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의 문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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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정보관리회사, 일명 사이버패트롤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 고타로는

같이 일하던 선배가 노숙자들의 연쇄실종사건을 조사하다 실종되자 직접 그를 찾아 나선다.

선배가 실종된 장소로 추정되는 한 유령 빌딩에 숨어든 고타로는

그곳에서 옥상의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괴소문을 확인하러 온 전직 형사 쓰즈키와 마주친다.

도시의 어둠 속, 거대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은

현재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과 연결되고,

고타로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의 힘을 빌려 직접 진상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미미 여사의 작품은 현대물과 시대물을 가리지 않고 믿고 읽는 편입니다.

특히 모방범으로 일본 미스터리에 입문한 저로서는

그녀의 사회성 짙은 서사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지금껏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책읽기를 경험했습니다.

인상적인 표지와 제목으로 유명한 에도 시리즈를 비롯한 시대물 미스터리는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매력까지 잘 배합돼서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별미 같은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소(솔직히... 아주 많이) 낯설고 당황스런 느낌을 피할 수 없었는데,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에도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판타지가 현대물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미 여사라고 해서 현대물 판타지를 쓰지 말란 법은 없지만,

예상치도 못한 뜻밖의 전개에 제가 생각해도 과할 정도의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일단 초반부터 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집니다.

교살 후 희생자의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절단하는 연쇄살인사건,

주인공 고타로의 이웃집 여학생이 연루된 학교 내 왕따사건,

그리고 고타로가 소속된 사이버패트롤에서 감지한 노숙자 연쇄실종사건 등이 그것입니다.

고타로는 노숙자 연쇄실종사건을 조사하던 선배가 실종되자 그의 흔적을 뒤쫓게 되고

오래전부터 방치돼온 한 유령빌딩 인근에서 유력한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 고타로와 함께 투톱 주인공을 맡은 전직형사 쓰즈키는

유령빌딩 옥상의 괴물 조각상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이웃 노파의 진술을 듣곤

형사로서의 촉을 발동하여 남몰래 조사를 진행하던 중 심상치 않은 상황을 목격합니다.

두 사람은 운명처럼 유령빌딩에서 조우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비현실적인 존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사실, 초반에 그 비현실적 존재를 목격한 소녀와 노파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뭔가 지극히 현실적인 트릭이 깔려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미야베 미유키니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는데,

진짜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또다른 비현실적 존재까지 고타로 앞에 나타나자

그때부터 마치 어울리지도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정령’, ‘다른 영역(세계)’, ‘테두리’, ‘시원(始原)의 대종루를 수호하는 전사

명백한 판타지 아이템들이 등장하면서 난독의 증세까지 겪게 됐는데,

그런 탓에 1권은 어찌어찌 다 읽었지만 2권은 계속 읽을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2권에서는 (1권의 엔딩으로 미뤄보아) 고타로와 쓰즈키가 비현실적인 존재의 힘을 빌려

연쇄살인사건, 인터넷의 폐해 등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데,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소화불량 상태에서 더는 몰입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다른 세계의 존재가 등장하는 판타지와 현대물 사회파 미스터리의 조합

제겐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서사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은 (제가 못 읽은) ‘영웅의 서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인 듯한데

그 작품의 소개글을 찾아보니 역시 저와는 인연이 아닌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서평은 혹평이 아니라 취향이 달라 소화하지 못한 사연입니다.

영웅의 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또 미미 여사 특유의 판타지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비탄의 문역시 충분히 열광하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막 출간된 작품이라 한두 달 쯤 지난 뒤에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그 서평들 속에서 제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미덕을 발견한다면

그때라도 비탄의 문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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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살인범
마리온 포우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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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인물이 한 챕터씩 번갈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의 미스터리입니다.

한 명은 옆집 모녀를 살해한 죄로 현재 치료감호소에 구금된 자폐증세가 있는 남자 레이,

또 한 명은 특별한 인연 탓에 레이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변호사 이리나입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문제아 기숙학교를 전전하던 레이는 뛰어난 제빵사가 됐지만

성인이 되고도 사회적 관계에 미숙한 채 수족관 속의 물고기에게만 애정을 쏟습니다.

옆집에 매력적인 여인 로지타가 어린 딸 안나와 함께 이사온 뒤로 레이의 삶은 요동칩니다.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딸을 낳았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이 막장 같은 삶을 사는 로지타에게

레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물심양면으로 헌신합니다.

하지만 그는 로지타와 딸 안나를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체포되고 맙니다.

 

명망 있는 로펌에서 파트타임 변호사로 일하는 이리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들 애런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미혼모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살인범 레이와의 특별한 인연을 깨달은 이리나는

그와의 면회 이후 확실한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결백을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사실, 이 작품의 장르는 미스터리지만, 큰 얼개는 비극적인 가족사입니다.

