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며칠을 함께보내며, 참 의아스럽다.(이렇게 무관심한 부모도 있을까? 하겠지만) 친구들과
시간조정을 하면서 만나야 되다니, 정말 대단한 부모들이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내새끼부터해서, 누구 남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놀려고 해도 놀 수가 없으니 말이다.

식구들끼리 단촐하게 공주박물관을 향하다가 무녕왕릉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앞엔 세리 박
박물관인지, 기념관인지 건물이 송산리 고분보다 더 크게 번듯하게 차려 놓았다. 무녕왕릉 수리
덕분에 공짜로 다녀왔지만 말로만 듣던 백제의 찬란함과 달리 초라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몇십년
더 지나면 과연 세리 박 기념관이 좋은 평을 받을까? 달러 벌어주었다고, 아비가 무얼하건 과정이
어떻든 돈만 벌어온다고 세상 좋지 않은 일 투성인데 긴장을 풀어주었다고 기념할 일이라구.  너두
나두 말같지도 않은 언론에 덩달아 공주시도 기념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 티샷하는
동상까지? 정말 좋은 평판을 받을까? 배산임수 잘된 송산리 1호 고분에서 보기엔, 곰나루와 동학의
격전지, 공산성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왜소해보이는지? 우리가 차마 식지도
않은 우리 역사 속의 선조들의 위해, 피와 땀의 흔적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오는 길에 골프와 양궁이야기를 하다가 앞으론 조만간 옛날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말을 건넸다.
그래도 7-8세대는 넘기지 못하는 핏줄이라고 자치기, 공기놀이, 비석치기, 딱지치기 로 단련된
손바닥의 근육덕에 세계를 주름잡지만, 요즈음 아이들 교육 문화 분위기를 봐선 영원히 힘든 먼
얘기를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귀힘이 주는 것은 물론 불과 2-3백년동안 잘 발달된 손바닥의
예민한 근육들이 급속히 퇴화될 것이 뻔하다.

아무래도 엄마마음 아빠마음이 잘못된 마음쓰기가 대물림되는 것 같다. 초집중화된 수도권의
과밀로, 그와중의 생존에서 절망의 벽으로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너무
이기적인 마음임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어떻게 질리게 할 수
있을까? 간절한 기도를 들이는 것 같다.  경험이 소중하겠지만 어려운 것, 스스로 해결하려는
욕구와 무관하게 부모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피아노, 과학,영어, 수학...
... 채 십년이 지나기도 전에 열에 여덟은 질려있다. 여덟은 공부를 두려워한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유리 성적표는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서 저 놈의 수준이 누군지는 다 안다.
자기와 경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이라는 경쟁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이 정작 인생에서
자기를 이기고 만족하는 법은 깡끄리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똑같은 참고서, 문제 옆에는 언제나 답이 있다. 논술도 답안지가 늘 뒤에 붙어 있다. 10년전에도
20년전에도, 30년전에도 그랬다. 나이가 스물이어도 왜 사는지? 왜 공부를 하는지? 수학을 왜
공부했는지? 역사를 왜 공부했는지 몰랐다. 대학에 들어가면 백지상태, 공무원 시험에, 고시에
붙으면 끝이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자기의 재미가 살아있는 책도 많이 읽고, 사회성을
키우려면 많이 놀게 하고, 혼자 터득하게 하는 묘미를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치졸한 세상과
학원과 학교가 부모가 아이들을 오늘도 바보로 만들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제풀에 지쳐 지게 만드는 것이 오늘 교육방식이 아닌가? 토익성적과 아무 쓸모없는
지식이 이 세상 살아가는데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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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팝콘은 아름답다.
불과 돌이 지나지 않은
광고 덕에
로또는 '인생역전'의 대명사가 되었다.

파시스트의 이미지조작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자본의 현란한 협공은
우리 무의식까지 자리잡는다.

얼마나 화려한 승리인가?
텔레비전,라디오,신문,잡지
매체의 현란한 수족은
불과 100억남짓한 자본의 수혈로

온 세상이 들뜰 수 있다는 것이
자본의 의식점유는
이제 너무 쉽고 당연한 일처럼
공기처럼 숨쉴수 있게 되었다.

