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반납이 늦어

 

 

 

 

4.1 <부동층의 유권자 행태분석>은 14,15,16대 선거를 분석한 자료이다. 선거일주일전 투표할 사람을 결정한 것이 모두 50%가 되지 않는다. 원인 역시 자명하다. 정치무관심이라 한다.  인물이고 정책이고 상관없이 부동층 유권자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반감, 무관심이 깊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짚어낸다. 교육정도, 지역별로 차이가 없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4.2 <대화>, 애벌읽기를 하다 사서 제대로 볼 생각을 하다. 거인 앞에 왜소해지는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리영희선생님의 사상의 거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뭉클하다.

4.3 <세계인권선언> ,유네스크한국위원회에서 1995년 만든 책이다. 탄생배경과 의의, 경제-사회적 권리에 대한 것이나 세부문헌을 구하기에 적절한 도서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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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산을 오르내리는 길, 아니 며칠동안 생각이 자멱질이다. 신흑묘백묘론 - 사람, 조망만 하고 다가설 줄 모르는 우리들, 시각에 심취해 대중들과, 민초들, 백성들과 다른 감각으로 교감할 수 없는 불감증의 우리들, 통속과 거리를 두어 머리만 비대해진 우리들,  우리의 말초신경은 이내 마비된 것인가? 생각은 자꾸 들이밀며 나오다 들어가길 반복한다.  교감되는 사람들, 교감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 소통되고 있는 무리는 점점 줄어들며 서로 남탓에 익숙해서 보수에서 수구로 치닫고 있는 현실들.

통속은 오감을 필요로 한다. 그 속에 어떻게 살고 살아가는지?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애환이 무엇인지? 세상은 통속을 빼고 이야기한다. 무의식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리고, 삶을 이야기하지 않고 옳은 것만 이야기하는 무리 역시 세상을 모르긴 마찬가지다. 그러면 통속화하자는 이야기인가?

교감의 부족으로 인한 상황인식 미비,  활동의 전망-개선의 전망은 소통될 영역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운동꿘으로, 무능함의 이미지만 가득할 뿐이라는 것이다.  운동꿘은, 통속에 절은 그야말로 입으로만 말하는 운동권만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원칙과 대의때문에 모든 것을 다 없어진 젊음이 아니라 현실도 하나도 모르고, 말도 되지 않는 헛 소리로 일관하거나,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철부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을 향유하고 누릴 뿐, 현실의 변방을 누비는 룸펜같다는 이야기다.

생산력 발전을 위해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가리지 말고 잡아야 할 것은 오히려 우리가 아닌가? 사람 맘도 모르고 사람맘도 못잡는,  기댈 곳 없는 허전한 마음만 줍는 우리는 아닌가? 어렵고 힘든 삶이나 전망이나, 고통을 나눌 맘들은 왜 그토록 빗겨가고 내 팽겨치면서, 혼자 도도한 척만 하는가?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양반들처럼...

계급에 상관없이 오피니언리더들을 만나고 교감하고 통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없이, 때만 되면 남탓만하고, 의식없는 민초들 이야기만 하며 제 얼굴에 침뱉지 말고....... 부지런히 삶을 소통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접촉점도 없이, 접촉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나친 도취에 빠진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접촉점 10년, 접촉선 20년, 접촉면 30년, 접촉공간 40년, 100년 그래도 늦지 않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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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내 설명이, 사회주의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 또 편견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대했던 사람들을 사회주의 진영으로 넘어오게 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설득시켰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나는 사회주의가 위대한 문화적 운동이기를, 끊임없이 지속되는 운동이기를, 그 운동이 거대한 정당으로 결집되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계몽을 확산시키고, 국민 경제의 필요에 대한 이해를 일깨우고, 사회가 사회주의적 진보의 도정에서 더욱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악해야만 하는 수단의 성질에 대한 이해를 일깨움으로써 전체를 위한 최선의 것을 낳도록 영향을 미치는 그런 운동이기를 희망한다.


