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을 일상으로 데려오기 - “공룡과 비만” 큰 것 좋아하고 과식을 좋아하다보면 언젠가는 제몸무게도 지탱하지 못하거나, 외부환경변화에 적응을 못하기 마련입니다. 수도권집중은 우리의 비만과 동맥경화,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도태를 알려주는 잣대입니다. 우리 곳곳은 상체비만에 집착하여 혈액순환도 되지 않은 정도입니다. 생명공학의 강국으로서 수술이 아니라 DNA를 바꾸지 않고서는 수습이나 재활의 지경을 벗어났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국가의 DNA를 바꾸는 것이 분권(分權)이라고 절규합니다. 분권이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만으로 아무런 해결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결정권(행정)과 돈(재정)과 인재가 스며드는 분권이라야 정말 우리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합니다. 그래야 시대에 걸맞는 교육자치도, 맛갈나는 자치입법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구미가 정말 당기는 말씀입니다.
그 고민을 한번 우리 활동에 가져옵니다. 사회변혁이라는 것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DNA?가 바뀌면 알아서 잘되면 참 좋을텐데 생각하게 됩니다.문화DNA로 전화된다면 신물나던 정치가 우리 일상에 살아숨쉬고, 어리석은 정치인들도 한 20년은 내다보는 일들만 해야 어깨에 힘께나 줄 수 있고, 어린이들도 어린이 보호헌장에 나온대로 권리를 찾기 위해 정치행위를, 좀더 신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기도 할 것이고... ... 이렇게 우리의 문화로 녹아들면 몇몇 선각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서로 즐기고 당연한 것으로 아는 것 말입니다. 조직에서 일이라는 것이, 시기적으로 참으로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이 매번 다가옵니다. 시대에 맞게, 때에 맞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결단의 순간이 매번 우리주위에 늘 있습니다. 이런 결단들로 해서,사회가 급변의 물살도 타고, 삶의 양식이나 문화가 많이 바뀌기도 합니다. 늘 내용과 형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 교차하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적절한 조화일 수 있겠습니다. 정치(형식)라는 외피가 우리 삶(내용)과 거리가 멀어져 신물이 날 정도가 되면 정말 볼장 다 본 것 아닐까요? 신물이 난 정치가 이제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우리들 일이겠지만, 그것을 넘어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해야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말하기 전에 알하서 하는 정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사회의 틀이나 형식은 급변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 형식에 늘 뒤쳐저 있는 것이 우리의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수구정치인들은 그림자 꼬리도 못잡고 흐느적 거리고 그림자만 좇아가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하고 심한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림자라도 좇아가니 이나마 바뀌고 있지라고 자족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어쩌면 지난 한해 우리들은 참여와 분권을 이미 몸소 경험했습니다. 대의에 소중한 나의 몫이 나의 참여가 바꾸어내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세상바뀌는 소리와 세상 바뀌는 방법을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준비하고, 나누고 바꾸는 방법까지 주면 창의성을 보태 동참하는 기분이 얼마나 신나는지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분권(分權)”이 시대의 화두?이듯이 우리 일상에 있어서도 이 “분권”이라는 체질 개선 노력이 우리 시대에 맞은, 일상의 DNA를 바꾸는 노력이라 여깁니다. 내가 스스로 변했는지 모르게 변해가는,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이 나를 변화시켰구나 하는 것이 일상의 문화개선코드이자 노력결과물이 아닌가 합니다.
일터에서 모든 일과 중심이 소수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이 나누는 시스템이 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시대 조류와 관계없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고, 집안에서 모든 일과 결정들이 편중되어 있다면, 엄마 아빠 말로만 아이들이 하고싶은 것들이 자신의 색깔과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다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모임이 여러 핑계들로 재미없고 회장-총무 중심으로 되어 있다면, 개선 노력이나 자정노력이 부족하다면 역시 분권문화란 말과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겠죠.
지방자치에 걸맞게 중앙사무의 대폭 위임이라는 결정권과 돈과, 사람을 골고루 참여시키는 것이 우리사회를 리모델링의 수준을 넘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스스로 결정내릴 수 있는 일들과 보다 많은 참여 속에서 다양하게 자신의 모임들을 만들어갈 기회가 주어지고 만드는 것과 같이 좀더 작은 단위에서 분권문화고민을 나누고 일상화하는 것이 시대를 앞서나가는 한 방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단체, 조직, 모임의 문화도 “분권”과 “참여”를 일상수준으로 끊임없이 데려와 자리잡는 것이 아닌가하고 고민해봅니다.
우리는 문화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자주합니다.일만 할줄알지 놀 줄도 모른다고, 오죽하면 “놀아줘~”를 연신 절규하는 문화무의식 속에 살고 있는 재미없는 일상들입니다. 차라리 관광버스에서 노독을 풀어버리려 본전빼는 부모세대의 문화가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권이 생활에 녹아있을 때에서야 서로 재미있고, 나눌 수 있고 삶에 녹아있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합니다.
정말 재미없고, 바쁘기만 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참여하고 신나고, 뿌듯한 곳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며 살맛나는 일상의 대안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며 삶의 자취를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