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라이즈 아르테 미스터리 16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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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Lies’‘Real’을 덧붙인 번역 제목은 나름 운치(?) 있어 보입니다.

주인공 조셉을 궁지로 몰아넣는 수많은 거짓말들은

‘Real’이란 수식어가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 끔찍하고 진짜 같기 때문입니다.

그 거짓말들에 의해 포위당한 채 살인용의자로 전락하는 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잘 짜인 거짓말이 사람 하나 날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조셉은 호텔에서 아내와 심상치 않은 만남을 갖던 남자를 추궁하던 중 밀쳐 쓰러뜨리는데

죽은 게 아닌가 의심됐던 그 남자가 조셉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날 이후 사라진 남자로부터 갖은 협박과 비아냥이 날아들고,

조셉은 자진해서 경찰에 신고까지 하지만 사태는 오히려 조셉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조셉이 제출하는 단서는 거꾸로 조셉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부작용을 낳게 되고,

아내와 남자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하는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조셉은 어떻게든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사라진 남자를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마지막에 알게 된 끔찍한 진실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셉의 가장 큰 미션은 자신이 살해한 남자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 남자를 찾아내야 무고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셈인데,

그 남자는 SNS와 컴퓨터 해킹, 거짓 약속 등을 통해 조셉을 약 올리기만 할뿐,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라진 그 남자의 거짓말이 경찰은 물론 지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조셉의 삶은 빠른 시간 안에 완벽하게 붕괴되고 맙니다.

그야말로 조셉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일입니다.

 

사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중반도 되기 전에 범인을 알아냈다고 의기양양할 수 있지만,

작가는 전형적인 범인 찾기와는 거리가 먼 나름의 반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집착, 욕망, 애증, 이기심 등 전형적인 동기가 깔려있긴 해도,

막판에 드러난 진범의 정체는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입을 통해 다소 결과론적인 설명이 부연되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 이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조셉을 살인범으로 옭아매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트릭(거짓말) 하나하나에 대해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SNS와 스마트폰을 통해 혼란을 야기하고, 경찰의 동선과 수사의지마저 통제한 진범의 능력은

때론 너무 리얼하고 현실적이어서 놀랍기도 했지만,

때론 범인을 과유불급의 능력자로 만든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빈틈없이 세심하게 설계된 거짓말들에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너무 빈틈이 없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만큼이나 영상물에도 잘 어울리는 스토리로 보였는데,

2017년에 출간된 작품이니 곧 영상화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과도한 능력을 가진 범인이라든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부족해 보인 현실감만 보충한다면

충분히 재미와 경쟁력을 갖춘 영상물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진범 찾기, 누명 벗기, 심리스릴러 등 다양한 코드가 뒤섞인 엔터테인먼트 스릴러를 찾는다면

리얼 라이즈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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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평선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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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유리갈대에 이어 세 번째 만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입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빙평선역시 훗카이도 동부 작은 항구도시 구시로가 주된 배경입니다.

전작들이 구시로 외곽의 습지가 주 무대였다면, ‘빙평선은 구시로 곳곳의 사계절을 비롯

겨울이면 유빙으로 둘러싸이는 오호츠크해의 작은 포구마을에까지 무대를 확장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대로 사쿠라기 시노는 인물풍경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만큼 인물풍경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경우는 무척 보기 드물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가오는 해무 때문에 도시 전체가 갯내에 휘감겨 있었다.”

이 도시의 안개는 바닷물을 머금고 여름 거리를 바다 밑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야기의 무대이자 작가의 삶의 터전인 소도시 구시로의 풍경에 대한 묘사는

극적이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침잠하는 느낌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불온한 기운도 느껴지는가 하면,

어딘가 서정적이거나 애틋한 감상에 젖게 만들기도 하고,

, 짙은 해무 속에 무엇이든 감출 수 있을 것 같은 관능적인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이런 풍경속에서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구시로의 인물들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온갖 감정에 휩싸인 채 살아갑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들의 삶은 마치 짙은 해무 속에 갇힌 것처럼 보입니다.

