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율이 아니라 백금율; 네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지 마라, 남들은 취향이 다를 수 있다.


1.

이 시점에서 내가 자기 계발 장르의 팬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너무 많은 내적 성찰과 너무 적은 외적 성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시작된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다른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508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황금률이 부족하다고 믿게 되었다. 10장에서 우리는 공감이 나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감지하는 데 우리가 항상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든 관리자, CEO, 언론인 및 정책 입안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실상 강탈하고 있다. 이것이 텔레비전에서 난민 인터뷰를 거의 보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우리의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이 대부분 일방통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이것이 우리 복지국가가 가부장주의에 젖어 있는 이유이다. 513

3.

공감과는 달리 연민은 우리의 에너지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사실 그 후 리카르는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연민이 동시에 더 통제되고, 더 거리를 두고 있으며, 더 건설적이기 때문이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연민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입하는데, 이는 남을 돕는 데 정확히 필요한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있다고 가정ㅇ해보자. 부모로서 당신은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어둠을 두려워한다고 아들이나 딸과 함께 훌쩍거리지 않을 것이다(공감) 오히려 당신은 그들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연민) 515-516

볕뉘.

1. 4월초 지인이 머무르다 이 책 얘기가 나와서, 그건 아닌데 싶었다. 성선설, 성악설 그렇게 흑백으로 나눈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추천해준 책이 앨버트 허시먼 전기였다. 그는 인간을 시계추(이 역시 고루한 표현이지만)처럼 왕복운동하는 진자라는 개념을 써서 나아간다. 그랬을때만 사람을 좀더 폭 넓고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외연의 확장에도 염두에 두면서 이끌어가는 모습이 끌렸다. 또 다른 지인의 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렇게 읽게 된다 싶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결론부터 손이 간다.

2. vflat을 써보고 있다. 줄간이 이어지지 않아 어색하지만 정확도가 높아 더 사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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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들이 손에 다시 잡혔고 다시 읽고 있다. 다시 읽다나니 지난 번 독서는 모호한 끈이론과 다차원, 다중우주에 대한 관심으로 정작 중요한 것들을 지나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는 사이로 플랑크 길이로 이루어지는 양자공간, 양자중력으로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을 다루는 책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싶다. 


빅뱅이 아니라 빅바운스. 블랙홀에 대한 이론이 다르게 접목되고 있음을 알게된다. 하지만 파인만이 그러한 것처럼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에 한표다. 그나마 로벨리, 곽영직의 글들이 역사 속에 실패사례 위주로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방식에 오히려 눈에 잘 들어 온다 싶다. 


지난 번 읽기는 책들 사이 날개귀만 접어놓고 기록해두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짬이 되면 밑줄긋기라고 해두어야겠다 싶다. 그래야 다음에 읽기가 조금은 더 수월해질 듯싶다. 아마 또 다시 읽게 된다면 몇 권의 텍스트와 집중해서 보게 될 듯하다. 주말 몇 권이 흥미롭게 대기중이다.
















볕뉘. 


1. 한 세기 양자역학의 탄생과 실험과학의 발전이 있었지만, 환상과 유행이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과학이 점점 소설화해가는 아이러니 말이다. 중력파와 힉스입자 역시 예견된 파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다. 과학 본연의 임무같은 것은 없겠지만,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검증의 검증, 엄밀화와 더불어 다방면의 앎을 넓혀가는 것도 그 근력을 키우는 방편이겠다 싶다.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발군의 집중력과 깊이를 보여준다 싶다. 좋은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볼 때 지금 여기의 물리학계 현실은 어떤가 되묻고 싶다. 기초체력은 더구나 더...


2. 어쩌다보니 100년이라는 굴레로 우리나가 근대사, 세계경제사, 제3세계, 과학사를 겸해서 보고 있는 셈이다. 미얀마도 그렇지만 지금여기라는 순간이 이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시야를 넓히고 확장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스며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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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덜먼의 책을 덮고,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늦게 든 잠, 새벽녘에 꿈에 또 다시 시달린다. 한 장만 쓴 페이퍼가 더 홀쭉해보였다. 빈약함이 어울리는 그 페이지는 공중에 찢긴 종이가 날리듯 퍼덕거린다. 날렵함이나 날씬함이 아니라 몰골이 쑥 들어간 빈틈투성이라니 말이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며칠 전에 있던 자만감 같은 것들은 대체 어디로 피신중이란 말인가. 가느다란 작대기. 그것도 이어진 막대기가 아니라 간신히 얼기설기 매어진 잣대. 누군가 훅 불면 후두둑 따로따로 땅바닥에 투두둑 떨어질 것 같다.

