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12 (참*) 집*위 - '사회봉사활동인증센터' 증을 받았다. 소망하던 것이 ... 학생들 AU도 가능하다. 참터지기도 보강되고,  해보자하는 의욕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집*위 뒤, 한분한분 모이더니 10분이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마지막 연락된 한**님과 전*동에서 해우. 오랫만에 갈증을 풀었지만, 속은 동동주 버전이어서 괴롭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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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민족주의와 정보소통, 그리고 과속욕망(생각품음 051212)

 1. 황우석에 몸을 준 20대, 맘과 삶을 준 30-40대 - '오렌지'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 아마 황우석신드롬/스캔들로 더 맘 상처를 받는 쪽이 누구일까? 더 극성스런 쪽은 어디였을까? 3040대의 정서와 20대의 정서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보의 소통으로 20대의 오렌지 민족주의는 잔잔하게 사멸할까?툭툭 털어버린다는 표현은 뭐하지만 그냥 그대로 별일없던 것처럼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3040대가 정보소통으로 안다고 해도 그것에 정서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닐까? 문제를 나누어서 별개로 본다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은 아닐까?  앞으로 해체와 분화의 공백이 자리잡을까? 아니면 정서상 공백으로 인한 무관심이 더 크게 될까? 황우석신드롬과 스캔들의 후유증은 일상에 어떻게 자리잡게 될까? 20대가 오히려 냉정하게 사회문제를 분리해체해서 보게될까?(전체적으로 침체된다면 그렇지 않을 확율이 더 크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진보성향의 3040대의 마음길이 더 중요할텐데. 진지버전에다가 하나에 모든 것을 담으려는 습성이 있는 3040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중심을 잡되 해체, 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으론 느끼겠지만 정서와 괴리감이 따라붙을 수 있을까?(여전히 그 공백은 길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의 역동성에 기대어 보아야 하나?)

  2. 어*연 - 386-486 중산층 주부님 위주(*천여회원), 조직개편기를 맞아 분리와 독자성이 화두이다. '가야할 길'에 대한 과속욕망은 회원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소수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해야 하는지? 정보소통이 어떻게 되어야 좀더 회원이 회에 대한 관점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서 풍부해질 수 있는지?..... 너무 진지하여 문제를 여러가지로 보지 못하다고 여긴다. 문제를 해체하고 다시 맞춰보자는 현실은 찾아볼 수 없다. 진지함이나 '가야할 길'을 잊어버리고 소통되고 있는 정보, 회원의 맘길에 대해 해체해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데리다가 떠오른다. '차연' 그리고 30-40대의  성명서의 기본 툴: 정세는 어떠어떠하므로 지금은 어떠어떠해야하고 앞으로는 어떠어떠해야한다. 무의식중에 배여있는 그 툴, 진지함이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

2.1. 386-486의 진지함: 이제 사회 현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사시키는 습관을 줄여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싶은 것, 바라는 것보다 더욱 더 현실에 민감하거나 소수자 의견에 더욱 예민한 촉수를, 세상은 내식대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때문에 내생각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10:08

3. 활동에 대한 - '가야할 길' 에 대해 너무 연연해하는 것은 아닌가? 활동그룹은 정보소통마저 논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도, 어떻게 교류하고 축적해야되는지도? 각자 알아서 갈 뿐인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활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성과 주장만 있는 것은 아닌가?

4. 20대가 오히려 현실에 냉정한 것은 아닐까?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익숙한 것은 아닐까? 3040대의 미련과 아쉬움, 진지함버전이 생산적으로 해체될 수 있을까? 2개의 황우석의 문제(신드롬/스캔들)를 11개? 의 현실의 문제(연구 환경의 문제, 생명공학과 윤리의 문제, 연구 성과의 검증 문제, 국익과 애국주의 문제, 여성 인권의 문제, 의료산업과 국가의 문제, 언론에서의 진실 보도의 문제, 장애우의 문제 ) 로 분화 발전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자정능력과 미래 생성능력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궁금하다.

5.[펌] 국민들은 황우석 교수의 진위여부를 떠나 희망을 얻는 것 하나로 응원하고 좋았을 뿐이다. 그것을 언론사별,이념, 종교를 끌고야 나쁘다 좋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것이다. 단지 연구자체를 응원하는 것.. 그것이 나쁜 것인가?(!??)


