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급 고정비를 받지 않고, 없던 일로 하고 계약을 검토해보겠다란 말은 처음으로 그들의 공문을 받아든 연후다. 


사과를 하지 않는다. 진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 계약 당사자인 대표에게 청구할 수밖에 없다. 그 외의 인물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얘길 흘려도 흘려버린다. 며칠 내내 아니 몇 주 내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재계약을 이어가는 것도 맞고, 돈을 받아내는 것도 맞다. 직원들에게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왜 남을 위해 이걸해야 돼. 그건 아니다. 무엇이 분하게 하는지 명확하게 해야한다. 전날 밤새 생각에 생각을 해내며 몸은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게다. 아침이 밝자마자 무도인 경험이 있던 변호사친구를 찾아간다. 나중에, 뒤에서 이건 아닌 것 같고, 앞에서 드러내놓고 내용증명이라도 받고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듣는다. 그들 입장에서 대안도 대체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문서 작업을 시작하고 일주일내 회신요청 문구를 넣는다. 그렇게 온 것이 그 서류다. 대책회의를 하고 네트워크가 움직여지는 것이 조금은 느껴진다. 그게 처음이다. 조직은 의견이 흐르기나 하는 것인지, 중간에서 다 잘라먹은 것은 아닌지, 왜 그토록 나은 결정은 못하는지 3종세트가 읽혀진 것이다. 


청주무심천 마라톤을 나간다. 다소 쌀쌀한 날씨 몇 분전에 준비운동을 마치고, 몇 분 전에 출발 대기선을 서거나 몇 번째 줄에 서는 것이 나은지 하나하나 계산의 연속이다. 5분에 가까이 가고자 하나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그만 둘 생각이다. 그만두자.  

계약을 이어나가봤자 그 친구들은 더 빼먹을 궁리만 한다고 치고 나오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받다. 건설토목업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왔을 수도 있다고 또 다른 분의 충고도 받다. 더 이상 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면 당신이라도 계약을 하겠느냐.


그만두자. 나는 내 길이 있는 것이고, 직원들은 직원의 길이 있는 것이다. 사무실의 짐들이 빠져나갈 생각을 하자 먹먹해진다. 정든 바닷가와 바닷가 사람들도 헤어진다는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 스며든다. 


버렸다.

또 다른 서류를 가지고 온다.

정말 그만두실거냐고 묻는다. 긴장이 실낱처럼 비친다.


소소아트시네마 로비에 책장을 만든다. 집의 책들을 옮긴다. 좀더 위까지 한, 두 단을 더 올려 만들자고 한다. 책들도 채워지고 화분과 화환도 놓여지니 전시의 배경이 잘 만들어진 셈이다. 전시를 위해 오고가는 길, 이 상황의 스토리가 나눠진다. 한 두 서너 친구들의 의견이 얹혀서 내려온다. 그러길 몇 회. 소소의 공간이 익숙해진다. 앞 대학교 풍경도 더 친해진다. 봄으로 향하는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아이들이, 아니 지은이까지 꽃다발을 해서 온다. 밖의 콜라쥬 작품부터 설명을 이어나간다. 모임이나 공동체, 아니 단체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기 그릇에 담겨있기도 하고, 그동안 바램들이기 하다. 서로에게 뭐라도 하나 들고가서 만나라. 선물이어야 한다. 달라지지 않는 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이 사회에서 여기에 있기도 하다.고. 그래도 다른 전시보다는 마음이 가까이 스며가고 있구나 한다.


이렇게 풀어진 주말을 안고 내려오면 여전히 팽팽한 일터가 다가온다.

그만둔다. 빨리 내놓으라고 한다.

어려워. 어려우면 분납하는 안까지 제시해둔다.

논의되지 않는 항목까지 넣어둔다.


내년을 위한 일이다. 만일을 대비하는 일이다.


이렇게 간간이 깊고 반복되는 숙취도 곁에 있다.

폭삭 속았수다 16회까지 많이 취하는 봄밤이다.


몸도 취해

빨아서 널고싶을 지경이다. 

집 청소를 하고 환기시키고 걸레로 닦는다.


