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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것, 뼈와 살을 갖는 것. 자기중심성. 모두는 특유하다. 고대인,현대인, 자유인(현대인으로서). 정치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인간적 자유주의.


몸을 낮춘다. 아니 도려내고 있다. 그간 자유로움의 끝을 보아서 외식을 줄이면서 좋아하는 것과 잠시 결별중이다. 아니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있다. 발아현미에 건나물을 넣어 밥을 짓고, 강황을 차처럼 한두잔 마셔준다. 그렇게 한 지 한달남짓. 몸의 무게도 내려가기를 멈추고 있다. 


어젠, 이 책을 허겁지겁 먹느라 정신이 없다. 막 1부 인간에 대해 읽고 잠을 청한다. 내란수괴의 마지막 확인몸부림까지 읽다. 잘했다. 그렇게 스스로 못됨을 확인해주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다.


 

1. 

 

청년은 도처에서 세계를 잘못 생각하고, 세계를 더 낫게 만들려고 하며, 자신의 이상에 따라 세계를 설계하려고 한다. 이와 달리 어른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린다. 이 사실이 청년과 어른의 차이점이다. 어른에게는, 세계를 자신의 이상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에 따라 다루어야만 한다는 견해가 확고하다자신을 정신으로만 알고 있고, 자신의 모든 가치를 정신임에 두고 있는 한(무가치한 것을 위해, 가장 하찮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생명, 그 육체가 깃든 생명을 내팽개치는 것은 청년에게는 쉬운 일이다.), 또한 오직 생각만을 가지고 있는 한, 일단 어떤 행동 영역을 찾아내었다면, 청년은 이념을 실현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러므로 그동안에 그는 오직 이상, 곧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이나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뼈와 살을 갖춘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에만, 게다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즐길 때에만하지만 그러한 것을 확실히 찾아내는 것은 성숙한 나이, 어른의 경우에서이다. 오직 그런 다음에 어떤 자기만의 (persönlich) 또는 자기중심적 관심을 갖는다23

 

 

2.

 

어린아이에게는, 바로 동물처럼, 아무것도 신성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성한 것이란 표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미 '좋고 나쁜, 정당하고 부당한' 것과 같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적 능력 정도는 발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도의 반성 혹은 사리 판단 능력(종교의 고유한 관점)에 의해서만 자연스럽지 않은(다시 말해, 지금 막 생각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경외(Ehrfurcht), '신성한 두려움'이 자연적 두려움(Furcht)을 대신할 수 있다.  이러한 신성한 두려움은 자신의 외부에 어떤 것을 더 강력한, 더 큰, 더 정당한, 더 나은 것 등등으로 여긴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다음 어떤 낯선 힘을 인정하는 태도는 그 낯선 힘을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낯선 힘을 명확하게 인정하고[78] 다시 말해 낯선 힘을 시인하고, 그것에 굴복하고, 항복하며, 자신을 속박하도록 하는 것이다(헌신, 겸손, 굴종, 복종 등등). 여기에 '기독교적 미덕'이라는 모든 허깨비의 무리가 유령으로 돌아다닌다어떤 존경 혹은 경외를 느끼는 모든 것은 신성한 것이라는 이름을 받을 만하다. 또한 당신 자신에게 말하길, 당신은 그것을 살짝 건드리며'신성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신성하지 못한 것(교수대, 범죄 등등)에게서도 이러한 기미를 띠게 한다. 당신은 신성한 것을 만지는 것이 무섭다. 신성한 것에는 어떤 두렵고 낯선 것, 다시 말해 어떤 친숙하지 않은 것 혹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 있다'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참으로 113


3.

 

