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함께 흥분하여 소리 높여 잘잘못을 따지거나, 우스갯소리로 울적한 마음을 한번 비틀어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  마음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러져 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그 물방울이 우리에게도 튕겨져 시원하고 명랑한 기분에 온몸이 젖어 유쾌해지는 것일까...."

 

1. 책을 이리도 잘 만들 수 있을까?  15년쯤 된 것 같은데, 저자 부친 안재구교수의 강연회인지, 좌담회인지 끝이 나고 잔디밭에 앉아  여러분들이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엉뚱한 질문을 했던 것 같기도 하구.  생각보다 편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설마  아드님이 쓴 책일 줄이야? 무척이나 놀라웠다. 그리고 내내 이어지는 편안함과 부드러움, 잔잔함이 이어지는 듯했다.

2. 옛날과 오늘, 어른과 아이,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소통한다는 문고의 로고와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3. 읽는 내내 긴장하고 조바심내고, 책장을 닫기 아쉬울 정도의 미련이 남는다. 더구나 그 문집들이 대부분 번역되어 시중에 나돌고 있다니 말이다. 배부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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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물 셋

이지우, 1983년생

 

오랜만에/모두가 모이기로 했다,/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놈과

내일도 시험이라는 의대생 녀석과/급작스럽게 그럴듯한 일이 생긴 놈과

얼마 전부터인가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녀석을 빼고서,/그러나,그러므로,모두가 모인 것이었다.

 

몇년 만인지/3년/./우리가 놀란 건/3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벌써 3년이 지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누군가의 집에는/어머니가 돌아가셨고/누군가의 집에는/가압류가 들어왔고/누군가의 집에는

예전부터 말 안 듣던 동생 녀석이 사람을 찔렀고/나이가 들었을 뿐

아무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사실을,/아무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사실을,/사실은 모두가 건너 들어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4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과/2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대학을 가지 못한 놈

대학을 등록했어도 가지 못하는/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는 놈들이 모여/어릴 때의 기억들만을 꺼내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각자가 어떤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우리는 마음껏 웃었다./오십대의 동창회처럼 녹이 슨 웃음이/맥주잔 옆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상하게도/아무도 스물셋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하지만/모두가 미친 듯이 경쟁하고 있고

커트라인은 날마다 승천하는/지극히 자유로운 시대를 생각하니,/하나도/이상하지가 않았다.

한 녀석이 시뻘건 얼굴로 내 어깨를 잡고/뭐가 이리 힘드냐고 이야기했지만/나는 모두가 관심이 있었던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이름을 내뱉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 캐어버리고서/빈 광산의 텁텁한 공기를 맡은 우리는/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모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또한 알았다,바쁘기 때문에./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쁘기때문에./오랜만에 만난 우리는/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악수를 했고

꼬인 혀로 서로의 앞날을 성축해주었고/제대로 된 전쟁 한번 없었지만/패잔병처럼 지친 몸으로

할증이 붙은 서로 다른 택시에 올라탔고,/길은 저마다의 곳으로 한없이 뻗어 있었다.


** * 요즈음 학생들은 영악?한 것은 아닐까? 현실을 X-RAY로 투사하듯 그대로 안다. 덧붙이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이~ , 창비의 큰상을 받은 이 법대생 친구는 당선소감에 이렇게 쓴다. 2008년 사법고시를 합격하겠노라고~ . 

'세월'을 돌려 거슬러 올라가 내 나이 스물셋, 스스로 나의 존재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양심에 거슬를까 나이들면 고구마장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자리는 누가 될 것 같기에... ... 그러다가 좀더 나이살이 먹으며 존재를 거부하지 말기로 했다.  '여건이 닿는다'는 말처럼 모호한 말이 없지만, 이율배반한 짓은 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체력도 떨어지고 맘도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 요즈음 스물셋의 자원활동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취직기계가 되어 여전히 입시생들처럼 움직이지만, 따듯한 마음과 현실을 투명하게 보는 시선들을 엿본다. 세상의 잔 때가 없는 마음들을 보면, 나의 스물셋이 떠올려진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구, 연애나 실컷하고 농땡이 치라고 하지만 여전히 착한 학생들이다. 시키는대로 꼬박꼬박 잘한다.

