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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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훗카이도 구시로를 배경으로 한 예전 작품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그래도 사쿠라기 시노의 정서는 여전하겠죠. 기대만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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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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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출간된 성모를 통해 팬이 된 이후 절대정의’, ‘작열에 이어

네 번째로 만난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품 유리의 살의입니다.

아쉽게도 성모이후 그에 맞먹는 만족감을 느낀 적이 없던 터라

눈길을 확 잡아 끈 다소 원색적인 제목과 표지에 나름 기대감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카시하라 마유코라는 여자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며 스스로 경찰에 신고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20년 전의 사고로 고차뇌기능장해라는 기억장애를 앓아오던 중이었고

기억 자체가 10~20분마다 새로 세팅되는 심각한 증상을 가진 환자입니다.

그런 탓에 살인을 저지른 일과 신고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41세의 자신을 20대라고 착각하는 등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기억의 오류를 드러냅니다.

사건을 맡은 형사 키리타니와 노무라는 그런 마유코로 인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정황이 워낙 확실한 탓에 대략의 보충조사를 통해 사건을 종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의외의 변수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수사는 혼란에 빠지고

키리타니는 마유코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고 전면 재수사에 나섭니다.

 

기억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들이 꽤 많은 편이지만

아키요시 리카코는 수시로 기억이 사라지는 살인고백자를 통해 차별화된 이야기를 펼칩니다.

10~20분마다 기억이 새롭게 세팅되는 마유코의 살인고백은 무척 흥미로운 설정인데,

그 고백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것은 물론

진술 도중 수시로 여기가 어디죠?”, “제가 사람을 죽였다고요?”라는 말을 남발하는 바람에

사건을 맡은 키리타니와 노무라 입장에선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유코 주변 인물들의 수상쩍은 행태와 의외의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그녀의 고백과 진술은 그야말로 설득력 하나 없는 허상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마유코가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며 신고한 살인사건이

그녀의 기억장애를 야기한 20년 전 묻지마 살인과 연관된 탓에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해지고 살인사건의 진상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기만 합니다.

 

등장인물이 별로 없어서 읽는 동안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특정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지만

아키요시 리카코는 특유의 반전 솜씨를 발휘하여 이리저리 이야기를 비틀고 또 비튼 끝에

사건 관련자들의 씁쓸하거나 참혹한 사연들을 공개하면서 숨 가쁜 엔딩을 이끌어냅니다.

도중에 범인이 눈에 보이더라도 남은 이야기들을 쉽게 짐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미스터리의 고수들에겐 다소 상투적인 엔딩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팬으로서의 사감 때문인진 몰라도 마지막 장까지 무척 흥미롭게 책장을 넘긴 게 사실입니다.

 

출판사가 인터넷 서점에 짧고 인색한 소개글만 남겨놓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아키요시 리카코의 주 특기인 연이은 반전때문에 무엇 하나 소개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다 읽고 보니) 등장인물 소개조차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소개하지 않고 서평을 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두루뭉술한 독후감만 적어봤습니다.

 

기대와 달리 이번에도 성모만큼의 만족감을 얻진 못했지만

흥미유발자이자 기막힌 이야기꾼 아키요시 리카코의 매력은 충분히 맛봤다는 생각입니다.

라노벨로 분류되는 암흑소녀외에는 모두 읽은 셈인데

2021년에도 아키요시 리카코의 신작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봅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한국에서 출판된 작품마다 출판사와 번역자가 모두 달랐는데

작품 쟁탈전(?) 같은 불상사 때문에 그녀의 신작 소식이 요원해지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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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죽일 수밖에 없었어 킴스톤 1
안젤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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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에서 이 작품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출판사를 차리게 한 책이라는 역자이자 편집자의 일성이었습니다.

