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김세화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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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탐정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어딘가 복고적이면서도 눈길을 끄네요. ‘실종된지 10년 만에 유골로 돌아온 아이들’의 비극이 어떤 사건,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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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비디오, 사이코 게임 킴스톤 2
안젤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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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20년에 출간된 너를 죽일 수밖에 없었어에 이은 킴 스톤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34살 킴 스톤은 연상의 띠 동갑 남자까지 제치고 이른 승진을 한 능력자이자 거침없는 언행과 뛰어난 직감에다 자신의 대로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매력적인 돌직구 형사입니다. 형사로서는 만점 캐릭터지만 킴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교술, 휘발된 감정과 공감능력, 상대는 안중에도 없는 거친 태도가 그것인데, 말하자면 화이트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할까요?

 

하지만 킴의 이런 성격은 6살에 겪은 비극적인 가족사 때문입니다. 조현병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쌍둥이 동생을 잃은 킴은 여러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동안 몸과 마음을 물샐 틈 없는 갑옷으로 걸어 잠갔고 그 빗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습니다. 덕분에 주위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년이란 비아냥도 듣지만, 킴의 동료들과 직속상관은 그녀의 진심과 능력을 잘 알기에 성난 고슴도치 같은 그녀를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이 작품에서 킴은 두 개의 사건과 마주합니다. 하나는 아버지가 딸에게 가한 끔찍한 성적 학대 사건이고 또 하나는 강간피해자가 복역을 마친 가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입니다. 두 사건 모두 큰 어려움 없이 초반에 해결됩니다. 하지만 킴의 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성적 학대 사건의 경우 현장에서 뭔가를 놓친 것만 같았고, 강간범 살인사건의 경우 범행 직전 범인을 진료했던 정신과 의사에게서 미묘한 의심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독설이 담긴 영국식 유머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팀원들과의 팀플레이가 돋보였던 전작에 비해 상처, 비디오, 사이코 게임은 킴 스톤의 원맨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물론 성적 학대 사건은 팀원들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수행하지만, 메인 사건인 vs 정신과 의사의 대결은 다른 팀원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팽팽한 ‘1:1 대결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킴이 화이트 소시오패스라면,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악마적 능력을 지닌 정신과 의사 알렉산드라 손(이하 알렉스)은 진정한 소시오패스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에선 그녀를 가스라이팅을 통해 완전범죄를 꿈꾸는 인물로 표현했는데, 본문에 따르면 조종하기 쉽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을 가진 사람들혹은 증오심과 복수심에 휩싸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조작 실험을 벌여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도한 뒤 그 과정과 결과를 관찰하며 쾌감을 얻는 기괴한 캐릭터입니다. 말하자면 본인 스스로 소시오패스면서 불안한 심리에 빠진 환자를 조종하여 소시오패스로 거듭나게 만들려는 악마라는 뜻입니다.

 

사실 킴으로선 알렉스의 범죄를 입증하기가 난감합니다.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심증 하나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런 상황에서도 킴이 알렉스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알렉스가 킴의 소시오패스적 캐릭터에 집착하면서 그녀 주위를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소시오패스끼리 진정한 고수를 알아보고 한 판 승부를 노린다고 할까요? 이 작품의 원제가 ‘Evil Games’인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킴의 캐릭터와 활약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전작에 비하면 살짝 느슨하고 덜 액티브했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타인의 심리를 조작하는 정신과 의사이고 킴의 어릴 적 트라우마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다 보니 걸 크러쉬 형사의 화끈한 스릴러보다는 다소 미묘한 분위기의 사이코스릴러에 가까웠는데, 그런 탓에 독설이 깃든 영국식 유머와 티키타카 스타일의 팀플레이가 눈에 덜 띈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더불어 전작에서도 느꼈던 막판의 불친절함과 함께 다소 비약에 가까운 킴의 추리도 별 1개를 빼게 만든 주된 이유입니다. 전작의 서평에서 딱 떨어지고 확실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에서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살짝 두루뭉술하거나 모호하게 넘어가는 경우들이 있다.”라고 쓴 적 있는데, 아무래도 이 부분은 작가의 고유한 성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킴 스톤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가 유년기의 트라우마이기 때문에 시리즈 어느 작품에서든 한번쯤은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것도 소시오패스 정신과 의사와의 대결을 통해 그려진 건 다소 의외이면서도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다만, 다음 작품에선 킴 스톤의 돌직구 매력과 함께 좌충우돌 팀플레이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의 원제 ‘Evil Games’와 번역제목 상처, 비디오, 사이코 게임사이의 거리감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원제 그대로 또는 직역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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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선택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3 미치 랩 시리즈 2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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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국장 스탠스필드가 시한부 진단을 받자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일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꼭두각시가 될 인물을 후임자로 앉힐 음모를 꾸민다. CIA 대테러센터 본부장 아이린 케네디는 이들의 음모에 맞서면서 대통령의 명령으로 독일에 급파한 미치 랩의 임무를 지휘한다.

