 예술과 연관되면 고상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윌리엄 모리스나 근대의 공예 디자이너들보다 앞서 나갔다. 482 예술은 우리의 모든 사상과모든 성향, 모든 미덕과 악덕, 어리석음을 드러내어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한 뒤에, 존엄의 발전과 존재의 완성에 이바지하도록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482
1863 생산력을 가진 협도조합들이 제법 설립되었고, 저축은행이자 상호금융이라는 프루동주의 이론을 약간 변형시켜 이용하던 신용대부협회들이 협동조합과 함께 등장했다. 484 국제노동자협회: 보통선거권은 정치적인 면에서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지만 우리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해방시키는 과제는 아직 우리의 몫이다. 부르주아지가 그토록 많은 활력과 끈기로 쟁취했던 해방은 프랑스라는 민주 국가에서 모든 시민에게 확대되어야 한다. 평등한 정치적 권리는 반드시 평등한 사회적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485
<60년대 선언> ㄱ. 사회주의 이념의 재각성 ㄴ. 노동자들이 대변되지 않는 이 상황이 변해야만 한다는 점 ㄷ. 당시 사회의 계급적인 성격에 관한 확인. 현존하는 정당과 정부 제도들이 유산계급을 돕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체계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는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즉 노동자들은 좌절감에 빠진 보잘것없는 존재나 정치적인 권리를 파는 인간이 될 것이다. 프루동은 유일한 해결책이 사회 내의 이런 분할선에 따라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과거 로마의 인민들이 자신들을 귀족과 구분했듯이 당신 자신을 떼어내시오...이런 분리로 당신은 승리할 겁니다. 대표도 없고 후보도 없습니다. 488
<<노동계급의 정치적 능력>>
볕뉘.
가을 장마가 참 길다. 푸른 하늘 보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밑줄을 다시 옮겨적는다. 가까운 동반자였던 쿠르베 화가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간단한 코멘트로 끝낸다는 것이 서로 편지글을 주고 받다가 <<예술의 원리>>라는 저작으로 이어졌다 한다. 이 글의 내용만으로 감을 잡기가 어렵다 싶다. 그의 저작 전쟁과 평화의 전쟁에 대한 관점으로 신선하고 적확하다. 지금 벌어지는 전쟁 역시 그 안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저작은 톨스토이의 소설로 이어지게 했다 한다.
또 다른 원점에서 사유를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