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 ]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51

[ ]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가 되었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96

[ ]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130

[ ] 어슴푸레한 빛은 새벽 햇살 같지도 않고, 저녁 햇살 같지도 않았다. 그 빛은 모든 사물의 윤곽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고 뚜려사게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빛이 나오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도로의 아주 작은 돌맹이까지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그림자들은 모두 제가끔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178

[ ] 그들은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208

[ ]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210

[ ] 시간은 언제나 거기 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음악 같은 걸 거예요.....하지만 그 음악은 아주 멀리서 들려왔지만, 제 안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렸어요. 어쩌면 시간도 그런건지 몰라요....바람이 불어서 강물에 물결이 이는 거랑 비슷한 건 아닐까요...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여기 ‘언제나 없는 거리‘에 있는 ‘아무 데도 없는 집‘에서 나오는 거란다. 216

[ ]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217

[ ] 네가 보고 들었던 것은 모든 사람의 시간이 아니야. 너 자신의 시간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네가 막 다녀온 장소와 같은 곳이 있단다. 보통 눈으로는 그곳을 볼 수 없지. .....네 마음 속....우물이란다. 그곳은...225

[ ]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 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으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란을 떠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즐거운 소란이 아니라 미쳐 날뛰는 듯한 고약한 것이었다. 253

[ ] 사람들이란 한갓 자기 안에 있는 시간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거든,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란다. 허나 그들은 사정이 달라. 그들은 훔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지. 그래서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몸에서 금세 시간이 빠져나가는 게야. 터진 고무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같지. 풍선은 그래도 터진 조각이라도 남지만,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322

[ ] 시간의 꽃. 그 때 내가 말했잖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갖고 있기에 그런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원에 그들을 들이면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 있게 된단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가슴에서 뽑힌 시간의 꽃은 죽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 시간은 진짜 흘러간 것이 아니거든. 허나 진짜 주인에게서 떼어 내졌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없지. 시간의 꽃은 전심 전력으로 제 진짜 주인에게 돌아가려고 애를 쓴단다. 327

[ ]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360

볕뉘

-1. 4년전 시간의 향기라는 주제로 북콘서트를 가진 적이 있었다. 에둘러 가지만 시간을 이야기하거나 나누지 않고는 어떤 진보도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었지만....욕심이란 걸 눈치채기까지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매여있거나 뭘 해야하거나 시간씨앗 하나도 심을 수 없음을 느끼고, 시간 한포기도 키워낼 수 없음을 미리 깨달아야 했다.

0. 시간을 짓고, 만들고, 피우고....관계를 만들고 짓고 피우고........아주 작은 안내서같은 ㅇㅇ의 시간들을 위한...안 내 서....흔적들... 물론 위의 그 과거의 일은 스스로 되묻는 지적이기도 하다.

1. 시간을 작은 종지에라도 서로 담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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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1.

[ ] 당신 잘못을 버리고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어요. 반드시 고백을 해야 하니까요. 다음 기회에 고백하도록 하세요. 그런 다음에야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116

[ ] 이런 방식으로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이며, 거기에 변호의 주용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카 당신도 몸소 체험해봐서 알겠지만 법원의 말단 조직이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의무를 망각하고 매수당하는 직원들이 있고, 그로 인해서 법원의 엄격한 보안 상태가 어느 정도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비비고 들어가서 매수를 하고 비밀을 캐내는 거지요./실질적인 가치는 고위 관리들과의 신뢰할 만한 연줄에 있습니다. 물론 하급 재판소의 고위 관리들과의 연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나중엔 재판 진행에 점점 더 분명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125

[ ] 그런 것은 기껏해야 다른 피고인들에게 약간 도움은 될지언정 당사자는 항상 복수만 생각하고 있는 관리들의 특별한 주의를 끌게 되어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의를 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에 거슬려도 그저 가만히 계십시요. 이 거대한 법원 조직은 어느 정도는 항상 떠 있는 상태라는 것,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위치에서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변화시킨다면 발붙일 곳을 잃고 굴러 떨어지고 만다는 것, 한편 그 커다란 조직 자체는 그런 사소한 장애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보완을 하고, 더 잘 결속되든가 더 사악하게 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본래대로 있는 것입니다. 129 여러 가지 면에서 관리들은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130

