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대로
켄 브루언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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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소한 미첼 앞에 호화로운 생활을 미끼로 달려드는 범죄의 그림자들.

그러나 죗값을 치르고 나오자마자 다시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 마뜩지 않았던 그는

우연히 은퇴한 여배우 릴리언의 저택에서 잡역부로 일을 하게 된다.

과거의 영광에 빠져있는 릴리언과 집사 조던의 묘한 관계는 미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릴리언 역시 미첼의 거친 매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미첼은 조직 보스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 한편, 우연히 만난 여인과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 두 만남은 미첼에게 예기치 못한 파국을 몰고 오게 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밤의 파수꾼으로 만났던 켄 브루언을 1년 반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지독한 독설과 비아냥, 독특한 주인공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릴러 또는 누아르의 미덕이 기대했던 만큼 잘 안 보여서 꽤 실망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런던대로에서는 작가의 명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영화(‘선셋대로’, 1950, 빌리 와일더 감독)를 원작으로 한 소설입니다.

보통,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드뭅니다.

더구나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다는 건

어지간히 그 작품에 꽂히지 않고는 도전하기 쉽지 않은 일이죠.

재미있는 건, 이렇게 영화를 각색한 소설을 이용하여 또다른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런던대로는 전형적인 누아르입니다.

갓 출소한 미첼은 대단히 폭력적이고 주저없이 범죄에 가담하면서도

거리의 노인을 폭행한 10대들을 응징하고, 죽은 노인을 위해 진실한 애도를 표하는가 하면,

새로 만난 연인을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는 순정남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미덕을 모두 갖춘 선한 악당이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홍콩 누아르의 대표선수 주윤발이나 착한 킬러 레옹이 쉽게 연상되기도 합니다.

 

미첼은 절친의 불법적인 수금을 돕기도 하고, 과거 동료들의 복면강도에도 가담하지만,

한편으론 조직의 중간보스 자리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대신 우연히 제안 받은 건실한 일자리는 마다하지 않는데,

바로 그 일자리가 은퇴한 노배우 릴리언의 집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의 미첼은 60대 노배우에게 욕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성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품으며 미래를 설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미첼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미첼처럼 충동적이거나 오락가락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런던대로는 이렇듯 사랑, 욕망, 범죄 사이를 부유하는 미첼의 삶 중

짧은 한 토막을 뽑아내어 누아르로 포장한 작품입니다.

나름 반전도 있고, 누아르다운 폭력성도 적절히 가미된데다 비극성도 띄고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이야기의 방점이 정확히 어디에 찍혔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고,

미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모호해서

다 읽고도 한 줄로 정리하기 어렵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 사랑(새로운 출발), 욕망(노배우와의 에로틱한 관계), 범죄(그를 스카웃하려는 조직보스)

어느 하나도 이 작품의 메인 테마 자리를 확고히 꿰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분량마저 짧아서 이제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하던 시점에 마지막 페이지가 등장합니다.

맛난 음식이 나올 것 같았는데, 결국엔 변죽만 울리다 만 느낌이랄까요?

분위기나 캐릭터 모두 끝내주게 매력적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저의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 아쉬움은 앞서 읽은 밤의 파수꾼때와 거의 닮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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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마 저택 살인사건
아마노 세츠코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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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출간된 작품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랜 고전미가 느껴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중견 건설회사 회장 저택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연이어 사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1차적 단서와 정황만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만,

도무지 위화감을 지워낼 수 없던 관할서 3총사가 집요한 조사 끝에

사건 당시 저택 안에 있던 가족-지인 가운데 진범을 포착하는 내용입니다.

 

소재나 설정만큼 이야기의 흐름도 무척 고전적입니다.

각 인물들의 복잡한 동선, 시간대별 알리바이, 범행을 감추기 위한 갖가지 트릭이 등장하고,

형사들은 지루할 정도로 교과서적인 심문과 조사를 이어갑니다.

페이지가 휙휙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어딘가 올드해 보이는 장치들과 너무 정직한 서사들 때문에

간혹 느슨함 또는 동어반복이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제목에 저택이나 이 들어간 미스터리는 당연히 밀실 코드를 품기 마련이고,

범인은 반드시 이 안에 있다는 대전제 때문에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 이런 경우 작가는 대체로 유력한 용의자또는 악당 캐릭터를 하나쯤 만드는 법인데,

이 작품에는 그런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아서 더더욱 엔딩이 궁금해집니다.

(반대로, 용의자도 악당도 없어서 긴장감을 별로 느낄 수 없었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막판에 드러난 진범의 트릭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트릭이 절반은 약, 절반은 독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입니다.

