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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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몇몇 작품들을 띄엄띄엄 읽긴 했지만 미야베 월드 2을 제대로 완독하고픈 욕심에

올해 초부터 오하쓰 시리즈’, ‘모시치 시리즈’,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를 읽는 중입니다.

그런데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의 첫 작품인 얼간이를 읽은 후에야

미야베 월드 2이 전부 괴담만 다룬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얼간이의 두 주인공 이즈쓰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는 무척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하급 무사라 해도 도신이라는 직책과 함께 후카가와 일대를 순시하는 임무를 맡은 헤이시로는

무척 게으르고, 권태롭고, 일이든 취미든 만사가 귀찮은 인물입니다.

애초 넷째 아들이라 아버지의 도신 직책을 물려받을 일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형들이 요절하거나 양자로 들어가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도신이 됐고,

나이가 4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지인들로부터 늘 애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건이 벌어져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라며 어떻게든 대충 뭉개려고 하고,

힘들거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얼른 발을 빼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런 헤이시로도 자신의 관할구역이자 단골식당이 있는 뎃핀 나가야(공동주택)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자 본능적으로 도신의 본분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헤이시로의 파트너인 유미노스케는 실은 12살 된 소년이자 헤이시로의 외조카입니다.

심지어 장차 헤이시로의 양자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엄청난 미소년인 건 물론 예의도 바르고 심성도 착한데다,

계측에 빠져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측량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희한한 소년입니다.

더구나 헤이시로는 생각지도 못한 추리력을 발휘하여 꽉 막힌 수사를 진전시키곤 합니다.

40대 중반의 헤이시로와 12살 유미노스케의 조합은 언뜻 이질감부터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때론 부자지간처럼 보이기도, 때론 홈즈와 왓슨처럼 보이기도 해서

읽는 내내 유쾌함과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핵심 사건의 판을 짜고 필요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위한 단편들이 배치돼있습니다.

이야기의 주 무대는 후카가와의 서민들이 모여 사는 뎃핀 나가야라는 곳입니다.

간이식당, 떡집, 생선가게, 두부장수 등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뎃핀 나가야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후 썰물처럼 세입자들이 빠져나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만사가 귀찮은 나머지 자신을 보좌하는 고헤이지 한 명만 데리고 다니던 헤이시로는

사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오캇피키인 마사고로, 천재적 기억력의 소년 짱구, 비밀수사관인 일명 까만콩이 그들인데,

특히 마사고로는 미야베 월드 2의 한 주인공인 모시치의 부하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 속 모시치는 미수(米壽), 88세로 설정만 된 채 직접 등장하진 않습니다.)

 

아무튼...

탐욕과 질투와 시기가 빚은 오래 전의 비극이 현재에 이르러 기괴한 사건들을 일으키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거나 영문도 모른 채 공범이 되기도 합니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비해 사건의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꽤나 복잡한 설정과 그에 걸맞은 무수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워낙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고,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듯한 헤이시로가 선사하는 시트콤 같은 분위기도 재미있어서

다 읽고 나면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왔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앞서 읽은 오하쓰 시리즈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가 판타지 호러 괴담이라면,

얼간이로 시작되는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

에도 시대 혼조 후카가와를 무대로 한 본격 수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 주인공 모두 본격 수사물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자아낸 둘의 시너지는 어지간한 슈퍼히어로의 매력보다 더 시선을 끕니다.

덧붙여, 주인공 못잖게 관심을 끈 맛깔난 여러 조연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이후로 출간된 하루살이진상에 계속 등장한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됩니다.

 

사족으로..

번역 제목이 살짝 이상해서 찾아보니 원제도 멍텅구리, 얼간이라는 뜻의 ぼんくら네요.

따지고 보면 헤이시로를 비롯 등장인물 모두를 얼간이라고 지칭해도 큰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역자 후기에도 제목에 대한 설명이 없던데,

혹시 제가 너무 빨리 읽느라 본문에서 언급됐음에도 불구하고 깜빡 놓친 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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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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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미야베 월드 2가운데 어느 시리즈에도 속하지 않는 스탠드얼론입니다.

하지만 미야베 월드 2을 통해 만난 적 있는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수록작도 있고,

다른 작품집에서 이미 읽었던 수록작도 있어서 무척 반갑고 낯익은 책읽기가 됐습니다.

 

미야베 월드 2의 대부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특별한 한두 명의 인물이 계속 등장하는 연작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별개의 인물, 별개의 이야기로 이뤄진 순수 단편집입니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과 하녀의 이야기 스님의 항아리’,

사람 수보다 꼭 하나 더 많은 그림자의 사연을 추적하는 이야기 그림자밟기’,

탐욕에 눈이 멀어 도박을 관장하는 귀신과 악마의 거래를 한 어떤 가문의 이야기 바쿠치간’,

과거의 잘못에 발목을 잡힌 채 아들을 죽이려는 한 상인의 망발을 심판하는 이야기 토채귀’,

살해당한 자의 혼이 살해한 자에게 빙의되어 벌을 내린다는 서늘한 괴담을 다룬 반바 빙의’,

살해된 아이의 피를 머금고 요괴가 된 나무망치의 원혼을 달래는 이야기 노즈치의 무덤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돼있습니다.