햇볕에 널고싶다. 뽀숭뽀숭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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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보일 듯한, 아니 끝이 보이는 고개인 줄 안다. 하지만 한 고개가 남아있다니, 아불싸 


문구센터를 오가며 걷는 길에 봄꽃들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눈도 나빠진 연유도 있지만 맑은 햇살은 꽃술 하나하나를 드러내며 AI 사진이나 영상처럼 솜털하나 놓치지 않고 움직이는 것 같다. 기괴함을 넘어서는 현실감을 맞고 있다. 계절은 동전의 양면처럼, 앞장이란 봄은 없고, 바로 여름이다, 뒤장인 겨울만 움츠러들고 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 교육을 받은 것만이 아니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낮한낮, 한틈한틈 우리는 그 상황을 잊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날리면과 입틀막의 장본인들은 애써 자신을 숨기려는 듯, 지우려는 듯 더 큰 일들로 자신을 뒤짚어 엎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뒤에 서서 앵무새처럼 맞다맞다 옳다옳다 맞장구친 국가의 짐인 세력들이 오늘도 아우성이지 않는가? 범죄를 범죄로 덮고 나라까지 덮으려 안간힘을 쓰는 범죄인들은 오늘도 입에 거품을 물 듯, 거짓을 꺼리낌없이 뱉고 있다. 여전히.


채권, 채무 관계가 법의 기본이다. 어쩌면 죽어간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진 것이 또한 그 법일 것이다. 숱한 상처와 일상들이 날아간 실제상황이 법에 묻어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왜 만들어진 것이란 역사도 중요한 것이다. 


상식이 뒤돌아 도망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무도하게 힘앞에, 헤쳐먹을 궁리 앞에 넙죽넙죽 절하거나 아부떨기를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과 군상들의 토악물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그 토사물이 진주라고 금이라고 은이라고 받쳐 써주는 언론과 미디어도 넘치지 않는가? 양심이라고도 부르는 상식의 불씨를 그들에게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자기가 얘기한 동영상과 증거가 넘치는데도 아니란다. 싸다귀를 날리고 싶은 세상이다.


불법 도급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하도급법이다. 원사업자의 갑질을 막기위해 11개의 의무사항과 4개의 금지사항을 넣어 만든 것이 현재의 법이다. 공정거래위의 관할아래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 손해배상과 처벌이 뒤따른다. 


공장 주인이 바뀐 이래, 원사업자가 조바심을 내고 일년내내 직장괴롭힘방지나 도급에 무개념으로 일원을 아까워하는 행태가 계속된다. 그 불 손이 경계를 너머서려고 한다. 그래서 담당참모에게도 제발 빨리 원가분석이래도 하셔라, 그렇게 바닥을 보고나서야 계약을 다시하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라고 붙어 채근한 것이 몇 달동안이다. 움직이지 않는 그는 오너의 지시를 거꾸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겨우 움직인 것이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떼어먹을 수도 있다.라는 확신아닌 확신이 생긴다. 그렇게 문서를 뜨문뜨문 보낸 것도 몇 달이다. 그들은 모든 우려를 불식하고 헤쳐먹는다. 양심도 상식도 없이 낼름해드신 것이다. 마지막 카드인 회계년도 변경까지 무시하면서 감액을 지정해주기까지 한다.


유난히 추운 봄이다. 하루하루 불안한 겨울이 섞여있는 봄들이다. 영하의 언저리는 그래도 작업복차림으로 달릴 만하다. 소화 겸해서 움직여주면 몸에 조금조금 되갚아준다. 그렇게 라이딩이나 달려주지 않으면 이런 긴장과 압박에서 견뎌나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반복과 퇴행. 퇴행과 퇴행. 회의록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은 참모들은 기계같다. 생각이라는 것은 밖에 두고 온 것 같다. 받은 지시가 중요한 것이지, 같이 나누는 대화의 맥락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다. 기계처럼 말하고, 기계처럼 회의록을 남기고 올린다. 대체 뭐가 결정되고 뭐가 소통되는지 알 길이 없다. 


모든 자료와 모든 한계가 동시에 나온다. 속셈도 드러난다. 협의가 애초에 필요가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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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조팝나무

매화

동백

개나리

벚꽃

백목련

자목련

복사꽃


마음은 준비도 되지 않아 마주치기가 저어하다. 대체 뭘 본 건가. 이래도 되는 건가. 묻지 않던 질문들이 나온다. 마음은 볼록해져 본 것들을 밀쳐내기만 한다. 


