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전통의 명문 기숙학교 구드(Goode)는 권력층과 억만장자의 똑똑한 딸들만 입학이 가능하고,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입학은 물론 그 이후의 찬란한 미래까지 보장해주는 곳이다.

오래된 건물과 역사만큼이나 기괴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구드 학교에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아름다운 소녀 애쉬가 전학을 온다.

그리고 그날 이후 구드 학교에는 의문의 죽음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문제는 모든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애쉬가 연루돼있다는 점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원제인 ‘Good Girls Lie’는 직역하면 착한 소녀들이 거짓말을 한다지만,

실은 ‘Goode Girls Lie’, 구드 학교의 소녀들은 거짓말을 한다라는,

다소 아이러니하고도 역설적인 의미를 담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오래 전 구드 학교는 “Good Girl이 될 수 없는 거리의 소녀들을 구제하기 위해 설립됐고,

시간이 지나 Good Girl을 살짝 비튼 듯한 Goode School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또 이 학교의 가장 엄격한 규율이자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

거짓말과 남을 속이는 것이란 점 역시 원제의 아이러니함을 강조하는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애쉬가 어마어마한 명문 기숙학교에 전학 오면서 시작됩니다.

외국에서 온 전학생을 까칠하게 대하는 동급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의 권력과 부에 익숙해진 나머지 끔찍한 갑질마저 태연히 자행하는 졸업반 선배들,

그리고 엄격한 규율과 부담감 백배의 학업 성취에 열 올리는 학장과 교수들에 이르기까지

전학 초기 애쉬의 일상은 숨 막힘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애쉬에겐 하버드 진학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그 때문에 어떻게든 구드 학교에 연착륙하고자 모든 고난을 지혜롭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연이은 학내 사망사고가 벌어지고 경찰까지 개입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애쉬의 평정심은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그리고 애쉬가 가까스로 감춰온 엄청난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그녀를 감싸온 학장은 물론 경찰들마저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애쉬가 구드 학교에 전학 온 이후로 그토록 전전긍긍하며 꽁꽁 싸맨 비밀의 실체는

여느 스릴러에서 보기 어려운 신선하고 충격적인 설정입니다.

, 그 외에도 540여 페이지의 분량에 담긴 이야기가 워낙 복잡하고 다양해서

줄거리 소개만으로도 A4 2~3장은 너끈히 넘길만한 방대한 서사의 작품입니다.

요약한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 같지만

실은 미국판 여고괴담이라고 해도 될 만큼 흥미로운 호러 코드와 함께

여학생 기숙학교를 무대로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다양한 인간관계도 다루고 있어서

팔색조 같은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연이은 반전이 눈길을 끌었고,

주인공인 애쉬, 그녀를 아끼고 감싸는 학장 포드,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 등

여러 사람이 번갈아 챕터의 화자를 맡아 긴장감과 밀도를 높인 덕분에

자칫 단선적일 수 있는 이야기 구조가 무척 풍성하고 알차게 설계된 인상을 받았는데,

정치경영 석사, 백악관 근무, 재무분석가를 거쳐 법의학과 범죄학을 공부한 끝에

‘FBI 시리즈라는 베스트셀러를 냈다는 작가의 이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초반의 지루함입니다. (1개가 빠진 결정적 이유입니다.)

구드 학교에 도착한 후 애쉬가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안착하는 과정이 꽤 길게 설명되는데

본격적인 의문의 죽음이 벌어지고 경찰이 개입하기까지의 초중반은

성미 급한 장르물 독자라면 견디기 쉽지 않을 정도로 느슨하고 느리게 전개됩니다.

반면, 그 직후부터는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거의 3~4배속으로 빨라지긴 하지만

자칫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보지 못하고 초반부터 고민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리슨이란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J.T. 엘리슨의 한국 출간작은 이 작품이 처음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이 선전한다면 그녀의 대표작인 ‘FBI 시리즈테일러 잭슨 시리즈역시

머잖아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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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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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툼한 분량은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는 더는 낯선 경험이 아니지만,

역시 첫 페이지를 펼치기 전부터 꽤 마음의 부담(?)을 안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깔끔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보다는 깊고 묵직하고 비장한 서사와 마주해야 하는 탓에

읽기 전부터 여느 작품을 대할 때와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전작인 폴리스에서 경찰만 노리는 최악의 살인범과 사투를 벌였던 해리 홀레는

복직 대신 경찰대학의 교수로서, 라켈의 남편으로서, 올레그의 아버지로서 살기를 택했지만,

쇠이빨로 여자의 목을 물어뜯어 살해하는, 이른바 뱀파이어연쇄살인마가 등장하면서

또 다시 심연과도 같은 살인사건 수사에 나서게 됩니다.