흔적. 어제 어*연 회지를 집어들고 꼼꼼이 보다. 혹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헛생각 전한 것은 아닌지해서..그리고 황*석 재검증 소식..알라딘 게시판을 조금돌아보고...최근 지역의 우울한 미래...등등이 겹쳐져서일까? 기분이 몹시 거시기해버렸다. 출출하기도 하고....라면생각이 나 라면밥에 반주 몇잔들이키는데, 참 요상타. 물밀듯이 밀려오는 황황함. 너무 많은 생각을 집어넣고 사는 것은 아닌지? 용량을 넘어선 부하일까? 거실은 내마음처럼 어질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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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책으로 만드는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교실에서 책 권하기
가정에서 책 권하기, 그 의미와 중요성
학교도서관에서 책 권하기
또래친구에게 책 권하기


**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지인이 빌려준 책인데, 초중생 자녀를 둔 분이 꼭 읽었으면 하는 느낌이 든다. (고맙다), 심란한 현실 속에 그나마 소통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도서관의 중요성 역시.

 

 

 

 <이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 세계화==한국화--허브 조금 지나친 연계라는 느낌이 들지만, 다석 류영모 "태양을 꺼라"  :앎나와 삶나, 그리고 언어 속에 세계관이 구조되어 있고, 남의 틀로 자꾸 자신을 생각토록 강요당하는 현실, 우리말로 철학하기 소개에 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듯. 일터 동료 모친상 가는 길에 빠져서 읽고, 다석에 대해 검색해보기 시작하다.  우리말 개념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앎나' '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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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은 시름시름 앓다가도

동이 트면 훌훌 털어버린다.

 

후회란 원래 그런 졸속이다.

 

괜히 피었다 싶다가도

피기 전에 돌아가려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 싶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나팔꽃은

뻥 뚫린 목구멍으로

자기 몫인 햇살을 받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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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07  내*신문 독자 주주 광고주 모임에 참석.  아는 분 연락으로 세미나 발표로 알고 갔는데, 송년모임이다.(이크) 몸이 피곤하여 맘이 많이 망설이다. 참석하였는데, 벌써 초창기 창립멤버를 만난지가 13년째라는 것을 보고 다시 놀랐다. 국악공연이 펼쳐지고, 몸은 불편해하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출입문이 막혀서리, 암튼 공연보고 식사할 쯤 자리를 파할 생각이었는데, 그 공백이 없다. 참석자 소개까지(흐미~)... ...밥/일/꿈.. 가슴설레면서 헌신하며 일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반추되는데... ...

내 몸은 벌써 심사가 틀어졌는모양이다. 광고주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애초 오지 않았도 되었을 것을 어제 전화청탁에 몇번 빵구를 놓을 상태라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괜한 걸음했다는 생각도 겹친다. (어찌하랴~) 홍보비디오도 보고 소개를 받는데 건설사-은행-병원-사장.... 와.....??!!

독립채산제도 좋지만 애초 초심을 잃은 것이 아니냐? 광고주와 관계... ...조금 심란하다. 어찌 생존을 위한 자본에 투항한 느낌이 자꾸 들어 혼났다. 13년전 장** 대표의 모습엔 무엇인 빠져있는 것 같아 아쉽다. 밥/일/꿈?? 독자에게 이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과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신문도 아무 색깔이 없는 듯하다. 초심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일까? 혼란스럽다.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오다.

051208  연이틀 왜 빨리들어오냐구 안해의 핀잔이다.(허억, 아시잖슈. 피곤혀~ 죽것단 말이야. 잠을 자야헌다말야.) 아이들과 뒤섞여 놀며 있는데 메시지가 온다. 동*읽는 **모임, '의견 좀 주셔요.'비상시국이란 것. 아침 숙제가 장장 40쪽이라 몇번을 읽어야 조금 감이 잡혔다. 임원그룹의 독선이 적나라하게 보여, 관점을 바꿔 몇번을 되돌아보아도 마찬가지다. 회원에 대한 관점이 너무 고정되어있다. 전체회원이 아니라 '내가아는 회원'의 의사가 명확하였다. 모두 '회원의사'가 이렇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회원'은 변화하지 않는 실체처럼 보인다. 한버스를 타고 정거장을 생략하고 지나칠 때, '속마음'으로 통쾌함일까? 공범의식의 짜릿함일까?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회원'으로 시선은 적은 듯하다. 빨리 버스타고 목적지에 다달아야 할 뿐, 함께가야할 '회원'의 의식-감수성은 이미 논의구조에서 소멸된 듯하였다.  가슴 아프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지만, 자칫 자기가 탄 버스, 그리고 버스안의 사람이 중요하여, 발떨거나, 추웠던 기억마저 사라진 것은 아닐까? 질주만 하는 386, 486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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