그들은 덧붙인다. 아니 어쩌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기도 하다. ~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행위자를 그대로 보려하지 않고 놓아두려하지 않는다. 그저 종속적인 위치로 놓는다. 가령 a라는 사물. 쓰레기나 폐기물이라고 하자. 흔히들 이것은 인간들이 부수적으로 만든 것이기에 그냥 처분하거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즉 인간위주의 판단에 종속변수로 놓는다. 이런 사유방식이 정작 문제가 생기면 대처를 하지 못하고 답을 찾을 길이 없다. 찾는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생기는 일이다. 그러니 쓰레기. 핵똥(폐기물). 공정에서 나오는 신규화합물 등등 사물 그대로 행위하는 행위자인 것이다. 매체인 것이다. 서사뿐만이 아니라 그 똥은 끊임없이 악취나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으로 된다거나 해석할 수 있다거나 하는 파악방식은 편의적인 발상이자 다른 것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사유방식이다. 이것은 자신의 분과학문이나 흔히 전문분야라고 그 시선과 잣대로 바라보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행위자가 행위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시선을 너머 선다.


레비나스는 인간적인 공정을 앞에 둘 수밖에 없다고 한다. 철학적인 사유에 보태서 윤리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칼 폴라니가 토지, 노동, 사람 등 실재로 분리가 불가능한 것들을 발라내고 분리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 반면에 허시먼의 저작을 따라가다보면 경제에 정치, 사회뿐만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 심리까지 덧붙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생하게 마주하는 실체로서 학문을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싶다.

포스트 휴먼 이론들은 보지 않으려는 곳들을 보게하는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훅 불면 날라갈 듯 끈기도 풀기도 없는 듯싶다. 그렇게 이 틀들 사이 어디쯤 갈피를 잡지 못하며 서성거리겠지만, 새롭게 버무려지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올 봄에는 아마 이들 사이 여러 갈래길을 거닐고 있을 듯싶다. 설레이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싶다.

볕뉘. 허시먼 책에 하이픈이라는 구절이 나와 생각을 이어 보았다. 브라이언트책도 책속의 책이 참 많다.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하이픈(콕!)

손 내미니 


꽃도

벌도
나비도 한몸.
나-꽃.
너-벌.
우리-나비.

손 잡으니
너-달.
나-별.
우리-하늘.

손 펼치니
나-봄-여름-가을ㅡ겨울-눈
너-겨울-가을-여름-봄-꽃
과학-철학-문학-정치-벌-삶
농도-나비-밀도-글-밥-구름
비-바람-시-가난-풀
이리 한 켜 한켜 쌓다보니
배도 부르고 얼굴도 화끈하고
갈 수 없는 곳도 없다싶어
만나지 못할 사람도 없다싶어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볼 수 있다싶어
어설퍼도 아파도 누추해도 든든해.

마음 모아 ' - 하이픈 '
마음 가득 '하고픈'.
하여튼 하이픈.

하이파이브 닮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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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간의 비참함을 만드는 것은 인간시민사이의 충돌이다. 이 둘을 하나가 되게 만들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그를 국가에 전적으로 내여주거나 완전히 그 자신으로 내버려두어라. 그렇게 하지 않고 그의 심장을 둘로 나누려고 하면 그의 심장은 갈갈이 찢어지게 될 것이다. 947 허시먼은 다성적인 즉 독자적인 여러 음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어울리는 방식의 해결책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사람들과 정책 결정자들이 그것의 복잡성을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복잡한 제도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할 문제해결적 정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948 허시먼은 파스칼이 먹을 거리, 놀이, 기도, 정치에 대해 언급했던 바를 떠올렸다. 그런 영역에까지 비용-편익 계산은 불가능했다. 946


<사회과학에 대한 우리의 견해> 우리의 초점은 더 해석적인 것입니다.954

 