그가 꾸린 비공식 수사팀에는 뱀파이어전문가인 심리학자와 갓 2년차인 신참 경찰 등

어딘가 엉성해 보이고 믿음직스럽지 않은 멤버들이 포진하게 되지만,

이들은 공식 수사팀 못잖은 열정과 노력으로 해리의 조력자로 활약합니다.

 

사실, 엽기적인 범행수법과 함께 뱀파이어전문가인 심리학자까지 등장한 덕분에

가끔 해리가 정말 뱀파이어와 싸우고 있는 건가?’라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동시에, 극도로 감정적인데다 피에 대한 갈망에 좌지우지되는 듯한 범행수법에 비해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되고 계획된 듯한 사건 정황으로 인해

(해리와 경찰이 그랬듯이) 독자는 범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됩니다.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연쇄살인범 수사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안온하고 행복한 삶을 바라면서도 술과 살인사건의 유혹에 시달리는 해리의 갈등이

그에 못잖은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라켈과 함께 하는 작고 소중한 행복에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술과 살인사건을 향한 해리의 목마름은 도무지 사라질 줄 모릅니다.

목마름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해리가 겪는 내면의 갈등과 고뇌는 지독하고 고통스럽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목마름이 피와 살인을 갈망하는 연쇄살인마의 그것과 겹쳐 보이는 걸 깨달은 해리는

라켈과 올레그를 떠나는 것이 그들을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해리의 천적이자 차기 법무장관을 노리는 미카엘 벨만의 정치적 행보,

부패경찰이지만 미카엘 벨만의 약점을 쥔 채 강력반의 한 자리를 틀어쥔 트룰스의 야욕,

새로 살인사건 수사책임자가 된 카트리네 브라트의 좌충우돌,

이기적이고 비뚤어진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수사를 혼선에 빠뜨리는 언론,

학계의 주변부만 맴돌다가 쇠이빨의 연쇄살인마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심리학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버지해리를 따라 경찰대학생이 된 올레그의 활약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700페이지의 분량을 꽉꽉 채워주고 있습니다.

 

전작인 폴리스를 읽어야 목마름의 진가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게 사실인데,

주요 등장인물의 행동과 상황이 폴리스에서 다뤄졌던 사건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 요 네스뵈가 작품 이곳저곳에서 부연설명을 많이 해줘서 필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에서 폴리스의 서평이라도 읽어보길 권합니다.

 

읽기 전에 마지막 장의 페이지 수를 확인하곤 대략 이런 예상을 했습니다.

500페이지 정도는 사건에 충실한 내용이겠지만,

나머지 200페이지는 해리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뇌와 갈등의 묘사를 위해,

,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풍경이나 소품에 대한 묘사로 채워질 게 분명하다고.

예상과 크게 틀리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묘사들이 때로 묵직한 두통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11편의 시리즈 중 한 편을 제외하곤 모두 읽었지만,

매번 똑같이 겪게 되는 곤혹스러움은 목마름에서도 여전했습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축약된 표현과 문장들이 그것인데,

대세(?)에 지장 없는 경우에는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하지만,

캐릭터나 사건과 직결된 상황에서 그런 표현과 문장들을 만나면 참 난감해집니다.

물론, 그런 난감함이 어쩌면 해리 홀레 시리즈의 특별한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요.

 

요 네스뵈는 폴리스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말미에 또 다시 대형 떡밥을 투척합니다.

