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블런의 『유한계급론』 2005년 초판을 손에 쥐고 있는 감흥은 약간 남다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나온 것은 지난 1978년 “정수용”이 옮기고, “광민사”에서 펴낸 것이었다. 출간되고 얼마 뒤 이 책은 금서(禁書)가 되었고, 1987년 해금되기까지 법적으로는 읽는 것이 금지 당했다. 오늘날엔 경제학 전공자들보다는 인문 ․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더 많이 읽히는 고전이 금서가 될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했던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내가 너무 둔하여 혹시 이 책에서 금지될 만한 어떤 사유(思惟)들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중략)
역사학자들이 20세기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분명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이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20세기를 러시아 10월 혁명과 함께 출발해 지난 1991년 무렵 구소 연방의 해체로 종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으로 지난 18세기 무렵 서구 유럽이 제국주의를 통해 축적한 자본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은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이며 이것을 가능하도록 한 토대엔 인간의 욕망이 잠재해 있다. 우리들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안락함의 기억이 얼마나 질긴지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그 기억에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불교, 유교와 같은 종교적 가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인류는 이미 단일 종파, 단일 종교로 통합되었는데,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물신(物神)”이다.
베블런은 인간의 소비 혹은 욕망을 합리적인 것으로 단정한 고전학파나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에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경제이론을 완전히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블런의 비판이 날카롭긴 했으나 그가 경제학에 새로운 체계를 세운 것은 아니었고, 마크르스처럼 유한(자본가)계급에 대해 혁명을 주창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베블런의 공적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가 유한계급에 대해 던졌던 냉소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이다. 베블런의 지적들은 이후 정치적인 측면에서 C.W.밀즈(『파워엘리트』), 사회학적인 측면에선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선 제임스 트위첼(『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럭셔리 신드롬』)에 의해 오늘날 좀더 세부적인 측면으로 분화되어 풍요롭게 계승되고 있다. (by 바람구두)
뱀발. 1899년에 세상에 내놓은 책이란다. 맑스?나 베버?보다 부르디외보다? 오히려 시원시원한 느낌이다. 궁금증으로 쌓인 것들이 뱉어내는 간결함에 녹는 것 같다. 살아남는자들의 성향이나 사회가 점점 더 옥죄는 분위기에 대해 간간이 들어있는 진화론의 과도한 덧붙임을 제외하면 수긍이 간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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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야만적인 단계 혹은 본연의 약탈 단계에 부합하는 기준성격은 소박한 의미의 용맹성이었다. 유한계급에 편입되기를 열망하는 후보자는 당파심, 당당한 체격,잔인성, 악랄함, 집요합과 같은 재질을 타고나야 했다. 이런 재질들은 부를 축적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구비해야 할 자격조건이었다. 이후 부를 축적하는 방법과 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들은 어느 정도 변하기 시작했다. 과감한 공격, 민감한 신분감각, 속임수 등을 통해서 거침없이 발휘된다. 후기 야만문화의 사회는 외견상 평화로운 신분체제하에 안정된 취득방법과 소유방법을 정착시켰다. 거침없는 공격과 상당히 무절제한 폭력은 가장 우수한 부의 축적방법으로 증명된 약삭빠른 행동과 교묘한 언변으로 대체된다.