[ ]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들에게 제기된 소송 절차 때문일 수 있습니다. 198 그건 변호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였다. 208

[ ] 임무가 끝나려면 시골 사람의 삶이 끝나야 하니까 그는 결국 그 마지막까지 시골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37/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문지기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는 역시 법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인간적인 판단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238/ 모든 걸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그것을 단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39/당신은 교도소 신부이지요...그러니까 난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요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240

[ ] 그 사람들을 애먹게 하고, 항거하면서 삶의 마지막 현상을 즐기려고 애써 보았자 그것은 결코 영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243 난 항상 스무 개의 손을 가지고 세상에 덤벼들려고 했으며, 더구나 인정할 만한 목적도 없이 그랬던 거야. 그건 옳지 않았지. 244 아무리 확고부동한 논리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고자 하는 사람에겐 저항하지 못한다...카는 두 남자가 바로 자기 눈앞에서 뺨과 뺨을 맞대고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치욕만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247


2.

[ ]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지상의 시민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상을 활보할 수 있는 길이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길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역시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천상의 시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지상에서와 유사한 길이의 천상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 지상으로 가려 한다면, 천상의 목걸이가 그를 죄어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비록 이 두 세계가 양극화된 모순 속에 있지만 인간들은 그 두 세계의 통합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느끼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목적과 소유 관계만을 갈망하는 키클롭스적 인간들은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모르게 그 가능성도, 그것에 대한 동경심도 상실하고 말았다. 285

[ ] ‘세인‘으로서의 인간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아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 들에게는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일상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카프카에 따르면 이런 ‘세인‘에게도 가끔은 꿈과 잠을 통해서 혹은 고독한 명상의 순간이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저 망각된 정신세계나 영혼의 세계가 유령처럼 찾아온다. 286 자신의 글 쓰기는 항상 꿈과 잠, 비몽사몽의 중간 상태에서 혹은 깊은 침잠의 순간에 많은 문학적 착상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꿈이나 잠 혹은 깊은 명상은 카프카에게 있어 신비적 체험과 성찰을 낳는 순간이며 그의 시적 상상력과 직관능력을 한층 고양시키는 창작적 계기이기도 하다. 287

[ ] 변신된 갑충의 시각에서 보면,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이 그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잠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직장생활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희생적이었으며 비인간적인 것, 폭력적인 것이었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잠자‘는 이중의 시각으로 조망되고 이중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에 카프카 작품의 난해성이 있다. 289

[ ] 사냥꾼 그라투스: 그라쿠스는 세계를 떠돌면서 이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이전의 세계, 즉 정신과 자연, 죽음과 삶, 영혼과 육체가 하나였던 저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두 세계가 붕괴되어져 간 과정을 파편화된 이야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들은 그를 ˝고의적으로˝ 회피한다. 그라쿠스는 처음에 바랐던 영혼의 세계로의 귀의를 스스로 포기한다..그는 지상적인 것에 매달려 있는 ˝세인˝들인 인간들에게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를 전달하려는 중재자로 남기를 원한다....그라쿠스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카프카와 같은 뜻인 까마귀를 의미한다. 290

[ ] 법 앞에서: 한 시골 남자가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법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는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법에로의 입장이 후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골 남자는 법에로 입장하기 위해서 값진 물건들을 써가며 법에로 들어가지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문지기가 하는 말은 언제나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시골 남자는 첫 번째 문지기의 무서운 외양과 태도에 질려 내부에 있는 법에 대해 전혀 물으려 하지 않은 채 그의 입장 허락만을 한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죽고 만다. (성담)

[ ] 문지기는 알 수도 없고 도달 할 수도 없는 법을 수호하는 ˝법원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법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실상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형이상학적 종교적으로 이념, 신, 율법, 진리, 존재 등등으로 해석될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절대적인 관료주의 제도나 혹은 전체주의적 체제로, 그리고 사회철학적으로는 ‘권력과 욕망의 상관구조‘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을 전제로 했다고 생각되는 현실적인 제도나 체제에 속한, 즉 구체적인 인간 법제도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293 요제프 K를 대변하는 인물인 시골남자(원래 히브리어로 무지자)의 법에로의 입문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망각한 채 오직 현상적인 것에만 매달려 있는 세인인 것이다. 294