 

이 가운데 표제작인 그림자밟기에는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에 등장하는

우직한 오캇피키 마사고로와 천재적 기억력을 지닌 소년 짱구가 등장하여 활약하는데,

재미있는 건 이 스토리는 역시 스탠드얼론인 괴이의 수록작 재티와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괴이를 읽지 않아도 전혀 관계없지만,

읽은 독자라면 반가운 카메오를 만난 듯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에서 주인공 오치카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낭인무사 아오노 리이치로와 괴승 교넨보는 네 번째 수록작 토채귀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이 두 남자가 어떤 인연으로 처음 만나게 됐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세 번째 수록작인 바쿠치간혈안이라는 작품집에 수록됐던 작품입니다.

혈안은 미미 여사를 비롯 쟁쟁한 작가들이 ‘50’이라는 키워드 아래 뭉친 작품집인데,

타이틀이 된 혈안이 바로 미미 여사의 바쿠치간과 동일한 작품입니다.

작가들의 이름값에 비해 만족도가 낮아서 야박한 평점을 줬던 작품집이지만,

미미 여사의 바쿠치간미야베 월드 2을 통해 다시 보니 새삼 다른 맛이 느껴지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일본 출간제목인 반바 빙의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살해된 자와 살해한 자가 빙의를 통해 몸과 영혼을 공유한다는 설정 자체도 소름 돋지만,

빙의 이후의 기괴하면서도 슬프기 짝이 없는 나날들에 대한 묘사는

섬뜩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을 전해줘서 꽤 긴 여운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개별 단편집이다 보니 시리즈물에 비해 몰입감이 다소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고로, 짱구, 아오노 리이치로, 교넨보 등

친숙한 캐릭터들이 등장한 수록작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 괴담의 매력은 몰입감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대단했습니다.

올해 목표로 한 미야베 월드 2막 완전정복까지 이제 몇 편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 읽을 때쯤이면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새 작품이 나와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미미 여사 본인의 의지대로 100편의 이야기가 채워질 때까지

미야베 월드 2이 꾸준히 계속 나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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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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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담 시리즈 미야베 월드 2의 한 작품인 괴이

모두 9편의 짧은 단편들로 구성된, 시리즈 가운데 비교적 가벼운 분량의 작품입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신비한 영적 능력을 지닌 소녀 오하쓰 시리즈

인상은 험악하지만 따뜻하고 재능있는 오캇피키 모시치 시리즈가 종료된 후의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비교적 단순한 소재와 그에 걸맞은 짧은 분량의 스토리로 이뤄져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괴담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결코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타지의 특성은 더 강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공포는 장편에 못잖게 서늘합니다.

, ‘원한과 복수심에 휩싸인 원혼이라는 고전적 캐릭터뿐 아니라

혼을 먹는 마물, 좀비를 떠올리게 하는 산송장, 불로불사의 괴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다운 엔딩이 따뜻한 이야기들도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선한 도깨비가 나오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사건 끝에 감동적인 진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수록작마다 색깔이 다양해서 여느 작품보다 버라이어티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야베 월드 2가운데 장편 또는 오하쓰 시리즈처럼 중편 분량의 연작물을 좋아하지만

괴이같은 짧은 단편집 역시 특별한 간식처럼 별미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미야베 월드 2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괴이가 부담 없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겠는데,

다만 괴이만으로 미야베 월드 2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에피타이저 정도로만 생각하고 진짜 참맛은 좀더 두툼한 분량의 작품들,

가령 미인’(오하쓰 시리즈)이나 흑백’(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또는 스탠드얼론인 괴수전등을 통해 만끽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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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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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안주’, ‘피리술사에 이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고향에서 참혹한 사건을 겪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숙부가 사는 에도로 온 소녀 오치카가

흑백의 방이란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특히 기이하거나 가슴 아픈 괴담)를 들어주면서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단절했던 바깥세상과 화해한다는 것이 시리즈의 큰 틀입니다.

 

에도 시대 괴담들의 집대성인 미야베 월드 2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이 시리즈는

딱히 미스터리의 심도나 충격이 강한 편도 아니고, 호러물로서도 다소 덜 무서운 편이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하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괴담들로 채워져 있고,

에도 시대의 문물을 맛깔스럽게 표현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필력을 만끽할 수 있어서

일단 첫 편을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책갈피를 끼워놓고 쉬워가기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네 번째 작품 속 오치카는 첫 등장 때보다 두 살을 더 먹은 19살 처녀로 성장했고,

그녀가 듣게 된 괴담들 역시 무게감, 스케일, 주제의식 면에서 훨씬 더 묵직해졌습니다.