'사랑하는 보호자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의 원리도 태생의 원리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함이라든가 중용의 원리이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태생의 원리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는 노동의 원리, 다시 말해 이자를 낳는 소유의 원리가 그것이다. 여기서 소유란 고정된 것, 주어진 것, 상속된 것(태생)을 말하는바, 그로 인하여 이자란 수고(노동)이며, 따라서 노동하는 자본(arbeitendes Kapital)이다. 어떤 과도함도, 어떤 극단주의자도, 어떠한 급진주의도 허용되지 않는구나! 틀림없이 태생의 권리는 인정되지만, 오직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소유만이 허용된다. 확실히 노동이 인정되긴 하나,[125] 거의 또는 전혀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자본의 노동과 고분고분한 노동자의 노동만이 인정될 뿐이다.한 시대가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것으로부터 어떤 사람은 손해를 입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항시 이득을 본다. 중세에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모든 권력을, 혹은 최고의 주권을 가져야만 한다는 오류가 기독교인 전체에 해당된 오류였고, 성직자는 평신도 못지않게 이 '진리'를 믿었으며, 양자는 모두가 동일한 오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오류를 통해서 성직자는 권력이라는 이득을 보았던 반면, 바로 그러한 오류 때문에 평신도는 복종이라는 손해를 입었다. 그러나 '손해를 보아야 지혜롭게 된다'라는 속담처럼, 그렇게 평신도는 마침내 슬기로워졌고, 이제는 더 이상 중세의 '진리'를 믿지 않았다. 이와 동일한 관계가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도 존재한다.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돈의 '진리'를 믿는다. 돈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는 돈을 소유한 부르주아 못지않게 돈의 진리를 믿는데, 이러한 것은 과거에 평신도와 성직자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가 부르주아 시대의 지배적 분위기이다179

 

4.


그러므로 인간적 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노동을 원한다. 자 이제, 우리도 마찬가지로 노동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최대한 노동을 원한다. 우리는 여가를 얻기 위해서 노동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 그 자체에서 모든 만족을 얻기 위해서 노동을 원한다. 우리는 노동을 원한다. 왜냐하면 노동이 우리의 자기발전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노동도 또한 노동의 목적에 맞게 조정되어야만 하는구나! 인간은 인간다운 노동, 자기 의식적 노동, 노동의 목적을 위해 '자기중심적' 의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을 갖는, 그리고 인간의 자기표명 (Selbstoffenbarung)인 노동에 의해서만 존경받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한다. laboro, ergo sum : '나는 노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해야만 한다. [145] 인간적 자유주의자는 모든 물질에 작동하는 정신의 노동을, 어떤 것도 가만히 두거나 기존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는 그런 정신의 노동을, 아무것에도 안심하지 않는 정신의 노동을, 모든 것을 제거하고, 획득한 모든 결과물을 새롭게 비판하는 정신의 노동.206

 

5.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완전히 다른 인간, 더 가치 있고, 더 높고, 더 위대한 인간, 다른 인간보다 그 이상인 인간을 드러낸다(offenbarest)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그대가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을 완수해냈으며,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대가 이루어냈다고 하는 점을 확언하고자 한다. 그대의 위대함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그대가 다른 인간들('대중들')보다 그 이상이라는 것. 보통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보다 그 이상이라고 하는 사실에 있다. 정확히 인간을 넘어선 그대의 고귀함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147] 그대가 인간이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가 '독특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한다. 그대는 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 인간인 그대가 그 일을 성취하기 때문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 인간들 또한 결코 그 일을 성취할 수 없다. 그대는 독특한 인간으로서만 그 일을 행했고 그런 점에서 그대는 유일한 것이다.인간이란 것이 그대의 위대함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가 그대의 위대함을 창조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이며, 다른인간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세상사람들은 한 사람은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일 수 없다고 믿는다. 오히려, 한 사람은 인간보다 더 못한 존재일 수 없구나!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한 사람이 성취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믿는다. 내가 항상 어떤 사람으로 남아 있는 한209

 

6.

 

더 제한된 공동체 속에서 프랑스 사람은 여전히 독일 사람을 적대했으며, 여전히 기독교인은 이슬람교인을 적대하였다. 등등.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인간(der Mensch)이 그 인간들(die Menschen)에 적대하고, 또는 그 인간들이란 그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인간은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에 적대하고 있다.이제 "신이 인간이 되었다."라는 문장에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인간이 내가 되었다." 이 문장은 인간다운 나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장을 뒤집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찾는 한, 나는 나 자신을 결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인간이 내가 되길 열망하고 나 속에서 뼈와 살을 갖추길 갈망한다는 일이 아주 분명하다. 어찌되었건 나는,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가장 신령스러운 영역에서 나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내가 추적하는 것이 인간인지 또는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인지를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정신으로 나를 괴롭히지 말게!인간적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작동한다. 만약 그대가 한 가지 점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특별한 것을 갖고 싶다면, 만약 그대가 그대를 위해 남보다 뛰어난 특질이라도 지키길 원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대가 '보편적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권리라도 요구한다면, 그대는 자기중심적 사람이다217


