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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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래 경제 공황과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져온 베네수엘라. 공포정치와 폭력적 독재는 물론 살인률 세계 1위를 기록한 흉흉한 정국 속에서 30대 여성 아델라이다 팔콘이 감내해야 했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그린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친 아델라이다는 정부의 비호 아래 암거래를 일삼는 보안관일당에게 아파트를 빼앗기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이웃집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가 사망한 걸 발견한 아델라이다는 그녀 앞으로 발급된 스페인 여권을 통해 신분을 훔쳐 지옥과도 같은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스페인 여자의 딸은 주인공 아델라이다가 아니라 그녀가 신분을 훔치려는 이웃의 죽은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연히 아델라이다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제목 자체가 주는 함의와 아이러니가 무척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그저 낯설기만 한 이웃, 그래서 이름보다 더 친숙한 스페인 여자의 딸이란 호칭, 그리고 그녀의 신분을 훔치는 것만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티켓이란 설정은 벼랑 끝에 선 아델라이다가 얻은 마지막 희망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지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된 아델라이다가 스릴 넘치는 액션을 펼치거나 기민한 첩보물의 주인공이 되어 베네수엘라를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도 아닙니다. 물론 공포정치가 휘두른 폭력의 민낯과 끔찍한 살상의 기록이 간간이 묘사되곤 하지만 그보다는 아수라장을 헤쳐 나온 평범한 30대 여성의 지독한 생존기에 더 가깝습니다. , 어린 시절의 아델라이다가 보낸, 가난하지만 평화로웠던 베네수엘라에서의 일상이 지금의 현실과 대비되듯 번갈아 한 챕터씩 배치되어 현재의 그녀의 처지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줍니다.

 

어머니를 땅에 묻으면서 언제 무장폭도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거나 시신의 뼈까지 탈취하는 무리들이 어머니의 묘를 파헤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 또 난데없는 습격자들에게 하루아침에 집을 빼앗기는가 하면 밤마다 이어지는 약탈과 방화에 불을 끈 채 숨죽여야 하는 상황, 그리고 스페인 여자의 딸로 변신 과정과 탈출 과정에서의 위기일발 등 한 달여에 걸친 아델라이다의 지옥은 어느 장면 할 것 없이 생생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무엇보다도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일념 아래 이웃 여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애처롭고 안쓰럽게 그려져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번역가 역시 이 장면을 압권으로 꼽았는데, 이 작품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오랫동안 회자될 명장면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다소 낯선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다 정치적, 역사적 사료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별로 없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거리감 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을뿐더러, 현실의 요소가 그대로 반영되었더라면 오히려 소설 읽기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각주나 부연설명이 부족한 탓에 앞뒤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 몇 번씩 되읽어도 그 의미나 문맥이 잘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문장들이 간혹 있었는데, 대부분 원작자의 글쓰기 성향으로 보였지만 때론 이해 가능한 의역이 필요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소개글만 봤을 땐 탈출 스릴러또는 정치적 성향이 짙은 고발성 스토리를 기대했던 게 사실인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다소 밋밋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독자에 따라 휴머니즘과 리얼리티의 매력을 만끽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때론 주장이나 이념보다 생존이 탄탄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의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사도 전개방식도 주인공의 캐릭터도 전혀 다르지만 읽는 동안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시대의 어둠과 그에 의해 자행된 무고한 죽음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텐데,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팩션의 힘과 매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낯선 이국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베네수엘라 여인 아델라이다가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되어 어둠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에서 깊은 인상과 여운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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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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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안과의로 유명한 주커 박사의 실체는 잔혹한 연쇄 강간살인마. 그에게 납치당한 뒤 끔찍한 수술과 강간을 당한 피해자들은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기 때문. 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어 그를 구속할 여지가 없던 경찰은 눈알수집가사건에서 활약한 맹인 영매 알리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알리나는 환영 속에서 주커 박사의 다음 희생자를 본다’.

