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V를 움직이는 것들
1)문화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TV는 왜 소아병적인가
3)TV와 경제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4)TV프로그램 포맷은 어떻게 결정되나

5.TV의 힘
1)TV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나
2)TV는 여성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3)TV는 스포츠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4)케이블 TV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6.광고와 대중문화
1)광고는 어떻게 우리를 훈련시키나
2)광고는 대중문화를 어떻게 지도하나
3)어떤 광고 모델은 왜 우리를 사로잡나

1. <텔레비젼>에 대한 어느 책보다 산뜻하고 쏙쏙 들어온다. 요즈음 (난) 집안에서 꿍꿍이 속이 있다. TV의 자리에 무엇을 들여놓을까? 물론 조급하진 않다. 올해 안으로, 자발적 결의?에 의한 퇴출이다. 주입을 하고 강요를 하고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대체재가 없는 이상, 충만한 것으로 채우지 못하는 이상, 또 다른 TV가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예술과 오락의 경계는 자발성과 수동성?!  2.1 압축적근대화: <자본의 그늘: 일중독-->스트레스-->수동적 여가-->기형적해소-->누적(개인/사회적)> 2.2 자본의 전일적 지배: 매체의 소아병화 --> 수동적여가의 증폭/정치 무관심. 2.1-2.2 결합 ---> 사회의 소아병화 --> 수동적여가 --> 기형적해소: 집단의 자발적 우민화.

3. 미국의 프로그램 전환계기는 내부에서 자발적 개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마지못해 자본의 요구나 사회 운동이나 사회적 문제발생으로 인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자본과 결합할 수 밖에 없는 본질적 생리는 다양성이나 선택권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방송매체들이 출연을 하여 진중한 R&D를 하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의 질적개선과, 자본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는 이상,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저질의 그늘과 한류의 비속함으로 인해 향후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으리라. 영영 자본의 시녀밖에 될 수 없는 것인가?? 

4.'돈도 안되는 비정규직, 저소득층의 본질을 꿰뚫는 드라마가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소비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계속 광고 후원하리라는 것도 만무하지 않겠는가?'.

5. <TV중독증>   에 대해 문화-정치적인 측면에서 되짚어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자발적 복종   http://wnetwork.hani.co.kr/hongsh/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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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차스를 읽자>, 1996, 백의

 1.  아침햇살에 새들이 신이 났다. 먹을 것이 제법 있는지 부산스럽게 지저귄다. 가벼운 차림으로 참*사무실로 향한다. 여전히 시선은 목련새순으로 향한다. 제법 틈실해간다. 어쩌다 목련에 잔뜩 정이들었다. 둑둑 제 꽃무게에 못이겨 얕은 비에 뭉게지는 모습이 보기도 싫었지만, 왠지 점점 좋아지기만 한다.

2.  오늘은 목련을 보며, 불꽃놀이 상상이 스며든다. 한겨울내내 봄을 먼저 준비하다가 봄볕에 지난한 겨울 응어리를  펑펑 쏘아대는 목련을 상상하다. 올핸 제대로 느껴볼 요량으로, 이내 마음이 들뜬다.  이것저것 사무실 청소도 하고, 후배가 <국가론>에 관심이 많은지, 건넨 철?지난 책을 둘러보기도 하다. 창밖의 봄이 아까워 다시 천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3. 모두 봄으로 충만하다. 걸음걸이 속도도, 강줄기 봄물도 많이 익었다. 자목련, 백목련 곁을 지나치며 가볍게 달려 얕은 땀을 뱉어낸다.

4. 가고, 천변을 돌아오며 8k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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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버트 뉴턴 펙이 열두세 살이었던 유년시절의 확대경을 통해, 동심의 세계에서 어른으로 막 눈떠 가는 과정을 한 폭의 잔잔하고 투명한 수채화처럼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

도축업을 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마침내 주인공은 세상에 대해 눈뜨게 된다. 물상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와 경쟁사회 속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점점 더 메말라 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인생을 참됨을 일깨워 준다.
 
1.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는 것을 알아내다. 극적이어서 소설이겠거니 했지만, 저자 자신의 삶을 드러내서 더욱 애틋하다.
 
2. 읽으면서 이번에도 외도를 한다. 자그마한 동네 모험과 자연과 사람의 따듯한 냄새가 섞여있어 좋다. 요즘 아이들의 성장엔 여백이 없는 것 같다. 속성재배도 그런 속성재배가 있을까? 바득바득 사람으로 넘쳐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겁내고 두려워하도록 교육받는다. 경험의 성장이라는 것이 아프고 낫고 덧나고 딱정이도 생겨야 되는 데, 이 속성재배엔 그런 여백의 시간도 무가치한 것이라 주입받고 자란다. 
 