도박이 인생역전이라는 데마고그가
불과 이렇게 짧은 순간에
마약처럼 열광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마음에 부탄가스
하나씩 품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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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을 일상으로 데려오기 - “공룡과 비만” 큰 것 좋아하고 과식을 좋아하다보면 언젠가는 제몸무게도 지탱하지 못하거나, 외부환경변화에 적응을 못하기 마련입니다. 수도권집중은 우리의 비만과 동맥경화,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도태를 알려주는 잣대입니다. 우리 곳곳은 상체비만에 집착하여 혈액순환도 되지 않은 정도입니다. 생명공학의 강국으로서 수술이 아니라 DNA를 바꾸지 않고서는 수습이나 재활의 지경을 벗어났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국가의 DNA를 바꾸는 것이 분권(分權)이라고 절규합니다. 분권이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만으로 아무런 해결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결정권(행정)과 돈(재정)과 인재가 스며드는 분권이라야 정말 우리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합니다. 그래야 시대에 걸맞는 교육자치도, 맛갈나는 자치입법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구미가 정말 당기는 말씀입니다.

그 고민을 한번 우리 활동에 가져옵니다. 사회변혁이라는 것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DNA?가 바뀌면 알아서 잘되면 참 좋을텐데 생각하게 됩니다.문화DNA로 전화된다면 신물나던 정치가 우리 일상에 살아숨쉬고, 어리석은 정치인들도 한 20년은 내다보는 일들만 해야 어깨에 힘께나 줄 수 있고, 어린이들도 어린이 보호헌장에 나온대로 권리를 찾기 위해 정치행위를, 좀더 신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기도 할 것이고... ... 이렇게 우리의 문화로 녹아들면 몇몇 선각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서로 즐기고 당연한 것으로 아는 것 말입니다. 조직에서 일이라는 것이, 시기적으로 참으로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이 매번 다가옵니다. 시대에 맞게, 때에 맞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결단의 순간이 매번 우리주위에 늘 있습니다. 이런 결단들로 해서,사회가 급변의 물살도 타고, 삶의 양식이나 문화가 많이 바뀌기도 합니다. 늘 내용과 형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 교차하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적절한 조화일 수 있겠습니다. 정치(형식)라는 외피가 우리 삶(내용)과 거리가 멀어져 신물이 날 정도가 되면 정말 볼장 다 본 것 아닐까요? 신물이 난 정치가 이제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우리들 일이겠지만, 그것을 넘어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해야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말하기 전에 알하서 하는 정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사회의 틀이나 형식은 급변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 형식에 늘 뒤쳐저 있는 것이 우리의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수구정치인들은 그림자 꼬리도 못잡고 흐느적 거리고 그림자만 좇아가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하고 심한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림자라도 좇아가니 이나마 바뀌고 있지라고 자족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어쩌면 지난 한해 우리들은 참여와 분권을 이미 몸소 경험했습니다. 대의에 소중한 나의 몫이 나의 참여가 바꾸어내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세상바뀌는 소리와 세상 바뀌는 방법을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준비하고, 나누고 바꾸는 방법까지 주면 창의성을 보태 동참하는 기분이 얼마나 신나는지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분권(分權)”이 시대의 화두?이듯이 우리 일상에 있어서도 이 “분권”이라는 체질 개선 노력이 우리 시대에 맞은, 일상의 DNA를 바꾸는 노력이라 여깁니다. 내가 스스로 변했는지 모르게 변해가는,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이 나를 변화시켰구나 하는 것이 일상의 문화개선코드이자 노력결과물이 아닌가 합니다.

일터에서 모든 일과 중심이 소수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이 나누는 시스템이 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시대 조류와 관계없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고, 집안에서 모든 일과 결정들이 편중되어 있다면, 엄마 아빠 말로만 아이들이 하고싶은 것들이 자신의 색깔과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다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모임이 여러 핑계들로 재미없고 회장-총무 중심으로 되어 있다면, 개선 노력이나 자정노력이 부족하다면 역시 분권문화란 말과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겠죠.

지방자치에 걸맞게 중앙사무의 대폭 위임이라는 결정권과 돈과, 사람을 골고루 참여시키는 것이 우리사회를 리모델링의 수준을 넘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스스로 결정내릴 수 있는 일들과 보다 많은 참여 속에서 다양하게 자신의 모임들을 만들어갈 기회가 주어지고 만드는 것과 같이 좀더 작은 단위에서 분권문화고민을 나누고 일상화하는 것이 시대를 앞서나가는 한 방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단체, 조직, 모임의 문화도 “분권”과 “참여”를 일상수준으로 끊임없이 데려와 자리잡는 것이 아닌가하고 고민해봅니다.