<<금지된 경계를 넘어서: 경제학에서 정치학으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서구에서 좌우파 모두가 전후 서구의 정치경제가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구조적 위기에 처했다고 보고 있었다...‘성장과정에서 오는 고통시스템적 위기와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현재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불합치성이나 근본 모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의 전환에서 발행하는 복잡하고 알기 어려운 특성들이 드러나는 것이었다....실제세계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생각할 때 정말로 유용한 기능은 이런 식의 반대되는 반응을 하는 와중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좌파의 사고가 자기파괴적이라고 보았다. 숙명주의는, 종국에는 반대쪽을 유리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인 덫이었다. 966 시장이 협동과 갈등 둘 다에 대해 흔히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도덕적인 제약들을 만들어내고 무임승차개념에 도전할 은유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바로 노젓기였다. 함께 노를 저으면 개인들은 노력을 덜 들이면서도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967


허시먼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배타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기분에 의해서든 취향에 의해서든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을 내린다는 것이 허시먼이 주장하려는 바의 핵심이었다. 그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선택이라는 활동이었다. <<이탈, 발언, 충성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한 선택을 내리면서 제도를 바꾸는지 설명했다면, 이제는 그들이 왜 선택을 내리는지 설명해야 했다. 93 마음속에서 올슨과, 그리고 더 넓게는 개인주의와 벌였던 내적 투쟁은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인간 행동에 대한 내생적 모델을 만들고자 했던 오랜 목표로 이어졌다. 973 섭리적 설명. 기술 변화든, 전쟁이든, 수입된 거대 계획이든, 외부 자본의 주입이든, ‘해외로부터의 원조이든, 재앙이든, 발견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외부 요인이 사회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역사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번쩍 들어 옮겨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974 


집합행동의 시계추 운동’. 만족과 실망, 공적 행동과 사적 행동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역학을 설명하려고 했다. ‘인간의 경험이라는 영역에서 감정의 반응이라는 영역으로 이동했다. BMW는 흥분을 약속하면서 불만족과 청구서도 배달했다. 모든 곳에 행복이 뿌려지고 있었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 뒤에는 실망의 긴 흔적이 남았다. 실망은 희망의 짝궁이었고 희망의 필수불가결한 쌍둥이였다. 후회와 실망.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는 높은 기대를 가지고 수행된 활동의 결과였다. 실망으로 가득한 삶은 슬픈 삶이지만 실망이 없는 삶은 아예 견딜 수가 없는 것이 삶이다. 실망을 장엄한 전망과 야망을 누리고자 하는 성향의 자연스런 짝궁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을 세르반테스가 한탄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어리석음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975 


이러한 노력은 사적인 추구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적인 참여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사적 추구와 공적 참여가 비슷한 동기들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이다. 허시먼은 여러 충동들의 복잡한 혼합물인 자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변증법을 제시했다. 근대적 인간을 영구적으로 분열된 심장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이분법적 범주들을 사용하지 않는 정치경제학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랑스럽고’ ‘비극적이며복잡한인간 주체를 되살리고자 했다.. 976



실망을 일으키기 쉬운 것들을 구매할 때 수확체감이 발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 실망은 공적인 행동을 촉발할 수 있게 된다. 실망이 사다리를 놓아서 소비자-시민이 사적인 삶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점차적으로 올라갈 수 있게해 줄 수도 있고 이데올리기 자체를 잠식할 수도 있다...공적인 행동도 시계추가 오락가락하는 스펙트럼의 범위에 속해 있는 한 지점이었다...공적인 행동은 과도한 헌신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실망을 일으킬 수 있다. 사회주의가 저녁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자기파괴적이라고 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선거 역시 비용-편익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과도하게 억압적인 국가에 맞서서 방어하는 기능과 과도하게 표현적인 시민으로부터 방어하는 기능을 둘 다 갖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열정적인 사적 시민이 이제 다양한 실망에 맞닥뜨렸다는 점이다. 행복을 추구하며 오만가지 물건을 구입해 집에 채워 넣었지만 그것들이 다양한 실망을 안겨 주고 있었고, 따라서 이제 중력이 시계추를 반대편으로 움직이게 하리라는 기대였다. 978-980