3. 거리와 작은 단위에 벗어나 도시로 도시로 밀어낸 것이 우리가 자초한 위험인지도 모른다. 작아지고, 덜 일하고, 도시보단 작은 단위로 분산되지 않는 이상, 그 도시에서 성장하기 위해, 인구밀도 높은 곳에서 살리기 위해 성장하는 아이에게 도시는 더 많은 항생제를 투입하고, 더욱 사납게 기를 지도 모른다.
 
4. 자칫, 평일엔 착한 직장인, 주말에도 착한 아빠로 남기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일에 시달리고 있다. 행여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체력이 허용하는 선을 넘어서 착한 아빠로 남길 과도하게 희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60-70년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선을 한번 쯤 사회에도 돌리고 중독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도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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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눈다. 먹은 음식을 비계와 비료로 만드는 사람, 먹은 음식을 일과 유머에 쓰는 사람, 그리고 먹은 음식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고 자신은 가운데 부류에 속한다고 말한다. “저는 셋 가운데 가장 흉측한 녀석은 아닙니다. 주인님, 그렇다고 가장 훌륭한 축에도 못 끼고 그저 어느 중간쯤에나 끼겠지요. 내가 먹은 음식은 일이 되고 좋은 유머가 된다는 거죠. 결국 그만하면 과히 나쁠 건 없어요!”(by 로쟈) 

1. 저자 속엔 호메로스와 니체, 베르그송/부처, [여행]이 섞여있고 이 소설은 저자가 섞여있는 조르바이다. 조금 추워진 동네를 달리며 '조르바' 생각에 빠져버린다. 카사노바틱 하지만 저자입장에선, 아니 내입장에서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호메로스와 니체, 그리스인에 심취해있던 니체의 행간이 내내 읽힌다.

2. 살면서 우리는 늘 무수한 조르바를 만난다. 그리고 무수한 조르바를 잊어버린다. 머리부터 채워넣는데 익숙한 우린, 보여지고, 살아지고, 끼워넣어진다.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넣으려고 하는 우리는 늘 안달하고 걱정하고, 해야만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며 살아진다. 머리가 먼저 굴러가는 동물원에 살고 있고, 모든 것이 그렇게 정해져서, 동물원 안과 밖을 넘나드는 조르바를 만나면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조르바편인데, (돈냄새 풀풀거리는) 동물원 안의 안락함은 볼거리와 팝콘으로 늘 무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낮의 무수한 조르바는 밤과 주말만되면 울타리안에서 잠복근무하는지도 모르겠다. 충만해 나누기에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하는 욕망에 중독되어 스스로 학대하는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3. 조르바를 달리기에 가져와본다. 취미삼아 한 달리기는 늘 전제조건이 "--을 위한" 뜀박질,- 기운을 차리기 위한, 모임시간을 늘리기 위한 - 늘 부족해서 채우기 위한 모드였던 것은 아닐까? "기운이 넘쳐" "기운"을 나눠주고 싶은 뜀박질은 아니었든 싶다.  한번 모드 좀 바꿔볼까? 몸에 기운이 바닥나니 생활이 말이 아니다. 나눔모드를 위해 부지런히 몸 좀 만들어야 쓰것다.

4. 060228  6.5k 37'  060301 5k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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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르바에 대한 소회
    from 木筆 2010-06-11 09:09 
    0. 지난 기억의 단편들을 다른 이의 말들에서 찾는다. 모임의 말미쯤 중동난 흔적들이 어렴풋이 맥락을 잡는다. 먼댓글로 이은 개인적인 흔적도 생각나질 않았는데, 지금 다시보니 몸으로 뱉은 말들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도 생각도 울타리를 갖는 것이고, 그 정원이 넓어지는 것은 머리의 욕망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어쩌면 손, 발의 영역이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손과 발, 그 몸의 영역이 새롭게 피거나 자랄때, 그 생각도...꿈꾸는 마음도 지평
 
 
하이드 2006-03-0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여름 크레타섬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페이퍼네요. 그곳에서 얻었던 것들, 아직 제 안에 있기나 한건지.

여울 2006-03-0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부러워라!! 정말 볼 수 있다면, 흔적이라도 찾고 싶은 궁금증 있죠.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더 아름다우려나요. 아직도 소설 속의 크레타섬이 울렁거립니다. ㅎㅎ
 

 

060226 21:00-24:00 (참*) 참*과제에 대해 내일 올 자원활동을 대비하여 세분화 및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논의를 나누다. 으뜸참터지기님이 보란듯이 자료준비를 잘 해왔고, 헤어지고 난 뒤, 보란듯이 자료를 보완하여 필요할 때, 한 단계 진전이 있어 보인다.

060227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원활동'을 신청한 친구들을 보고, 19:30-24:00 저녁 '지역토론회'에 참가하다. 이야기는 모아지는 듯, 흩어지길 반복한다. 아무튼 논의의 출발점임을 서로 공유하였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시작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될 것 같다. 토론내용 가운데 좀더 품어볼 내용을 갈무리하여 생각해보지만 모일 듯 모일 듯, 흩어진다. ( 맥주 500쯤, 그래도 다음 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전반적 체력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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