목적에 대한 집요함은 다른 두계급- 즉 게으르고 쓸모없는 무능력자들이나 하류 범법자들-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금력을 과시하는 남자는, 산업에 참가하는 남자가 선량하지만 무능력하고 의존적인 남자와 비교되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범법자와 비교된다. 이상적인 금력과시형 남자는 이기적인 목적에 따라 재화와 인력을 비양심적으로 횡령하고 타인의 감정과 소망은 물론 자신의 행동이 미칠 간접적인 영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 범법자와 같다. 그러나 그는 예민한 신분감각을 소유하고 있고 좀더 일관성있는 장기적 안목으로 간접적 목적을 위해 활동한다는 점에서 범법자와 다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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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의 생활과 생활양식은 야만적인 기질의 보존을 더욱 촉진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곧 주로 외견상 평화적인 변종 혹은 부르조아적인 변종뿐 아니라 어는 정도 약탈적인 변종도 보존하는 것이다. 귀족과 부르조아의 미덕들-파괴적이고 금력과시지향적인 특성들-은 주로 상류계급들 사이에서 발견될 것이고 산업적 미덕들-평화적인 특성들-은 주로 기계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계급들 사이에서 발견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구분은 개략적으로 보면 사실이겠지만, 구분의 기준은 기대보다도 쉽게 적용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결정적이지도 않다. 실패할 만한 이유는 모든 계급은 어는 정도는 금력과시 투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력과시문화가 지배적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남자들의 사고습관을 규정하고 경쟁하는 가계의 생존을 결정하는 선택과정은 대개 취득을 보장하는 기반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모든 직업의 선택작용은 금력과시형 기질에 전적인 우위를 보장하는 경향을 띨 것이다. 그 결과 "경제적 인간"으로 알려진 인간형이 정상적이고 결정적인 인간성의 전형으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기적인 관심밖에 없고 오직 타산적인 인간성밖에 지니지 않은 이 "경제적 인간"은 현대 산업의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유용한 인간형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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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계급의 기질과 하류계급의 기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유한계급제도가 의존하는 과시적 낭비와 금력과시경쟁이라는 광범위한 원리들을 일반인들이 수용했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유한계급제도는 공동체의 산업효율을 저하시키고 현대 산업생황에서 발생하는 절박한 상황에 대한 인간성의 적응을 지연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 제도는 첫째 유한계급 내부의 유전을 통해서 유한계급의 혈통을 이식받는 모든 외부계급까지도 고대의 낡은 특성을 직접 전파함으로써, 둘째 낡은 체제의 전통을 보존하고 강화하여 유한계급의 혈통을 이식받지 않은 다른 계급들 사이에서도 야만적인 특성들이 생존할 기회를 더욱 많이 조장함으로써, 지배적이거나 유력한 인간성을 보수적인 방향으로 유인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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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와 체육문화의 관계는 퉁우와 농업의 관계와 거의 같다는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거기에 동원되는 재원이 짐승이든 인간이든 신중히 선별하여 훈련과 규율에 복종시킴으로써 본래 길들일수록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 야생적인 적성과 성향을 유지하고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그런 짐승이나 인간이 지닌 야생적이거나 야만적인 사고습관 내지 신체적인 습관을 전면적으로 철저히 복원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야만성 혹은 야생성의 일부만 복원하는- 개체의 자기보존본능과 생활충족본능에 기여했을 특성은 도태시키고 상대를 손상시키고 파괴하는 데 필요한 야생적인 특성만 복원하여 강화하는-과정이다.
현대의 경쟁은 대부분 이처럼 약탈적인 인간성의 특성에 기초한 자기 과시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대적이고 평화적인 경쟁에 개입하면서 세련된 형태를 띠게 된 이런 특성은 문명세계의 남자라면 어는 정도라도 소유해야 할 거의 필수적인 사항으로 정착되기 이르렀다. 그렇게 이 특성은 경쟁적인 개인들에게는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공동체에 대해서는 직접 봉사하지 못하고 있다. 집단생활의 목적에 대한 개인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본 경쟁력은 단지 간접적인 용도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잔인성과 교활성은 다른 공동체를 적대적으로 상대할 경우를 제외하면 공동체에는 아무 소용도 없다. 이런 특성들이 개인에게 유용한 경우는 오직 그가 처한 인간적인 환경에서 다수의 동일한 특성이 활성화될 때뿐이다. 이런 특성을 별로 타고나지 못한 개인이 경쟁적인 투쟁에 참가하는 것은 뿔도 없는 송아지가 강력한 뿔을 가진 들소 떼에 뛰어드는 짓만큼이나 불리하기 그지 없는 행동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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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급에 속하는 대다수의 보통남자들의 스포츠지향성은 이른바 스포츠 습성이라는 것을 체질화했다고 할 만큼 강하게 표출되지 않는다. 산업계급들에게 스포츠는 생활을 좌우하는 중대요인이라기보다는 때에 따라 기분전환용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 같은 것이다. 사활이 걸린 항구적인 관심이 아니라, 일시적인 흥미에 따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추억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야만인들의 생활을 관찰하면 알 수 있듯이 용맹성은 폭력과 속임수라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향으로 표출된다. 이 두가지 표현형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의 전쟁, 금력과시적 직업들, 스포츠와 도박을 통해서도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난다. 구 가지 방향의 소질들은 스포츠생활뿐 아니라 좀더 심각한 형태의 경쟁적인 생활을 통해서 함양되고 강화된다. 전략이나 속임수는 전투와 사냥에서는 물론 도박에서도 변함없이 등장하는 요소이다. 이 모든 활동들을 통해서 전략은 술수나 흉계,기만행위 등으로 발달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만,거짓말,공갈 등은 일반적으로 모든 운동경기 진행방식과 도박이나 계임세서 부동의 위상을 차지고 하고 있다.