, 3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면서까지 기어이 한국어 판권을 따냈다는 점,

캐릭터와 스토리의 미덕과 매력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한 설명을 단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덕분에 역자로 하여금 출판사까지 차리게 만들었다는 이 작품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지역 사립학교 교장이 살해된 사건에 투입된 걸 크러쉬 형사킴 스톤은

피해자가 과거 보육원 부지 발굴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 얼마 전 누군가 그 발굴사업을 중지하라며 협박장을 보낸 사실까지 알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고 희생자들이 모두 과거 보육원 근무자로 밝혀지자

킴은 상부의 지시를 어기면서까지 보육원 부지 조사를 시작하고

얼마 안 가 유골만 남은 미성년자의 시신을 찾아내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킴의 은 보육원 부지 안에 더 많은 시신이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읽는 내내 역자 겸 편집자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주인공 킴 스톤의 캐릭터입니다.

뛰어난 수사력으로 또래 남자들에 비해 이른 승진을 한 킴은 한마디로 돌직구 형사입니다.

거침없는 언행과 뛰어난 직감, 자신의 대로 밀어붙이는 수사 스타일과 확실한 실적 등

형사로서는 만점을 주고도 남을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킴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교술, 휘발된 감정과 공감능력, 상대는 안중에도 없는 거친 태도 등

킴은 일종의 화이트 사이코패스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수사에 초빙된 법의 인류학자는 참다못해 이렇게 킴에게 따집니다.

어떻게 이 정도로 성공을 거두신 겁니까? 그렇게 무례하고 오만하고 불쾌하고...”

하지만 킴이 이런 성격을 갖게 된 사연은 무척이나 불행한 과거사 때문입니다.

그 과거사는 킴으로 하여금 이번 사건에 더욱 더 몰입하게 만드는 기폭제로 작동합니다.

 

조직의 논리나 정치적 맥락 따위는 무시하고 오롯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만 걷는 걸 보면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가 생각나고,

독불장군에 다혈질인 모습을 보면 테스 게리첸의 제인 리졸리가 저절로 떠오르는데

사실 킴은 그보다 100배쯤은 더 세고 독한 캐릭터라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는 상관, 척척 호흡이 잘 맞는 동료들 덕분에

킴은 매번 자신의 스타일대로 수사를 지휘하여 큰 성과를 올려왔습니다.

 

킴의 캐릭터 못잖게 매력적이었던 건 유쾌한 영국식 블랙 유머입니다.

현재 시점의 연쇄살인사건과 과거에 벌어진 보육원 내 살인사건이란 센 설정에도 불구하고

킴과 그 주변인물들이 나누는 블랙 유머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게 만들곤 하는데,

특히 그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 건 건 킴이 구사하는 , , 말투입니다.

개인적으론 번역의 참맛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말투가 사랑스러웠는데(?)

덕분에 영국식 블랙 유머를 더욱 더 재미있게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에 관해선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많아서 자세하게 언급하긴 어렵지만

10년 전 누군가를 매장하는 다섯 명의 음울한 모습을 그린 프롤로그 때문에

독자는 그 다섯 명을 향한 복수극이 전개될 거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살인사건이 복잡한 층위를 지닌데다

보육원 부지에서 발견된 유골만 남은 시신은 좀처럼 과거의 단서들을 드러내지 않아서

미스터리 구도는 독자의 짐작과는 달리 그리 쉽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까도 까도 양파 같은 플롯이란 역자 겸 편집자의 설명은

바로 이런 점을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0.5개를 뺀 아쉬움의 이유는 모두 막판의 불친절함때문입니다.

영국의 미스터리나 스릴러에서 종종 이런 아쉬움을 느끼곤 했는데,

딱 떨어지고 확실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에서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살짝 두루뭉술하거나 모호하게 넘어가는 경우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참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에서 이제 뭔가 설명이 되겠구나.”, 싶은데

뜬금없는 비약 아니면 의도적인 생략 때문에 꽤나 찜찜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인 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시리즈 후속권을 꾸준히 읽었다.”는 역자 겸 편집자의 언급이 반가웠는데

그건 곧 앞으로 킴 스톤 시리즈가 계속 출간될 거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머잖아 킴 스톤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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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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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3년쯤 그래스호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사신 치바로 이사카 고타로의 팬이 됐지만

이후 계속 아쉬움과 실망감만 맛본 탓에 제 취향과 거리가 먼 작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고,

얼마 전 마왕을 읽곤 아직 안 읽은 책장 속 그의 책들을 정리할 결심까지 한 게 사실입니다.