볕뉘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키워드를 중심으로 흐름을 쫓아가면 잡힌다. 인류는 어쩌면 이런 질문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아직 아닌 유토피아를 말하려면, 아니 우리의 일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한다면 이 질문은 필수다. 이 양반은  자본주의, 봉건주의 중세, 고대를 아우르면서 삶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구조적인 문제짜지 잘 다루고 있다.  몇 번 거듭 보시고 두꺼운 책을 읽어내시면 지금 시류와 맞춰 무척 아름답고 무한한 것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 당신 독서이력에 새로운 방점을 찍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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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책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편하실 때 들러주세요.' 란 알림이 왔다. 주말과 책방쉼날이 있어 몹시 기다린 셈이다. 얼굴보기도 쉽지 않던 말O샘이 있어  녹차라떼와 쥔장이 준비한 사과 몇쪽을 나누면서 두런두런 수다다. 몇 년째 씽크대도 들여놓지 않고 집을 꾸미다니?!, 아이를 차게 키우고 있는 그는 태평하다. 비상계엄날도 무던하게 넘기다니 세상에나. 


하지만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이 맞다. 주변에 휩쓸려 살아가거나 살아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불쑥 계기가 되어 또 다른 삶을 꾸려가기도 하고 그것이 맞다. 아니 그것이 좋다. 다 똑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습관과 모습들이 서로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그러다가 지독하게 곪은 모습도 보고, 깨닫고 그러는게 삶이다.


<깊은 협동을 위한 작은 안내서> 글쓴이의 말을 새겨본다. '생각의 협동'이라니. 우리는 살면서 방점이 모두 다르다. 비슷할 것이라고, 유사할 것이라고, 수긍과 인정의 과정에서 서로는 합이 맞는구나 싶은 경험들을 한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강도와 밀도, 농도의 호흡은 조금씩 달랐을 수 있다. 어쩌면 달리 자라는 길이였는지도 모른다. 출발점만 비슷한 그루여서 그 다음은 다른 가지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누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되뇌이어야 한다. 다르다라는 처지를 인정하고 과정의 질문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어쩌면 질문을 만들고 있지 않아서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같다라는 착각은 늘 뒤 늦는 것이어서 안심과 무질문과 무사유를 덥썩 물어 삼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막스 슈트리너의 책을 손에 넣다. 결핵으로 37살에 생을 마감한다. 그 뜨거움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목차를 가늠하니 무언가 질문을 한번 더 스스로 던지는 것 같다. 


어젠 날씨도 포근하여 퇴근 무렵 미니벨로로 이동하여 형산강변을 달려준다. 14k 달림 합이다.  편안한 심박수로 또 다시 추워지면 움직이기 어렵나니, 미리미리 달려본다. 하지만 운동이 과한 듯 막걸리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러면 안된다고 했잖아. 안되는 건 없잖아.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벌써 이만보야. 그러길래 무리하면 되지 않는다고 했지. 내일도 있잖아. 며칠 템포는 염두에 두었어야지. 주섬주섬 손길이 간다. 건빵과 양갱까지.... ...


여전히 밤사이에도 내란에 동조하는 반국가세력들은 마지막 안간힘을 쓴다. 새벽 5시래. 드디어 묵혔던 체증들이 내려가는 날인거야. 잠을 청하고 실시간 중계를 보아야지 했는데, 새벽 그 시간이거니 하고 깨어보니 두시밖에 되지 않는다. 어쩐다. 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다섯시가 넘어 방송은 요란하나 진척은 없다. 도대체.


오늘부터, 세상은  달라진다고 본다. 분기점은 늘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질문이 공유되는 세상, 질문을 만들고 나누어지는 세상은 분명 나아지고 품어질 수 있다고 여긴다. 다만 가짜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주춧돌이다.


좀비, 무속, 공룡의 멸종이 눈앞이다. 무속의 예측은 그리 허망하단다. 너희들이 먹고 자란 가짜의 후과다. 그렇게 사라지고 새살이 돋는다. 봐라. 똑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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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을 먹자. 