살인범 레이는 9살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뒤 자폐증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왔고,

변호사 이리나는 위로는 불편한 어머니에, 아래로는 통제불능의 4살 아들에게 시달립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 아빠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레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로지타는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지만

잠자리 파트너 외에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구질구질한 삶을 이어갑니다.

이렇듯 비극적이거나 불안정한 가족사를 끌어안은 인물들이 살인사건으로 엮인 셈인데,

그래서인지 진실이 무엇이든 엔딩이 행복하게 그려지진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살인사건의 진범과 동기와 진실,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 등

미스터리의 큰 그림은 다소 단선적이고 상투적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이리나의 탐정 역할이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한 점,

중요한 변곡점마다 우연에 기대거나 안이해 보일 정도로 쉬운 해결책을 모색한 점,

막판에 드러난 진실 자체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으로 설계된 점이 아쉬웠고,

결국 미스터리는 비극적인 가족사의 무게감에 비해 너무 가볍게 그려졌다는 생각입니다.

(아쉬움의 실체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하고 싶지만, 그럴 경우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고,

출판사의 소개글 역시 그 대목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듯 해서 이 정도만 얘기하겠습니다.)

 

자주 만나기 어려운 네덜란드 미스터리인데다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와 선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미덕이라 할 수 있지만,

미스터리 자체의 힘이 다소 취약했던 점은 옥의 티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2008년에 발표됐는데) 작가의 후속작이 한국에 출간된다면

한번쯤은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족으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제목입니다.

원제인 ‘The Girl In The Dark’조차 작품 내용과 잘 매치되지 않아 보였고,

번역제목인 옆집의 살인범은 스토리는 담고 있지만 마케팅 면에선 부적절해 보였습니다.

제목에 대놓고 살인범이 들어갈 경우 다분히 눈길을 끌려는 상업적 의도가 느껴지거나

반대로, 작품 자체가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선입견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문 중에 등장하는 옆집 괴물, 레이가 훨씬 더 적절한 제목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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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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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다하라 히데키.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전화나 메일이 오는 등 괴이한 일이 반복되자

히데키는 어렸을 적 자신을 찾아왔던 보기왕이라는 괴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도,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 괴물이 왜 이제 와서 나를 만나러 오는 걸까.

보기왕은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히데키의 아내와 딸의 이름까지 언급하면서 그를 점점 공포의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혼자 밤낚시를 즐기지도 못하고, 무서운 영화는 일부러 외면할 정도로 겁이 많은 편이지만

미쓰다 신조의 ‘~것 시리즈작가 시리즈’, 그리고 노조키메등 매력적인 작품들 덕분에

책으로 출간된 일본 호러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호러물을 돌이켜 보면 대체로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원령이나 요괴 등 비현실적인 존재의 공포가 실은 사람에 의한 행위였다. (‘~것 시리즈’)

원령이나 요괴가 인간을 공격하긴 하지만 그 실체는 끝까지 미스터리다. (‘작가 시리즈’)

원령이나 요괴가 실체를 갖고 등장하여 주인공과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인다.

 

보기왕이 온다는 굳이 분류하자면 세 번째 범주에 드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의 호러물을 좋아하고,

이 작품 역시 그런 쪽이 아닐까, 기대했던 탓에

보기왕이 살인과 납치 등 물리적 살상능력을 지녔다는 설정에 살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은은하면서도 뒷덜미를 오싹하게 만들거나 소름 돋게 만드는 차가운 공포도 느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블록버스터 같은 긴장감이 더 강렬한 작품입니다.

 

방문자’, ‘소유자’, ‘제삼자등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있는데

남편 다하라 히데키와 그의 아내 가나가 앞의 두 장의 화자인 반면,

마지막 장은 오컬트 프리랜서 노자키와 뛰어난 영매 자매 마코토, 코토코가 이끕니다.

히데키는 보기왕의 위협이 날로 고조되자 민속학 교수인 동창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를 통해 노자키, 마코토 등과 만나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결계와 부적 등에도 불구하고 보기왕은 히데키의 가족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그들을 도우려던 노자키와 영매 자매까지도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이런 점 때문에 보기왕은 은근한 공포심을 발산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원령이나 요괴가 아니라

조금은 대중적인 영화 속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다양하고 폭넓은 자료조사를 통해 보기왕을 비롯한 원령, 요괴 등에 상세히 설명하고

그것들의 유래와 전승 방식, 각 지역별 특징까지도 일일이 언급함으로써

보기왕이 단순히 전설의 고향식의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독자에게 현실적으로 각인시킵니다.