한국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며 고민하는 저자가 지난 해 5월부터 3개월 동안 독일을 누비며 인터뷰한 기록을 담았다. 풀뿌리 운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할머니운동가에서 바이체커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과 활동의 현장을 살펴본다.

 


제8장 ?꿈은 다시 이루어진다?(2006월드컵)

월드컵 특수 수혜자들 | ?2002 월드컵 그 후 1년? | 다시 돌아온 월드컵의 계절 | ?월드컵, 또 열광하고 싶다? | ?오버 좀 하고 살자? | 자세히 읽기: 이동통신사가 이끄는 ?애국의 계절?

맺는말: ?월드컵 광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축구의 정치적 이용 | ?놀이하는 인간? | 놀이에 목숨 거는 민족 | 스포츠 애국주의의 한국적 특성 | 스트레스 해소에 한맺힌 사람들 | 한국의 부화뇌동 구조 | 각자 기죽지 말고 원 없이 놀자



과학은 얼마나 가치중립적인가? 사회구성적인가? 

 

 


생명계는 자기생성적 네트워크이다. 조직적으로는 경계 내에서 닫힌 구조이지만 에너지와 물질의 흐름에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있는 구조이다. 이처럼 생명을 시스템적으로 이해할 때, 생태계의 기본원리로부터 지속가능한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조직원리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카프라는 강조했다


 


책은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과의 대담 형식으로 씌어졌다.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집필 활동이 힘들게 된 상황에서 수 차례 구술과 기록을 반복하며 2년 가까이 작업한 끝에 완성한 것. 대담자 임헌영은 이 '대화'에서 선생의 70년 삶의 줄거리를 국면 국면 마다에서 상기시켜주고, 주요한 역사적 문제들을 이끌어내어 비판적 토론을 이끄는 역활을 맡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항일 시대에 겪은 조선인으로서의 체험에서 시작해, 개인적 행복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했던 청년기를 거쳐, 마침내는 시대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일체화시킨 '지성인'으로서의 삶의 산 지난 70년 간의 이야기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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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심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유행을 좇고,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적 감수성의 기원은 1930년대이다. 당시 자본주의 문화가 대박을 기원하며 도박에 빠지고, 그렇게 번 돈으로 백화점을 드나들며 유행을 따르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식민지 조선의 사람들은 근대와 만났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식민지 시대에 발표되었던 문학작품들과 대중잡지에 실린 짤막한 글들을 살펴나가면서, 저자는 그 변화의 근저에는 여러 대중매체들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한 '대중적 감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1. 자본주의적 상품경제는 유행과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욕망을 표준화한다. 그리고 상품의 소비를 통해 표준화된 욕망을 충족시키도록 요구한다. "1930년대 경성사람들도 백화점 진열장 앞을 오기만하면 이 유행균의 무서운 유혹에 황홀하여 걸음것기를 잊고 정신이 몽롱화하여 다 각각 자기의 유행세계를 설계하려"들었던 것이다.
 
1.1 백화점을 진정으로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소수들이 만들어 내는 욕망의 표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값싼 세일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대리 충족할 뿐이다. 김기림은 ' 갖고 싶은 것이 무수하게 번식하고 또 그 자극이 쉴 새 없이 연달아 오니까 거기 따라서 사람들이 욕망의 창고에는 빈 구석만 늘어갈 수 밖에 없다.
 
2. 과도기사회, 노름은 결국 무사태평하고 열정적인 이 사람들의 신앙, 지식, 관심, 야심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달라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영원한 아이로서 보람 없이 살아가게 되고, 그리하여 우연놀이는 습관이자 제2의 천성이 된다.
 
3. 유행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어느 틈엔가 욕망을 설득하여 거기에 추종하게 만든다.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방식으로 계몽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형태로 우리의 감각 속에 각인되는 방식으로 욕망을 설득한다. " 유행이란 참말 이상한 힘을 가졌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금욕케 하고 자율적으로 인고케 하는 점에 있어서 공승이나 목사의 설교 이상의 힘을 가졌으며 사회생활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점에 있어서 여하한 법률보다도 더 우세의 힘을 가졌습니다."
 