[ ] 신부 말대로 문지기가 시골 남자를 속인 것이 아니라, 시골 남자가 문지기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제프가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묻자 ˝그대의 소송은 하급법원을 전혀 넘지 못할 것˝이라고 신부는 대답하는 것이다. 그 법이 진리이건, 율법이건, 존재의 세계이건, 신의 세계이건 혹은 초자아의 세게이건, 그것은 언제나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법에로 이르는 길은 사람마다 작자 다 다르다. ..카프카에게 있어 진리에로 이르는 길은 언제나 각각의 개인에게만 열려 있고 또 각자의 실존적 선택에 달려 있다. 각 개인의 고유한 삶과 죽음이 있듯이 진리에로의 길 역시 각자 다른 것이다...진리의 세계는 오직 각 개인의 고유한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다. 295

[ ] 영원한 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그의 잠언이 말해주듯이 저 알 수 없는 법, 저 초법적인 법에로 귀의는 인간 각자의 그 어떤 결단적인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5

볕뉘.

왜 죽이거나 슬며시 잠적하게 했을까. 그래. 약간의 해답. 하지만 삶을 기울여 그 짧은 소설들 사이 행간에 부어야...그리고 그것이 책장에 적셔질 때만 제대로 읽힐 수 있다. 어쩌면 제대로 된 독해는 당신의 삶을 걸 각오가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만 아주 조금 잠적하지 않거나 죽지 않을 수도 있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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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유대인, 몸

1.

[ ] 프라하의 유대인 작가: 카프카는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의 길을 생계를 위한 직업이나 부차적인 취미가 아닌, 자기 자신의 실존을 중차대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그 자신에게나 독자에게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진지하고 심각한 일이었고 특히 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69

[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우리를 아주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이라네. 마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마치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쫓겨 멀리 숲으로 추방된 것 같은, 마치 자살과 같은 불행 말일세.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70

[ ] 19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문학은 시민혁명, 산업 혁명, 도시화 시기를 거쳐 자수성가하여 중산층으로 발돋움했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으로 가득 찬 낙관적 부르주아였던 아버지 세대에 대항하여, 아들 세계가 반기를 든 것으로 주로 문학과 예술에 탐닉하면서 유미주의 성향에 빠진 주인공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73

[ ] 카프카는 동부 유대인 극단의 연극에 큰 감명을 받아 [야만인]을 위시한 거의 30편 정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그 공연에 대한 기록을 100쪽 넘게 편지와 일기에 남겼고 이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다. 80

[ ] 이시디어를 느끼면서 이해하려면 몸을 먼저 평안하게 해야 한다. 이때 이디시어를 전체로 받아들이면 어떠한 통일성을 느끼게 되는 이 통일성은 너무나 크고 강력해서 두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인지와 감동, 통일성을 느끼는 매체로서의 몸을 강조하는 언어관은 카프카의 문학관과도 연결된다. 86
[ ] 서유럽이 외향적으로 흘러 공리주의와 과학 문화를 발달시켰다. 동유럽이 내향적으로 흘러 자기 자신의 영혼을 주시하고 과거에서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경향을 갖게 되자 동유럽의 유대인들도 내향적으로 흘러 지성의 등을 자신의 과거에 비춰 보고 거기에서 미래를 내다보려고 했다. 서유럽의 유대인은 서구화된 문명을 산출하고 동유럽의 유대인은 유대인 문화를 산출했다. 87

2.