정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읽기로 한 작품이 골든 슬럼버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이력을 생각해 보면

그동안 통 적응하기 힘들었던 이사카 고타로의 세계와는 조금은 다른,

그러니까 궁합 안 맞는 저조차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에 부응!’70%, ‘역시나~’라는 아쉬움이 30%정도였습니다.

 

전직 택배기사이자 잘 생긴 것 빼곤 평범한 청년인 아오야기 마사하루.

8년 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동창을 만난 그날도 그에겐 무척 평범한 하루였지만

시내에서 총리 암살사건이 벌어지면서 그의 인생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 암살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언론의 추격이 시작되자 아오야기는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건 도주극에 나서지만

거미줄 같은 감시 시스템 탓에 수차례 체포의 위기를 겪는 것은 물론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던 인물들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자 패닉상태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예상치 못한 조력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긴 아오야기는 이 모든 사태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이 작품의 모티브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입니다.

암살범으로 체포된 오스월드마저 호송 중 살해당하면서 진실은 미궁에 빠졌는데

아오야기는 자신 역시 오스월드의 운명을 따라가게 될 거란 불안에 몸서리치곤 합니다.

또 이 작품은 본 시리즈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도망자 코드는 물론

무차별 감시 사회를 그린 ‘1984’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도망자 아오야기와 주변 인물들을 물샐 틈 없이 감시하는 시큐리티 포드라는 시스템은

머잖아 현실이 될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할리우드 식 도망자 누명 벗기스토리란 뜻은 아닙니다.

물론 가장 큰 줄기는 누명을 쓴 도망자 아오야기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어떻게든 자신이 암살범이 아님을 밝히고 진실을 알리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특유의 서사와 코드와 캐릭터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살짝 낯선 느낌의 이야기들을 동시에 전하기도 합니다.

 

가장 두드러진 건 아오야기의 대학 친구들의 캐릭터입니다.

무의미하거나 무모해 보이는, 하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한 그들의 20대를 그린 대목들엔

한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지.”라는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가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래선지 도주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애틋한 추억과 회고의 느낌을 잔뜩 머금고 있습니다.

아오야기의 암살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그 친구들은

때론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때론 아오야기의 도주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아오야기의 친구들 못잖게 이사카 고타로의 독특한 점을 잘 드러내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아오야기의 도주에 도움을 주는 의외의 조력자들입니다.

잔혹한 연쇄살인마, 록큰롤에 미친 택배기사, 암살범을 영웅처럼 보는 양아치들,

그리고 양쪽 발에 깁스를 한 채 장기입원 중인 자칭 뒷골목 전설이라는 수상쩍은 노인 등

도무지 총리 암살범 도주극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연극적이고 과장된 캐릭터들이

아오야기를 물심양면으로 돕기 위해 사방팔방에서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무척이나 긴박한 이야기인데도 수시로 블랙 코미디의 느낌이 든 건 순전히 이들 때문입니다.

 

영미권 스릴러에서 아오야기의 도주극을 그렸다면 아무래도 영웅적 엔딩이 등장했겠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그만의 방식으로 무척 현실적인 엔딩을 이끌어냅니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대목이지만 개인적으론 꽤 마음에 드는 엔딩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장을 앞으로 넘겨 초반에 실린 사건 20년 뒤라는 챕터를 다시 한 번 읽었을 땐

할리우드 식 영웅 스토리보다 훨씬 더 깊은 여운과 인상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그 역시 이사카 고타로이기에 가능했던 매력적인 설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초반에 “‘기대에 부응!’70%, ‘역시나~’라는 아쉬움이 30%정도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어느 부분이 딱히 아쉬웠다고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비틀즈라든가 아오야기의 친구들과 그들의 추억 이야기처럼

중간중간 책읽기를 덜컥 막아 세우는 뜬금없는 샛길들이 조금은 불편했던 게 사실이고,

재미있긴 해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조력자들의 존재도 이물감이 강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연이은 실망과 아쉬움만 느낀 것에 비하면

이사카 고타로와 아홉 번째로 만난 작품인 골든 슬럼버

사신 치바그래스호퍼에 이어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장 속에 방치된 그의 작품들을 냉큼 집어 읽겠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리하는 일은 잠시 뒤로 미뤄두려고 합니다.