3.1 그것은 상품의 형태로 우리에게 꿈과 함께 주입되며, 유토피아나 신분상승, 달콤한 낭만 등의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는 마침내는 우리 모두를 일정한 삶의 패턴으로 포섭하게 된다. 원재 자본이라는 것이 공간적으로도 끝없이 시장을 창출해가지만, 삶의 미세한 영역 하나하나에서도 시장을 만들어낸다. 유행은 사람의 외양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아까지도 변모시킬 만큼 놀랍고도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4. 1930년대의 영화와 잡지는 사진에서 비롯한 이와 같은 이미지의 힘을 당시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내적인 자아를 강조하던 전통은 따라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부단히 변화하는 표면의 세계가 주도건을 잡게 되고 외양의 본질을 지배하게 되는 시기의 도래를 가져온 것이 바로 영화와 잡지 였던 것이다. 이 매체들은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통한 삶의 패턴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의 내면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2.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무쌍한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을 설명하고 이에 적응하는 법에 대한 조언을 담았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투자방식과 형태, 실제 중국 투자에서 발생하는 분쟁 해결 방법 등을 설명했다.
 
수많은 관광객과 기업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시행착오 이전에 가장 악랄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식 사고도 좋겠지만, 그 무수한 실패의 이면에는 나무만 보려는 무지와 우월의식이 깔리고 있는 것 같다.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대해 무지에 가깝게 생활하다가 기본적인 조건이 우리와 같겠거니 생각해서 무리를 많이 일으키는 모양이다.
 
2.1 기본임금 외에 약 44%에 해당하는 각종 사회보험비가 있다는 것도 고려하지 않는 경우나,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며 매일 1시간(특수원인인 경우 매일 3시간, 매월 36시간 초과 불가)내에 가능하며, 연장할 때는 50-300%의 추가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해고도 까다로우며 16세 미만 아동공을 채용할 수 없다.
 
2.2 토지도 공개념으로 그 취득, 운영이 만만치 않다는 점 등, 기본적인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지는 실패가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무지에다가 경제적, 사회적 감수성이 제로인 상태로 일을 해온 우리는 그야말로 더 남기기 위해 악랄한, 경제적으로 낮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낮추어보는 하대까지 겹쳐, 바보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모양인 것 같다.

 3.

  '대중적 감수성' 저자의 표현에 공감한다. 우리사회가, 우리나라 사람의 삶의 왜곡의 출발이 어떻게 뿌리를 이루는가에 대해서도 맘이 간다.  삶의 패턴을 바꾸어놓은 그 '대중적 감수성'을 좀더 대상을 달리해보자.

서울쥐와 시골쥐처럼, 지방에서 생활한 친구들은 '서울'에 대한 길들여진 그리움이 있다. 그 바람들어간 마음은 삶의 나이테만큼 커지고 있다. 시골-서울의 간극/ 중소도시-대도시의 간극에 현실과 무관한 대중적 감수성이 웃자락 자양분이 충분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서 돌아올 수 없다. 중독이다.

다음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자. 휘황찬란한 현실과 매체의 무자비한 융단세례는 본질적으로 올곧은 무의식을 형성할 수 없다. 시간의 테두리를 따라 점점 자판기처럼 사람기계는 탄생하고 길러지는 것은 아닐까?

중국/만주의 조선족이 우리를 보는 시선, 화려한 융단에 넋을 빼앗겨버렸다. 이미지의 추동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없는 것, 부족한 것이 구별이 되지 않는다.

 

4.

4.1  중국 사업이나 아시아권 사업에 성공하려면, 시스템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인권에 대한 감수성 ----> 돈만 밝히는 관점으론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더 더욱 중국에선. 한류를 빙자하거나 빙자해서, 문화적-경제적 파병(월남파병처럼)을 부채질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으론 시장이 어느정도 성장하는 시점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30년 해 먹고, 그 다음엔 우리의 야만성만 기록되지 않을까?