편을 먹자. 같은 편.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은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한다. 그날 그때그때 달리 하면된다. 사는 사람도 수긍한다. 하지만 창과 방패를 모두 가지고 있는 집단이 아직 세상에 남아 있다. 힘이 어마무지 하여, 그 아래 신민들은 창을 쓰고 방패 가운데 무엇을 써야하는지 고를 수가 없다. 바라보는 무리들은 정작 먹고사느라 쓴 것이 창인지 방패였는지, 창고에 처박아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시간을 거느리고 있다.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필수이다. 망각을 지배한다. 잊히는 때를, 묻히는 때를, 뭉개는 때를 가늠하는 유전자들이 생겼다.














그들에게 사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동일체다. 짬짜미를 할 수 있다. 어쩌면 뿌리라는 것이 있다. 그 연원은 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감옥의 탄생이전까지. 화형을 하고 효수형에 처하고, 그렇게 보여주기 식에서 푸코가 무슨 연유인지 특별한 경로를 갖지 않고 생긴 감옥들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그들의 생리를 짐작하게 하는 무엇들이 더해진다. 기득권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들. 이곳엔 이런 처리엔 독점과 월권이 필요하다. 그런 조항들을 하나하나 챙겨 삼킨다.


예전의 사상범들은 감옥에서 책도 보고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거리의 단두대란 교육효과가 아니라면 그 이면의 통제는 느슨했다고 볼 수 있다. 아시다시피 감옥과 사상통제가 심해지면서 별의 별 법들이 촘촘해지면서 옥죄였다고 할 수 있다. 치안유지법, 국가보안법, 일제치하와 미군정, 해방이후 보수수구정권들 틈새에서 이렇게 기괴하게 자랄지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이들도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기도 하다. 조직문화는 섬과 같다. 주변환경에 적응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오르는 길만 관심이 있지 내려가는 길과 그 방법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 집단자체가 말로를 인지하는 능력이 부재하다. 한번도 제대로 실패한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희망과 현실의 차이는 격차가 크다. 그들의 명멸을 맘졸이며 지켜봐 왔지만, 그들의 치졸함이란 법이라는 자양분 앞에서 끝이 없다. 안하무인이라는 괴물과 법망을 모조리 들어삼킨 죄는 헌법마저 삼켜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니 그들의 그들의 말로를 무속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멸하는 순간에 그들의 거대한 대교가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러져가는 힘을 부여잡고자 하는 거대한 군상들 역시 그들을 닮아있다.



볕뉘.


1.


새벽 눈이 떠지자마자 폰을 들여다본다. 라이브를 검색하자 다 지난 라이브다. 아무 일 없다. 권력이 가진 힘이 얼마나 무지막지한가를 새삼느낀다. 되지 않게 하려면 속속들이 곳곳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힘만 가지면 된다. 안면몰수하고 생까면 움직이기 마련이다. 무속이든 극우든 상관없다.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탄핵정권의 현실이자 민낯이다. 날조와 거짓의 정점으로 버무린 세상을 덮고 사는 사람들과 집단들은 정권 탄생 전부터 민주주의를 잃었다. 맹신과 맹종과 배제와 한 자리 차지하려는 권력욕많이 끊임없이 그 윗자리를 갈아치울 뿐 허리와 밑은 만신창이가 된 지 무척 오래다.


모든 자리들을 박근혜탄핵반대의 태극기부대가 메운 지경이다. 검사들의 나라. 검사들의 정서와 세계관. 신의 양검을 모두 쥔 나라. 그들은 신이자 하느님과 동격이시다. 무결점의 선구자이시며 떠다니는 태양이시다.


왜 부끄러움은 그들 몫이 아니고 우리 몫이어야 하나. 


2.


거대한 뿌리가 썩기 시작한 지는 오래다. 자멸의 길은 반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썩은 부위도 다 도려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퍼먹던 온갖 물들도 청소가 필요하고 소제가 있어야 한다. 급한 일이 아니라 천천히 한 수 한 수 짚어 그 싹들이 올라오지 않게 하는 일들도 헌법을 수호하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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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을 하려고 하니 자동입력방지번호가 뜬다. <0927> 숫자의 조합이 낯익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묵었던 오피스텔 숙소의 비번의 배합이다. 출입구 비번도 외우기는 어렵지 않다. 여수-순천-경주를 경유해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천재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비범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일상의 기법에 대한 이야기다. 늘 시작하는 가운데 하나는 자폐인데, 아니 신경다양성에 대한 얘기다. 그들은 왜 천재인가. 그레고리역의 요일을 맞추는 음악인에게 묻는다. 이건 설명하기가 어렵다 한다. 대부분 설명을 하면 듣다가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몇년 몇월 며칠은 무슨 요일? 묻자마자 이십여초도 되지 않아 답이 나온다. 끝끝내 설명을 들으려는 친구의 인내 곁에 머무르다가, 아, 이 친구는 외우기위해 엄청난 방법의 수련이 있는 거구나 했다.


