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봄에 눈이라, 이러다 익숙해지면 어쩌나? 불감증이란 것은 한 두번 이상한 넘들이 이상하게 내 속에 들어와 자리잡는 것이지. 그렇게 불손한 것들이 들어와 당연하게 만들어버리면 어쩌나? 세상은 온통 변태같은 것 투성인데... ...

2. 귤 몇개로 빈 속을 채우고 주로로 나선다. 깍지끼고 뒷짐지고 걷다가 3런 주로부터 천천히 달려준다. 몸이 맛이가? 조금만 무리하면 부담되니 슬렁슬렁 달리기로 한다. 제법 봄 맛이다. 다름고개에 오르니 그래도 개나리 경치론 제일 나은 과*재단앞 개나리 숲 속살이 제법 노랗다. 며칠 지나면 후욱 노란 붓으로 거칠게 칠해지겠지...!!

3. 보름달이 오늘도 걸렸다. 그 놈은 볼 때마다 그렇게 의연한지 모르겠다. 쯧~.  뒤늦은 몸은 달린지 40분이 넘어서야 박자를 탄다. 10k 53'    060312  5k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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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님의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 - 홍세화"

  원죄의식이 천오백년동안 사람을 움직였다면,  '불안'은 또 다른 천년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마저 빼내기위해 혈안된 자본은 끊임없는 '불안'의 그늘로 스스로 성장시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발버둥은 끊임없이 자신의 쳇바퀴에 자신을 학대시키는 것인지 모르도록 집요한 것 같습니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중소기업 임원과 사장은 사장대로, 불안 속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으며, 제 속도를 부지런히 높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이 중요할 뿐이지, 어떻게 남생각할 여유가 있겠는지요?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면 그 동안 자신이 몸담던 그늘은 다 남일이 되고, 정규직은 임원이 되면 다 남일이 되고... ...

자본의 시대는 어느 덧,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일터라도, 그 나락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자본에게 안락한 고용과 평화로움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이야깁니다. 나락으로 추락하기 않게 하기위해 스스로 몸에 채찍질을 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기껏해야  마조히즘의 쾌락밖에 남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나 정신이 쉴 곳 마저 없는 현실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시작할 곳도 거기서부터 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채찍과 당근에 익숙해진 우리의 지친 몸과 영혼에겐 떨어진 바닥에서도 새싹이 돋고 피고,  남생각하는 공간에서, 함께 해보는 일들에서, 취미삼아 해보는 자발적 가난에서 애초 기초없이 시작한 자본의 바벨탑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적인 영역은 시선을 돌리는데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의 시선.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지역과 사회, 남 생각해보는데서... ... 취미삼아 남 일 해보는데서...... 말로 하지 말고.. 공동의 노동자의식과 공적인 시민의식의 샘물마저 말라버린 척박한 현실에서 그래도 해 봐야 할 것 들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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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엘 들러 반납하려하자, 이틀정도 기한이 남은 줄 알았으나, 이틀이 지났단다. 성석제 소설책 몇권을 뒤적이고 위치를 확인해두고 나머지 일을 보았다. 날이 차다. 구*도서관 생각이 났지만, 꾸욱 참았다. 저녁 가벼운 운동에도,  읽지 않은 책들을 펴들자 꾸벅꾸벅 졸린다. 아홉시도 되지 않았건만... ... 막내녀석 개콘본다고 궁시렁거리더니, 시작하기도 전에 잠에 골아 떨어진다. 같이 잠을 청한다.

일어나보니 한참 이른 새벽이다. 배도 출출하여 밥을 하고, 간단히 챙겨먹고. 읽지 못했던 이책을 꺼내들었다. 서문과 홍세화 인터뷰 편을 보았다. 생각보다 깊이가 깊다. 읽다가 몇꼭지가 맘에 걸려 흔적을 남긴다.


1. 과연 한국사회 구성원이 어떤 공동의 목표를 놓고 대담이나 토론 같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정치권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대담이나 토론조차도 그 안에 승패의 논리가  강하게 담겨있다고 본다. 이것은 관계가 항상 부정하는 관계로만 서고,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떤 공통분모 같은 것이 조성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보수나 진보, 둘다 마찬가집니다. 민주-반민주할 것 없이 부정하는 관계에 익숙해지면서 진보세력 역시 똑같은 습속에 젖어버리게 된 겁니다. (중략)

