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시민사회, 그리고 마끼아벨리의 경고
조효제 | 성공회대 교수, NGO학


이 글이 독자들과 만날 싯점이면 5·31 지방선거의 투표가 한창일 것이다. 언론의 예측이 들어맞는다면, 그리고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집권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신문 헤드라인은 참패, 몰락, 완패, 궤멸, 와해라는 몇마디로 선거결과를 요약할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벌어졌던 4·13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으로 흥한 자는 바람으로 망하는 법인가? 먼젓번 바람은 수구보수세력의 거대한 착란에서 비롯되었다 치고, 이번에는 왜 이렇게까지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일까?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가 여론의 바람을 모으고 커터칼을 휘두른 괴한이 결과적으로 바람의 파이터가 되었지만, 그것들은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했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미숙하고 독단적인 '청교도'들의 자충수에서 찾아야 한다. 필자는 세계적으로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승리하는 예를 잘 보지 못했지만 이번 경우는 패배의 양과 질이 충격적일 만큼 극심할 것 같다. 마끼아벨리는 무릇 군주라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게 제일 낫지만, 그게 안되면 차라리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고, 어떤 일이 있어도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떤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으며, 원칙 없는 탈권위와 불필요한 요설(饒舌)로 외경은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당한 근거와 부당한 근거가 뒤섞인 엄청난 증오가 퍼부어지고 있다. 양극화 해소니 부동산 대책이니 하는 정책적 접근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한국적 대중 정치심리의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희구하면서도 중단기적으로 중도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던 많은 이들이 현정부에 대해 안쓰러움과 포기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5·31의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벌써부터 여당 내의 권력투쟁, 정치권의 이합집산, 빅뱅론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의 수많은 전략가들이 기상천외한 정치공학적 발상을 내놓을 것이고 현실 정치인들이 그 유혹을 거부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씨나리오는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화의 '긴 혁명'(long revolution)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긴 반동'(long reaction)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시대를 초래한 정치세력으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다면 열린우리당이 살 길은 '처음처럼' 중도개혁 노선과 남북관계 발전에 매진하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마끼아벨리. 그는 정치의 불운은 홍수와 같아서 완전히 막기는 어렵지만 둑과 제방으로 그 영향을 조절할 수는 있다고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진짜 관심은 지방선거 결과가 시민사회에 미칠 영향이다. 지난 십여년간 민주화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운동이 인적·물적으로, 노선적으로, 인식론적으로 어느정도 연계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두 집단 사이에 항상 우호적이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말이 통하는 연결고리들이 형성되어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적 가치가 많이 침윤된 정치세력과 정치화된 시민사회 사이의 상호의존형 모델이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퇴조는 후자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요즘 부쩍 '일반대중'이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다. 시민사회가 특별히 잘못해서라기보다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정치화된 시민사회와 노무현정권을 동일시하는 '중첩효과'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그동안 넓은 뜻에서 누려온 정치적 영향력의 댓가를 치러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지도 모른다. 시민사회가 원하든 원치 않든 정치권이 망쳐놓은 민주주의의 심화과제를 또다시 떠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왕도가 없다. 반짝거리는 일회성 아이디어로 현상을 타개하려는 발상을 제발 버려야 한다. 정부나 기업보조에 대한 논리개발의 유혹을 떨치고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자원동원과 조직유지를 위한 힘든 장정에 나서야 한다. '신참은 전략을 논하고 노병은 병참을 걱정한다'는 나뽈레옹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치개혁을 견인해온 '긴 혁명'의 공과를 냉정히 성찰하고, 특히 이제부터는 방향성만큼이나 방법론에 관한 고민에도 몰두할 일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하방하고, '시민운동'이 없어도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가능할지의 실험에도 착수해야 한다. 분권화하고 녹색화한 시민정치 모델, 즉 중앙정치 집중형 거버넌스에서 벗어나 세계주의적 다중적 거버넌스 모델을 한반도 차원에서 도입하여 남북한 통합의 진전에서 어느 정도나 응용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과제도 시민사회의 몫이다. 5·31의 결과가 거친 홍수의 물귀신이 되어 시민사회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단단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저서로 《NGO의 시대》, 역서로 《세계인권사상사》《전지구적 변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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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6-0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설픔에 대한 자성이나, 자각 -- '일반대중'의 중첩효과에 대한 인식을 곰곰히 새겨야 될 것 같네요. 어떻든지 더불어 도매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현실을 되돌아봐야 되나요? - 과도한 자신감은 별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네요. 이야기하고 있는 <방향성, 방법론>에 대해 진지해질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조교수님의 우려만큼이나 개혁을 이야기하는 그룹은 진지함 그 이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골목길을 잃어버린 세상은 가엾다.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고, 보여진 것만 본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공간의 상상력과 보인 곳의 다시봄 같은 풍부함을 거세해버렸다. 어둠이 새벽을 잉태하는 꺽어 돌아들어가는 공간은 새로움과 풍부함을 자극한다. 구비구비 돌아가는 길엔 가는 곳까지 희비와 애증의 경험 결이 있다. 직선엔 출발과 도착이 있을 뿐, 그 시간동안 무수한 느낌의 결을 모두 잃어버린 불행이다.