매화

동백

개나리

개나리

목련

진달래

조팝나무

벚꽃


그리고

도화


해본다. 순서도 아래위도 법도 질서도 진실도 없는 세상을 보면서 뭐라고 해야하나.



 짬을 내어 오를랑 하이브리드 전시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세계시민으로 자신을 예술에 바쳤다라는 표현은 알맞다.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시키는 모습도 놀랍다. 끊임없이 읽기와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일상도 안이하지 않다. 철저하고 예리하게 현실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수많은 우려가 현실로 전화되는데도 국가의 짐이 되는 군상들은 자신의 근거없는 이념적 야욕과 힘과 권위와 권력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무리들을 끊임없이 끌어모은다. 사실과 현실은 분별을 잃고 혐오을 부추키고 선동에 하루하루를 지운다. 행정은 위기를 앞서나갈 수 있어야 한다. 순환하는 기후위기에 넋놓고 무책임한 집단들은 처음본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그저 국짐을 좋아만 하는 좀비족속들은 어찌하랴.


봄이 제자리를 잃은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한단 말인가? 포월, 초월이 아니라 저월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을 뿌리깊게 귀 기울여야, 아니 몸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한 자연이란 없다. 이 지구는 수백마리의 말을 끌고 나오는 증기기관덩어리다. 그 덩어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이란, 사고의 파격을 원한다. 대체 생각이 자랄 곳은 어디란 말인가. 법마저 갈 길을 잃은 지금이란 자리에서 한 걸음을 어찌 디뎌야한단 말인가.


 '오를랑'


1947-

성형소식은 들었지만

뿔까지 한 줄은


책이 쌓여있더군요

한 단어를 위해 그렇게

노력한 줄은


친밀성의 소멸을

예견해서 그런 줄은 몰랐네요

슬로우 댄스를


목소리가 아름다웠다는


세계의 시작이란

그림은 알지만

전쟁의 시작이란

그림도 알고 말았다는


많은 게

한 꺼번에

다가온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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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표를 본다. 공약수 가운데는 '협동'이 있고, 삼분할해서 생각, 자본, 노동의 교집합이 그려져 있다.  '협동' 협동이라. 그 '협동'이란 단어를 마음과 입 안에 공글려본다. 공동체라. 모임이라.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 여럿이. 


위태로운 일상, 차고 넘치는 하루하루는 불안하다.  어떤 이는 <불안사회>라 말하기도 하고, 위태로운 '상황'은 불안한 대기처럼 지금을 잠식하고 있다.  '벌거벗었다'라고도 하며 액체상태라고도 한다. 불안한 하루하루는 '나"를 끊임없이 요동치게 만든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기도 힘들어 사소한 다정다감에도 목숨건다. 



표지화를 본다. 정교한 소묘와 치밀한 덧칠이 아니다. 많게는 서 너번, 작게는 한 두번 잎새와 꽃, 꽃잎에 색을 올린다. 각자의 모양으로 피고 있는 꽃들.  뒷표지에는 팔이 하나인 꽃,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꽃, 운동하고 있는 듯한 꽃, 세 송이의 다른 꽃을 그려둔다.



자리이타 自利利他 . 나도 좋고 남도 좋다. 나도 피고 너도 피고, 서로 꽃피우는 일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대행에 대리다. 빠르고 빠르게 순환을 만드는 체계이기에 보이지 않는다. 남기는 것만 드러날 뿐, 그 안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닫힌 삶을 기계처럼 상품처럼 낳기만 할 뿐이다. 닫힌 방에 갇혀 하늘을 볼 수 없다. 하늘이 어디인 줄도 눈길을 잃어버린다. 점점 깊어지는 터널이다. 나갈 길이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는 세 개의 공을 동시에 던져야 한다. 놓치지 말고, 생각과 자본, 노동이라는 공을 동시에 던진다.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받고, 대리나 대행이 아니라 품을 팔고 나눈다. 그렇게 십시일반 꾸려진 돈을 나눠 몸을 키운다. 모임을 자라게 한다. 하나가 아니라 둘, 둘이 아니라 셋을 나누는 연습을 해야한다. 겨우 닫혀진 방에서 나올 수 있다. 겨우 닫혀진 나에게서 나오기 시작한다. 다행히 돈만 남기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공짜는 없다. 


