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은 아무래도 (머리-몸)말의 간극이 고정화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로 말하는 것과 몸으로 말하는 것의 간극, 체화되어 있는 것의 차이는 의외로 큰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몸보다 많이 행동이나 삶을 틀지우고, 어떤 사람은 몸이 머리보다 더 규정지우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과 관계를 포함하는 몸말이나 세상을 냉혹하게 보고, 의식의 관통과 통찰력을 키우는 머리의 말이 커지면 좋을텐데. 세상은 아마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아쉽게도 세상은 몸말보다 머리의 말에 예민한 것 같다. 몸의 말이 느리고 둔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인지, 머리의 말에 쉽게 현혹되고 머리에 익숙해버려 몸의 느린 반응을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마치 다른 용도인 것처럼 폐기처분하고, 머리에 맞게 그때그때 몸말을 구하는 것은 아닐까?
몸말은 쌓이는 맛이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를 빌어 그때그때 맞춘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면, 최소한 늘 소통하는 (머리-몸)말의 관계라면, 일이 그릇되더라도 사람은 남는 것은 아닐까? 머리에 익숙해버리면 몸은 늘 소외되어, 자신의 영역만 찾게되는 것은 아닐까? 편안한 관계나 끊임없는 나로 향한 침잠으로.. ...
2.
가끔 시인을 보면, 제도안보다 제도곁이나 제도밖의 놀라운 감수성과 제도안을 흔드는 사람들을 본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더라도, 치열한 고통을 수반한 성장은 제도안의 성장을 쥐고 근본을 흔들거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몸말의 상처와 성장은 (머리의 말)의 영역이 얼마나 아둔하고 제 얼굴만 비추어 보는 나르시시즘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3.
새집 집들이에 가면, 점점 몸도 머리도 비우는 세태에 아연해진다. 더 좋은 가구에 더 안락한 분위기에...여기엔 머리도 몸도 없다. (머리-몸)도 아무것도 필요없는 세상은 묘하게 지지기반을 풍부하게 한다. 사회와, 세상과 단절된 안락한 공간들은 왜 이렇게 많이 늘기만 하는 것인지? 그 간극은 점점 커가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