의외의 범인을 드러내기 위한 설정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그 트릭 자체가 독자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약간은 변명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더 놀랐던 건 이 작품을 원작으로 스페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는데,

트릭 자체가 드라마 시작과 함께 공개된다면 맥이 탁 풀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점을 감안해서 제작됐겠지만

재미 면에서 꽤 중요한 를 포기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만에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일본 미스터리를 읽어서 반갑기도 했고,

조금은 쉽고 안이하게 사건이 해결된 듯해서 아쉬움이 남기도 한 작품입니다.

, ‘관할서 3총사의 캐릭터가 좀 단순하긴 해도 매력적으로 읽힌 덕분인지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출간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택이나 이 들어간 제목을 좋아하거나 너무 복잡하고 잔혹한 이야기에 질린 독자라면

좀 심심하다 싶게 양념이 덜 들어간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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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같은 사람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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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근처 산 중턱에 버려진 냉장고에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된다.

벌거벗은 시신은 혈흔이나 지문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이 닦인 상태다.

냉장고의 주인인 서연은 중고 사이트를 통해 냉장고를 팔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서연은 곧 혐의에서 풀려나지만 냉장고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소년이

자신이 근무했던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의 가해자임을 알게 되곤 큰 충격을 받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 짓하다에 이은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사실 전작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못했던 터라, 읽을까 말까 꽤 고민했던 작품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작의 아쉬움들이 고스란히 재방송된 느낌이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은 분량(340여 페이지)에 어울리는 소소한 규모지만

600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분량에 어울리는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담당형사, 과학수사팀, 지능수사대, 용의자와 피해자, 그들의 가족, 그들의 이웃 등

거의 대하드라마 급 출연진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거의 단역에 가까운 인물의 개인사까지 언급하는 것은 물론,

굳이 왜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인물들에게까지 적잖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하지만 주인공 김성호는 분량도 소소하고, 비중도 조연인 형사에 비해 심하게 왜소합니다.

그가 이 작품의 메인사건을 접하는 것은 140페이지 근처인데,

그 전까지 그에게 할당된 내용은 전작 , 짓하다와 연관된 전사(前史)들입니다.

문제는, (오래 전이긴 해도) 그 작품을 읽은 저조차도 무슨 상황인지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명 자체가 무척 불친절하다는 점입니다.

메인사건을 접한 후에도 김성호는 주인공이 아니라 방관자처럼 이리저리 부유합니다.

, 그가 용의자와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 역시 프로파일러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사건 역시 이웃의 이야기인지, ‘학폭 이야기인지, ‘소시오패스의 탄생기인지 헷갈릴 정도로

나아갈 방향을 잃고 산만하게 그려집니다.

다 읽고도 어떤 사건,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려 한 것인지 무척 모호하게 여겨졌습니다.

인물은 과도하게 많고, 주인공은 메인 사건에 그다지 몰입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프로파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프로파일링하는 대목이 별로 눈에 띄지 않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대신 작가는 현장조사나 부검 등 디테일한 지식 설명에 공을 들였는데,

솔직히 너무 장황하고 그다지 궁금증이 생기지도 않아서 스킵하듯 넘어가곤 했습니다.

전작인 , 짓하다의 서평에서도 프로파일링에 관한 지식들을 강의하듯 주입하는 느낌.”,

자료 조사한 내용을 그대로 읊는다는 느낌.”이라고 언급한 걸 보면

이런 디테일한 묘사가 작가의 특별한 습관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 같다.’는 게 저의 한 줄 평가입니다.

다 읽고도 머릿속에 주인공이 뭘 했는지, 무슨 사건을 다뤘던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건

미스터리로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 자체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반증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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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에게 장미를
시로다이라 교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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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인공 명탐정이 같은 공간, 같은 인물들이 얽힌 두 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작 중편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첫 수록작인 메르헨 난쟁이 지옥은 단순해 보이지만 치밀하게 설계된 범인의 트릭을

비범한 명탐정이 속 시원하게 풀어내는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그에 반해 두 번째 수록작인 독배 퍼즐은 밀실 미스터리를 연상시키는 기이한 사건과 함께

명탐정의 트라우마를 디테일하게 그린 범죄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두 작품 모두 갓난아기들의 뇌로 만들어진 전설적인 독약 난쟁이 지옥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 엽기적인 설정은 말 그대로 설정일뿐 그 이상의 불쾌함을 자아내진 않습니다.