잔인성과 민첩성이라는 이 두가지의 야만적인 특성은 약탈적인 기질이나 정신상태를 조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특성은 협소하고 이기적인 사고습관의 발로이다. 두 특성 모두 차별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개인의 편의를 도모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또한 두 특성 모두 심미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금력과시문화에 의해 육성된다. 그러나 두 특성은 모두 집단생활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다.

1. 디즈니, 공공문화의 정치학
26 윌트의 오락과 교육의 결합은 공공문화와 상업적 이익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디즈니의 성공은 문화산업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간여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8 민주적인 문화는 젊은이들에게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교육시키고, 민주적 사회 관계를 차단하는 인종,사회,경제적 불균형의 개선에 필요한 제도적이고 상징적인 원천을 제공한다. 기업들은 시민권인 교육의 자유와 교육 기회의 균등을 소득에 비례하는 교육으로 제한함으로써 상업적 요구를 앞세워 시민들의 요구를 묵살하려고 한다
32 기업에서 만들어낸 문화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우위에 두고, 청소년들에게 광범위한 기술과 권리를 지닌 진정한 민주시민이 되는 잠재력을 포기하라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이 만들어낸 문화는 시장의 논리에 근거한 정체성만을 수용하게 하며, 능동적이며 비판적인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하고 수동적인 소비자의 역할만을 하라고 제안한다.
33 상업적인 영역은 텔레비전,라디오,영화 그리고 신문이다. 대기업은 점점 더 삶의 의미와 소망을 상업적 논리와 접목시키려 하는데, 이를 통해 어린이들의 민주적인 정체성을 조정할 수 있게 되고, 문화에 대해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위력을 "권력을 획득하는 긴요한 수단과 무기로서"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37 기업과 소비자의 권리가 시민 활동권을 제압하면서, 아무리 상대적 반발과 조직적 저항이 남아 있다 해도, 민주제도와 사회적 관계의 쇠퇴와 더불어 일상생활의 상업화는 계속되고 있다.
40 자본주의의 위대한 신화 중의 하나는 시장은 단지 선택권을 주고, 선택을 합법화한다는 생각이다. 즉 시장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힘을 강화시켜주며 그들이 가진 화폐로 투표하게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시장은 대중의 폭넓은 선택을 차단한다.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25종의 자동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대중교통 수단을 선택할 수는 없다.
45 정치적 투자란 디즈니의 세계관으로 우리 모두를 구속하려는 시도를 통해 우리들의 삶의 의미와 소망과 꿈을 조작해내려는 것이다. 디즈니의 교육은 시민의식의 유치하고 개인적인 면을 강화시킨 도피주의와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전략이고, 과거가 현재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공공의 추억을 특정한 틀 속에서 정의 내리는 행위이다.
67 교육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자아 반성과 공적 책임인데, 이 두 자질은 디즈니의 사상적 세계에서는 세속적 모독일 뿐이다. 디즈니의 교육은 현실의 가능성과 한계를 인식하게 하고,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켜나가는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디즈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저항을 대신해 선전 문화에 기반을 둔 환상의 세계를 제공한다. 또한 과거에서 반항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과거를 단지 기업정신과 기술 발전이라는 감상적인 찬양으로 채워버린다
2. 디즈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
72 공립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면서 기업들은 학교의 사립화, 재정보조, 선택적 교과과정, 학교와 기업 간의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시도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민주적인 공공의 삶을 심화시키고 확장해가고자 하는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건전한 시민이란 기존 인습들을 과감히 거부하고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락국가'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누가 문화의 생산을 통제하고 있는가? 이렇게 생산된 의미들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가? 문화를 생산해내는 일이 오락,볼거리,소비,관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가?