4.2 동북아의 허브를 자임한다면 성장론자들은 다시 한번 우리의 빗나간 수준을 재점검해야 한다. 인권 백지상태의 현실이 도리어 우리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말이다.

4.3 우리 사회는 온통 모든 힘을 다 동원해 '대중적 감수성'만 교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도적인 '경제적,사회적 감수성' 제로의 교육때문에 부풀은 풍선처럼, 풍선 속에 오로지 돈만 불어넣다가 '뻥' 터져버릴 것 같아. 한 50-60년 해먹다가,  손가락질 받는 나라는 되지 않을까?

4.4 그런면에서 어쩌면 정신없이 부나비만 쫒은 중국이 훨씬 안정되고 나아질지 모른다. 등소평의 흑묘백묘의 논리가 백년이듯, 백년지계로 경제적-사회적 감수성의 근저에서 자리잡는다면, 또 다시 조공을 바치면서 눈치나 살피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4.5 근거 박약한 이야기임. 넘 고민하지 마삼. 불감증과 감수성에 온통 신경이 가 있어 자꾸 무리한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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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사랑)의 과잉 - 담론성장, 해체 그리고 열정의 분산


어쩌면 삶의 진정한 의미는 사실상 기억 속에서만 재구성되어 드러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후회에서 벗어나기위해 우리는 맹렬하게 추억을 다시 구성하려 노력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한 사람을 끈질기게 기억하는 것은 사랑할 수도 있었던 다른 여러 사람을 모두 잊게 만들고, 아름 다웠던 추억 하나만을 질기게 반복해서 상기하는 것은 아름다울 수 있었던 수많은 다른 추억들을 몰아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발라드를 통해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과거를 기억 속에 버려두지 않고 새롭게 창조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 본문 116쪽에서


1.1 우리 대중가요 속에 나타난 낭만적 사랑을 다룬 한 논문에서는 시대에 따른 사랑의 형태를 임을 잃은 사람들의 사랑 노래(1950년대까지), 낭만적 사랑의 정착(1980년대까지), 낭만적 사랑의 현실과 이상 간의 갈등 표출(1990년대 이후)로 나눈다.


1.2 귀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 싫증을 덜 내는, 인체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관이라고 한다. 더욱이 가장 예민한 시기인 10대중반부터 20대 초반에 심취한 음악은 결국 인생 전체의 사운드 트랙이 되어 버린다. 이런 이유로 이동진이 지적했듯 김민기나 송창식을 통해 475세대론을, 조용필이나 이문세를 통해 386세대론을 논할 수 있을 터이다.  흔히 386세대라 일컬어지는 세대를 중심으로 이 이전과 이후는 너무도 확연한 변화를 보인다. 트로트, 포크와 민중가요를 듣는 세대와 댄스가요와 랩, 힙합을 즐기는 세대. 전혀 다른 두 세대를 모두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다는 데 386 세대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뱀발. 사랑에 대한 과도한 반응과 , 연애를 끊임없이 유포하는 일상은 뭔가 석연치가 않다. 어찌 그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며, 인류사의 지고지순하거나 잉태되어 있는 것인데 과민반응하는 것은 아니냐는 반문도 있겠다. 하지만 대중매체를 통한 반복-충전-재생산의 구조는 너무 단순하여 질리게 만들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이야기다. 민중가요를 떠나 몸에 베인 노래, 무의식중에 흥얼거리는 노래가사는 글쓴이의 말처럼 온전히 대변해주는 것 같다.  나를 갖고 움직이는 것은 통속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은 약간.

커서 알게 된 일이지만 많은 어른들이 과거에 갇혀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자신이 겪은 노래가사에 생각과 테두리를 치고, 그 욕망에 갇혀 살고 있다는 느낌까지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실존의 나-욕망)은 단순하면서도 그 벽은 단단하다고 여긴다. 더구나 연애가 지상명령인 듯. 조장하는 시대적분위기는 일상뿐만 아니라 의식 속에 자리잡아 내가 된지 오래이다.