찰스 테일러. 크리스토퍼 래시<<나르시시즘의 문화>> . 이런 종류의 비관주의가 그 자체로 빈약할 뿐만 아니라공적 행위를 건설적이지 못한 공적 특성이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것정도로 폄훼하는 경향을 낳는다고 본다. 허시먼이 말하고자 한 것은 불안정한 균형이었다. 그는 공적인 것이 일상의 노동과 소비에 더 많이 스며들어서 공적 행동의 특성인 분투하는 것획득하는 것의 혼합이 사적 영역에서 육성될 수 있게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합리적 행위자보다 행복의 다양한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기에 더 우월했다. 982


<<참여의 시계추 운동: 사적 이해관계와 공적 행동>> 내가 하려는 일은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동기들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설명은 이후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의 손에서 가설로 발전할 것입니다. 990 허시먼이 인간을 실수하는 이상주의자, 이해관계와 정념 둘 다를 가진 자로 묘사하자 이것을 도덕적인 주장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인간 행위자를 더 사랑스러운 인물로, 어느 정도 안쓰러운 인물로, 그러면서도 약간 무서운 인물로, 따라서 비극적인 인물로그리는 것이었다. 탈미혹된 소비자에게 공적인 삶이 은신처가 될 수 있으려면 발언의 기술이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했다. ‘공적인 인간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소비자 안에도 시민의 맥동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허시먼은 이것이 자기파괴적이라고 생각했다.희망을 포기하는 발언은 자기실현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식인을 향한 윤리적 메시지가 있었다. 994-995

 

14.

<<손주들을 위한 사회과학>>. 허시먼은 윤리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회과학을 만들고 싶었다. ;윤리에 대한사회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윤리를 다루는 사회과학 말이다. 999 합리적 행위자공동체적 정신이냐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던 시대에 결합되었으되 불안정한 주체야말로 통합된 사회과학의 초석이었다. 1000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떠한지에 기반해 정치학을 구성하려고 했고, 몽테스키외는 정치적 실천이 도덕이나 정의와 얼마나 많이 충돌하는지를 논하는 것이 무용하다고 경고했으며,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머리를 감정을 느끼는 심장에서 효과적으로 분리시켰다. 마르크스조차 자본주의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냉정한 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002 마르크스주의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법칙을 추구했지만 그만큼이나 강렬하게 도덕적 분노에도 쏠려 있었다. 허시먼은 이 희한한 혼합, 풀리지 않는 이 모든 내부적 긴장이야말로, 과학에 중독되고 도덕적 가치는 거의 상실된 시대에 마르크스주의가 가질 수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막대한 호소력의 원천이었을 것일고 언급했다.1003 허시먼은 도덕적 이해와 비도덕적 분석 사이의 풀리지 않는 마찰에 대한 주장을 정교화해 나갔다. 이 둘을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도 아닌, ”영구적인 긴장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제시하고자 했다. 1004 도덕적 사회적 규범은 시장과 별개가 아니라 시장이 기능하는 방식의 일부라고 볼 수 있었다. 1005 그에게 사회과학의 도덕성은 연구의 중심에 속하는 것이어야 했으며, 이는 사회과학자들이 도덕적으로 살아 있고 스스로를 도덕적 우려에 깊이 영향받도록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과학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도덕적으로 유의미한 연구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될것이었다. 1009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바라보는 것이 주는 즐거움과 자극을 재발견함으로써 객관적인 접근과 규범적인 접근 사이의 긴장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1015

 

<<집단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남미의 풀뿌리 경험>>1984 개발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좌절하는 흔한 원인 중 하나는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수량화가 가능한 것 위주로 측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느라 다른 점들, 예를 들면 사랑이라든가 시민적 추구 같은 것들이 간과되어 버린다.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기육성과 향상, 머리와 심장을 조화시키고 자아와 사회를 조화시키기 위한 개선 등이 평가에서 누락되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평가는 정해진 비용-편익 모델에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활동과 동기들에 열려 있어야 한다. 1025-1026 애초에 너무 거대한 비전을 가졌던 탓에, 계속 타협과 양보를 해 가며, 또 반대편의 힘에 의해 변형되어 가며 이루어지는 매우 제한적인 진보는 진보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핵심은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더 낫게 만들 수 있느냐이어야 했다. 1027

 