한편 아들 율리안을 살리기 위해 눈알수집가의 요구대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던 초르바흐는 기적적으로 되살아나지만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었을 거란 사실에 깊은 절망에 빠진다. 오로지 복수심만으로 살아가게 된 초르바흐는 주커 박사와 눈알수집가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믿으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병원을 탈출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전작인 눈알수집가를 읽지 않으면 좀처럼 이입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상하권으로 분권된 한 편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건 눈알수집가의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하긴 했지만) 거의 그대로 인용해야만 했습니다. 또 이어질 서평 역시 대체로 인상비평 수준에만 머물게 될 것 같은데, ‘눈알수집가를 읽은 독자라면 무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참고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이코스릴러로 분류되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긴장감 끝에 쾌감을 만끽하게 만드는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달리 무척 불편하고 무겁고 때론 불쾌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알사냥꾼은 앞서 읽은 네 편의 작품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특기(?)가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몸과 마음이 모두 거의 폐인에 가까운 상태로 등장합니다.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고, 그 후유증으로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는가 하면, 범인에게 납치된 뒤 끔찍한 수술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겨우 위기를 벗어났나 싶으면 칼로 난도질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몸만 괴로운 게 아니라 정신 역시 수없이 바닥을 치며 황폐해지고 마는데, 거기에다 전대미문의 연쇄 강간살인마인 눈알사냥꾼과 희대의 일가족 살해범 눈알수집가가 양쪽에서 협공을 해대고 있으니 그야말로 독자마저 제정신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감사의 말을 통해 작가 자신이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니 좀 이상한 분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고백한 점이나, 작품 속에서 주인공 초르바흐의 입을 통해 실망시켜서 미안하다. 나는 할리우드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 않다.”, “()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다.”라고 거듭 자신의 지향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눈알사냥꾼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은 작가의 변()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고 파괴적이고 악마적인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서사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힘이자 마력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지나치게 오버한 나머지 오히려 거부감만 느끼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악은 공포보다는 비현실적인 인상만 남겼고, 악의 동기는 억지로 갖다 붙인 느낌이었으며, 수차례 거듭되는 반전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작위적이었습니다. 눈알사냥꾼눈알수집가의 협업(?)은 조금도 긴장감을 발휘하지 못했고, 막판에 드러난 진실 혹은 진범의 정체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는데, 진범의 입을 통해 장황하게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안쓰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앞뒤 정황을 끼워 맞추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떻게 하면 악을 좀더 세고 독하게 그려볼까, 하는 작가의 노력만 보였을 뿐 스릴러 서사 자체는 뒤죽박죽이 돼버렸다고 할까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은 매번 다음에 이 작가의 작품을 또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남겨주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는 게 사실인데,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 가운데 아직 못 읽은 작품이 더 많은 편이라 어쨌거나 조만간 또다시 불편하고 무거운 그의 사이코스릴러를 읽게 될 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몽실북클럽에서 올해 8월까지 그의 작품을 스토킹하는 중이라 부득이 읽어야 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악이 지독하고 세게 그려지는 건 충분히 매력적인 설정이지만 다음에 읽을 작품에선 그 설정을 뒷받침하는 스릴러 서사의 힘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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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냥 - 상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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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가족사냥1995년 판(한국에선 2003년 문학동네 출간)입니다. 이후 2004(시대의 변화가 반영된) 전면 개정판이 나왔고, 한국에 소개된 건 2012년 북스피어를 통해서입니다. 엔딩을 포함 꽤 큰 수정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 서평은 1995년 판을 읽고 쓴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번역가의 작품인 덴도 아라타의 고독의 노랫소리의 번역 후기에 가족은 인간의 안식처지만, 모든 욕망과 억압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이기도 하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 읽은 대부분의 덴도 아라타의 작품들 기저에 자리 잡은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섬뜩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가족사냥은 더없이 친밀하지만 동시에 더없이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가족의 민낯을 꽤 잔혹한 방식으로 그리고 있어서 욕망과 억압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을 너머 지옥도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일가족이 참혹하게 살해된 현장에서 등교거부 중이던 아들이 남긴 유서가 발견됩니다. 경찰은 아들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짓지만 형사 마미하라는 외부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한편,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고교 미술교사 스도 슌스케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 요시자와 아이가 자신을 강간범으로 무고한 탓에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더구나 자신이 가정방문했던 또 다른 등교거부 중인 제자 일가족이 앞선 사건과 유사한 형태로 몰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자책감에 휩싸이고 맙니다.

 

상하권 합친 분량이 810페이지인데다 적잖은 수의 인물과 사건이 복잡하게 설정돼서 좀처럼 줄거리 정리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크게 보면 마미하라 형사가 일가족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자신이 연루된 두 건의 일가족 몰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자책감에 빠진 스도 슌스케의 이야기,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가족으로 인해 정신의 붕괴를 겪는 여고생 요시자와 아이의 혼란, 그리고 가족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공기관의 심리상담사와 개인상담사의 충돌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으로 인한 오랜 트라우마 혹은 현재진행형인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사 마미하라는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를 혐오했지만 그 자신이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가부장이 된 끝에 모범생이던 아들을 자살로 내몬 것은 물론 아내의 정신줄마저 끊어놓았고, 미술교사 슌스케는 가족을 꾸리는 일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임신한 연인에게 결별을 선언합니다. , 여고생 요시자와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가족에 대한 혐오와 광기에 사로잡혀 자해를 일삼곤 합니다.