[ ] 보고: 주인공 원숭이는 인간 사회에도 원숭이 사회에도 완벽하게 소속되지 않는 제3자로서 혹은 혼종적 존재로서 특히 자신이 동화하고자 하는 인간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105

[ ] [동물과 인간에 대하여]에서 하겐벡은 동물의 영혼에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야생동물을 폭력적으로 길들이지 않아도 조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야생에서 포획한 동물들을 목적에 더 합당하게 그리고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면 유럽으로 데리고 올 때에나 나중에 유럽의 동물원이나 서커스에서 훈련시킬 때 더 수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9

[ ] 우리에게 동물이 인간보다 더 가깝지요. 그것은 바로 창살입니다. 동물과의 유사성이 인간과의 유사성보다 쉽지요...모두들 자기가 짊어지고 가는 창살 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동물에 관해서 그렇게 많이 쓰는 겁니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지요. 그러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삶이란 인간의 삶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려고 하지 않아요. 인간의 삶은 고달프고 그래서 사람들은 적어도 그것을 환상 속에서 털어 버리려고 하지요. 115

[ ] 카프카에게 예술가들은 대체로 아름다운 가상을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몸 전체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때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던져야 하는 절실한 기예를 구사하기 때문이다.129

3.

[ ] 변신: 잠자는 갑충으로서 방바닥뿐 아니라 벽과 천장에까지 기어다니고 더 나아가 천장에서 일부러 떨어져 보기도 한다. 잠자는 자신의 새로운 몸에 익숙해지면서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고 누이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소파 밑에 드러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한편으로는 기생동물로서의 안락하고 나태한 생활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탄자에 몸을 비벼 대거나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끈적끈적한 흔적을 남기는 갑충의 모습은 잉크로 써서 글을 남기는 작가를 상기시키면서도 자신의 온몸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85

[ ] 인간 언어의 습득과 상실은 진화와 퇴화의 분기점이자 동물 세계와의 경계를 기록한다. 한편으로는 잠자에게 언어의 상실은 인간 세계와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이제까지 세계와의 교류에 있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일상화되고 자동화된 매체로서 작동했던 언어를 버림으로써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외부 세상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신의 정신과 몸을 느끼고 관찰하게 된 것이다. 몸은 이제 내면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더욱 중요해지는데 더 이상 인간의 이성적 언어가 아닌 새로운 동물의 몸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186

[ ] 생명의 예술: 갑충인 잠자는 글을 쓰거나 사색을 하는 작가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것도 자신의 체액으로 원시적인 흔적 남기기로 쓰기 행위를 한다...요제피네 역시 주는 성악가이지만 아름다운 가곡을 부르른 것이 아니라 휘파람을 불 뿐이고, 단식예술가에서 마찬가지로 어떤 창조적인 성과나 업적을 보여주는 예술이 아닌, 부정적 행위를 하지 않기, 즉 자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굶기, 먹지 않기일 뿐이다...이는 아름다운 예술이나 창조적인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서커스의 기예, 기술에 가깝다....카프카가 묘사라는 몸의 예술은 당대에 자신의 몸을 사용해 과격하게 표현했던 예술 분파 삶의 예술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편으로 목숨을 걸고 죽음에 이르도록 극도로 밀고 나가는 절박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생명의 예술‘이라 볼 수 있다. 188-189

[ ] 잠자는 누이의 음악에 몸을 움직이게 되는데 내적 변신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때 음악은 카프카에게 예술의 개념이 그러하듯 문화적이고 고양된 의미라기보다는 음성적 질료다.....이런 ....자신이 열망하던 미지의 어떤 양식에 이르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라고 그는 쓰게 된다....단식 예술가에서 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단식하는가라는 물음에 그 이유로 ˝왜냐하면 저는 입맛에 맞는 음식(양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찾아냈다면 저는 정말 결코 세인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을 테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다른 사람처럼 배불리 먹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단식 에술가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양식에 이르는 길을 잠자는 발견한 것이다. 양식의 문제는 [어느 개의 탐구]에서도 다시 이루어진다. 우리의 양식이 대지에서 온다면 대지는 어디에서 양식을 얻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195