우리는 문화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자주합니다.일만 할줄알지 놀 줄도 모른다고, 오죽하면 “놀아줘~”를 연신 절규하는 문화무의식 속에 살고 있는 재미없는 일상들입니다. 차라리 관광버스에서 노독을 풀어버리려 본전빼는 부모세대의 문화가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권이 생활에 녹아있을 때에서야 서로 재미있고, 나눌 수 있고 삶에 녹아있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합니다.

정말 재미없고, 바쁘기만 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참여하고 신나고, 뿌듯한 곳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며 살맛나는 일상의 대안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며 삶의 자취를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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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월드컵? 생각하나

태풍이 그다지 매섭게 지나가지 않아 무척 다행입니다. 요즈음 세상도 어수선하고,
겨울이 되어도, 여름이 되어도 폭설, 폭우를 비롯한 예상치 못해 재해로 피해가 보통
이 아닙니다. 정치하기도 무척 힘들겠어요.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라는 보장도 없고,
이런 자연재해의 피해는 장난이 아니고, 아무리 예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식을 뛰
어넘는 일이 흔히 생겨서 말입니다.

지난 해는 바다 적조현상이었나요. 동해, 남해, 서해 그땐 황토를 아무리 뿌려도 언
발에 오줌누기였을 뿐, 태풍을 몹시 기다렸던 것 같은데. 바다를 한번 뒤집어 주어
야 한다고 그래야 제대로 바다 기능을 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군요. 하지만 지금 태풍
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물갈이는 되겠지만 별로 유용한 것 같지 않아요.

우리 내부에 월드컵이란~ 태풍이 지난이후로 다소 잠잠합니다. 정말 태풍이었는
지? 그저 몹쓸 터네이도가 지나간 것인지?

월드컵 기간중에 식자들의 월드컵 논쟁도 각양각색 - 저마다 처한 입장에서 바라보
는 것이 아닐까 싶게 다양하더군요. 입장에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현실의 흐름을
타는 입장은 현실을 보다 풍부하게 하고, 올바른 전망을 담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
은 부분들은 소멸을 거듭하겠지요.

저는 '혼자 생각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몸으로 움직이는 것'에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이 더워지는 것과 끓는 것의 차이만큼이나, 아니면 얼
음이 물로 녹는 것 만큼이나, 보태면 새벽이 오는 것 만큼이나 말이지요.

그런 이유에서 다른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월드컵 기간중 여성과 젊은 청춘
(?)들의 공간 참여를 이런 시각에서 판단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극우
편향부터, 극좌편향까지 다양한 해석이 덧붙겠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옳은지 대부분 판가름날 수 있기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이 눈여겨 보아야될 한가지 점은, 왜! 생각만하지 않고 나
왔느냐는 것이지요. 왜? 사건이 되었느냐? 머리속으로 생각만 하지 않고 표출이 되
었느냐? 왜/ 여성들이, 젊은이들이 더 많이 나왔느냐?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으로 돌아가면, "재미있으니까?" "재미있
잖아요?" 어쩌면 일상에서 재미에 굶주려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별
반없어 박찬호나, 박세리의 경기시청에 목을 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터의 일도, 노조활동도, 선거도, 정치도 재미없게, 때만되면 하는 것은 우리에 대
한 죄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활동은 없고 윽박지르고 대상으로 만들고, 같이
할 수 없게 너무 높이서서 활동하는 것이 길게 보아서... ...? 이런 것이 월드컵이 우
리에게 주는 전달의미 가운데 하나는 아닐지!

발닿는 곳부터 변화를 위해 노력하시는 * 식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어 쓸데없는
소리~ 한마디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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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을 다녀온 뒤 드는 몇가지 생각들

1. 오랜만입니다. 지난 한 보름전 일터의 일거리로 만주땅을 다녀왔습니다. 몇가지 흔적을 남깁니다.