*** 어쩌다 우리시대는 학원모드로 세팅이 된 것 같다. 계속 바쁘고, 바쁘고, 바쁘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자신만의 인생행로가 있는 듯.. ... 학생의식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그대로 판박이인 것은 아닐까?  세상은 묘하게도 그대로 찍어낸다. 똑똑한 아이도 찍어내고, 맘과 다른 삶을 찍어내고... ... 삶의 다양성은 마치 거짓말인 듯, 의식을 묘하게도 찍어낸다. 특유의 이중성도 찍어낸다. 우리라는 울타리는 학원성장모드로 점점 교묘하게 자신을 길들인다.(내신이다 뭐다 이미 중학교까지 제도안의 틀을 만드는데 성공한 듯하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조금만 있으며 초등까지 제도안으로 흡수하기 어렵지 않은 듯하다.)  이기지 않으면 아무런 삶이 없는 듯. 그 착각에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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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시인, 소설가 오수연·전성태가 2004년 2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최소한의 인권 보장에서 차별받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사연을 인터뷰한 것이다.

스스로도 이라크 파견 작가, 탈학교 청소년, 방북 이후 보안관찰처분 등의 이력을 갖고 있는 지은이들은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일반적인 범주의 인권 문제들 이외에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 냈다. 사실상 '타율학습'이 되어버린 고등학교 자율학습 문제와 문회적 소외를 겪고 있는 농촌 청소년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천국의 계단' 등의 드라마로 상징되는 한류에 대한 환상을 품고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지만 제대로 된 아내/며느리 대접도 받지 못하는 아시아 여성들의 문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외 진폐증에 걸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광부들과 1970년대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여성 봉제 노동자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무슬림, 노인, 미혼모 등의 문제에도 주목했다. 각 인터뷰 대상자들의 일상을 생생한 사진으로 곁들였고, '못다한 이야기' 꼭지를 통해 지은이들의 후일담을담았다.(알라딘 책소개에서)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봉급도 그래요. 입사한 햇수도 같고, 한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 봉급과 비정규직 봉급은 하늘과 땅이에요.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150만 원에서 200만 원 받지만 정규직은 350만 원에서 400만 원 받거든요."

월급 봉투의 차액을 미처 계산하기도 전에, 너무 억울하다는 붙임말을 채 듣기도 전에, 동료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다소곳이 듣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입을 열면서 분위기는 더욱 우울해졌다. 2년차로 접어든다는 그는 목이 메는지 이야기를 꺼내려다 눈물부터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정규직은 간식도 제과점 빵이 나오는데 비정규직은 구멍가게 빵이 나와요. 차라리 안 보면 좋겠는데 한 라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그때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런 날은 집에 들어가면 잠이..."

아주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식 둘을 가르치기 위해 신용카드를 긁어 신용카드로 막으면서 겨우겨우 생활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건 그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거나 다름없어 보였다.

어느 날인가는 출근해서 보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가서 보니 업체가 바뀌어 있었다. 바뀐 건 주인만이 아니었다. 전화 한 통 없이 업체가 바뀌자 6년의 공적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열심히 일해서 쌓아 놓은 시급도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본문 19~21쪽

***  '인권'은 적선의 시선, 선망의 시선 - 내려보거나 올려다보는 시선과 인연이 멀지도 모르겠다.  '지금'에서 출발해야지, 앞뒤에 이유나 설명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내몸과 마음의 경계는 꼭꼭 묶여있다.  나의 일상엔 온갖 것이 드리워져 있는데, 내몸에 들어와 있지도 않아 아프지도 않고, 뒤돌아서면 잊혀질 듯하다. '내자식'만큼 '내 주식?' '만큼 간절함은 언제나 몸속에 묻어날까? '머리'속으로만 유통되는 내'아픔'에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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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속이 겹친다. 일터일도 그렇구. 잠깐 짬을 내어 다녀오는데, 정*위원의 학교사례발표를 하는데, 전화가 이어진다. 왔다갔다. 부실한 연수를 몸소 하고 있다니(실례~). 간간히 사례발표를 들으며 생각을 모아본다.

2. "학습준비물이 많아진다"가 출발점이었다. 안해 가라사대, 전년보다 이상하게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배구공을 사오라고 하지 않나? 뭘 사오라고 하지 않나? 이렇게 시작했고, 학운위에 들어가 관심은 잔뜩 예산에 가 있었다.

3. 1년하며 느낀 결론은 "교수학습활동비가 줄고있다는 것이다." 만만한 것이 선생님들인지 업무추진비는 늘고 교수학습활동비는 줄고, 눈으로 확인가능하다. 힘없는 선생님인지라, 예산이 이러저러하니 알아서 줄이는 것 같았다.