수직적 질서만 강조되고 수평적 관계에 대한 훈련이나 경험이 없는 것이죠.  티브토론을 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더 정교하게, 깊이있게 하는 것이 토론의 목적인데,  나온 사람 중 의견이 똑 같은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말을 잘했나''나를 얼마나 잘 대변해주나'에만 관심을 갖고 게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뱀발 01. 다름의 관계가 부정하는 관계로만 착근했다는 것. 우리에게 배려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상대방이 다르다는 선입견이 든 이상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어디서든 다름의 관계에서 차이를 분화시키는 것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몇시간 내내 논의를 하였지만, 늘 원점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는, 못된 습속이지 않을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많이배우고, 그렇지 않음을 고사하고...암울한 환경에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며 익힌 것이라 하지만... ... 서로를 무척 힘들게 하는 것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탈의식화'의 단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 나물 그 밥이거나,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2. 정치 사회적인 것이든 이념이든 뭐든 자기 규정은 하지 않으면서 '개량주의자'니 '노빠'니 '빨갱이'니 이런식으로 상대방에게 딱지붙이기는 아주 쉽게 잘 합니다. 남에게 딱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규정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자기 규정은 소홀한 채....(중략) 자기 규정을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성찰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자기 성찰은 왜 하는 겁니까? 자기 성숙의 모색을 위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물신주의에 의해서 그런 전제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자기 성찰 없이 아주 쉽게 남에게 딱지를 붙이는 그런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뱀발 02.  1.과 2.는 상관관계가 있다. 애석하게도 단 한번의 만남에도 다르다는 인식은 부정적인 습속에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 알맹이는 오간데 없고,  그 딱지만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 한발자욱도 디딜 수 없는 현실이다. '근본주의자'라고 '황빠'라고 '노빠'라고 유통시키기 전에 나에 대해 냉정해지고, 스스로 엄중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장'파니 '국민'파니, 엔엘이니 피디니 하며 유통시키기 이전에 지향에 대해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되는지 생각만해도 해야할 가슴 벅찰 일들이 많을 것은 아닌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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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록 마르크스의 거대 이론들이 입증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의 사유는 폐기될 수 없으며, 오히려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서구의 지적인 전통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단순히 역사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현 사회에서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상가로 마르크스를 복권시키고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핵심은 인간 본성과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의 평가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현재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게 만든 것이 마르크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대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우리가 그 해결을 같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미에 주요한 개념들을 흔들어 놓고 있다. 전적인 부정도 긍정도 해놓지 않는 엉거주춤이다. <<왜 오늘날 맑스를 읽는가?>> 느껴야 한다. 수입되어온 맑스의 잔재를 벗겨버려야 하지 않을까? 주입되어 버린 맑스를 그동안 현실을 보태 다시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수입되고 주입된 맑스에 경도된 분?들은 현대 맑스주의 사상가들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 같다. 바탕에 서려있는 맑스는 보지 않고 표현된 것만 피상적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그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으며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일상으로 가져오고 논의해본다고 손해보는 것 있겠는가? 고등-대학생들의 관심과 시선으로 보게되면 또 현실을 풍부하게 느껴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철학의 피상만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뿌리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입문서로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일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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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참터) 과제 아이디어 몇가지 펌.

 1.  딤채와  돈 안드는 자연 보존 방법의 성능 비교 --> 정말인가요? 한번 해보실 분 없어여~

 1.1 138쪽, "지하실 저장통(폭1미터 깊이 30CM)에 단풍나무 가랑잎을 채소와 번갈아 쌓고 마지막엔 두툼하게 잎사귀를 놓았다. 거의 해마다 우리는 당근, 비트, 양파, 순무, 감자와 사과 따위를 가을에 저장한 뒤 이듬해 7월까지 이 지하실에서 꺼내다 먹었다. 그리고 꽤 여러가지 채소를 8월까지도 계속 보관할 수 있었다."

 

1.2 139쪽, Noah Webstter <<매사추세츠의 곡식 창고>> "나는 내가 가꾼 싱싱한 과일을 한해 내내 먹는다" 웹스터는 가랑잎을 많이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봄에 먹을 음식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는 마른 모래를 켜켜이 쌓는 방법을 쓰라고 권한다. " 첫째, 모래는 사과에 공기가 닿지 않도록 막아준다. 둘째, 모래는 사과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 맛을 온전히 간직하게 해둔다. 셋째. 사과에서 나오는 모든 수분이 모래에 흡수되어 곰팡이가 피는 것도 예방된다. 오뉴월에 내 손에 들고 있는 사과는 처음 땄을 때만큼 신선했다. 꼭지도 나뭇가지에서 바로 딴 것 처럼 보였다. 네째. 모래도 가랑잎처럼 서리와 부패를 막아준다.

 

2. 채소를 먹으면 1/3은 푸른 잎이 많은 채소, 1/3은 노란색 채소, 1/3은 즙으로 먹으려했다.

3.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익을 늘리는 목적 하나만을 갖고 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야 어떻든 이를 수긍하기는 쉬울 것이다.... ... 이렇게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어 살 때,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  도널드슨, <<행복의 지름길>>, 1700년  ;

불행히도 우린 자기의 이익을 늘리는 목적 하나만 갖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말을 수긍하기, 수긍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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