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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7월
평점 :
‘미야베 월드 2막’ 가운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 오하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17살의 소녀 오하쓰는 남들은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는 영험한 능력을 지녔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뛰어난 사이코메트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전작인 ‘흔들리는 바위’가 시비토쓰키, 즉 시체에 나쁜 영이 깃드는 현상을 소재 삼아,
오랜 원념을 발산하여 끔찍한 살인사건을 일으킨 사령(死靈)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미인’은 망집에 사로잡힌 잡귀가 일으킨 수수께끼 같은 실종사건을
가미카쿠시(神隠し), 즉 ‘불가지한 이유로 사람이 사라지는 현상’이란 관점에서 다룹니다.
망집과 원념으로 똘똘 뭉친 사령이 현실의 사람들에게 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미인’은 제목 그대로 망집과 원념의 근저에 ‘아름다움’이라는,
끔찍한 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설적인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오하쓰가 마주친 사건은 아름다운 10대 소녀들의 연이은 실종인데,
그녀들이 사라질 때마다 핏빛 같은 아침놀이 하늘을 뒤덮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는 진술을 들은 오하쓰는
소녀들의 실종이 납치나 가출 등 현실적인 범죄가 아니라
덴구(天狗, 전설의 요괴) 등에 의한 가미카쿠시라고 확신합니다.
실종된 소녀들이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원망과 증오를 산 적이 있고,
하나같이 실종 직전 벚꽃이 만발한 숲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었으며,
그 꿈속에서 관음보살의 모습을 한 신비한 존재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오하쓰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소녀들의 실종 당시 상황을 추리하는 것은 물론,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탐문과 조사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결국 관음보살의 외형을 띤, 망집에 사로잡힌 끔찍한 원령과 마주치게 됩니다.
‘미인’은 ‘흔들리는 바위’에 비해 호러와 판타지 서사가 훨씬 더 강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현실 속 인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가미카쿠시를 ‘당연한’ 현상으로 여겼고,
그 결과 이승과 저승 사이에 원령이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관음보살을 닮은 원령은 오하쓰 외에도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존재라 현실감이 강했고,
오하쓰의 사건 해결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고양이가 맡고 있다는 점 등 때문입니다.
물론 가미카쿠시를 역이용한 갈취범이라든가 아편 매매를 일삼는 조직적 범죄 등
현실적인 범죄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긴 하지만,
독자의 시선은 역시 호러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인물들과 사건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天狗風’, 즉 일본의 전승 요괴인 덴구(天狗)가 일으키는 바람이란 뜻인데,
개인적으로는 ‘미인’이라는 번역 제목이 훨씬 더 작품과 잘 맞는다는 생각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그 집착이 초래한 파멸에 가까운 비극,
그리고 그 비극으로 인해 태어난 원령이 젊고 아름다운 소녀들을 향해 내뿜는 저주 등
작품 전반에 걸쳐 ‘아름다움’, ‘미인’, ‘화려함’ 등이 강조되기 때문인데,
그런 코드들이 공포 서사와 맞닿으면서 이야기의 폭발력이 더욱 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핏빛 아침놀, 가미카쿠시가 이뤄진 화려한 벚나무 숲, 원념이 깃든 화려한 기모노 등
유독 다채롭고 원색에 가까운 색상들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제작했다면
정말 시각적으로 화려한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득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건 그 작품의 원제가 ‘센과 치히로의 가미카쿠시’라는 점입니다.
호러라는 점만 제외하면 소재도 화려함도 무척 닮은꼴의 작품처럼 여겨졌습니다.)
오하쓰 시리즈는 아쉽게도 이 작품을 끝으로 (현재까지) 더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무사 집안의 후손이지만 산학(算學)에 빠진 채 오하쓰의 ‘짝’이 된 우쿄노스케도,
오하쓰의 오빠이자 범죄수사를 담당하는 오캇피키인 로쿠조도 더는 만날 수 없어 서운하지만,
언젠가는 오하쓰 시리즈가 다시 한 번 출간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