직선의 공간엔 소풍이 없다. 축적된 일탈과 탕진만이 있을 뿐이다. 골목을 접어드는 접선의 공간엔 불쑥 떠나는 소풍과 놀이가 묻어있다. 듬뿍 캐어낼 풍요가 있다. 상상력도 살아있다. 궁금증이 살아있다.

오늘도 직선의 협벽으로만 내달린다.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하다 늦은 것인지? 직선의 공간엔 투명을 빙자한 빈곤만이 기다릴 뿐, 팍팍함이 일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사연은 구차하게 되고, 이유는 변명이 되고,  상상력은 무능함으로 전락한다.

단단히 붙은 직선의 각질을 벗겨내자.

 

슬픔은 생의 재산

- 아들에게

 

내 방에 들어온 네가 깜박 잠드는 것 보고

몰래 빠져나와 늦도록 친구가 보내온

시집 읽는다 시 속에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많구나 지상의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별들 글썽, 반짝이는 것도

이별이 슬프기 때문이란다

종라이에 회초리 댄 날 아비는 옥상에 올라

네 아름을 울었다 살다보면 쇠심줄보다

더 질긴 인연도 떠나보낼 때가 있단다

그 때를 대비하여 너는 더욱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이가 들면 작은 일에도 크게

서러운 법인가 군데군데 울음 감춘 시집이

눈을 자주 젖게 하고

문지방 넘어오는 네 곤한 숨소리

햇빛 부신 날처럼 평화롭구나

나보다도 더 소중한 아들아,  너를 사항하듯

이웃들을 대하마 먼 훗날

슬프고 설운 밤이 오거든 울기 전

먼저 하늘의 가장 먼 곳,

글썽,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거라

시간이 네 생의 멱살 움켜쥐어도

가끔씩은 먼 오지 가장 잃은 소년들의 부은

발등 떠올리고 낡은 집 마루 끝에 놓인

냉수사발에 와서 하얗게 부서지는 달빛이야

미처 다 같지 못하고 마을 빠져나온

이 아비 생전의 빚이라 여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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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대한 식사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2.

가을산

 

덩치 큰 저 사내

어깨 들썩이며 울고 있네

소리 죽여 우는 붉은 눈물

오르고 오르다가

하늘까지 번지네

누가 저 순명의 저 사내 울리고 있나

한바탕 가을을 쏟아내고는

초심으로 돌아간 저 사내

한결 가벼워진 영혼으로

마을을 보네 하늘을 보네

닭울음 소리 더욱 쾌쾌하고

계곡물 토실토실 살이 오르네

( '가을산'을 주제로 시들이 몇편 있던 기억,  시원하고 훤하게 뚫린 마음의 가을산님이 생각나, 콕)

 

3.

어떤 날 강물은

 

어떤 날 강물은 밥알 같은 별 몇 점

가슴에 동동 띄우며 흐른다

 

어떤 날 강물은 가는 달빛의 허리를 감고

가쁜 듯 가쁜 듯 뜨겁게 흐른다

 

어떤 날 강물은 못난 세상이 미워 퍼런 불길

둑 너머로 뻗어 풀잎의 머리채를 휘어감는다

 

어떤 날 강물은 초저녁 노을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출렁출렁 노래부른다

길게 누운 길들이 젖는다 마을이 젖는다

(지금 오는 비가 대못같다. 쿡쿡 민들레 뿌리처럼 박힌다. 오늘 강물은 어떻게 다가올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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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521

 광주 상가집을 다녀오다. 일터에서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데 연락이라 대학동기녀석 부친상이다. 같이 어울리기도 많이 어울렸고 경황없을 그 녀석을 생각해서 버스로 향하는데 제 시간에 없어,  동네서점에서 비비적 거린다.  이재무, 이시영, 이문재 시집을 보다 사구.  있던 책한권에 시집 4권을 보태니 양복차림에 볼품없어 들봉투 하나 권하여 넣었다.