88 지난 10년 동안 기업이 만든 문화는 개인주의, 이윤 추구, 시장 중심의 문화를 찬양하는 변혁의 과정 안에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 공동체와 민주주의와 공공의 이익이란 용어가 사라져가고 공공을 위한 목적, 공공에 대한 봉사,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 역시 약화되고 있다.
89 문제는 바로 민주사회에서 기업문화가 공과 사, 오락과 역사, 비판적 시민정신과 소비행위의 뚜렷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행위를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사회가 정치적이고 대중적이고 역사적인 대화 과정과 그 산물인 문화를 무시하고, 소비행위가 주는 쾌락과 도피적 오락과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흔들리고 있는 현실은 과연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124 영화의 통제와 생산과 배포는 광범위한 권력 순환의 일부로 분석돼야 한다. "오락주권국가"라는 이름처럼, 디즈니가 다양한 분야에서 전반적인 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권력과 필수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디즈니 아동 영화의 이용 가능성, 영향력, 문화적인 위력은 문화정책을 만드는 주체와 관련된 정치적인 토론의 일부가 돼야 한다.
125 언론의 자유라는 전제는 모든 사람들과 집단과 공공분야에 이익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민주적인 방식 안에서만 유용하다.
127 디즈니 제국은 순수하게 젊은이들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상업적인 기업이기보다, 국가정체성의 문화적인 배경과 어린이들의 정신적 "학교"라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기업으로 인식돼야 한다.
4. 디즈니 영화에 나타난 추억,국가,가정
130 문화권력: 디즈니 세계의 순수함이란 역사의 불쾌한 측면을 제거하는 이념적 도구이다. 순수함은 또한 권력의 지배 관계를 합법화시키는 수사적 도구일뿐만 아니라, 특정한 역사 이야기와 표현과 문화적 활동 가운데 사람들을 자리매김하는 교육적 장치이다.
131 좀더 비판적인 의미에서 교육이란 지식과 권위와 권력의 관계를 조명해주는 것이다. 이때 교육은 지식을 생산하는 조건들을 누가 통제하는가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더욱이 특정한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지식과 정체성과 권위를 생산하는 다양한 과정 중에 권력의 순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윤곽을 제공한다. 지식과 힘과 소망과 경험이 특수하고 기본적인 학습의 조건에서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33 역사적으로 대중문화가 지구촌 문화를 지배하게 되고, ....문화가 권력과 자본의 순환 구조에 직접 개입하는 기업의 아주 우수한 상업화 현장이 된다. 또한 그 현장은 편견과 정형화의 무자비한 과정 속에서 자료와 경험을 용해시키고, 기존 문화 관료들의 손을 거치면서 이야기와 표현을 한목소리로 통제하고 획일화시키는 곳이다. 도피주의와 역사적 망각과 인위적인 세뇌라는 전략은 미국의 정체성을 백인,교외주거지, 중산층 그리고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만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추억에서 반항적인 요소를 삭제한 역사적 교훈의 기능을 한다.
5. 미국을 장난감 상점으로 만들기
160 "여가와 오락의 전제적 권위"를 지니고서 문화를 상품화하고, 역사적 추억을 정화하며, 소비주의 이념 안에서 특별히 어린이들의 정체성을 조작해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164 기업과 함께 자라나는 것은 미국 젊은이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렸다. 시장문화가 욕망을 자극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등 교육적으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정부의 간섭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젊은이들이 기업과 함께 자란다는 의미는 공공문화를 상업문화로 대체하고, 민주주의 언어 대신에 시장의 언어를 쓰면서 생활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165 학교의 기능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에서 민주적 소비자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지배적인 상업문화가 시민사회를 잠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비주의가 유일하게 수용해야 할 시민정신인 것처럼 보인다.
166 민주주의는 노력을 요구한다. 교육가,학부모,일반인들에게 시장은 " 민주적 시민사회의 핵심인 정의와 공평무사라는 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도 해주지 못한다." 기업문화라는 권력은 그대로 방치하면 어떤 경계선, 즉 위생적인 식품공급, 건강보험, 안전한 교통수단 등 기본적인 사회적 필요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168 디즈니는 단순히 오락만을 파는 것이 아니다. 디즈니는 정치,경제,교육에 관한 실체이다. 대기업의 권력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미디어업체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을 명백히 폭로하기 위해서 다양한 부문의 전면에 서서 대항해야 한다.
189 문화에 대한 검증은 그 문화가 기쁨과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