말하자면, 다음 작품에서 해리 홀레가 마주해야 할 더 잔혹하고 끔찍한 범인을 예고하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내몰렸던 해리 홀레가

목마름의 범인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로 보이는 그 자와 어떻게 사투를 벌일지

벌써부터 궁금증과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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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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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제목에 눈길이 끌렸다가 작가 이름을 보곤 한참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한국에서 제법 미스터리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앨리스 죽이기조차 별 3개를 줬고,

장난감 수리공은 수록된 두 작품 중 표제작만 읽은 뒤 서평도 쓰지 않았으며

기억파단자는 절반도 못 가서 포기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와는 잘 안 맞는 작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재도전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일단, 흡혈귀와 인간의 대결이란 설정 때문에 꽤 잔혹한 장면들이 많으리라 예상했는데

초반부터 그 예상을 백배는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묘사들이 등장합니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몸이 찢겨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그런데 역겹다기보다는 19금 괴수 애니메이션이나 팔다리가 툭툭 잘리는 B급 코믹영화처럼

뭔가 경쾌한 리듬을 탄 듯한 흥미진진한 살육 쇼를 읽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초반부터 독자의 눈을 어지럽게 만든 작가는 이내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짧게 요약하면...

흡혈귀 사냥꾼들이 서커스단으로 위장한 채 암약 중이라는 정보를 들은 흡혈귀 조직은

때마침 인근에서 공연준비 중인 한 영세 서커스단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이 영세 서커스단은 10명 남짓한 멤버로 겨우 버티고 있는 진짜서커스단입니다.

그런데 하필 이 서커스단의 멤버 한 명이 전설적인 흡혈귀 사냥꾼과 이름이 비슷했던 탓에

흡혈귀 조직은 이들을 사냥꾼으로 규정하곤 총공격을 진행합니다.

 

남녀노소 골고루 포진한 흡혈귀 조직의 공격력은 막강 그 자체입니다.

쉽게 죽지도 않고, 치명상을 입어도 금세 회복되며, 잔인함은 극에 달할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서커스단 멤버들은 자신의 주특기 외엔 딱히 내세울 게 없는 평범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의외의 전개를 보이기 시작하고,

전설적인 흡혈귀 사냥꾼과 이름이 비슷한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히어로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출판사에서는 잔혹 배틀 스릴러라는 장르명을 붙였지만

나름 미스터리와 반전의 품격도 곁들이고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뭔가 모호하고 애매했던 앨리스 죽이기에 비해 비교적 선명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호러와 잔혹함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순 있어도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제나 의미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로는 제격인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흡혈귀라는, 개인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설정과 배틀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서

조금은 야박한 평점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작품과 또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지간해선 홍보글이나 소개글은 물론 띠지나 표지의 카피조차 안 읽고 책을 읽는 편이지만,

혹시라도 들여다본 그의 신작 홍보글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끄는 설정이 있다면

이 작품처럼 고민하고 주저하다가 결국엔 집어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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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자매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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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처벌하기 위해 11살 이후 스스로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무려 15년 동안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온 레이첼 커닝햄.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단지 매일 악몽 속에서 부모의 참혹한 모습 곁에 총을 든 채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부모를 죽게 한 건 자신이 맞다고 스스로 확신에 확신을 거듭해 온 것뿐입니다.

그런 레이첼이 우연한 계기로 전혀 다른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9살 위인 언니 다이애나, 그리고 자상하고 다정했던 이모 샬럿이

15년 동안 자신에게 다른 진실의 가능성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건지 의아해진 레이첼은

미시간주 어퍼 반도의 깊은 숲속에 자리한 자신의 옛집으로 위험한 여정을 떠납니다.

 

고백하자면, 카렌 디온느의 전작인 마쉬왕의 딸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포기했던 탓에

사악한 자매의 출간소식에 궁금증이 일면서도 잠깐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억났다. 나와 언니 둘 중 하나는 악마다.”라는 홍보카피와

사이코패스인 딸을, 언니를 사랑해야만 할까?”라는 인터넷 서점의 카피에 이끌려

북폴리오의 서평단 이벤트에 응모를 했고 덕분에 흥미로운 책읽기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자신이 부모를 죽였다고 믿은 끝에 스스로 정신병원 수감이라는 처벌을 내린 레이첼이

지금은 언니 다이애나와 이모 샬럿만이 살고 있는 거대한 숲속의 저택을 찾아가

목숨을 걸고 진실을 찾아내는 여정이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전개되는데,

그 사이사이 레이첼 자매의 어머니 제니가 1인칭 시점으로 설명하는 과거사 챕터가 끼어들어

이들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묘한 공포심을 자극합니다.