가는 길, 이문재의 "제국호텔'을 요기하였다. - 그러다가 상가집에 도착하고 동기녀석들 만나고, 예전 기억들을 보듬어내고, 한 녀석은 대뜸 나에게 미안하다. 뭘,  너 시험거부할 때...같이 시험 보지 않고 거부했어야 했는데라며.. 20년이나 묵은 이야길 끄집어낸다. 뭘~ 임마. 싱겁긴.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공부를 더 할 수 없는 놈도 있었구. 정말 여한이 없이 공부하고 싶었던 녀석들도 많았던 것을 좀더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세상에 대핸 어리숙했지만, 그나마 열정은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 그 열정이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다 밤 1시를 지나쳤고, 서울행 녀석들과 일어났고, 하는 일 설명하기도 어줍잖아 그냥 열심히 산다라고 건넨다.  송정리역-광주역,  차편은 이미 끊겨있다.   앞 24시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 오징어하나에 이시영 근작시집을 읽는다. 술도 반쯤 얼콰해 있었지만, 취한 김에 참 작가들은 답답하단 생각이 인다. 그래도 반짝하자마자 소멸하는 상품같은 작가들말고 든든히 주문하는 배후를 둔 작가들은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월급쟁이 배후는 봐줄 사람들이 없으니, 동네사람들에게 잔뜩 핀잔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그 든든한 배후를 꿈꾸며.

생각보다 대기시간은 길었다. 이재무 시집을 들고 여미어가기엔 체력이 부친다. 광주, 도청도 아니고 5.18 한참 지난 바람이 매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선만 버젓하게 만들어놓아 숨쉴 곳 하나없는 광주역사가 얄밉다 생각했다.

첫차로 옮기는 아침해는 참 빨리 떠올랐다.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로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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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5-2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월
 

오월 어느 날

트럭 2대 가득 각목으로 무장(?)한 시위대를 만났다.

그들의 열정적인 연설을...시골고딩인 나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유리창이 깨진 채 커튼을 휘날리며 질주하던 버스와

초록으로 일렁이는 보리밭 위를 날던 시커먼 헬리콥터가

항복을 명령하는 삐라를 까마귀떼처럼 흩뿌릴 때에도 깔깔거리며 내달리곤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긴장한 표정으로 소곤거리던 동네사람들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84년 무더운 여름 날 굽이굽이  황토길 걸어 망월동에...그리고

무등산에 오르던 날 광주는 내게로 왔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도 아무것도 돌려 세우지 못하게 했던 광주는

그런 거스를 수 없는 어떤 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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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의 게시판을 들렀다. 가지고 나와야 될 것 같았다.

 

 

1.

 몇주 등한히 하는 사이,  초록은 앞 마당 야산을 전혀 다른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찔레꽃과 아카시아향, 이미  꽃잔설이 잔뜩 내려 다른 객들을 많이 받아들였음을 알려준다. 애기똥풀도 허리춤으로 컸고 듬성듬성 살을 찌운 연한신록은 이미 진해질대로 진해져있다.

2.

돌아가는 숲길목마다 깊은 여운에 끌려 들어간다. 하늘도 아주 간혹 보일 뿐, 이미 숲은 다른 세상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돌아가는 S자 숲은 끊임없는 상상력을 자극해낸다. 이별을 고하기도 하고, 불쑥 무엇인가 나타날 것만 같은, 접선의 무한대지점, 아쉬움과 기대감이 기묘하게 섞인 공간들

3.

그렇게 걷다 달리다 녹음과 상상에 취해 숲을 빠져나온다. 

4.

여름은 숲을 잔뜩 열어놓았다. 몸도 마ㅡㅇㅡㅁ도:   060520   6K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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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5-2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공주 마곡사에 다녀왔는데, 위에 말씀하신 눈과 코를 찔레꽃, 아카시아향, 애기똥풀 로 채우고 돌아왔습니다. 여울마당님은 어느 숲엘 다녀오셨는지요.

여울 2006-05-2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숲으로도 넉넉하더군요. ㅎㅎ(멀린 못 갔어요. 어제 광주 상가집은 다녀왔지만요.). 마곡사 정말 멋진 곳이지요. 가보고 싶군요. 갑자기 금빛 물고기들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