허시먼은 이 책의 독자와 이 책의 연구대상자가 분리되지 않길 원했다. 그래서 이 책을 개발이 실제 진행되는 과정을 기록한 여행기의 형태가 되게 하고 싶었다. (문어와 구어를 연결하고) 1037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혼합”.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선진국에 비해 이 두 영역 간의 혼합이 도미니카 학교에서 더 많이 존재한다. 상층에서는 많은 기업인이 실제로 공적인 활동을 한다. 공적인 사안과 관련해 실제로 공식적인 지위를 갖고 있으며 공적인 대의와 단체에 시간을 많이 쓴다...우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섞인다고 하면 추한 면을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그러느라 이러한 결합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어떤 종류든 진보에는 이런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도 보지 못한다.” 1043

 

15.

<<반동의 화법:역효과론, 무용론, 위험론>>1991. 시민집단들 사이(진보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 급진 진영과 반동 진영 사이 등)에서 소통이 체계적으로 제거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대중사회에서 원자화된 개인들의 고립이라는 문제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 1108 개혁이 왜 그렇게 망가지는지를 파악하려면 개혁을 향한 운동이 왜 그에 대한 거부감과 강렬한 적대감을 이끌어낸느지 파악해야했다. 1103 ‘위험 명제보수주의자들이 정치를 말할 때믄 좋은 의도에서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하면서 경제를 말할 때는 나쁜 의도에서 좋은 결과 가농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를 찬양함과 동시에 비난한다. 1105 자신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집단들이 열린 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한 사회의 민주적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이자 그 사회가 시민을 위한 미래를 일뤄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1109 1. 위험명제는 개혁이 과도한 비용을 유발하고 이전에 있었던 모든 혁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주방. 2. 무용명제는 변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무용하며 아무리 바꿔도 결국 제자리라고 말하는 주장. 1111 전통적인 적대와 비타협 담론으로부터 민주주의에 더 친화적인종류의 소통으로 가는 길은 길고 힘든 길일 것이다. 1117

 

16.

<<자기 전복의 경향>>1995 ‘정치 이전의 공동체적 감수성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개념이라고 경고했다. 충성심이란 정치로부터, 그것의 혼란과 가능성들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이전의 주장들을 전복하는 데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과거의 개념들을 되짚어보려는 경향이 그 개념들을 확장할 수 잇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기에 그의 작업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133 <<경계를 넘다>>crossin boundaries




볕뉘. 지인의 모친상으로 부여를 다녀오다. 전날 소식에 몸과 마음이 흔들렸는지 하루 종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따스한 봄볕. 따뜻한 마음들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 것 같다. 당사자는 오직할까 싶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몸짓에서 벌써 마음이 읽힌다 싶다. 대보수 마지막 날이라 일터에서 이렇게 매듭을 짓는다.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반복하는 모습들이 읽혀 아쉽고 안타깝다. 한 번이라도 멈추면 한번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진보는 계속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지와 몽매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멈추시길, 그리고 둘러보시길...스스로 안까지. 마음 속까지. 자기전복의 경향조차 없는 무리들이 아니길. 스스로 증명하는 방법은 늘 열려있다는 사실까지 망각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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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패배주의적 사고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일의 진행 양상은 더 복잡하며 배움의 시기, 그리고 배운 교훈을 잊는 시기가 번갈아 온다. 이렇게 해서 완전한 혁명을 통해서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곁에 이렇게 적어둔다. “전체를 모두 바꾸는 변화를 열망하는 것은 재앙을 만드는 조리법이다. 819

 

<경제 발전 과정에서의 소득불균형에 대한 참을성의 변화>. 열광에서 절망으로 전환한 1970년대 초반의 이 시기를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적 감정에서 다른 하나의 집단적 감정으로 시계추처럼 이동한 순간이라고 보았다. 토크빌의 구절과 관련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더 나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상황이 실제로 나아지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신의 상황이 더 나빠진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열광에서 절망으로 시계추가 이동한다. 터널 효과 820

 

