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즈니, 공공문화의 정치학
26 윌트의 오락과 교육의 결합은 공공문화와 상업적 이익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디즈니의 성공은 문화산업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간여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8 민주적인 문화는 젊은이들에게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교육시키고, 민주적 사회 관계를 차단하는 인종,사회,경제적 불균형의 개선에 필요한 제도적이고 상징적인 원천을 제공한다. 기업들은 시민권인 교육의 자유와 교육 기회의 균등을 소득에 비례하는 교육으로 제한함으로써 상업적 요구를 앞세워 시민들의 요구를 묵살하려고 한다
32 기업에서 만들어낸 문화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우위에 두고, 청소년들에게 광범위한 기술과 권리를 지닌 진정한 민주시민이 되는 잠재력을 포기하라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이 만들어낸 문화는 시장의 논리에 근거한 정체성만을 수용하게 하며, 능동적이며 비판적인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하고 수동적인 소비자의 역할만을 하라고 제안한다.
33 상업적인 영역은 텔레비전,라디오,영화 그리고 신문이다. 대기업은 점점 더 삶의 의미와 소망을 상업적 논리와 접목시키려 하는데, 이를 통해 어린이들의 민주적인 정체성을 조정할 수 있게 되고, 문화에 대해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위력을 "권력을 획득하는 긴요한 수단과 무기로서"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37 기업과 소비자의 권리가 시민 활동권을 제압하면서, 아무리 상대적 반발과 조직적 저항이 남아 있다 해도, 민주제도와 사회적 관계의 쇠퇴와 더불어 일상생활의 상업화는 계속되고 있다.
40 자본주의의 위대한 신화 중의 하나는 시장은 단지 선택권을 주고, 선택을 합법화한다는 생각이다. 즉 시장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힘을 강화시켜주며 그들이 가진 화폐로 투표하게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시장은 대중의 폭넓은 선택을 차단한다.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25종의 자동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대중교통 수단을 선택할 수는 없다.
45 정치적 투자란 디즈니의 세계관으로 우리 모두를 구속하려는 시도를 통해 우리들의 삶의 의미와 소망과 꿈을 조작해내려는 것이다. 디즈니의 교육은 시민의식의 유치하고 개인적인 면을 강화시킨 도피주의와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전략이고, 과거가 현재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공공의 추억을 특정한 틀 속에서 정의 내리는 행위이다.
67 교육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자아 반성과 공적 책임인데, 이 두 자질은 디즈니의 사상적 세계에서는 세속적 모독일 뿐이다. 디즈니의 교육은 현실의 가능성과 한계를 인식하게 하고,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켜나가는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디즈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저항을 대신해 선전 문화에 기반을 둔 환상의 세계를 제공한다. 또한 과거에서 반항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과거를 단지 기업정신과 기술 발전이라는 감상적인 찬양으로 채워버린다
2. 디즈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
72 공립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면서 기업들은 학교의 사립화, 재정보조, 선택적 교과과정, 학교와 기업 간의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시도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민주적인 공공의 삶을 심화시키고 확장해가고자 하는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건전한 시민이란 기존 인습들을 과감히 거부하고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락국가'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누가 문화의 생산을 통제하고 있는가? 이렇게 생산된 의미들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가? 문화를 생산해내는 일이 오락,볼거리,소비,관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가?
88 지난 10년 동안 기업이 만든 문화는 개인주의, 이윤 추구, 시장 중심의 문화를 찬양하는 변혁의 과정 안에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 공동체와 민주주의와 공공의 이익이란 용어가 사라져가고 공공을 위한 목적, 공공에 대한 봉사,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 역시 약화되고 있다.
89 문제는 바로 민주사회에서 기업문화가 공과 사, 오락과 역사, 비판적 시민정신과 소비행위의 뚜렷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행위를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사회가 정치적이고 대중적이고 역사적인 대화 과정과 그 산물인 문화를 무시하고, 소비행위가 주는 쾌락과 도피적 오락과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흔들리고 있는 현실은 과연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124 영화의 통제와 생산과 배포는 광범위한 권력 순환의 일부로 분석돼야 한다. "오락주권국가"라는 이름처럼, 디즈니가 다양한 분야에서 전반적인 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권력과 필수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디즈니 아동 영화의 이용 가능성, 영향력, 문화적인 위력은 문화정책을 만드는 주체와 관련된 정치적인 토론의 일부가 돼야 한다.
125 언론의 자유라는 전제는 모든 사람들과 집단과 공공분야에 이익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민주적인 방식 안에서만 유용하다.
127 디즈니 제국은 순수하게 젊은이들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상업적인 기업이기보다, 국가정체성의 문화적인 배경과 어린이들의 정신적 "학교"라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기업으로 인식돼야 한다.
4. 디즈니 영화에 나타난 추억,국가,가정
130 문화권력: 디즈니 세계의 순수함이란 역사의 불쾌한 측면을 제거하는 이념적 도구이다. 순수함은 또한 권력의 지배 관계를 합법화시키는 수사적 도구일뿐만 아니라, 특정한 역사 이야기와 표현과 문화적 활동 가운데 사람들을 자리매김하는 교육적 장치이다.