2. 만주땅에 대한 몇가지 스케치

"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1/3의 사람, 1/3의 자전거, 1/3의 차가 도로에 뒤섞여 있다. 신호등도 보기드물고 그렇다고 경적소리도 요란한 것도 아니고 서로 무덤덤하고 바쁘게 엇스치고 있다. 흙벽돌 건물도 연신 부수고 짓고, 노래방, 음식점 들로 정신없다. 시정부 관료들의 활발하고 긍정적인 사고 속에는 한국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의무감 반, 존경이 반반 섞여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 된다는 것에 아무것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 같지 않다. 고급가구로 놓여있는 집들,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은 한국제 양복이나 옷매무시에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거리의 패션도 뾰족구두와 남조선표, 남조선표 방송에 목을 길겡 내밀며 시청하고 있는 모습. 즐비한 노래방 및 싸우나를 비롯한문화수입은 가히 놀랄만하다. 한 관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루차이'라는 말이 맞을 듯하다. 그리고 여행객에게 익숙한 물건 바가지 씌우기 - 혼자 관광을 하면 어눌한 표현덕이 현지사람 구매가 보다 아무리 싸게 사보았자 두배이상의 가격으로 구입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서 유학생 교육에 관심있는 재일교포 한 교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문화원이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인색할 뿐아니라 유학을 온 학생들 가운데 계속 공曠求?사람이 없고 부모의 답변도 돈벌러갔는데 무슨 공부냐라는 반응이 태반인 것을 심각히 우려한다. 십여년 이상 일본,한국, 연길을 왕래하면서 느끼는 점은 미래나 문화에 대한 고민은 갈수록 없어진다는 말씀은 일리가 있어보인다. 오히려 연변에 대한 애착은 관료나 일부 교수진들이 더 적극적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성장에 방점이 찍혀져 있는 것 같다. 수입의 반이상이 한국, 일본, 미국에서 외화벌이 덕에, 그리고 관광객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원인제공의 한몫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한가지 드는 생각은 거리의 사람-차-자전거의 뒤섞임만큼 혼란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거리의 모든 간판이 우선 우리말표기를 반드시 하도록 되어있다는 것. 음식이 고급요리관이라는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접근용이하고 다양함에 대한 자부심(개장터의 요리만 하더라도 만두에서부터 갖가지, 콩요리만 하더라도 삭히고, 압착국수부터, 껍질요리까지 소힘줄에서부터 상어요리까지) 색깔, 순박함이나 명확한 의사표현이나 의견개진력의 우수함 등이 어쩌면 경제력에 뒤진다는 이유로 감추어진 우성인 것 같다. 아니 괜한 열등의식으로 전화할 수 있는 우성이 아닌지? 우성으로 내밀어도 전혀 꺼릴 길 것이 없음에도 말이다.

3.

류경호텔은 일본과 북한이 합작한 연변호텔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노래방 문화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이 접대원동무들에게 혼쭐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평양 연희대학(?) 소속으로 졸업후 파견근무를 하는 곳으로 연주, 노래, 매너가 가히 프로수준이다. 자존심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손님들을 아연하게도 하지만 유창한 말솜씨, 한차원 높은 격은 조장동무의 보이는 관심만큼이나 문화역량의 높음은 박제화된 민요를 살려놓고, 갈라진 한쪽 반도에 대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먹거리는 쏘가리회, 홍어회, 감자떡, 불고기, 신덕샘물 외 연길과는 조금 달리 더 구미에 당기는 맛과, 남남북녀라는 말을 실감할 수도 있는 곳이다.

4.

우리 놀이문화에 대해 되새김.

단체여행 그것도 남자들만의 여행, 그리고 여행담을 들으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흔적을 남긴다. 일상의 뒤풀이 문화도 오랜만의 친구들, 동료들의 만남 가운데 노래방, 단란주점의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왜일까? 그리고 짧은 기간의 외국 단체 여행 가운데 일탈하는 모습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비군 정신' - 군대의 경험은 과연 무엇일까? 박노자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혈기왕성한 젊음을 음담에 익숙해져 군제대한 뒤, 예비군 훈련에 본능처럼 살아오르는 여지없이 본색(?) = 일탈과 과거를 몸에 익은 여색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게기고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아가씨들 지나가면 괜한 기분과 농담들이 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일상에서 줄어든 표현은 단체행동과 다른 집단에서 이상할 정도로 재생하는 것은 왜일까?

몇번의 출장이나, 출장 경험담을 들어보면 비단 우리만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나이 차이를 떠나 집단의 행동수준은 가히 놀랄만하다. 가족과 격무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과 남자들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아니면 익숙해져버린 접대문화 덕에 사고의 센서는 성적인 것으로 한정되거나 아니면 무슨 무용담을 만드려는 것처럼 안달이라는 느낌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연길에서 유난히 눈에 만이 띄는 것은 노래방이다. 우리에게 손쉬운 돈벌이가 된 것처럼, 접대와 일탈의 문화, 씀씀이의 문화는 말할 것도 없이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사진들은 크기를 줄여서 올려야 되겠군요. 다음으로 미룰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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