, 오컬트 프리랜서와 뛰어난 영매 자매를 등장시킴으로써

일반적인 공포심 자극 수준을 넘어선 선과 악의 매력적인 대결 서사를 전개시킵니다.

보기왕이 왜 하필 히데키의 가족에게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는가?’라는 미스터리는

의외의 반전을 내포하고 있어 그 나름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다만, 미쓰다 신조나 오노 후유미 계열의 호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보기왕이 온다의 대중적이고 영화적인 서사가 다소 내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직접 살상능력을 갖지도 않은 대상이 더 두렵게 느껴질 수 있고,

그런 대상으로 인해 치명적 피해가 발생하는 이야기가 더 큰 공포심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도 하겠지만,

엔터테인먼트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충분히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인 건 분명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2019년에 영화로 나올 예정이라는데,

솔직히 극장까지 가서 대놓고 볼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원작을 봤으니 큰맘 먹고 도전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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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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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 시체를 유기하려던 용의자가 수백 명의 목격자 앞에서 체포되었다.

증인과 증거, 진술을 확보한 검찰이 용의자를 정식 기소하지만,

그는 재판정에서 갑자기 진술을 번복하며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재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인 전직 검찰관이

십여 년 전의 살인사건의 진실을 끈질기게 조사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젊음, , 명예, 미래, 가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 바친 한 남자의 삶이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오랜만에 대륙의 힘이 느껴지는 중국 미스터리를 만났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사악한 최면술사의 주하오후이, ‘심리죄의 레이미와 함께

중국 추리소설계 3대 인기작가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다분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쯔진천은 그들과는 체급 자체가 달라 보입니다.

물론 이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워낙 묵직하고 견고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지만,

캐릭터를 묘사하는 힘이나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 모두 대작의 분위기를 내뿜는 작품입니다.

굳이 소감을 비교하자면 찬호께이의 ‘13.67’의 압도감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제목이 좀 독특한데, 실은 원제인 장야난명(長夜難明)을 그대로 풀어쓴 번역제목입니다.

말하자면, 지난한 어둠의 시간을 지나 어렵사리 만난 밝음이란 뜻인데,

(중국에서는 정치적 암흑기를 비유한 말이라고도 합니다.)

이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인 전직 검찰관 장양은

신참 시절에 휘말린 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캐고 거대권력이 짓밟은 피해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끝이 없어 보이는 어둠 같은 10년의 세월을 자신의 모든 것을 내팽개치며 질주한 인물입니다.

 

시작은 무척 미미했습니다.

무난한 승진가도를 앞두고 골치 아픈 사건을 떠맡기 싫었던 장양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던 한 남자의 죽음에 관여하게 되는데,

수사를 진행할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추악한 이면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더럽고 깊은 늪에 발을 담그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증인은 실종되거나 살해되고, 중요한 증거와 단서 역시 훼손되거나 사라지면서

장양의 수사는 10년 동안 한시도 평탄한 길을 걷지 못합니다.

그의 곁에는 돌직구 경찰 주웨이, 재테크에도 능한 타고난 법의관 천밍장이 있었지만,

경찰과 검찰의 비호를 받는 재벌, 폭력조직, 권력자의 카르텔을 깨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 날, 이들은 희대의 살인극을 기획합니다.

그것만이 10년 전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특별수사팀장 자오톄민과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수학과 교수 옌량이

자백을 번복한 살인범 장차오를 취조하며 파묻힌 진실을 캐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장차오에게 살해된 장양이 추악한 권력자들과 싸워온 지난 10년의 기록들입니다.

민간인임에도 수사팀에 합류한 옌량은 살인범 장차오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수사팀장인 자오톄민에게 피살된 장양에 관해 조사할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장양의 과거를 알면 알수록 장차오의 범행이 결코 평범한 살인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현재 시점의 자오톄민과 옌량의 조사에 발맞춰 장양의 과거사가 한 챕터씩 전개되는데,

그 내용은 앞서 언급했듯 장야난명이라 할 수 있는 장양의 투쟁 기록이기도 합니다.

 

사실, 힘없고 외롭지만 정의감 하나로 똘똘 뭉친 주인공이

거대한 부정부패 세력과 싸우는 이야기의 전형적 요소가 빼곡하게 들어찬 작품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미덕이라면 10년 동안 내내 패배의 쓴맛만 들이켰던 장양 일행이

더는 밀릴 수 없는 막판에 이르러 도박처럼 내던진 마지막 카드의 의외성과 비장미입니다.