131 좀더 비판적인 의미에서 교육이란 지식과 권위와 권력의 관계를 조명해주는 것이다. 이때 교육은 지식을 생산하는 조건들을 누가 통제하는가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더욱이 특정한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지식과 정체성과 권위를 생산하는 다양한 과정 중에 권력의 순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윤곽을 제공한다. 지식과 힘과 소망과 경험이 특수하고 기본적인 학습의 조건에서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33 역사적으로 대중문화가 지구촌 문화를 지배하게 되고, ....문화가 권력과 자본의 순환 구조에 직접 개입하는 기업의 아주 우수한 상업화 현장이 된다. 또한 그 현장은 편견과 정형화의 무자비한 과정 속에서 자료와 경험을 용해시키고, 기존 문화 관료들의 손을 거치면서 이야기와 표현을 한목소리로 통제하고 획일화시키는 곳이다. 도피주의와 역사적 망각과 인위적인 세뇌라는 전략은 미국의 정체성을 백인,교외주거지, 중산층 그리고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만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추억에서 반항적인 요소를 삭제한 역사적 교훈의 기능을 한다.
5. 미국을 장난감 상점으로 만들기
160 "여가와 오락의 전제적 권위"를 지니고서 문화를 상품화하고, 역사적 추억을 정화하며, 소비주의 이념 안에서 특별히 어린이들의 정체성을 조작해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164 기업과 함께 자라나는 것은 미국 젊은이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렸다. 시장문화가 욕망을 자극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등 교육적으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정부의 간섭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젊은이들이 기업과 함께 자란다는 의미는 공공문화를 상업문화로 대체하고, 민주주의 언어 대신에 시장의 언어를 쓰면서 생활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165 학교의 기능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에서 민주적 소비자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지배적인 상업문화가 시민사회를 잠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비주의가 유일하게 수용해야 할 시민정신인 것처럼 보인다.
166 민주주의는 노력을 요구한다. 교육가,학부모,일반인들에게 시장은 " 민주적 시민사회의 핵심인 정의와 공평무사라는 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도 해주지 못한다." 기업문화라는 권력은 그대로 방치하면 어떤 경계선, 즉 위생적인 식품공급, 건강보험, 안전한 교통수단 등 기본적인 사회적 필요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168 디즈니는 단순히 오락만을 파는 것이 아니다. 디즈니는 정치,경제,교육에 관한 실체이다. 대기업의 권력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미디어업체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을 명백히 폭로하기 위해서 다양한 부문의 전면에 서서 대항해야 한다.
189 문화에 대한 검증은 그 문화가 기쁨과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낙엽 1. 문화권력과 공공성의 관계를 잘 정리해놓아 옮겨놓는다. 사회는 기존에 존재해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방송국 프로그램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로또가 왜 생겼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경마장,경류장.... ... 주식투기를 시작하는 일들... ...2-3개사 공중파가 케이블로 된 변한 일들... 그리고 무수히 뿜어내는 화상들. 태어난 아이, 커가는 아이, 태어날 아이... 그 분기점엔 관심이 없다. 로또를 몇장살지, 어디가서 한탕할지? 오락거리라고 논외일까? 그 분탕질에 왜? 공공은 사라지고,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일상은 거듭되는 것일까? 그 분기점에 대해 거스르지도 않고 아무 이야기도 없다. 에버랜드도 캐리비언인지 뭔지... 우리는 무엇을 공유하고 가르치고 나누는 것일까?
낙엽 2. 우리사회는 엽기적 행각만 벌어진다. IT와 오락의 화려한 결합. 불나방처럼 몰려든 무리. 인터넷 고스톱과 로또로 단련된 무지렁이들은 '바다이야기'란 감전퇴치기에 몰려든다. 그렇게 몰살하여도...우리 사회는 잊혀진다. 나와 무관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일이므로 천박한 권력과 무정책한 모리배들의 또 다른 아이템에서 현신할 지 관심없이 잊혀져간다.
낙엽 3. 우리는 그렇게 제조되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낙지발이나 문어발을 만들고 있는 것에 비용을 지불하고 선택하는 재미에 충만되어 그 중동이나 그 몸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벌어 문어다리 한쪽에 만족하며 지내는 것이 변환의 와중의 몰락하는 우리였고, 앞으로 우리일지 모른다.
낙엽 4. 자본의 씨앗으로 자란 주체엔 그 안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다. 있다면 그 자본의 씨앗을 불리기 위한 자양분으로써 인간과 지역과 사회이다. 그렇게 자란 주체는 곳곳이 괴물만큼 커있다. 미치는 정치,경제,교육,문화적인 힘이 괴물만큼의 파괴력이 더 되는 듯 싶다. 그것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어떻게 자랄 것인지? 어떻게 내 목을 죌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돌아가지 않고서는 그들이 던져주는 팝콘과 콜라와 몽롱한 네모난 모니터에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를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