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인연이 되어 지난 5월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치아상태를 보면 대충 대여섯살 정도가 된 암컷 고양이는 작년부터 우리 주변을 떠돌다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나타나 잠시 우리가 거리를 두고 다녔었는데 2월에 다시 마주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주인'이란 것들이 기실 '주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녀석을 버리고 이사를 가버린 것을 알게 되어 우리집에서 살게 되었다. 개는 여럿과 함께 오래 지나봤지만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처음이라서 매우 익숙치 않는 것들이 많은데 특히 밤부터 새벽 사이에 자주 놀자고 조르는 것이 매우 힘들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녀석이 오고나서는 제대로 잠을 자는 것이 어려운 밤이 많을 정도로. 그러다보니 회사는 어찌어찌해서 제때 출근을 하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것이 많이 어려워졌다. 2025년에는 개선하고 싶은 몇 가지 일상의 모습들 중 하나가 다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gym에 가는 것, 그리고 달리는 것이니까 challenge가 예상된다. 어쨌든 생명을 거두어들였으니 갈 때까지는 함께 잘 지내야 하므로 내가 더 노력을 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다. 말은 또 어찌나 많고 손이 닿기만 하면 그르렁거리니 개와 함께 살 때보다 더 많은 attention을 원하는 녀석을 보면 고양이는 시크하다는 말은 누굴 두고 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원래 하려던 새벽의 운동을 miss하고 월요일의 바쁜 일정으로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니 가뜩이나 회복이 더딘 장년의 몸이 push up으로 하려던 chest와 triceps루틴의 warming up을 거부한다. 이번 주에는 오후에 참석할 세미나와 강연행사가 두 건이나 있어서 더욱 급한 마음에 정해둔 일을 먼저 하고 운동을 하자고 핑계를 대고 게으름을 피우고 나니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되어버렸다.
그간의 나태함을 날려버리고자 시간을 잘 나누고 segment마다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을 다시 연습하고 있다. 자영업자이면서 혼자 일하는 주제에 약간의 outsourcing을 통해 조금은 manager로서의 역할에 취하다 보니 살짝 떨어진 듯한 실무능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오늘 수행하지 못한 운동은 내일로 미뤄지고 내일 하려던 건 그 다음으로 미뤄졌으니 아주 조금은 게으름보다 나이를 탓하고 싶긴 하다. 예전처럼 수행능력이 늘 좋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몸이 회복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새벽에 운동을 했더라면 이렇게 건너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니 결국 어떤 식으로 말해도 내 게으름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원래 기획했던 셜록 홈즈의 크툴루 casebook 시리즈를 다 읽고 나중에 나온 외전형태의 네 번째 이야기를 조금씩 읽고 있는 중. 알려진 셜록 홈즈의 모험담 이면의 true story가 실상은 이계의 존재와 이를 이용하려는 모리어티와 그가 현신한 악당들과 싸우는 과정이었음을 전제로 한 노작 혹은 오마쥬. 여러 차례 말한 바 워낙 홈즈시리즈를 좋아하고 그들이 함께 머문 221B Baker Street하숙집의 따뜻한 이층공간, 그들의 시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직도 읽을 노작들이 많다는 점이 너무 좋다. 기실 이렇게 작품들을 찾아가다가 만난 것이 엘저넌 블랙우드의 오컬트 탐정 존 사일런스의 이야기니까 책에서 책으로 다니면서 맺는 인연이란 건 정말 즐겁다고 말할 수 밖에.
정수일선생의 책들을 읽는 시작이 된 책인데 예전에 읽은 것을 싹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책을 읽는 것처럼 읽고나서 책 뒤에 꽂아놓은 책갈피피를 찾고나서야 예전에 이미 완독했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니 정말이지 이젠 한번 읽는 정도로는 책의 내용은 커녕 읽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 종으로 횡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의 문명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이야기하는 선생의 책은 계속 구해놓고 있는데 정작 읽는 건 이렇게 첫 번째의 책만 두 번 읽고 말았으니...
가지 못한 곳이 너무도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이런 책을 읽으면 지금이라도 짐을 챙겨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중앙아시아는 난이도가 높아서 아마 가보는 것이 쉽지도 않을 것이고 순서에서도 많이 밀리겠지만 서구권의 문화에 익숙한 내 눈과 머리에 다른 방향에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온 문화를 부어주고 싶다.
잔잔하게 읽은 에세이. 서점을 차린 것도 대단하지만 수익이 발생하게 키워낸 건 진짜 대단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빛이랄까 향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책을 쓰는 것을 수단으로 삼아 되는 대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많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은 귀한 정신적 동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저 사서 읽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나누지 못하는 힘듦까지 순탄하지 못한 내 독서인생이지만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에서 따뜻한 힘을 받는 날도 있다. 덕분에 책을 몇 권 다 산 건 안비밀...
실크로드를 주파하고 난 후 10년이 넘어 70대 중반이 된 저자가 파트너와 함께 리옹에서 이스탄불까지 걸어간 이야기. 고생이 막심하겠지만 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정말이지 새벽에 자신을 깨워 일으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밤을 꼴딱 새는 한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