라로슈푸코의 <<회고록>>. 보상이 곧 올 것이라거나 마땅히 와야 할 보상이 오지 않고 있다는 인식(의미론적인 발명과 반전)은 감정을 뒤집을 수 있었다. 터널 효과는 환희의 첫 순간, 1960년대의 관용적인분위기를 나타낸다. 그리고 터널 효과가 사라지면서 1970년대에는 분위기가 분노로 바뀌었다. 정작 놀라운 것은 불안정성이 아니라 굉장히 널리 퍼져 있는 안정성이라고 생각했다. 안정의 지속은 폭동, 쿠데타, 혁명, 내전의 발생만큼이나 설명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822 <이해에 방해가 되는 패러다임의 추구> 해석적 사회과학이라 불리는 기념비적 논문.823

 

정책이 일으키는 부정적인 부수효과에 직면하게 된다. “남미 곳곳에서 국가가 차가운 괴물이 되어 가고 있는상황이었으므로, 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설명하기 위해서는 예전에 긍정적인 부수효과들에만 강조점을 두었던 것과 달리 부정적인부수효과들을 파악해야만 했다. 830 1973. 허시먼은 과장된 희망 아니면 무기력한 절망이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에서 벌어진 일은, 자유시장은 해결책이 아니며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833

 

필요한 것은 완전한 조명이 아니라 한두 개의 불빛이다. 837 산업을 고도화하는 과정이 문제에 봉착하면서 군부독재가 들어서고, 그렇게 들어선 독재 정권이 산업화 과정에 강제적으로 안정성을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엇다. 오도넬의 논문은 새로운 재조정을 일으키는 국내 요인들에 관심을 둠으로써 좌파들이 주장하던 반제국주의도그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한 남미를 만성적인 규율 불가능성에 시달리는 지역으로 규정하는 미국 정치경제학의 케케묵은 이야기에 도전했다. 842 한편 허시먼은 오도넬의 경직된 단계론적 논의가 후방 연관 효과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으며 산업 발달이 가질 수 있는 다른 선택지와 다른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43 사회과학이 민주화된 남미에서 유용할 수 있으려면, 좌파와 우파가 희한하게도 서로 수렴해버린 견해, 즉 급진적인 해법이나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 없으면 발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에서 멀어져야 했다. 846

 

<<자본론>> 산업적으로 가장 발전한 나라는 산업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후발 주자들의 길을 먼저 갔을 뿐이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을 늦게 시작하더라도 모든 자본주의가 동일한 경로를 갈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지만, 바로 다음 단락에서 마르크스가 독일과 영국의 발전 과정이 매우 상이한 경로로 진행되었음을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844 <<법철학>> 이미 1821년에 헤겔은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발산해낼 잠재적 배출구에 대한 논의를 담은 경제 이론을 만들었지만, 마르크스는 이 점을 보지 못했다.(헤겔이 제시한 배출구는 제국이었다.) 이를 간과하는 바람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문제들에 대해 예기치 못했던 해결책들을 찾아 나가는 교묘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헤겔의 통찰을 활용하지 못했다. 845

 

개입적 변수들’. 경제 영역에서의 문제와 위기를 성공적으로 다루는 데 필요한 정책은 어떤 종류여야 하는지에 대해 지배층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신념·개념·이념의 작동을 도입함으로써 경제 문제를 정치적 결과들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제발전 단계와 정치 형태 사이의 관계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념이나 인식에 의해 매개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배층이 특정한 산업화의 사이클이 효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정치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 동기는 경제적인 것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것이기도 했다. 849 터널 효과에 대한 수정: 경제 논의에 집중하다 보면 정부는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경제 문제와 상당히 다른 것일 때조차도 경제문제라고 생각하다가 스스로 그런 조작의 희생자가 된다. 정치와 경제 사이, 신념과 행동 사이를 연결지어야 한다. 851 고통의 불협화음 속에 대안이 담겨 있다.신기루는 적어도 카라반이 목적지에 도착하게 만들기는 한다. 853 영웅과 악한을 찾아내려는 경향에서 벗어나 남미 독재 정원의 기반을 더 다양하고 온전하게 살필 수 있다면 그것을 더 빨리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순환논리가 아니라 윤리적인 목적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실용성에 있는 것이다. 854

 

사회가 대대적인 변화의 시기를 지날 때 그 변화의 과정에는 우연과 선택이 가득하기 마련이며, 이것을 파악하려면 이성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해야 했다... ...학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 오히려 경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제는 하나의 블랙박스가 아닙니다. 거기에서는 온갖 종류의 새로운 것들이 휘몰아치며 만들어지고 있습니다.”858-859

 

12.