4. 위 그림의 윗부분은 그런 내용이다. 1400명 규모의 초교 일년 예산은 10억, 그 가운데 수련회,졸업앨범,급식 등 학부모부담금은 6억(의무교육이지 무상교육이 전혀 아니다. 60% 내돈내고 우리아이 키운다는 심각함을 받아들이시라), 세금내서 내려오는 돈이 4억이다. 이렇게 모여진 10억에 인건비등 경직성 경비가 6-7억,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돈은 불과 3-4억이다.

5. 그 가운데 교육의 질을 대표하는 것이 "교수학습활동비"이다. 애석하게도 위 꼭지에서 보시겠지만, 매년 준다. 1.9억(04년) --> 1.6억(05년)-->1.2억(06년), 제도 안의 교육이 높아진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인건비는 오르지, 운신의 폭을 넓히는 예산은 줄지? 선생님도, 학교도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운영 마인드가 없으신 교장선생님과 학교일에 무관심한 선생님들이 많으면 그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떨어진다. 준비물 챙겨주는라 짜증나는 회수가 점점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6. 그런데, 그림 아래쪽을 보시라. 대전 교육청 예산이 무려 1.1조이다. 대전시 예산이 1.5조정도 될 것은데,  시 업무추진비는 감시의 대상이지만, 교육청예산은 어느 누구 이야기하는 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예산 운영을 결정하는 교육위원들은 간선인데다가 학원/건설가 출신(확인이 필요하겠지만)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 예산을 뜯어보면 인건비가 60%,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20%가 학교를 짓는데 들어가는 예산이다.

7. 학교를 짓는데 그 비용과 감리와, 줄이려 노력해서 다른 예산으로 활용했다는 기사를 한번도 접하지 못한 것 같다. 나의 무지일까? 5%만 줄여도, 줄인 예산의 1%로 만이라도 교수학습활동비로 증액한다면 선생님도 생색내고, 아이도 학부모도 좋을 듯하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제도안은 관행대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 많은 듯하다. 학부모들이 얼마나 아파하는지? 감수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도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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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4-1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 배구공이 학습준비물이라고요? 그정도로 예산이 줄었나요? 꺽. 아직 딸아이가 6살인데도 걱정되네요. ㅠ.ㅠ

여울 2006-04-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꼭 그런 것은 아니구요.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거나, 경직된 운영여파가 미치는 것이죠. 학부모님들의 관심과 애정이 제도 안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넘 걱정마세요. 멋진 선생님, 학부모, 아이들이 대다수이니까요. 관심만 조금 기울이시면 훨씬 좋은 학교가 될 수 있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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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10 (참*)

1.

이번 한미 FTA의 구상 속에는 경쟁력을 키워야 할 시장은 대부분 다 포함되어 있는데, 가장 경쟁력이 약한 정치시장은 제외되어 있다. 즉 정치인의 경쟁은 가장 철저하게 국제적 경쟁에서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시장을 열 수는 있는 것인가? 정치시장을 열어서 경쟁을 시키는 방법은 과연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진정 원한다면 할 수 있다”이다. 다만 그 방법이 매우 과격하고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상상은 할 수는 있는 노릇이다. 순발상으로 말이다. 여기서부터가 지적인 실험의 시작이다. http://www.kifs.org/new/Dbview.html?sec_sort=7&no=1852

2.

 

학교급식, 군대급식을 햇빛 농산물로 바꾸자

 

  농민운동은 운동방법의 변화 또한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군사독재의 시대가 아니라 적어도 언론과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된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민주화시대에 아무리 방어수단이라 하더라도 대중동원형 폭력 시위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의 공감도 얻지 못한다. 폭력시위를 통해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는 것은 국방의 의무 때문에 마지못해 거기 서 있는 젊은 전경들뿐이며 대중동원형 시위 때문에 불평이 터져 나오는 것은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는 일반 시민들이다. 도식화 되어버린 불타는 전경차와 피 흘리는 농민 식의 언론보도 탓을 할 게 아니라 실제 시위 형태를 철저한 비폭력 평화 노선으로 바꾸어야 한다. 생태적 전환을 추구하는 현재의 햇빛 농업은 뭇 생명까지도 살리는, 지극히 평화를 지양하는 농업 농민운동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해 군대급식을 유기농으로 바꾸라고 국방부 앞에서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하는 게 백배 낮다. 학교급식을 자연 순환형 햇빛 농산물로 바꾸라고 교육부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공연을 펼치는 게 훨씬 더 수많은 인민들을 감동시키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도시의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을거리의 안정성 문제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와 각종의 도시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먹을거리만 깨끗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지만 그러나 우선 당장 안전한 먹을거리라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와 군대 급식만 제대로 현재의 햇빛 농산물로 바꾸어도, 여기에 노동조합과 연대해 기업 급식까지 유기농으로 바꾸어도, 초중고 400만 명, 대학생 250만 명, 공무원 140만 명, 군인 60만 명, 기업까지 합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현재의 햇빛 농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충분히 마련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식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농민들이 싸운다는 데 외면하거나 반대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이런 운동에 드러내놓고 반대할 언론이나 정치인, 기업인들도 사실 많지 않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라고 해봐야 비행기 몇 대 값이다. 솔직히 고속도로 1km 건설비용이 약 600억 원이다. 그리고 이제는 토건족만 살찌우는 더 이상의 도로 건설은 중지되어야 마땅하다. 바로 이런 예산이 우리 사회의 농업 농민 살리기에 투입되어야 한다. 농민운동은 이런 긍정의 건설과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이외에도 농민운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도시농업, 주말농장 활성화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농업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인식을 도시인들에게 체험하게 해야 한다. 학교를 비롯 각종의 도시 공간에서 확산되는 현재의 햇빛농업 농지는 젊은이들의 산 체험장일 뿐만 아니라 귀농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할 것이다.

