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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ㅣ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두 곳의 온천지대에서 황화수소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좀처럼 발생하기 어려운 불행한 우연이자 자연재해로 여겨졌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 두 사고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애초 사건성이 없는 자연재해라고 단정했지만 의심스런 정황들을 연이어 발견하면서 사건에 휘말리는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 두 사고 중 하나는 사망자의 아내가 재산을 노리고 벌인 살인사건이라고 확신하는 관할서 형사 나카오카, 그리고 두 사고현장에 나타나 한 젊은 남자의 행적을 조사하는 18살 소녀 우하라 마도카가 그들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꽤 읽은 편이지만 ‘라플라스 시리즈’는 그동안 관심목록에 올린 적조차 없었는데, 그건 “히가시노의 이과 미스터리는 싫다!”라는, 아주 단순하고 유치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레오 시리즈’가 나름 소화 가능한 재미있는 이과 미스터리였던 반면, ‘패러독스 13’은 ‘히가시노의 이과 미스터리’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준 작품입니다.
‘라플라스 시리즈’를 읽기로 결심한 계기는 이번에 새로 출간된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마녀와의 7일’ 서평단에 뽑혔기 때문인데, 새로 접한 시리즈는 무조건 첫 작품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 때문에 이과 미스터리에 대한 두려움(?)을 접고 ‘라플라스의 마녀’부터 찾아 읽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는 “모든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라는 가설을 세웠고, 그 ‘존재’는 후일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근대 물리학에서 가상한 일종의 ‘초월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한 18살 소녀 우하라 마도카는 바로 이 초월적 존재의 능력을 갖춘 ‘라플라스의 마녀’인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 현상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철저한 보호대상이자 연구대상인 마도카는 아버지가 뇌신경외과 박사로 재직 중인 가이메이 대학 수리학 연구소에 머물던 중 한 온천지대에서 벌어진 황화수소 중독사고를 알게 된 뒤 그곳을 탈출하여 한 젊은 남자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지구화학 전문가인 아오에 교수는 첫 사고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소녀 마도카를 두 번째 사고현장에서도 목격하자 그녀는 물론 그녀가 찾는 젊은 남자가 두 건의 사고에 연루돼있음을 확신합니다. 아오에 교수는 두 사고 모두 자연재해가 분명하다며 전문가로서 의견을 피력했지만, 사건성을 의심하는 관할서 형사 나카오카가 찾아오고 마도카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대학 관계자와 경호원까지 등장하자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사건의 한복판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물리학을 통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SF 미스터리지만, 그 외에도 다채로운 서사들이 한데 녹아든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뇌 의학을 다룬 메디컬 스릴러, 한 가족이 몰살된 비극적인 사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집요한 복수극, 진범의 정체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등 히가시노 게이고가 즐겨 구사했던 장르들이 먹음직스런 비빔밥처럼 잘 섞여있다는 뜻입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스포일러가 될 부분들이 워낙 많아서 자세한 줄거리를 언급할 수는 없지만, SF 중심의 이과 미스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타고난 문과생’조차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란 것만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마도카를 비롯하여 주요 조연들과 단역들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니고 있고, 사건 역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긴장감과 속도감을 잃지 않아 단번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마도카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도 있겠지만, 나름 친절하고 생생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명 덕분에 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프리퀄이자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마력의 태동’에 대한 궁금증에 빠져들었는데, ‘마녀와의 7일’ 서평 마감일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곧이어 두 편을 연달아 읽을 생각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외면했던 히가시노의 이과 미스터리에도 조금은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물론 소재만 보고 겁부터 먹게 될 작품도 분명 있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