그렇게 나눈 것들은, 그렇게 채운 것이 서로에게 선물이다. 매번 달라지고 생기가 도는 모임이다. 열려지는 삶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열린 삶의 출발이다.


볕뉘


1. 읽고 나서 저자의 다이어그램 속 '협동'이란 말 대신이 '일상'이란 말을 넣어보기도 한다.


2. 화마가 드리운 날,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꽃. 스스로 만든 법의 테두리조차 타는 듯한 나날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3. 반드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느끼기 시작한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질문들은 아마 출구를 낳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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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헤겔의 비유로, 철학이 이미 역사로 굳어진 것만을, 즉 기존의 것만을 인식한다는 점을 가리킨다. "세상을 사유하는 철학은 현실이 형성과 준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철학이 그것이 가진 회색을 다시 회색으로 덧칠하기만 한다면 생의 모습은 낡아 버리게 되고, 회색을 그대로 두면 젊어지지 못할 것이며 다만 인식되기만 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내릴 부렵에야 비로소 비행을 시작한다. 헤겔은 철학이 앞으로 도래할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회색으로 덧입힌 회색'은 '기존의 것'이 지닌 색이다. 철학은 돌이켜 생각함이지 앞서 생각함이 아니다. 그것은 전망적이지 않고 회고적이다. 이와 반대로 희망의 사유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현실을 본다. '새로운 태양이 뜨는 아침의 닭 울음소리, 세계의 젊어진 모습을 선언하는 것이다. 117-118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본질의 로직을 벗어나 새로운 것이 동트는 광채를 볼 눈이 멀어 있다. 희망의 사유는 인식의 초점을 미래로, '기존의 것'에서 '앞으로 도래할 것'으로 옮기며, 본질의 시간성을 나타내는 항상 이미 아직 아님을 대비시킨다.


 블로흐는 회색에 희망의 색인 파란색을 대비시켰다. "먼 색인 파란색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래적인 것과 아직 무엇이 되지 않은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괴테는 파란색을 '끌어당김이 있는 무'로 정의했다. 파란색은 우리를 매혹하고 갈망을 일깨우는 '아직 아님'이다. 파란색은 우리를 먼 곳으로 끌어당긴다. 쾨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높은 하늘, 먼 산을 파랗다고 보는 것처럼 파란 면은 우리 눈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눈앞에서 멀어지는 어떤 호감 가는 대상을 우리가 기꺼이 좇는 것처럼 우리는 파란색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이 색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희망이 없는 공동체는 회색으로 덮여 있다. 것이 없다. 


희망의 정신을 지닌 우리는 '지나간 것' 안에서도 '앞으로 도래할 것'을 발견한다.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자 다른 것인 '앞으로 도래할 것'은 '지나간 것'이 꾸는 낮의 꿈이다. 희망의 정신 없이는 동일성 안에 갇히게 된다. 희망의 정신은 '지나간 것' 안에서 '앞으로 도래할 것'의 흔적을 좇아 나아간다. 그렇게 과거는 구원을 암시하는 은밀한 지표를 지니고 있다. 125-126


'아직-아:닌' 전시는 희망을 다루는 만남이다. 희망의 원리라는 책의 부제, 아니 원제목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기도 하다. 밤꿈이 아니라 낮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의 <<불안사회>> 역시 희망을 다루고 블로흐를 언급하고 있다. 오프닝때 전시설명을 마무리하면서 낭독한 대목이기도 하다. 


Bowl시리즈는 공동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모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붙이고 긁고 오리고 금가게 하고 다른 것들로 채우기도 하고, 선물present이기도 한 것이다. 말하고 싶은 텍스트들도 판박이처럼 붙어있기도 한데, 훗날 알게될 스토리이기도 하다.


Blue 시리즈는 옮긴 대목을 다시 보며 환기시켜도 좋을 듯하다.




볕뉘


소소영화관에 전시중인데 상주하고 있지는 않다. 주말 간간히 들르긴 하지만, 위의 스토리를 갖고 보시면 더 좋을 듯하다. 소소영화관에서 추천중인 영화 <쇼잉업>을 보시면 더더욱 좋겠지만, 이 역시 작가의 욕심일 수도 있겠다싶다. 아마 4월 중순까지 편하게 오셔서 둘러보시고, 한 켠에 마련한 책장과 책들도 전시를 위해 준비한 소품이니 참고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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