[ ] 잠자 역시 다른 단편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해 갑충으로서 ˝말라서 납작하게˝ 죽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죽는 인물들은 슬픔이나 비탄, 고통에 빠져 죽지 않는다. 주변 세계도 죽는 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애도도 표시를 하지 않는다. 주변 세계도 죽는 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애도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짐승 같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내적으로는 자신과의 일치 속에서 평온하게 죽는데 예를 들어 단식 예술가는 계속 단식을 하겠다는 굳은 확신에서 행복감에 취해 죽고, 선고에서 게오르크는 ˝부모님, 항상 저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외치고 아버지의 선고대로 물에 빠져 죽는다. 잠자도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해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 보고˝ 자신의 평화로운 생각에 잠겨 죽어 간다. 198 이러한 죽음은 한편으로 법의 심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다른 한편은 종교적 재판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이들의 죽음은 동물에게나 사용되는 뒈지다라는 폄어로 표현된다. 보고에서도 원숭이의 동물로서의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뒈진˝ 원숭이라 부르고 있다. 206

볕뉘

0. 마저 읽다. 유대인으로 이력과 유럽 서부유대인과 동부유대인의 삶, 역사들. 다른 단편들과 이어서 설명한다. 일정부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1. 입양된 동양인이 자신의 몸으로 정체를 서구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여성이, 장애인, 노인, 환자가 모든 사회적 약자는 이런 이중, 삼중, 사중의 정체에 시달리게 된다. 정상남자 백인의 유럽인으로 정체와 다른 모든 것은 시달린다. 어느 곳이나 삶의 울타리는 유사하다.

2. 창살에 벗어나는 길. 삶에 대한 질문. 어쩌면 이 삼중의 복선들에서 슬며시 답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삶만 묻고 삶만 배우기 시작할 것. 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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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 1 ] 저는 어떤 구간들에서는 근본적으로는 혼자서 달렸는데, 그것은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저와 동행했던 그 모든 것이 장애물을 뛰어넘도록 하기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저의 근본이나 젊은 시절의 추억에 매달리고자 했다면, 이러한 성과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자신에게 부과한 최고의 계명은 바로 모든 자기 고집을 단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43

[ 2 ] 제가 처음으로 배운 것은 악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악수란 것은 솔직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144

[ 2.1 ]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바지를 벗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다시 말해 흉터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습니다. 정말 진실이 문제가 될 때는 고결한 심성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세련된 예의범절이라도 내던지는 법입니다. 147

[ 3 ] 제게는 출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출구를 하나 마련해야 했습니다 출구 없이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저는 이제 원숭이로 머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분명하고 멋진 생각을 하나 해냈는데, 그 생각은 어쨌든 저의 배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원숭이는 배로 생각을 하는 동물이니까요. 149

[ ] 저는 일부러 자유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자유라는 위대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마 제가 원숭이 시절에나 알았던 감정일 것이며....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자유를 갈망하지 않습니다...곡예사가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이빨로 물면서 공중그네를 타는 ‘자기를 통제하는 움직임, 저런 것도 인간의 자유구나.‘ 그 자유라는 것은 성스러운 자연을 조롱하는 행위일 뿐인거죠. 150 제가 원한 건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151

[ ] 오늘날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저에게 엄청난 마음의 안정이 없었더라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은 모두 당시 배 안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나에게 찾아든 마음의 안정 덕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내가 찾았던 그 안정감은 당시 배에 탔던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151

[ 4 ] 저는 이런저런 계산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차분하게 관찰을 했습니다. .....153 제가 만약 자유의 신봉자라면, 흐리멍덩한 눈길 속에 보이는 출구보다는 차라리 망망대해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기 오래전부터 그들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쌓인 관찰들이 저를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넣었던 것입니다. 154

[ 5 ]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이 저를 유혹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흉내를 낸 것은 출구를 찾기 위해서였지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사람의 목소리는 금방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가 몇달이 지나서야 다시 가능해졌습니다. 독주 병에 대한 거부감은 더 심해졌지만 제게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단번에 확고하게 정해졌습니다. 158 그리고 저는 배웠습니다. 아, 사람이 꼭 배워야 한다면 배우게 됩니다.....저는 많은 선생들을 썼습니다. 심지어 몇몇 선생들을 한꺼번에 쓰기도 했습니다. ....미래가 찬란히 빛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직접 선생들을 받아들여 나란히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방에 앉게하고 계속 뛰어다니면서 그들 모두에게 동시에 배웠습니다....지금까지 지구상의 유례가 없었던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저는 유럽인의 평균 교양에 도달했습니다.....그것은 저를 우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며 이 특별한 출구, 인간이 되는 이러한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159, 160