주인공들 외에 크고 작은 조연들 대부분도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았거나 가족을 학대하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돌덩이를 끌어안은 심정으로 읽어야 되는 덴도 아라타의 작품 가운데 가장 힘들고 불편했던 책읽기가 돼버린 작품입니다.

 

덴도 아라타는 이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무서워할까?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공포가 아닐까? 그것은 바로 가족.”이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합니다. 상식이자 진리와도 같은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족은 애초 존재한 적도 없는 환상이거나 권력과 미디어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허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동학대, 가정폭력, 존비속살인 같은 끔직한 사건이 터지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자 극소수의 일탈행위처럼 포장하려 애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덴도 아라타는 (주제를 위해 다소 작위적으로 설정된 듯 보이긴 하지만) 가족의 문제가 더는 이례적이지도, 극소수의 일탈행위도 아니라는 점을 이 작품 속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묘사까지 동원된 살인과 폭력 장면은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덴도 아라타의 가족이라는 허상에 대한 반기를 위해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메인 주인공인 형사 마미하라의 입장입니다. 그는 유능한 본청 형사였지만 아들의 자살과 아내의 정신병으로 인해 관할서로 좌천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일가족 몰살이 외부인에 의한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유일한 형사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의 외부인 범행설이 물증이나 단서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그의 아집의 결과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아들의 죽음이 자기 때문도 아니고 자살도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미하라는 자식이 부모를 죽일 리 없다.”는 아집에 빠져 외부인 범행설을 주장한다는 뜻입니다.

그 자신이 아들에게 저지른 행위들, 즉 과도한 기대, 인색한 칭찬, 무관심과 무언의 압박, ‘남자다움에 대한 강요 등 자신의 뜻대로 아들의 인격을 조종하려 했던 행위들에 대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이라면 그런 일을 벌일 수 없다.”는 궤변에 사로잡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아이러니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가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는 개인의 문제 혹은 그 집 사정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가족의 문제를 사회적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인데,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주제를 전달하곤 있지만 툭하면 결혼식 장면을 해피엔딩으로 삼는 한국 드라마의 맹목적인 공허함을 떠올려보면 이 정도 과격함은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필요악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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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하야시 마리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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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지 않던 10여 년 전에 읽은데다 한두 줄 내외의 짧은 메모 외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작품이지만 당시 꽤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언젠가는 꼭 한 번 다시 읽으려고 다짐했던 하야시 마리코의 단편집 '첫날밤'입니다.

다시 읽기 전까지만 해도 수록작 모두 첫날밤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라고 단정했는데, 실은 첫날밤이란 제목은 11편의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의 제목일 뿐입니다. 유일하게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던 그 작품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 탓에 아마도 이런저런 사연이 깃든 첫날밤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은 단편집이라 지레 여겼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불륜에 빠진 중년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꽤 파격적인 내용도 있고 애잔한 이야기도 있는 반면 블랙코미디 풍으로 불륜을 다룬 작품도 포함돼있습니다. 사랑 이야기에 관한 한 정갈하든 격정적이든 해피엔딩이 기약된 전형적 스토리보다는 평범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일그러지고 비틀린 감정과 그에 어울리는 씁쓸하거나 비극적인 엔딩에 더 관심이 가는 취향이라 그런지 저에겐 별 다섯 개도 모자랄 정도로 애정 덩어리인 단편집입니다.

 

11편의 수록작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몇 편만 간략히 요약해보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남겼던 불륜이 오랜 시간이 지나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아이러니(‘애완동물가게의 스캔들’), 아슬아슬하게 감춰온 불륜의 비밀이 뜻밖의 반전을 맞이하는 씁쓸한 이야기(‘잘 다녀오셨어요?’), 전쟁미망인인 올케에게 남편을 빌려줘야 했던 시누이의 회한, 그리고 처녀의 몸으로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40대 딸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버지의 위험한 결심 등 패륜 혹은 그에 가까운 부도덕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어쩐지 짠하고 애틋하게 읽히는 이야기(‘눈 소리’, ‘첫날밤’), 39살에 가슴 설레는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준 불륜의 행복감에 도취됐다가 갑작스레 비참한 현실로 내동댕이쳐지는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봄 바다로’) 등입니다.