중동 테러리스트와 밀거래중인 독일 기업가를 암살하기 위해 침투한 랩은 왠지 모를 위화감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연인 애너와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임무라는 희망에 차있다. 하지만 작전 도중 랩은 아이린 케네디가 투입한 동료 첩보원에게 배신당하고 적진에 홀로 넘겨지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권력의 이동에 이은 미치 랩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CIA 대테러센터 내 비밀조직인 오리온 팀의 일원이지만 공식적으로는 ‘CIA 사람이 아닌 미치 랩은 오로지 스탠스필드 국장과 아이린 케네디 본부장, 그리고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들에 대한 세 번째 선택, 즉 비밀첩보와 암살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최고의 킬러이기도 합니다.

 

전작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한 백악관을 구했던 랩은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지를 얻게 됐고, 덕분에 극소수만이 아는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덫에 빠지고 마는데, 이후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랩을 제거하려던 자들의 정체와 목적이 무엇이며 그들이 어떻게 독일에서의 비밀임무에 대해 알게 됐는가를 추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번 임무를 마지막으로 CIA를 떠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랩의 간절한 소망이 산산조각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홀로 고립된 랩의 가장 큰 딜레마는 독일에서의 임무를 아는 자들이 그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뿐이란 점입니다. 대통령, 스탠스필드 국장, 아이린 케네디 본부장이 그들인데, 그들 가운데 자신을 살해하려던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랩을 지독한 혼란에 빠뜨립니다. 특히 이번 임무를 끝으로 CIA를 떠나겠다는 의중을 밝혔던 터라 너무 많은 비밀을 아는 자신이 제거대상으로 선택됐을 수 있다는 추정은 랩에겐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랩의 추적은 눈앞에서 번번이 사라지는 단서와 증인들 때문에 난관에 빠집니다. 특히 애초 범인의 목적이 단순히 자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모종의 음모라는 걸 서서히 깨달으면서 랩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당혹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범인의 정체와 목적이 독자에게 비교적 초반에 공개되기 때문에 특별한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랩을 제거하고 CIA를 장악한 뒤 더 큰 야망을 이루려는 범인의 정치적 음모가 정교하고 치명적인 계획에 의해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누가 범인?” 이상의 팽팽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전작에서 인연을 맺은 여기자 애너 릴리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CIA를 떠나려는 랩의 소망이 이런저런 이유로 발목을 잡히는 가운데, 누군가는 랩의 정체를 파헤치려 하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또 누군가는 그의 연인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사방에서 협공을 당하게 된 랩으로서는 평소 그답지 않게 감정적인 동요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런 탓에 어느 선까지 올라가든 마지막 한 놈까지 모두 처치해버릴 겁니다.”라고 대놓고 선언할 정도로 폭주에 폭주를 거듭하게 됩니다.

 

미드 ‘24’의 속도감과 영화 본 시리즈의 묵직함이 결합한 파워 액션 서스펜스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대로 미치 랩의 활약은 좀처럼 눈을 떼기 힘든 긴장감과 속도감을 발산합니다. 그야말로 미치 랩은 ‘24’의 주인공 잭 바우어와 본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 본을 황금비율로 합쳐놓은 캐릭터라고 할까요?