언제쯤 그의 작품들을 책장에서 구제하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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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도시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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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댐 위에서 처형당하듯 살해당한 남자의 사체가 발견됩니다.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서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긴 해리 보슈가 출동하지만

현장에서 한때 열정에 빠졌던 상대인 FBI요원 레이철 월링과 마주치곤 깜짝 놀랍니다.

레이철은 희생자가 방사능물질 접근권한을 가진 의학 물리학자이며

그 때문에 이 사건이 테러와 연관됐을 수 있기에 자신이 출동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대량의 세슘이 사라진 게 드러나자 FBI뿐 아니라 연방기관 전체에 비상이 걸립니다.

FBI는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사건을 독점하려 하지만

보슈는 살인 현장과 희생자의 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시리즈 전작들과 비교하여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너무 슬림해진 책의 두께입니다.

보너스로 실린 에필로그까지 포함해도 마지막 장이 276페이지에서 마무리되는데,

보통 500페이지 안팎이던 전작들에 비하면 2/3 또는 절반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사건 역시 발생부터 종결까지 채 12시간이 안 걸리는 것으로 설정돼있는데,

이런 분량과 속도감은 애초 이 작품이 신문 주말판에 연재됐던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작인 에코 파크에서 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던 보슈는

결국 몇 개월의 정직 끝에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행히 보슈에게 호의적인 국장 덕분에 더 큰 시련을 겪진 않은 걸로 보입니다.

56살 보슈의 새 파트너는 그보다 스무살 이상 어린 쿠바계 신참 이그나시오 페라스입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경력 탓에 그는 보슈의 폭주에 여러 번 놀라곤 하는데

특히 경찰조직과 FBI에 정면으로 맞서는 보슈 때문에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한편 보슈의 숙적인 전직 부국장 어빙은 시의원이 되어 보슈와 LA경찰국과 각을 세우는데

그의 야욕과 악행이 언제쯤 보슈에게 응징당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정열적인 만남과 씁쓸한 이별을 반복해온 레이철 월링과의 재회가 가장 반가웠는데

에코 파크이후 보슈를 떠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한 레이철이었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또 다시 같은 사건에서 보슈와 마주치면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게 됩니다.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파트너와 새 출발을 하게 된 보슈가 마주한 사건은 꽤 심각합니다.

방사능물질이 사라지고 테러의 위협이 대두되면서 살인사건은 하찮은 취급을 받게 되는데

그로 인해 보슈는 수사 시작과 동시에 사건에서 내쳐질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사실, 국가안보가 대두되고 테러의 기운이 감도는 사건을 놓고

일개 형사가 살인 자체에만 신경 쓰는 건 상식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보슈로서는 테러와는 무관한 뭔가 수상쩍은 것들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 탓에

레이철은 물론 국장과 새 파트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수사를 고집합니다.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보슈의 똘끼는 충만합니다.

레이철과의 재회는 계속 궁금증을 일으키고, 새 파트너와의 삐걱거림 역시 흥미롭습니다.

사건 역시 정말 보슈가 테러리스트와 한판 붙나?”라는 의문을 놓을 수 없게끔 만들어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막판에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마냥 궁금해질 뿐입니다.

 

다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알찬 뼈대만 읽는 것 같은 건조함이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신문 구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연재물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겠지만

고독한 코요테같은 보슈의 고뇌나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같은 사족이 끼어들 틈이 없었고

오로지 당면한 사건 해결을 위한 돌직구 스타일의 전개에만 충실했다는 뜻입니다.

재미 면에선 뛰어났지만 기름기 없는 닭가슴살처럼 퍽퍽한 느낌만 강했다고 할까요?

 

이후 마이클 코넬리는 시인의 주인공 잭 매커보이의 두 번째 이야기인 허수아비를 거쳐

홍콩을 무대로 해리 보슈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찍을 나인 드래곤을 집필합니다.

시리즈 4편인 라스트 코요테가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면

14편인 나인 드래곤은 보슈의 또 다른 가족들에 관한 깊은 비극을 그린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시리즈에 큰 획을 긋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허수아비로 잠시 숨을 돌리면서 나인 드래곤과 다시 만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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