 

  저항과 방어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은 개척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 가운데 가장 휘발성이 강한 의제가 비정규직 문제와 농업문제다. 농민운동은 이제 대안의 농업 농민운동을 시작해야 하며 그것은 현재의 햇빛 농업과 농민운동에 대한 폭넓은 인민의 지지를 형성하는 일이자 생태적 전환을 밑에서부터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농민운동은 아직도 충분히 그러한 긍정과 대안의 운동으로 전환할 힘이 있으며 그것이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농민운동 선배들의 헌신에 값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주 미약한 실천일지라도 나부터 시작하는 실천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는 나비의 날개 짓이다. (끝) 

http://www.tjcivilacademy.or.kr/zboard/zboard.php?id=dat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4

 

3. 국면의 전환이다. 아니 사실 전환이 아니라 격랑에 떠밀려가는 것을 머리로 낚아챈 것인지도 모른다. 인지가 또 다른 계몽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정세가 머리속으로 정리되었으니, 누구도 대세에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머리로 바꿀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황우석국면의 격랑이 흘러도 우리 활동(운동)의 성과는 머리에 머물렀다고 밖에 없지 않을까? 마음을 흔드는 고리는 다 놓친 것은 아닐까? 이제 누구도 황우석국면과 과학의 일상문화와 연계짓지 않는다. 그렇게 국면은 이벤트처럼 지났다. 언제나 국면은 존재했다. 비정규직국면으로, 반전국면으로...의미를 부여하고 행동을 덧보태고, 의미있었고 할만큼했다,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라고 마음을 스스로 다독거려야 하지만, 허전함이 남는다.

 

 2. <늙은 농민운동 이대로 안된다>는 박승옥님의 글처럼 농업문제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운동일 것이다. 우리의 성과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패스트푸드의 금지-탄산음료의 자판기금지 분위기만큼 세상은 어쩌면 변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른 것은 아닐까? 먹거리하나로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일상인의 마음 속에 살아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와 마음까지 거리는 그만큼 멀고 힘든 것은 아닐까? 물리력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뺐는 시도, 그 상상력이 운동방식과 아이디어에 녹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참*회의 말미 한미FTA와 우리활동의 연계성에 대한 논의가 번졌다. 알리거나 머리속을 채워넣거나 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다지 많은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삶의 한켠으로 마음속으로 헤집고 들어가게 하는 것은 참으로 벅차고 녹록치 않은 일인 듯하다. 그러다가 제도권 안 엘리트관료들로 생각이 옮겨진다. 산자부-재경부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들은 무엇일까? 주변의 논리를 모두 무화시키는 재주를 가진 그들 속엔 제도곁이나 제도밖에 대한 마음씀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그리고 그 제도안의 의사결정과정을 생각해본다. 한 정책에 대한 기대효과, 이정도 경제효과가 있으며 고용에 얼마만한 파급효과가 있으며 어쩌구저쩌구.... ....

 

그러면 열에 아홉은 넘어가리라. 암 그렇게 해야지. 정말 그럴까? 그들의 정책자료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3년전, 5년전, 7년전으로 돌아가...그 기대효과가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그 정책에 대한 실명인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지금 어느자리에서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제도곁과 밖에 대한 상상력과 절실성을 확인하고 싶다. 간절하게... ...

 

나는 아니라고 여기는 정치인들에게도... ... 되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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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4-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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