대도시로 도망쳤지만 결국 구시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남자,

내일이 없는 구시로에서의 삶이 답답하지만 타협과 자기 위로로 삶의 균형을 맞추는 여자,

도쿄 며느리라는 비아냥과 내리막길 뿐인 구시로에서 적극적으로 도망치려는 여자,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이발사가 되어 박제 같은 삶을 살다가 뜻밖의 구원을 만난 남자 등

마치 구시로에게 발목을 잡힌 채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뒷표지의 한 줄 카피는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얽매이고, 무언가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

황량한 대지만큼이나 척박한 삶 속에서 저항과 순응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

 

그렇다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불행하거나 피폐한 삶을 산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주연 또는 조연을 맡은 여성들은 남성이나 풍경에 비해 아주 단단하고 든든합니다.

여섯 편의 수록작 중 세 편은 남성이, 세 편은 여성이 화자를 맡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어느 쪽이든 작가의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여성 화자의 경우 대부분 부당하게 구속된 삶을 깨뜨리는 능동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고,

남성이 화자로 등장하더라도 독자의 시선은 어느 새 저절로 조연 여성을 향하게 됩니다.

대도시에서 실패하고 귀향한 뒤에도 그저 철없고 이기적일 뿐인 남자를 다독여 성장시키거나,

퇴폐적이고 관능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누구에게도 사육당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오랜 기다림 속에 작은 행복을 얻었지만 끝내 자기 손으로 그 파국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왜소해 보이고, 본능에만 충실하거나 아직 미숙한 캐릭터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소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바다까지 얼려버리는 혹독한 겨울, 짙은 해무로 휩싸이는 축축한 여름,

그리고 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배지의 분위기를 내뿜는 몰락 직전의 소도시의 암울함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든 파괴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계하는 평범한 여성들의,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은은하고 깊은 심도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족 같지만, 때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에 관능’, ‘성적 욕망이라는 포장을 씌우곤 하는데,

실제로 매 작품마다 그런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뭔가 야릇한 냄새를 풍길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이 작품 속의 성적 욕망은 서글프거나 애틋한 정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빙평선의 경우 전작들에 비해 그 정서가 좀더 진하고 깊게 배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서글픈 욕망 때문에 인물풍경이 훨씬 마음 아프게 읽혔습니다.

 

빙평선은 사쿠라기 시노의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이후에 출간된 호텔 로열이나 유리갈대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쿠라기 시노의 일관성 있고 힘 있는 필력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밝고 빛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감히 권하기 어렵지만,

이 투박한 서평의 분위기에 호기심이 이는 독자라면,

해무와 유빙으로 포위된 채 침잠한 듯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들을 찬찬히 음미해볼 것을 조심스레 권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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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킬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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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부살인업자 방의강 시리즈의 존재는 물론 작가의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우연히 접한 죽어도 되는 아이를 재미있게 읽은 덕분에 시리즈 완독에 도전하기로 했고,

이제 유령리스트블라인드 코너를 거쳐 프리퀄에 해당하는 퍼스트 킬까지 왔습니다.

 

방의강은 무자비한 청부살인업자지만, 한편으론 꽤나 소심하고 겁이 많은 중년남입니다.

앞서 읽은 작품들에서 이런 묘한 언밸런스가 이질감보다는 블랙유머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퍼스트 킬은 실업자 방의강이 어떻게 전설의 킬러가 됐는지를 상세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창업의 유혹에 넘어가 빚까지 진 채 실업자가 된 방의강은

자유롭고 구속받을 일 없는 돈벌이를 찾다가 엉겁결에 청부살인업에 발을 담급니다.

작가라는 닉네임을 단 그는 꽤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고용주의 눈길에 들게 됐고,

연이은 미션과 아르바이트까지 제안 받는 등 업계에서 서서히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소소한 탐욕을 부린 탓에 방의강은 목숨이 100개라도 모자랄 싸움판에 휘말리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업계의 전설이 된 것은 물론 어마어마한 부까지 손에 넣게 되는데,

거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기는 방의강의 청부살인 입문기가 짜릿하게 펼쳐집니다.

 

일단,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물의 미덕은 여전합니다.