[ ] 저는 어떤 인간의 판단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저의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며, 다만 보고하는 것뿐입니다....저는 다만 보고를 드릴 뿐입니다. 161

볕뉘

0. 재독하다가 밑줄을 그어보고 옮긴다. 다른 해석이 없을까 하다가 최은영교수의 [카프카, 유대인, 몸]이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대한 비평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희진의 글에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 까뮈를 제국주의자라 단정하고 쓴 그 글이 지금 느끼는 것과 달라 좀더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1. 까뮈는 개인으로서 자유라는 것이 실체가 없으며 별반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이 보고서 역시 자기를 통제하는 움직임이 자유이고, 그 자유를 선택했을 때 한계를 서술하고 있다.

2. 그를 바꾸기 위해 해낸 것들을 옮겨본다. 자기고집을 단념하다 1), 처음 배운 것 악수이며 그것은 솔직함을 바탕으로 하고, 진실이 문제가 될 때는 더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바지라도 벗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2) 출구없이 살 수 없어 출구를 생각했는데 그것은 머리로 배운 것이 아니라 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3) 그리고 그 배움이라는 것은 관찰이고 그것이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4) 물론 제일 힘겹게 배운 것은 독주가를 선생으로 모셔 배운 것이고....배워야 한다면 배우게 된다고 하고 지구상 유례없는 평균 교양에 도달했고, 이것이 우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5) 적고 있다.

3. 조금 다르게 읽어볼 수는 없을까. 텍스트라는 것은 늘 번역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변신이 인간이 벌레가 되는 과정이라면, 이는 동물이 인간이 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벌레이자 동물은 아닐까. 그것이 강요된 동물벌레라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그것을 허물어야 될까? 신은 죽었고 인간은 신을 죽였다. 인간은 신이 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신이 되는 길은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이 되어야할 이유는 전혀없지만......까뮈와 카프카를 다시 섞어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저 멀리 등대 불빛은 연신 짙은 안개에도 껌벅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대지기는 없어도.....


[카프카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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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 ] 그녀는 음악을 사랑하고, 도 그것을 전달할 줄 안다. 그녀는 그런 일을 하는 유일한 자이다. 그녀가 죽게 되면, 음악은 -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 우리의 삶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302

[ ] 호두까는 일: 그녀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뿐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304 요제피네는 단순히 경탄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칭찬받기를 원하고 있다. 감탄자체는 그녀에게 전혀 중요치 않다.306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이 그녀의 노래인가, 아니면 오히려 그녀의 연약한 목소리를 둘러싸고 있는 장중한 고요함인가? 306

[ ] 그녀의 의견에 의하면 그녀는 귀머거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열광과 갈채는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가 말하는 진정한 이해를 단념할 줄 알게 디었다....그러자 모든 방해들이 그녀에게는 매우 중요해졌다....작은 싸움이나 싸우지 않더라도 단지 대적 상태를 통해 정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군중을 일깨우고 그들에게 이해력은 아니더라도 무언지 가슴 두근거리는 존경심을 갖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7

[ ] 요제피네는 특히 격앙된 시기에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럴 때는 여러 종류의 걱정과 고뇌가 우리를 여러 길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무리 해도 요제피네가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모일 수가 없다. 이럴 때면 그녀는 얼마 동안 별로 많지 않은 청중 앞에서 굉장한 자세를 취하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그렇게 되면 그녀는 물론 화를 낸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전혀 처녀답지 않게 저주를 하고, 물어뜯기조차 한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태도도 그녀의 명성에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지나치게 큰 요구를 조금 제한하기보다는, 군중들은 자신들이 그 요구에 맞추려고 애를 쓴다. 308

[ ] 그녀의 노래가 불행을 쫓아버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그 소식들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어 바닥으로 끌어내릴 때라도, 그녀는 우뚝 일어서서 목을 곧게 펴고, 마치 천둥에 직면해 있는 목동처럼 자신이 이끄는 무리들을 둘러보려고 애쓴다. 311