 

292페이지에 수록된 단편이 11편이니 평균 30페이지 안팎의 짧은 분량에 불과하지만 간결하고 선명한 감정 묘사와 공감률 100%의 캐릭터 덕분에 이야기의 밀도는 어지간한 장편보다 높고 농밀합니다. 특히 거의 모든 수록작에서 다루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의 불륜의 향연은 그만큼 여러 가지 감정과 여운을 만끽하게 하는데, 지극히 통속적이고 때론 불쾌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긴 해도 오히려 선남선녀의 뻔한 해피엔딩 멜로보다 더 현실감 있고 깊이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거나 그런 쪽으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하야시 마리코의 '첫날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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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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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은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인 오베라는 남자(역시 못 읽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의 작가가 다른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한때 장안의 화제였던 두 작품은 표지는 물론 번역 제목의 뉘앙스까지 엇비슷해서 당연히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로 연이어 출간된 닮은꼴 표지에 비슷한 뉘앙스의 제목들은 잘 해야 자기복제품이거나 아니면 인기에 편승한 모방작들이라는 근거 없는 의심 속에 관심 밖으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다산책방의 서평단 덕분에 뒤늦게 만나게 됐지만 미스터리나 스릴러에 편중된 저의 취향이 프레드릭 배크만을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던 게 사실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는 더 많이 했어도 괜찮았고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일 뿐이었습니다.

 

새해를 이틀 앞둔 작고 평화로운 소도시에 전대미문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하나는 무장 은행강도 사건이고 또 하나는 오픈하우스(구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택이나 아파트를 둘러볼 수 있게 공개하는 것)에서 벌어진 인질극입니다. 그런데 두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정체는 당장 내야 할 한 달치 월세가 필요했던 겁 많고 소심한 인물로, 하필 쳐들어갔던 곳이 현금 없이 운영되는 은행이라 강도질에 실패한 뒤 엉겁결에 오픈하우스 중인 아파트로 도망쳤다가 자기도 모르게 인질범이 되고 만 것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든 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인질범과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드센 인질들의 만 하루의 동거는 과연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까요?

 

이 작품을 최대한 압축해서 요약한다면 웃픈 인질극’, 즉 언뜻 보면 웃기는데 곰곰이 씹어볼수록 슬퍼지는 인질극쯤 될 겁니다. 어설픈 범인과 범인에겐 별 관심도 없는 인질들에, ‘덤 앤 더머를 연상시키는 부자(父子) 경찰의 좌충우돌 수사 등 해프닝에 충실한 지독한 소동극 설정이 초반부 내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사포 같은 재미난 만담 혹은 능구렁이 변사(辯士)의 요란한 원맨쇼 같던 초반부를 지나 범인-인질들-부자 경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씩 소개되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그 톤을 확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그 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이건 은행 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 (p151)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가가 의도했던 장르는 무려 세 가지였다고 합니다. ‘불안에 시달리며 버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코미디’, ‘밀실 미스터리가 그것인데, 도무지 섞이지 못할 것 같은 세 장르는 웃픈 인질극을 통해 웃음, 한숨, 안타까움, 반전, 감동 등 팔색조 같은 느낌을 발산합니다. 인물과 이야기도 많은데 장르마저 다양하다 보니 마치 회전무대를 통해 순식간에 시공간을 바꿔버리는 템포 빠른 연극무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큰 그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기만의 불안에 휩싸였던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치유하고 용서하는 이야기를 상투적이거나 진부한 방식이 아닌, ‘웃픈 인질극으로 풀어냅니다.

 

칼에 맞지 않게 하느님이 보호해주지는 않으시지. 그래서 하느님이 다른 사람들을 주신 거야. 서로 보호하면서 살 수 있게.” (p301)

 

부자 경찰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남긴 단순하면서도 깊은 함의를 담은 이 한마디는 웃픈 인질극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절묘한 표현입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을 안고 온 뿌리 깊은 불안이 단 하루의 인질극의 인연으로 해소된다는 건 픽션에서나 가능한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불안한 사람들은 독자로 하여금 어쩌면 그런 기적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할지 모른다는, 다소 무모하면서도 욕심내고 싶은 희망을 갖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등장인물 모두 내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며, (클라이맥스는 다소 동화 같긴 해도) 그들이 해피엔딩을 이끌어내는 방식 역시 특별한 마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또 타인에게 조금씩, 천천히 마음을 열고 말을 건네는 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프레드릭 배크만이 건네는 위로는 남다르면서도 더없이 따뜻하다. 왜냐하면 그가 위로를 건네는 방식은 세상에 당신 말고도 수많은 바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은 이 작품의 진정한 미덕을 단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눈가가 뜨근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박한 기쁨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그동안 관심 밖에 둔 채 외면했던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다시 그의 작품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날카로움에 질릴 때쯤 가장 먼저 떠오를 작가 중 한 명이 프레드릭 배크만이 될 것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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