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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의 사건노트
조 이데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IQ라는 별명을 지닌 흑인 청년 아이제아 퀸타베는 주위에서 ‘무면허 비밀 해결사’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소소한 사건들을 말끔히 해결해주는 동네탐정으로 유명하기 때문인데, 그가 의뢰인들로부터 받는 대가는 음식이나 청소 같은 소박한 현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IQ에게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 닥칩니다. 후원하는 장애소년의 거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인데 때마침 10대 시절 악연을 맺었던 도슨으로부터 ‘돈이 되는’ 사건을 중개받습니다. 의뢰의 내용은 거물 래퍼 살해미수범을 찾아내는 것. CCTV에 찍힌 범인은 전혀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인데, 더 큰 문제는 그 범인의 흉기가 위험천만한 견종인 대형 핏불이란 점입니다.
무척 독특한 외양을 지닌 작품입니다. 탐정 주인공이 보기 드물게 흑인이라는 점, 일본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가 50대 후반에 데뷔작으로 발표한 작품인데 셰이머스 상, 매커비티 상, 앤서니 상을 석권한 점 등이 그것입니다. 덧붙여 “LA의 뒷골목을 누비는 21세기형 셜록 홈즈”라는 홍보카피까지도 이 작품의 독특한 위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핏불을 이용하여 래퍼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범인과 그의 배후를 찾는 현재의 이야기가 하나이고, 또 하나는 IQ가 어떤 우여곡절을 통해 동네탐정 또는 ‘무면허 비밀 해결사’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10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를 잃은 뒤 형 마커스의 보호 아래 성장하던 IQ는 그야말로 천재에 가까운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형을 잃은 뒤 IQ는 절망에 빠진 채 방황을 일삼다가 악동 도슨을 만나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맙니다. 잠시 그 세계에 중독됐지만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IQ는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재능을 발판삼아 탐정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현재, 나름 유명세를 얻은 IQ는 과거의 악연인 도슨이 중개한 사건이란 점이 마땅치 않았지만 거액의 수수료 때문에 래퍼 살인미수사건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유일한 단서인 ‘특이할 정도로 거대한 핏불 찾기’에 전력을 다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슈퍼스타였지만 지금은 번아웃 상태에 빠져 약물에만 의지하는 래퍼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일그러진 관계들에 주목합니다. 진흙탕 싸움 끝에 이혼한 아내, 새 음반이 절실한 소속사 대표, 어딘가 감추는 것이 많아 보이는 매니저, 지금은 래퍼의 경호 업무를 맡고 있지만 한때 그와 함께 음악을 했던 형제 등 오로지 래퍼 주위에 기생충처럼 머물며 탐욕스런 태도를 감추지 않는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외양만큼이나 이야기 자체도, 서사나 캐릭터도 무척 독특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IQ가 래퍼 살인미수범을 쫓는 과정만을 전적으로 따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꽤 많은 조연들과 그들이 연루된 현재와 과거 사건에 대해서도 적잖은 비중과 분량을 할애하고 있고, 10대 시절의 IQ를 그린 챕터들도 1/3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때론 ‘래퍼 살인미수’라는 메인 사건이 잘 안 보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메인 사건 중심의 스릴러라기보다는 온갖 볼거리가 난무하는 버라이어티 쇼 같은 느낌인데, 비유하자면,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난해하고 폭력적이고 어질어질한 랩 가사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요?
IQ가 살인미수범을 특정하는 과정은 좀 의외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쉽게 묘사됩니다. 물론 IQ의 궁극의 목표는 살인미수범이 아니라 그를 사주한 진범이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 역시 특별히 복잡하지도,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IQ는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인데, 나름 근거를 갖춘 깨달음이라 억지스런 비약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살짝 아쉬운 대목이긴 했습니다.
또, 홍보카피에 실린 그의 별명 ‘LA의 뒷골목을 누비는 21세기형 셜록 홈즈’로서의 매력이 크게 다가오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일상 속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장면들에서 홈즈의 향기가 느껴진 건 맞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고 할까요?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다 읽은 뒤에도 사건 자체보다는 다소 장황해 보였던 IQ의 인생 스토리가 더 기억에 남았는데, 이 부분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거친 랩, 인종차별, 마약, 불법총기, 갱단, 살인, 돈 등 폭력적이고 어두운 소재들이 총출동한 스릴러지만 악과 대결하는 IQ의 무기는 오직 ‘말빨과 추리’뿐이라 어딘가 샌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중대범죄와 맞붙은 경력을 쌓은 IQ가 다음 작품에서는 동네탐정이나 샌님보다는 좀더 과격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작품이 2016년에 출간됐다고 하니 이미 후속작이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과연 IQ가 얼마나 세고 독한 탐정으로 변신해있을지 궁금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