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당신-나, 죽음과 삶..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조문객들의 서러움 속에서 당신을 다시 느낄 수 있었고, 그동안 바라본 시선이 오히려 좁고 편견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알았다. 화장터에서 하이얀 한줌의 재로 가신 외할머니를 보낸 건조함은, 어느 날 시퍼런 하늘 만큼, 날을 세우고 문득 맘 속에 들어와 요동칠 때에서야 슬픔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장인어른 생각이 처남댁 집들이에서 문득 솟구쳐 올랐다. 당신이 있으면 좋을텐데하구. 그렇게 불러들였다.
죽은자들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속에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엷고 서로 스며들고 나누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산자들만의 윤리가 아니라 죽은자들과 윤리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건강하겠다고 하는 어른신들의 맘 속에는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가 있는 것도, 나이가 한참이나 들어서였다. 내만 편하겠다는 생각보다 자식들을 한움큼 넣고 생각하시는 당신들에겐 늘 나부터 생각하는 어린아이인지도 모른다.
중환자실에 실려간 아흔이 훨씬넘으신 이모할아버지의 임종을 결정하시는 것도, 숨이 있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편히 보내드릴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부모님의 자취를 따라, 아이를 키우면서 서서히 그들의 조건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철이 없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숙함. 깨닫고 보면, 청춘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청춘인지 세삼스럽다.
어쩌면, 당신들을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배울 것이다. 삶의 궤적을 지나쳐야만 보이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청춘을 반성하면서, 좀더 세련되고, 멋진 중년이 다가서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당신들에게 배운 멋진 것들을 내리사랑하게 될 것이다. 다가올 설엔, 이 소설덕분에 더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표현할 용기를 얻게 된 것 같다.
선물 주신 아영엄마님께도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ㅇ...
2.



책읽기의 방향이 의도하지 않게 틀어진다. 십여년 사이의 변화가 궁금해진다. 개념을 따라잡을 만큼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뭉둥그려진 상태이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별일이다.
3.
세번째, 지은이의 과학에 대한 태도가 흥미있다.
라마찬드란은
말하는 돼지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반복해서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관찰보다는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뭔가 예외적이고 특이한 사례들이 진실을 더 확연히 보여주는 열쇠가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가 집중하는 대상들은 정상인보다는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 또 그 장애가 아주 특이하고 유별난 경우들입니다. 간질발작을 일으킨 후 갑자기 종교에 심취하게 된 환자, 왼손이 자꾸 목을 조르려고 해서 그 때마다 오른손으로 밀쳐내야 하는 환자, 팔이 잘렸는데도 그 잘린 손의 새끼손가락에 가려움을 느끼는 환자 등등.
또 이런 사례들을 연구하는데는 그다지 대단한 장비나 정교한 장치들도 별로 필요없다고 주장합니다. 약간의 뇌신경학 지식과 면봉 하나만 있다면 유령팔다리현상phantom limb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식입니다 (by 세리자와)
뇌과학이나 심리학 역시 최근 급속한 발전을 하고 있다는데, 이런 대중서들이 편하게 잘 읽힌다. 상상임신과 다중인격, 마음과 몸의 변화 그 지점은 어디, 어디까지일까? 거꾸로 마음을 거꾸로 각인시키면 몸도 나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지만, 조심스럽다. 동-서양의학의 접점을 볼 수도 있고, 그 성과물로 인해 정말 가려졌던 것의 엄청난 발견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읽기도 아래 책 소개로 인한 독서방향과 다른 틀어진 책읽기다.

후기,
물리적 독서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도서관에 들러 빌어온 것도 오랫만이구. 자꾸 몰려오는 책들이 상큼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조더 짬을 내어야 할 것 같다. 조신해져야 되구. 지난 10여일 체중도 1.5kg나 불었다. 안해는 좋다구 웃음이 가득하지만, 섭생을 조절해야겠다. 둔해지고 부담스런 몸에 맘도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