 

큰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여느 공포물 못잖게 서늘함을 내뿜는 작품입니다.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뒀던 레이첼이 조금씩 되찾은 기억 속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사실들,

인적 없는 광대한 숲과 그 속에 자리 잡은 저택이 발산하는 차갑고 고요한 광기,

고작 8살에 사이코패스 확진을 받은 큰딸 다이애나를 두려움 속에 키워야 했던 제니의 공포,

그리고 가족과 숲과 저택을 손아귀에 쥔 어린 사이코패스 다이애나의 엽기적 행각 등

언뜻언뜻 스티븐 킹을 떠올리게 만드는 갖가지 공포 코드가 꽤 매력적으로 읽혔습니다.

 

380여 페이지의 분량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클라이맥스와 엔딩이 급했다는 점,

, 레이첼의 심리와 숲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동어반복의 묘사들만 제외하면

한여름에 딱 어울리는 매력적인 호러물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르긴 해도 영상물로 만들어진다면 아름다운 숲의 풍광과 끔찍한 비극이 절묘하게 믹스된,

보기 드문 호러+스릴러+액션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왠지 후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떡밥이 던져졌는데

실제로 레이첼의 다음 이야기가 출간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 덕분에 작가의 전작인 마쉬왕의 딸에 재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는데,

첫 도전의 실패를 확실하게 만회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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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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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연이어 읽다보면 살짝 지치거나 피로도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나카야마 시치리가 딱 그런 경우였고, 그래서 얼마 전, 1년은 쉬자는 마음까지 먹었습니다.

그 결심을 너무 쉽게 무너뜨린 게 이 작품의 전작인 비웃는 숙녀였고,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머지 후속작인 이 작품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집어 들게 됐습니다.

 

자신의 손은 조금도 더럽히지 않은 채 상대를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절망에 빠뜨리거나

또는 누군가를 살해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희대의 악녀 가오루 미치루.

그녀의 목적은 돈도 아니고 쾌락도 아닙니다.

그냥 툭 하고 머릿속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그 순간 상대를 으스러뜨리겠다는 욕망이 불붙고

누구도 생각해내기 어려운 정교하고 확실한 계획을 세운 뒤 그대로 실천할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평생 모으기도 어려운 돈을 손쉽게 손에 넣지만

딱히 그 돈으로 화려한 삶을 영위하거나 사치스럽게 자신을 가꾸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물욕이나 쾌락과는 거리가 먼 특이한 소시오패스라고 할까요?

 

전작 비웃는 숙녀가 각기 다른 인물들을 상대로 한 가모우 미치루의 폭주 악녀극이었다면,

다시 비웃는 숙녀는 마지막 사냥감을 처치하기 위한 사전 작업들,

즉 사냥감의 주변부터 차례차례 제거해가는 연작 스타일의 단편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냥감의 사지 또는 수족을 제거함으로써 극단적인 압박감을 주는 셈인데,

이것만 보면 이번에는 가모우 미치루가 확실한 목표와 동기가 있는 심판자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스스로 밝히는 이 거사의 계기는 원래 그녀답게 무척이나 쿨하고 건조할 뿐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소시오패스가 가모우 미치루처럼 활동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악몽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나카야마 시치리의 매력인 끝내주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마지막 반전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는데,

분명히 알고 읽는데도 그 서늘함과 짜릿함은 조금도 밋밋해지지 않았습니다.

(‘비웃는 숙녀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다 읽은 뒤 스스로에게 들었던 의문은

과연 가모우 미치루는 악녀인가?”라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조종하고 절망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악녀 같아 보이지만

읽는 내내 한 번도 그녀를 악녀라고 여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악녀인 듯, 악녀 아닌 악녀 같은 그녀라는 옮긴이의 말의 부제는

저의 의문을 그대로 풀어 써놓은 듯 해서 눈에 쏙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전작인 비웃는 숙녀를 워낙 재미있게 읽은 탓에 살짝 신선함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별 0.5개를 빼긴 했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오락성은 여전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전작인 비웃는 숙녀말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과 함께 출간이 예고됐던 작품은

가모우 미치루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한 인물과 2인조로 활약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 설정만으로도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인데

과연 어떤 인물과 듀엣이 될지, 그들의 목표물은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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