 

<<군주론>> 권력의 신비에 대해 마키아벨 리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865 스무 살 때는 마키아벨 리가 일반 원칙을 세우고자 한 것에 관심이 끌렸다. 그때 허시먼은 마키아벨 리가 추구한 원칙이 마르크스의 운동 법칙과 비슷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장년이 된 허시먼이 다시 발견한 것은 역사의 법칙이 가진 아이러니를 드러내고자 한 회의주의자의 면모였다. 마키아벨 리가 인간이 상당히 경멸받을 만한 존재일 뿐 아니라 세상 또한 상당히 엉성하게 혹은 사악하게 조직되어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867 마키아벨리가 희소한 자원에서 극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학자처럼 주장하는 것을 다시 읽고 매우 놀랐다. 통치자가 미덕의 귀감이 되면서 동시게 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의 유지라는 제약조건 하에서 도덕을 극대화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가 예산의 제약 하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듯이 말이다. 868 고전적인 역설. 국가에서는 권력과 참여가 둘 다 필요하고, 결혼에서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둘다 필요하다. 세계의 국가들은 종종 직선이 아니라 원으로 배열된다. 그래서 가장 좋은 국가와 가장 나쁜 국가가 가까이 붙어 있다. 명백히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가까운 형제일지 모른다. 이 두 원칙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869

 

MIT 컨퍼런스에서 경제 이론이 이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정치적 사건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제학자들이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데도 절망했다. 885 폴 샤믈리<<스튜어트와 헤겔의 정치경제와 철학>>.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나는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사람들은 그때 왜 새로운 원칙을 찾고자 하는 강박을 가졌던 것일까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절박하게 답을 구하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17세기에...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던 절망적인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887 자본주의가 처음 생겨났을 때의 이론을 도출하여 자본주의의 억압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희망을 시장의 구원에만 두거나 사회주의 혁명에만 두는 극단주의의 유혹을 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888 몽테스키외,<<법의 정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상황에 있을 수 있다면 매우 운이 좋은 것이다. 정념은 그들을 사악해지는 쪽으로 추동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그들이 사악해지지 않는 쪽에 걸려있는 상황.”888


애덤 스미<<법학 강론>>. 허시먼은 스미스가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발명하고 이 새로운 인간상을 연구하는 학과를 만들면서 경제를 정치에서 분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미스가 사실은 경제와 정치의 관계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에게 매우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 894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무장한 시민들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며, 사회에 여러 계급이 존재하도록 함으로써 각 계급이 서로를 견제해 권력이 계속해서 분리된 상태로 있게 만들어서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스키너은 이런 이미지가 몽케스키외 공화주의론, 루소와 연결되었고 행동주의적 사상이 갖는 강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896 어떤 유형의 경제 관계는 어떤 유형의 정치로 이어진다. 897 헤겔을 인용하면서 이제 영웅적인 이상무너졌고그 자리에 실천을 통한 변화가 들어섰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인간은 그가 하는 일을 하면서 변화될 수 있다.” 899

 

<<정념과 이해관계: 자본주의가 승리하기 이전의 자본주의 옹호 주장들>>. <<진보를 향한 여정>>을 집필하면서 정책 결정자들을 읽어냈듯이 이책을 집필하면서 고전 사상가들을 읽어냈다고 볼 수 있다.900 ‘정념이해관계라는 말로 새로이 포장함으로써 개인의 충동이 덜 충격적으로 보이게 되었고 사회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위로 흡수 가능하게 되었다.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주한, 양조인, 제빵인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이기심) 때문이다.“ 허시먼은 스미스가 선택한 단어들에 밑줄을 그었다. 사회가 호소할 수 있는 곳은 개인의 인류애가 아니라 자기애이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득이다.901 