독자는 중반부쯤에 이르러 살인범 장차오의 진의를 얼핏 깨달을 수는 있지만,

장양 일행의 마지막 카드10년 전의 진실을 끌어올리는 과정을 그린 클라이맥스는

제법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다만, 장양의 과거사가 상투적이긴 해도 묵직한 서사의 힘을 지닌 반면,

자오톄민과 옌량의 현재 시점의 수사는 다소 수동적이거나 모호한 부분이 많고,

장양의 과거사 챕터와 유기적으로 맞닿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시점의 주인공들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과거의 진실을 찾아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진술 듣고 추리하기이상의 특별한 매력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도 자오톄민과 옌량이 뭘 했지?”라는 의문이 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0.5개가 빠진 것도 바로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옌량이 주인공을 맡은 추리의 왕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쯔진천의 작품 중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걸 보면

아마 대중성이나 작품성 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쯔진천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화권 미스터리를 꽤 읽었지만 나름 작품마다 편차가 좀 있다고 느꼈고,

찬호께이 외에는 후속작을 기대하는 작가가 딱히 없었는데,

이제 그 목록에 쯔진천을 올려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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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리더 -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 스토리콜렉터 68
크리스토퍼 판즈워스 지음, 한정훈 옮김 / 북로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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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는 ‘Kill File’이지만 주인공의 특별한 재능(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마인드 리더라는 친절한(?) 번역제목이 붙은 것 같습니다.

어딘가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존 스미스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은

자신도 기억 못하는 언젠가부터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됐고,

그 재능을 알아본 CIA에 의해 조련되면서 더욱 더 강력한 초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 상대의 시각 기능을 뒤흔들어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자신이 겪은 최악의 트라우마를 상대의 뇌에 투사하여 급격한 패닉에 빠지게 할 수도 있으며

텔레파시(?)를 통해 상대의 생각 자체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단순한 마인드 리더가 아니라 마인드 조작자에 버금가는 인물이란 뜻입니다.

 

CIA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사설 컨설턴트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억만장자 컴퓨터 천재 슬론으로부터 엄청난 제안을 받습니다.

자신의 알고리즘을 훔쳐간 엘리 프레스턴을 응징해달라는 것인데,

프레스턴은 항간에 제2의 저커버그로 불릴 정도로 부와 기술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대저택이 있는 무인도를 통째로 99년 간 무상임대해주겠다는 말에 존은 의뢰를 받아들이지만

프레스턴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일은 틀어지기 시작하고, 존은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하나는 존이 갖은 고난 끝에 슬론의 의뢰를 해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과거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작품이 시리즈물로 확장될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주인공을 설명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꽤 많은 분량이 그의 과거를 위해 할애됐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현재의 미션보다 그의 과거 성장사가 더 흥미롭게 읽혔는데,

그건 입양, 군 입대, CIA에서의 훈련 및 실전 등 과거 스토리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의 미션이 다소 단선적이고 공식대로만 흘러간 탓도 있습니다.

 

대저택이 딸린 무인도를 무상으로 주겠다는 억만장자의 의뢰 목적도 다소 불명확하고,

프레스턴의 야망과 목표, 또 존의 목숨까지 제거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도 잘 모르겠고,

사면초가에 처한 존이 큰 위기들을 벗어나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과정은 너무 쉬워 보입니다.

가장 심플하고 교과서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웅 스토리랄까요?

그에 비해 이런저런 굴곡도 많고 반전도 있는 과거사가 더 흥미롭게 읽힌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특이한 주인공 캐릭터 자체는 매력적입니다.

상대의 생각을 읽어냄으로써 은밀한 비밀이나 현재의 감정 등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상대의 뇌를 통제함으로써 오감과 행동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물론 이 능력이 특별한 은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읽고 싶지 않은 타인의 생각들이 끝없는 소음처럼 밀려들 수도 있고,

그 누구와도 인간적인 감정교류를 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쩌면 저주에 가까운 능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 상대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있을 경우 상대가 물리적으로 느끼는 고통까지

고스란히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무척 위험한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의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한 적절한 설정으로 보이긴 한데,

다만, 단순히 마음을 읽는 차원을 넘어 완벽한 통제를 휘두르는 슈퍼히어로가 되다 보니

도대체 존의 능력의 한계치는 어딘가?”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무한한 능력이 미션 완료 과정을 좀 평이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고,

그래서 다 읽은 뒤 현재 시점의 이야기만 복기해보면 다소 맥빠진 느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는 꽤 구미가 당기는 원작이 될 것 같고,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실제로 영화화 가능성이 높다는 뉴스도 나온 듯 합니다.

이 특별한 주인공 캐릭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분량도 그리 길지 않으니 주말 한나절이면 충분히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족으로..

특별히 어디가 문제라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직역이라는 인상을 받은 문장도 꽤 있었고,

분명 한국어인데 맥락이나 문장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좀 있었습니다.

북로드 작품 중에 이런 인상을 받은 경우가 잘 없는데, 저만의 오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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