3의 선택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꽤 큰 떡밥을 남겨놓은 채 마무리가 돼서 이어지는 시리즈 3권력의 분립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는데, 과연 평범한 삶을 꿈꾸던 미치 랩이 워싱턴의 가공할 정치적 음모 속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사뭇 궁금해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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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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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한국에 출간된 게 2007년인데, 그해 혹은 그 다음해쯤 읽은 기억이 있으니 10년도 훌쩍 넘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에 읽은 탓에 수록된 단편들의 줄거리도, 여운이나 느낌도 그저 가물가물한 상태였는데, 얼마 전 불쑥 일본의 온천 생각이 떠올라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첫사랑 온천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온천은 료칸이라는 숙박시설과 짝을 이루게 되면 좀더 고즈넉하거나 정갈한 분위기를 발산하게 되지만, 동시에 은밀하고 에로틱하고 비밀스러운 이미지를 품게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딱 한 번 일본의 관광지인 유후인의 료칸에서 노천탕이 딸린 방에 며칠 머물렀던 경험 덕분에 그 양면적인 분위기를 수박겉핥기식으로나마 맛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요시다 슈이치의 첫사랑 온천은 제겐 제목만으로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다섯 커플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다섯 곳의 온천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단편집인데 온천과 커플이라는 소재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의 테마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말랑말랑하고 훈훈한 엔딩으로 포장된 해피 로맨스만 그려지진 않습니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욕망에 휩싸인 17살 남자의 첫사랑(‘순정 온천’), 결혼을 앞둔 20대 남자가 설국(雪國) 속 온천에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소박한 만족과 기쁨(‘흰 눈 온천’), 결혼 2년차에 불륜에 빠진 남자가 겪는 미묘한 심리적 변화(‘망설임의 온천’), 그리고 행복하고 여유있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실은 자기애 혹은 이기심에 다름 아닌 행위들이었기에 결국 그로 인해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는 남자(‘첫사랑 온천’,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다섯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온천 역시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는데, 바닷가, 숲속, 설국, 계곡 등 다채로운 풍경 속에 자리한 온천들은 온몸을 풀어지게 만드는 뜨거운 온천수와 그것이 뿜어내는 김의 향연까지 더해져 사랑 때문에 희로애락을 겪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하거나 심난하게 만들곤 합니다. 인물들도, 이야기도 특별하진 않지만 온천이라는 공간의 고즈넉하면서도 에로틱한 매력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로망 가운데 하나는 눈으로 파묻힌 훗카이도 어디쯤의 료칸에서 방에 딸린 개인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책과 사케만으로 1주일쯤 보내다 오는 것입니다. 그곳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흘러갈 것만 같고, 책과 사케 역시 현실과는 전혀 다른 맛을 풍길 것 같기 때문입니다. , 사랑이든 증오든 어떤 감정을 품고 갔더라도 설국의 풍경과 뜨거운 온천수 속에서 조금은 스스로를 정리하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첫사랑 온천의 수록작들이 그런 기대와 느낌을 모두 맛보게 해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이런저런 소소한 즐거움과 망상(?)을 만끽한 건 사실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요시다 슈이치의 온천과 사랑 이야기를 한번쯤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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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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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격으로 도쿄 시내에서 두 건의 매춘부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39살 미혼인 는 두 사건의 피해자와 밀접한 관계입니다. 한 명은 어릴 적부터 괴물 같은 미모로 주위를 압도했던 친동생 유리코이고, 또 한 명은 명문 Q중고교 동창생인 가즈에입니다. 재판이 열리는 법원에서 Q중고교 동창들과 마주친 는 피해자들이 남긴 일기를 전달받곤 20년도 넘은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그리고 자신과 두 피해자를 비롯한 네 명의 여성이 어떻게 괴물로 진화됐는지를 찬찬히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벌어진 도쿄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집필됐다고 합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간부가 밤이면 거리에서 몸을 팔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꽤 충격적인 뉴스였다고 하는데, 기리노 나쓰오는 한 여성의 극단적인 변신을 야기한 동기와 과정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픽션으로 그리기 위해 10대 시절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직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 마음속에 괴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제 의도가 어느 정도는 전해진 셈입니다.”라고 밝힙니다.

 

이 작품에는 네 명의 괴물이 등장합니다. 15살에 숙부와 첫 관계를 가진 유리코는 축복인지 저주일지 모를 괴물 같은 미모와 타고난 님포마니아(색정광, 비정상적 성욕항진증)로 인해 평생 수많은 남자에게 몸을 팔아왔고, 그녀의 친언니인 동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못 생긴 추녀라는 낙인을 오로지 악의라는 방패로 막아내며 평생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고슴도치처럼 살아왔습니다. 또 물려받은 것도 타고난 것도 부족했던 가즈에는 노력으로 그 모든 걸 극복했지만 대기업 입사 후 또 다른 차별과 멸시와 마주친 뒤 자신만의 해방구를 찾기 위해 매춘부가 됐고, 전도유망한 모범생이었던 미쓰루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타인을 파멸시키는 운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괴물이 된 사연은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악연에 의해 발아되고 증식된 것들입니다. 괴물 같은 미모의 동생 유리코가 없었다면 는 악의로 똘똘 뭉친 괴물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기업 간부와 매춘부라는 이중생활을 영위했던 가즈에는 사립명문 Q중고교에서의 끔찍한 학창생활이 아니었다면 평범하지만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 됐을 인물입니다. , 1등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모범생 미쓰루와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타고난 미모를 지녔던 유리코가 자신들의 현실과 재능에 만족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적인 상황을 맞이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기승전결과는 거리가 먼 나열식 서사를 통해 이들의 악연과 괴물로의 진화과정을 지나칠 정도로 세세하고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순수하지만 동시에 사악했던 10대 시절부터 마흔을 코앞에 둔 시기에 맞이한 각자의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네 명의 일생을 지켜본 독자들에겐 그저 씁쓸함만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괴물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고 싶었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의도는 완벽하게 성공한 셈인데, 개인적으론 과도한 분량과 작위적인 캐릭터 때문에 좀처럼 이입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네 명의 주인공은 물론 단역에 가까운 조연들까지 극단적으로 일그러지고 비틀린 인물들을 지켜보는 일이 꽤 힘들었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로테스크라는 제목이 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다 보니 외모로 평가받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차별의 희생양이 되거나, 때론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머리 좋은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출판사 소개글처럼 현대 여성이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라든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내면의 괴물적인 본능이나 충동을 깊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치유하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설정 탓에 혐오감 이상의 공감은 어렵겠다는 생각인데, 어쩌면 제가 여성에 대해 너무 모르는 편협한 남자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네 명의 괴물이 현대 여성을 상징한다거나 여성들의 본능과 충동에 대한 치유를 제공한다는 건 이 작품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홍보성 멘트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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