그림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세상 사이에 을 내려는 한 화가의 이야기(미망의 여관),

우연히 만난 귀신 덕분에 유명 요릿집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부부의 이야기(식객 히다루가미),

수십 년 전 지옥이나 다름없는 산골짜기에서 겪은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준 무사(삼귀),

아름다운 딸들을 신에게 희생양으로 바쳐야 했던 한 향료가게 가문의 비극(오쿠라 님)

거의 중편급의 분량에 가까운 네 작품이 수록돼있습니다.

 

이전 세 작품들도 그랬지만 삼귀의 수록작들은 오치카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에 집착하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오치카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게끔 만드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마지막 수록작인 오쿠라 님은 거의 전방위적으로 오치카를 압박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가문의 저주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평생 고립된 삶을 살았던 괴담 손님 오우메,

고용살이 도중 사고로 집에 돌아와 새 출발을 하게 된 미시마야의 차남 도미지로,

낭인 무사 생활을 접고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된 (오치카의 마음을 흔든) 아오노 리이치로,

그리고 오치카 앞에 새로 나타난 다재다능한 세책방 작은 나리 간이치 등

모든 인물들이 오치카로 하여금 흑백의 방에 갇힌 삶을 내던지라고 조언합니다.

물론 오치카 스스로도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인생에 조심스레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상처가 아문 오치카가 과연 이 시리즈를 계속 이끌어갈지 의문이 생겼는데,

마침 편집자의 후기를 보니 이 다음 작품부터는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온 차남 도미지로와 세책방의 작은 나리 간이치가 눈에 띄었는데,

과연 이들이 오치카와 함께 멋진 3총사가 되어줄지,

아니면 오치카를 살짝 뒤로 밀어내고 새로운 주인공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삼귀의 후속작인 금빛 눈의 고양이가 최근 출간됐는데,

오치카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너무 궁금해서 조만간 구해 읽을 생각입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 스스로 오치카의 연애, 결혼, 양육 등 성장과정을 그리겠다고 공언했으니

오치카 없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가 나올 리는 없을 거란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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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 케이스릴러
이종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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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출간된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청계산장의 재판’, ‘곤충’, ‘붉은 열대어에 이어 네 번째 만난 작품인데,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방범죄, 연쇄살인, 사적 복수, 화상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기억마저 사라진 유능한 형사,

칼을 든 프로파일러란 별명은 물론 조직 내에서도 외딴 섬 같은 존재인 열혈 프로파일러,

그리고 끊임없이 위화감을 갖게 만드는 정교한 설정 등 여러 매력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경감 이수인은 카피캣이란 별명의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던 중 큰 부상을 입습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어 앞을 못 보는 건 물론 충격으로 인해 기억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서울청 프로파일러 한지수 경사는 이수인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씁니다.

또한, 냉각기를 거쳐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카피캣 체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용의자를 지나치게 압박한 끝에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감찰을 받고 있던 한지수는

과학수사팀이 놓친 단서들을 찾아내 자살한 용의자가 실은 살해됐음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카피캣과 연관 있음도 밝혀냅니다.

하지만 이수인의 기억은 여전히 혼란스런 상태이고 경찰 상층부의 압박은 거세지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상태가 좋아진 이수인은 파격적인 방법으로 카피캣을 유인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줄거리 정리 자체가 어려운데

하나는 작가의 설계도가 워낙 복잡한데다 반전 역시 여러 차례 거듭된다는 장점때문이고,

또 하나는, 복잡한 설계도에 비해 다소 모호하고 불친절한 설명이 잦다는 단점때문입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이만한 설계도를 짜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경탄하게 되고,

그 설계도의 디테일을 문장으로 풀어내기 위해 또 얼마나 고생했을지 거듭 놀라게 됩니다.

이런 내용들을 몇 줄의 줄거리로 정리하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다 읽고도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건가?’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 몇 군데 있는데,

문제는 그 대목들이 이 작품의 미덕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지점들이란 점입니다.

사적 복수의 화신으로 보이는 연쇄살인마 카피캣의 목적,

그를 체포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수인과 한지수의 목표,

정치적 야망 때문에 조기 체포에 열을 올리는 경찰 상층부의 실체,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진 사건의 진실 및 후속작을 염두에 둔 듯한 엔딩의 의미 등

독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돼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다들 모호한 상태에서 마무리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지만,

작가는 사건과 인물과 관계들에 대해 좀더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가 쾌감을 만끽할 수 있게 배려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임에도 서사의 두께는 600페이지 급 스릴러에 버금가는데,

그만큼 많은 것이 압축됐고,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 역시 무모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제는 클리셰가 넘쳐나는 사적 복수 코드를 신선하게 창조해낸 점도,

정교한 설계와 연이은 반전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인물에 대한 불친절한 설명과 개운치 않은 마무리,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 몇몇 결정적 순간들 때문에 별 0.5개를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인은 접할 수 없는 범죄수사 잡지의 편집장이란 작가의 이력을 보곤

이 작품의 생생한 디테일의 원천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물론 이 작품의 아쉬움들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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