아내에게 기 한 번 제대로 못 펴는 소심함에, 특전사 출신임에도 이젠 뱃살 두둑한 30대지만

방의강은 타고난 본능처럼 킬러로서의 재능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거침없이 발휘합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겪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과 행운은 물론 예상치 못한 도움의 조합으로

매번 그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살아남습니다.

, 피와 살이 튀는 와중에도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는

방의강 시리즈만의 독특한 맛을 위한 특별한 양념으로서 역할하고 있습니다.

 

전작들을 통해 만났던 매력적인 조연들이 초보 킬러 방의강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 방의강의 최대 적으로 보였던 최회장이나 진회장과는 어떤 식으로 악연을 맺게 됐는지,

무엇보다 방의강이 자랑하는 그 엄청난 재산이 어떻게 축적됐는지 등

꽤 궁금했던 사연들을 친절히 설명해준 프리퀄로서의 매력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시리즈라는 게 원래 출간 순서대로 읽어야 제 맛인 건 사실이지만,

방의강 시리즈의 경우 이 작품부터 먼저 읽어야 나머지 작품들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만,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방의강이 킬러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위화감이었습니다.

돈도 벌고,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직장을 고민하던 방의강이 왜 킬러를 선택했을까?

동네 형의 소개로 킬러 회사에 취직하는데, 이 이상한 취직이 너무 쉽게 이뤄진 건 아닐까?

특전사 출신이라지만 칼을 쓰는 법은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흉내낸 게 전부이고

완력이나 총기에도 익숙하지 않은 방의강의 맹활약은 단지 본능이란 걸로 다 설명되는 걸까?

 

말하자면 평범한 소시민이 킬러로 입문하는 절차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방의강이 대단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면 그 역시 비현실적인 설정이겠지만,

어렵게 진화했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쉬운 비약을 통해 킬러가 된 것 같아서

프리퀄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대목이 후루룩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뜻밖의 수확이라 할 정도로 방의강 시리즈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준 시리즈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두 네 편이 출간된 시리즈를 다 읽고 나니

벌써부터 후속작이 언제쯤 나올지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그 전에 책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전작 왼팔을 읽어볼까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하반기에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무모한 기대도 함께 가져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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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코너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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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살인청부업자 방의강은 은퇴 후 아내와 평온한 삶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의 평온은 갑작스레 달려온 차에 아내가 받히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런 아내를 죽이기 위해 병실에 잠입한 킬러가 있었다.

방의강이 추격에 나선 뒤 아내는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아내의 죽음 뒤에 숨겨진 음모가 있다는 것이 분명한 상황.

방의강은 아내를 살해한 범인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결의로 일어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죽어도 되는 아이로 뒤늦게 알게 된 킬러 방의강 시리즈의 매력에 푹 빠져

시리즈 첫 편인 유령 리스트부터 차례차례 읽고 있는 중입니다.

블라인드 코너는 그 두 번째 작품으로 방의강의 아내가 살해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평상시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고 설렁설렁 대문 밖을 나선 아내가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과속 차량에 치인 뒤 병원에서 사망하자

방의강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아내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방의강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모르던 아내의 사생활이 드러나고, 예기치 않게 여러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은 물론

우연과 우연이 비현실적으로 겹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읽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방의강은 물론 악당들로 하여금

집안에 돌아다니는 날벌레를 죽이듯 너무 쉽고 태연하게 살인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물론 방의강의 살인은 나름 명분도 있고 정의로운 복수심이 배어있긴 해도

간혹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너무 쉽게 자행됩니다.

악당들의 소시오패스로서의 잔혹함은 더욱 끔찍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는데,

애초 방의강의 아내를 살해한 동기는 말할 것도 없고,

목적과 쾌락을 위해 살인을 밥 먹듯 저지르는 대목은 도저히 익숙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자에 따라 재미와 불편함 사이에서 꽤나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품의 최고의 소시오패스는 물론 주인공 방의강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겁도 많고, 소심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처가라는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소시오패스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거부감을 어떻게든 상쇄시키려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그런 노력이 적잖이 성공한 것으로 보였고,

특히 곳곳에 배치된 지독한 블랙유머 역시 작품의 독기를 빼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읽은 최근작 죽어도 되는 아이가 구성이나 스토리 면에서 촘촘하고 잘 설계됐던 반면,

