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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평점 :
16년 전 자신의 삶을 붕괴시킨 비극적인 ‘시라노 작전’ 이후 은퇴한 전직 CIA 요원 매기 버드는 60세가 된 현재 메인주의 소도시 퓨리티에서 블루베리와 닭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상대는 독서모임 ‘마티니 클럽’의 멤버들이자 이젠 60~70대가 된 전직 CIA 요원들입니다. 어느 날 낯선 방문객이 찾아오고, 다음날엔 시신 한 구가 마당에서 발견되면서 매기의 은둔자로서의 삶은 끝장납니다. 무엇보다 그 낯선 방문객이 16년 전의 ‘시라노 작전’을 언급한 탓에 매기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누군가 그 작전에 참여했던 요원들을 향해 복수에 나선 것이 분명했고, 은거지가 들킨 이상 언제라도 살해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저의 최애 시리즈 중 하나인 테스 게리첸의 ‘리졸리&아일스 시리즈’는 8편인 ‘아이스 콜드’(미국 2010년, 한국 2013년)를 마지막으로 더는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13편(‘Listen to Me’, 2022년)까지 출간돼서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정말 오랜만에 ‘스파이 코스트’를 통해 테스 게리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돼서 더없이 반가웠는데 뜻밖에도 스파이 스릴러라는 장르라서 기대감과 호기심이 더욱 끓어올랐습니다.
이야기는 매기가 30대 중반이던 무렵부터 ‘시라노 작전’으로 은퇴한 40대 중반까지를 그린 과거와 은둔자로서의 삶이 끝장난 뒤 다시금 스파이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게 된 현재 등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24년 전, 매기는 방콕에서 운명처럼 만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불운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리고 그 불운은 ‘시라노 작전’이라는, 성공하긴 했지만 매기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마지막 임무로 그녀를 이끌었고, 매기는 그 작전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한적한 소도시에서 평범한 60세 여성으로 살아가던 매기를 뒤흔든 건 ‘시라노 작전’을 언급하며 나타난 낯선 방문객입니다. 기밀로 봉인됐던 작전 내용이 누군가에게 해킹 당했다는 말에 매기는 16년 동안 두려워했던 일이 현실이 됐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은퇴한 CIA 요원들의 모임인 ‘마티니 클럽’은 매기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은퇴자로 조용히 살아가는 스파이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묻어두었던 과거가 되살아나 괴롭히기 시작하고, 다시는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옛 기술들을 불러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 은퇴한 스파이의 이야기를.” (저자노트 中)
전 세계를 누비며 숱한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무력과 지략으로 임무를 완수하던 스파이는 과연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아는 게 너무 많거나 사방팔방에 적을 만들어놓은 탓에 평생 주위를 경계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뜻밖에도 평범한 은퇴자들과 마찬가지로 안락한 노년의 삶을 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현역 시절에 완수했던 임무 때문에 누군가의 복수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도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얻은 탓에 오랜 시간 잊고 살아왔던 그 끔찍한 임무를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면 그 스파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60세라는, 노인이라 할 순 없지만 스파이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나이의 매기는 한편으론 ‘마티니 클럽’의 동료들에게 ‘시라노 작전’의 전말을 알려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직접 해결할 방안을 모색합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쓰지 않았지만 마치 본능처럼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있던 스파이로서의 옛 기술들을 소환해선 16년 전의 고통스러운 상황과 다시 한 번 마주치기로 결심합니다.
매기뿐 아니라 ‘마티니 클럽’의 멤버들도 인맥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회의를 통해 단서를 분석하며 오랜만에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합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십 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은퇴한 스파이들을 더욱 빛나게 만듭니다. 그들은 단지 ‘안락 은퇴 스파이’에 머물지 않고 매기와 함께 실전에 나서기도 합니다. 물론 화려한 액션이나 사선을 넘나드는 총격전 같은 건 없지만 ‘마티니 클럽’의 활약은 어지간한 스파이물보다 흥미진진합니다.
60~70대가 된 은퇴 스파이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다소 늘어지거나 밋밋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입체적이고도 긴장감 넘치는 서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를 품은 ‘스파이 코스트’는 그 어떤 기대에도 부응할 만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미국에서는 2025년에 시리즈 2편인 ‘The Summer Guests’가 출간될 예정이라는데, 이제 만 72세가 될 테스 게리첸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마티니 클럽 시리즈’를 이어가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사족으로... 편집과 번역의 아쉬움은 이 작품의 옥의 티였습니다. 오타와 띄어쓰기 오류가 적잖았고, 종종 눈에 띈 직역 또는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책읽기를 방해하곤 했습니다. 후속작도 출간할 계획이라면 좀더 성의 있는 편집과 번역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