사랑에 대해 이토록 과도하게 집착한 시대가 있었을까? 열정을 이토록 연애에 대한 생각으로 응축시킨 적은 있을까? '자본의 이식'만큼 '연애의 이식'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삶이 버거워질수록 그 간절함은 더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에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후회와 미련으로 증폭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구체적 모습으로 표현되고 다양화되는 것은 '통속'의 성장이라고 바라볼 수 있을까? 연애에 대한 다른 생각, 결혼에 대한 다른 관점, 10대와 20대의 귓속말로 다르게 속삭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복이라고 여겨야 하나?

사랑이란 노래의 제재가 60%가 넘은 시대에 살고 있다한다. 50년대까지 50% 안쪽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 우리의 맘을 돌이키는 노랫말, 추억을 살려내는 말들 가운데 10에 6이 사랑이란 말이다. 상품에 둘려쌓여 있는 만큼, 당신의 과거와 현재, 앞으로가 그것에 둘려쌓여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랑이란 말엔 남,녀가 있을 뿐.  삶에 대한 애틋함이나, 후두둑 긋는 빗방울이나 사회를 보고, 친구를 보고 울컥거릴 무의식의 힘이 아무것도 없는 절름발이라는 말이다.

맘 속에 내 님만 두고, 맘 속에 될 님만 두고 산다는 것은 가혹한 표현일까?  나도 그렇게 길러지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가게 될 것이지만, 과잉의 허전함은 너무 냉혹하고, 현실은 없다. 그렇게 대체물만 바꿔치기할 뿐은 아닐까? 애틋함은 과장되고 집중되고 중앙집권적인 것은 아닐까? 대상을 분산시키고 나눠주고, 잔잔함에 충만함이 깃들여 방법은 없을까?


 

<애수의 소야곡> 남인수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길가에 앉아서>, 김세환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는데

활짝 핀 웃음이 내 발걸음 가벼웁게

온 종일 걸어 다녀도 즐겁기만 하네


길가에앉아서 얼굴 마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우릴 쳐다 보네


라라라라라~~~~~~~~~~~








<사랑에 관한 충고>, 이승환


넌 사랑을 해본 적 있니

아마 한번쯤은 있을 거야


어떤 기억이 남아 있니

있는 그대로를 생각해봐


사람들은 가끔 착각하지

서로의 조건들을 좋아하고선

이게 사랑일 거라고


때로는 자신을 숨기며

드러내는 모습을

사랑을 위한 미덕이라 여기지



가식된 사랑은 언제나 솔직한 사랑을 이기고

자신의 거짓된 욕구를 위한 이별에는

참된 사랑이란 미화를 하지



그래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야

우린 어느 정도 현실적인 사람들

서로 그런 걸 이해하면 되는 거야



 

<결혼>, 015B


1. 어렸을적 우리가 생각한 결혼은 셀레임 이었지

가장 사랑하는 이와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배운것은 결혼이란 조건들을 맞추는것

서로의 학벌을 들추며 집안은 어떤지 중요하지

사랑만으로는 살수없다 강요 하면서


2. 결국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냐

적령기에 만난 조건이 맞는 사람과 하는것 어짜피

서로의 정이란 살다보면 자연스레 드는거라 여기겠지

그런 사랑은 내버려 부모가 골라준 일등배필 만나

신데렐라되어 평생 살면 되잖아


Bridge : 결혼은 서로의 값을 재는 거래가 아닐거야

사랑을 완성시켜가는 생활일






<벌써일년>, 브라운 아이즈



처음이라 그래 며칠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년이

너와 만든 기념일마다 슬픔은 나를 찾아와.

처음 사랑고백하며 설렌 수줍음과

우리 처음 만난날 지나가고

너의 생일에 눈물의 케익 촛불켜고서 축하해.


I believe in you. I believe in your mind.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일년뒤에도 그 일년 뒤에도 널 기다려


너무 보고싶어 돌아와줘 말못했어

널 보는 따뜻한 그의 눈빛과

니 왼손에 껴진 반지보다 빛난 니 얼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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