[ ] 요제피네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목소리의 이러한 무, 업적에 있어서도 이러한 무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며 우리에게 이르는 길을 마련하고 있다. 313 그것은 마치 우리가 전쟁을 앞두고 아직 평화의 잔을 함께 빨리 마시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별로 성악 공연 같지가 않고, 차라리 국민 집회라고 할 수 있다. 그 앞에서는 작은 휘파람 소리까지도 완전히 잠잠해지는 그런 집회, 그 시간은 우리들의 잡담으로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 진지한 것이다. 312

[ ] 우리는 우리 새끼들에게 진정한 어린 시절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우리 종족에게는 어떤 특정한 불멸의, 결코 근절될 수 없는 천진성이 배어 있다. 315 어린 청소년들만이 가수로서의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다...요제피네의 그 휘파람 소리가 마치 진주 구르는 소리 같다고 말하지만, 우리들은 찌르는 듯한 소리라고 말한다....그 안에는 무언가 가엾은 짧은 어린 시절이 약간 들어 있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행복이 조금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쁜 현재의 삶도 약간 들어 있는데, 말하자면 삶의 명랑성, 작고 이해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결코 말살되지 않을 삶의 명랑성도 조금 들어 있는 것이다. 317

[ ] 우리는 요제피네가 거의 법의 범위 밖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전체를 위협한다 해도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모든 것이 용서되리라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318 우리 종족은 그녀가 주장하듯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녀의 예술에 놀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으며, 우리 자신을 그녀의 예술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느끼며, 우리 자신을 그녀의 예술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느끼며, 요제피네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고통을 기껏해야 절망적인 성과로 보충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그녀의 예술이 우리들의 이해 능력 밖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간성과 그녀의 바람 또한 우리들의 명령권 밖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319

[ ] 그녀는 스스로 노래로부터 떠나갔고, 대중들 사이에서 얻었던 권력을 스스로 파괴했다. 그녀는 숨어버렸고 노래하지 않는다. 326 그녀는 그녀의 노래가 기대되었던 시기에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동료뿐만 아니라 많은 이가 그녀를 찾는 일을 맡았지만 허사였다. 왜냐하면 요제피네는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고, 다시는 그런 부탁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우리를 완전히 떠나버린 것이다. 326

볕뉘

0. 까뮈의 카프카에 대한 문예비평에 이끌려 다시 읽어나간다.

1.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변신, 소송 앞부분, 그리고 일주일이 더 되어서 도착한 변신 단편전집 가운데 이 부분을 읽었다.

2. 유럽인 평균 교양을 갖는 원숭이는 단지 보고만 하고 슬며시 잠적한다. 청소년기가 없이 곧바로 어른이 되는 쥐 종족의 요제피나 역시 사라진다. 변신과 소송 그레고리를 죽이고, 카 역시 죽는다고 한다.

3. 세상에 침윤된 존재는, 존재가 변해도 당장의 날 것에 목메여 있다. 쥐이거나 원숭이이거나 외판원이거나 당장의 먹고살 거리에 가둬져있다. 동물원에 들어가지 싫어, 인간보다 더 똑똑해진 원숭이가 보기엔 인간들의 세상 역시 탈출을 할 수 없다. 요제피나가 보기에 쥐들의 세상은 번식에만 매달려 정작 필요한 것에 성숙하지 못한다. 벌레가 된 외판원 역시 정상-평균 이하의 삶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들 역시 삶이란 바위가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이 반복된 묘사를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4. 어쩌면 삶이 꺼지는 이 지점. 이 함몰의 순간이 바로 멈추어서야 할 곳인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싱크 홀들은 많이 생기는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인지. 왜 삶의 함몰은 반복되고, 복습되는지. 정녕 제도가 아니라, 나의 젊음, 나의 늙음이 아니라 일제히 그 커다란 구멍, 더 커지는 구멍 앞에 소노녀남, 환자병자장애자다문화난민. 그 앞에 서서 삶이 폭포처럼 추락하고 있는 장면을 목도해야.......아니....그럴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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