사적인 이기심을 추구를 옹호했지만 공적인 도덕적 태로를 잃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스미스를 부활시킴으로써 투쟁의 양편에 다리를 놓고자 했다....902 허시먼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스미스에게서 정념이나 악덕과 같은 단어들이 이익이해관계와 같은 밋밋한 단어로 바뀌었는데, 이는 의도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동기들을 이런 식으로 새롭게 표현함으로써 그것들이 더 계산가능하고 예측가능하며 일관성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 만든 것이다... ..의도치 않게 공공후생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둘다 한 쪽의 어리석음과 다른 쪽의 근면이 점차로 가져오게 될 거대한 혁명을 예견하고 있지도 않았고, 그러한 혁명을 가져오기에 필요한 지식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 903 <<도덕감정론>> 그들의 주머니에는 별로 편리하지 않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더 많이 지니고 다니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옷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머니를 만든다.....스미스는 넓은 의미에서 공화주의 정신을 따르고 있었다. 정부가 스스로를 제약하는 규칙을 통해 국민과 국민의 번영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904

 

반작용적인 정념들로부터 반작용적인 이해관계들이 나오고, 이러한 대치되는 힘들로부터 견제와 제약의 원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희망은 복잡한 혼합, 긴장, 변증법에서 나온다. 이해관계는 사실 각 본성의 좋은 면들만 취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자기애적인 정념은 이성의 제약을 통해 개선되고, 이성은 정념에 의해 방향지어지면서 둘 다 향상되는 것이다.... 그 시절에 이해관계의 원리가 진정한 구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909-910 


<<국부론>>에서 스미스가 수행한 혁명적인 작업은 이기심의 추구에 경제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이기심이 통치자의 과도함을 억제하게 될 것이라고 정치적인 언어로만 이야기했다. 허시먼은 이 결정적인 움직임이 정치학과 경제학을 분리하는 기반을 닦았고, 개인의 사익 추구를 더 계산가능하고 예측하능한 질서의 기초로 삼으려는 시도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910 <<정념과 이해관계>>에서 주되게 설명하는 부분은 스미스가 한때는 반의어였던 이해관계와 정념을 유의어로 만들었으며, 그럼으로써 모든 이가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따라갈 때 사회 전체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개념을 불러올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911

 

고전 사상가들은 정념과 이해관계를 경제적인 정신 속에 흡수할 수 있는 존재로서 결합된 자아을 제시할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이렇게 재결합된 자아의 자율성을 정치적 정념으로 가득차 짓밟고 간섭하려고 하는 국가에 맞서는 기제로서 제시할 수 있었다.912 허시먼은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의 연금술 속에 녹여 없애버린 인간 충동들의 경쟁, 갈등, 긴장, 그리고 비유의어적인 특질들을 되살리고자 했다. 이러한 자아 모델, 즉 복잡하면서도 결합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불편한 자아 모델을 사라졌다. 그래서 허시먼은 역사로 돌아가서 원래의 열망과 우려를 되살리기 위해 정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913 


정념과 이해관계는 공동의존적이었다. 견제가 없을 경우, 정념의 지배는 끔찍한 유토피아로이어질 수 있었고 이해관계의 지배는 영혼 없는 실용주의로 빠지게 될 수 있었다. 915 허시먼과 스미스 모두 개인을 복잡한 존재로 보는 견해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의 섬세한 균형점이라는 개념을 촉진하기 위해 분투했다. 스미스가 앞을 내다보며 그랬다면 허시먼은 뒤를 돌아보며 그랬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916 간은 상호경쟁하고 또 상호결합되는 충동들이 유장하게 투쟁하는 서사의 무대이다. 허시먼은 그럼으로써 인간이 이기적인 획득의 욕망과 공동체적인 미덕을 둘 다 갖는 근대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921 토크빌: 정부에 질서유지만 요구하는 국민은 본질적으로 이미 노예이. 그 자신의 후생의 노예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족쇄를 채울 사람이 등장할 수 있다. 912




볕뉘. 생각보다 길어져 한 번 더 밑줄을 챙겨야 할 것 같다.  그의 저작은 다작은 아니지만 많은 것들을 함유하고 있다. 분량 역시 길지 않다. 설핏 읽었던 정념과 이해관계 최신 출간본은 그 근저에 많은 뿌리들을 함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 고민과 방향을 새겨준다고 볼 수 있다. 좀더 깊은 해석과 읽기가 필요한 듯싶다.  아마티아 센의 경제학에서 복수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고, 또 다른 허시먼의 책 서문에도 등장한다. 책을 읽다보면 아시겠지만 아마티아 센은 허시먼의 조카사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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