시리즈 첫 작품인 유령 리스트는 어딘가 좀 복잡하기만 할뿐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블라인드 코너는 굳이 평가하자면 딱 중간쯤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마지막 진실을 밝히면서 왜 방의강이 사건에 휘말리게 됐는가?’를 설명하는 지점에서

약간은 납득하기 어려운 억지스런 우연이 강요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부분만 제외하곤 재미도 있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쫄깃함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반전으로 설정된 내용은 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탓에 감흥이 크진 않았는데

그 부분이 좀더 그럴듯하게 설계됐다면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졌을 거란 생각입니다.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출간됐고, 이 작품의 후속작인 퍼스트 킬만 못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가 호응을 얻어서 계속 꾸준히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좀 과도하게 잔혹하고, 밥 먹듯 벌어지는 살인이 아주 약간 불편하긴 해도

주인공 방의강을 비롯 고정출연하는 조연들의 맛깔스런 캐릭터는 물론

한국 장르물 가운데 이만큼 재미와 긴장감을 겸비한 스토리를 찾아보긴 힘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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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리스트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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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살인청부업자 방의강은 과거 조직의 보스인 사장늙은이의 호출을 받는다.

사장늙은이의 아들이자 청부살인업계의 거목인 다이스컨설팅의 정실장이 살해당했다는 것.

자신을 청부업계로 이끈 정실장에 대한 의리로 위기에 처한 정실장의 아내를 찾아 나서는데,

방의강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등장한다.

정실장의 죽음 뒤에 도사린 유령 리스트의 비밀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진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방의강의 목숨부터 날아갈 판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죽어도 되는 아이로 처음 만난 킬러 방의강 시리즈의 첫 편인 작품입니다.

청부살인, 시체처리업자, 무자비한 총격전 등 한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정이 난무하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전개되는 스토리 덕분에 그런 비현실성은 쉽게 망각하게 되고,

오히려 짜릿한 킬러 액션의 매력을 듬뿍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방의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목표물의 목숨을 거둬들이는 냉혹한 킬러지만,

동시에 겁도 많고, 죽음의 위기에선 바지자락을 적시기도 하는 평범한 남자이기도 합니다.

혼잣말처럼 불평불만을 궁시렁대기도 하고, 썩은 수준의 블랙유머도 수시로 구사하는데,

총잡이 청부살인업자라는 비현실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방의강이라는 캐릭터에게 몰입할 수 있는 건 아마 이런 인간적인(?) 면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부여된 미션은 과거 보스의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위기에 처했을지 모르는 보스의 며느리를 구해내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방의강은 인간의 몸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잔혹한 폭력조직과 마주하게 되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거쳐 겨우 자신의 미션을 클리어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방의강의 슈퍼맨 원맨쇼보다는 사실감 높은 팀플레이를 설정했습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하기 어렵지만 돈이라면 기꺼이 한편이 돼주는 극강의 킬러도 등장하고,

명백히 적으로 만났지만 과거 인연으로 어쩔 수 없이 방의강을 도와주는 킬러도 등장합니다.

이런 설정 없이 무작정 방의강 혼자 모든 걸 해결했다면

아마 이 작품은 킬러 액션이 아니라 판타지로 흘러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마지막까지 다 읽고도 이 작품 전체의 인물구도나 사건개요가 일목요연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목이자 방의강의 미션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인 유령리스트가 뭘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방의강을 둘러싼 거대한 세력들 간의 관계도 굉장히 모호할 뿐입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주인공의 목표가 무엇이고, 등장인물간의 전사(前史)도 애매하다보니

장면 하나하나는 재미있게 읽혀도 큰 그림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직전에 읽은 이 시리즈의 최신작 죽어도 되는 아이는 모든 것이 선명하고 분명해서

재미와 함께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이 작품이 시리즈의 첫 편인 탓에 이런 맹점들이 드러난 게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이 작품 뒤로 블라인드 코너’, ‘퍼스트 킬이 출간됐는데,

조만간 이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잔인한 킬러의 세계를 그린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지만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본업에 충실한 청부살인업자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의 중독성이

기대 이상으로 강렬하게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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