여러 기억술과 암기술이 있다. 정말 그럴까. 그런데 왜 나이가 들면 그러지 않을까. 천재임이 틀림없어.


내가 경험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얼굴 드로잉에 관한 것이다.  척 보면 알 수 있다고  아니다. 드로잉 책을 보면 그 기법이 요란하다. 사진의 필름처럼 역으로 테두리를 음각과 양각으로 본다던가 선의 모양에 갖가지 문양으로 기억해두는 것이다. 


9027을 이렇게 기억해본다. 묵은 숙소가 205호다. 902^ 거꾸로 ^209호로 암기한다. 1334란 비번은 13세에서 34세까지 134세라니 이런 잇기를 순간적으로 가감해두는 것이다. 계좌번호를 잘못 외우긴 하지만 못외우는 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시 한편 소개하려고 이 서설을 하다니


후면번호판단속중


서진배


지났다고 끝이 아닙니다

지난 뒤를 단속합니다


사람에 다가갈 때 주의했죠

침을 삼키고,

웃어도 보고,

속도를 참았죠

사람을 지난 뒤 더 주의해야 합니다


뒤를 안심합니다

뒤를 방심합니다


뒤와 너무 빠르게 멀어지지 말아요

뒤와 너무 빠르게 헤어지지 말아요


뒤가 나를 따라오게,

뒤가 나를 느리 잊게,


다가와 다치는 것보다 멀어져

다치는 게 더 아프니까요


다치지 않게는 헤어질 수 없습니다

천천히 다치게

느리게 다치게

헤어지세요


당신의 뒤에서

혼자 

헤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더디 오더니 빨리

멀어집니다.


볕뉘


마라톤을 빌미로 하루 일찍 여수 돌산대교를 건너 향일암으로 향한다. 관음전 아래 원효좌대에 한참을 머무른다. 마라톤을 마치고 여수서시장 로타리식당에서 여수막걸리와 백반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10k 58'21" 얼마만의 기록인가!! 


장도전시관에서 일년 반전 다녀간 한강의 자취도 만나다.


다녀와 뚝딱 시 한편을 건네는 시인의 시집도 기대된다. 남탕시리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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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질문이 '인간이란 누구인가?라는 개인적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럿을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을 사용하여 개념을 얻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더 이상 '누가'를 사용하려는 질문은 전혀 없다. 오히려 대답은 질문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있다. 질문 자체가 스스로 답한다.  171





















나는 내 힘의 소유자이다. 그것도 내가 자신을 유일한 나로 알고 있을 때 그렇다다. 유일한 나 속에서 소유자 자신은 자신이 태어난 창조가 깃든 무로 되돌아간다. 172


그는 이 책을 인간답지 않은 인간에 대해 쓴 것이다. 175


볕뉘


1.


이렇게 전문 연구자와 번역자가 있는 줄 몰랐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도 번역이 되어 있다.  홀로 책읽기 가운데 슈트리너는 터럭 하나의 양주도 생각나게 하

지만, 청년 마르크스와 많이 겹치는 인물이다. 청년마르크스라는 영화도 그렇고 고병권의 자본론 읽기에도 나오는 아나키스트에 대한 과도한 반대와 관련되어 있다. 프루동 뿐만 아니라 그 인물 가운데 하나가 막스 슈트리너다.  슈트리너는 정작 보지 못하고 죽은 독일이데올로기는 이 인물에 비판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다.


2.


하지만 후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도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나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하나로 규정짓지는 않았다.  청춘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읽을 때, 공산당선언뿐만 아니라  독일이데올로기 역시 무언가 발언해야 하는 과도함이 많이 스며들어있다.


3.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아나키스트의 원류이기도 하다. 세 명의 비평가들 중의 포이에르 바흐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살필 듯이 커다란 사회주의 흐름의 역사는 아나키즘과 따로 분리할 수가 없다. 면면히 흘러오는 뒤섞이는 흐름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빠른 니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작도 나왔으니 세심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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