메르헨 난쟁이 지옥30여년 전 치명적인 독약 제조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악연이

현세에 와서 우연과 운명을 거쳐 지독한 살인극을 일으키게 되고,

사건에 초대받은(?)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가 진범의 교묘한 트릭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독배 퍼즐은 앞서 객관적 입장의 해결사로만 등장했던 세가와 미유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사건의 진상 자체보다는 과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언제나 옳은 일인가?’라는,

탐정 입장에서는 꽤나 본질적인 존재론적 문제와 함께

유년기부터 명탐정으로 불렸던 세가와 미유키의 깊은 상처를 집요할 정도로 깊게 다룹니다.

 

두 작품 모두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의 비범한 추리와 거듭되는 반전이 눈에 띄는데,

24살에 쓴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입니다.

그 덕분에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지만,

거듭되는 반전과 복잡하고 정교한 설계가 때론 가독성을 떨어뜨린 것도 사실입니다.

뭐랄까... 진실을 설명하는 세가와 미유키의 해설이 어딘가 결과론적으로 보인 적도 있었고,

거듭되는 반전 가운데 한두 군데는 굳이 없었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족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거의 100% 세가와 미유키의 트라우마 묘사를 위한 설정이었는데,

오히려 리얼리티나 공감대를 떨어뜨린 부작용이 더 심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큰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촘촘하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개연성 있는 추리로 평범한 사람들의 두뇌를 무참히 뛰어넘는 주인공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두 편의 중편 모두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임엔 틀림없습니다.

 

세가와 미유키는 여느 명탐정들과도 차별되는 꽤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명탐정으로서의 능력을 지닌 덕분에 얻은 지독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 역할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잊으려는 그녀의 행보는

이 작품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 무척 궁금하게 만듭니다.

이야기 전개로 보아 이후 시리즈로 이어졌을 것 같진 않지만

나중에라도 세가와 미유키가 등장하는 작품이 나온다면 꼭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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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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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내리는 밤, 숲속 지름길로 차를 몰던 캐시는 멈춰 서 있는 차 안의 여자를 목격한다.

이상한 징후를 느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그대로 지나쳤던 캐시는

다음날 아침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곤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다.

게다가 그 사건 이후 말 없는 전화가 매일같이 걸려오기 시작한다.

누군가 계속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숨 막히는 공포감과

자신 때문에 그 여자가 죽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캐시의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완벽한 남편이 실은 끔찍한 사이코패스였다.”는 이야기를 그린 비하인드 도어에 이어

다시 만나게 된 B. A. 패리스의 심리 스릴러입니다.

비하인드 도어의 주인공 그레이스의 공포의 대상이 명백히 실재하는 눈앞의 남편이었다면,

브레이크 다운의 주인공 캐시는 눈에 보이지도, 추측할 수도 없는 무형의 대상과 싸웁니다.

그날 밤, 자신이 나섰더라면 그 여자가 살 수도 있었을 거라는 죄책감,

어쩌면 살인범이 자신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매일 걸려오는 말 없는 전화가 혹시 그 살인범의 경고가 아닐까 하는 공포심 등

캐시의 일상은 하루하루 처참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캐시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부쩍 심해진 기억과 망상의 문제입니다.

사소한 건망증을 넘어 조기 치매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증상을 반복해서 겪게 되자

캐시는 이른 나이에 치매에 걸렸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끔찍한 좌절감에 빠집니다.

문제는, 자신이 겪는 공포와 죄책감마저 혹시 망가진 기억과 망상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자책과 회의가 그녀의 자존감마저 붕괴시킨다는 점입니다.

 

비하인드 도어에서 주인공 그레이스의 공포심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좀더 복잡하고 엉망으로 뒤엉킨 주인공의 심리를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그립니다.

그리고 벼랑 끝까지 몰린 주인공에게 스스로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긴장감 넘치는 반전과 스릴러로서의 미덕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만, 한발 떨어져서 큰 그림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거의 절반 넘는 분량을 사건하나 없이 캐시의 공포심 묘사에 할애한 점입니다.

연이어 걸려오는 전화, 낯선 방문객, 반복되는 죄책감과 공포심, 기억상실과 망상 등

캐시의 심리를 거의 동어반복처럼 그리다보니 때론 강요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 캐시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쉽고 안이해 보인 점입니다.

결정적 단서는 너무나도 우연히 찾아오고, 그 단서는 지나치게 얌전히(?) 진실을 알려줍니다.

분명 긴장감과 속도감을 지닌 것은 맞는데, 다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해진 느낌이랄까요?

적어도 한두 번은 더 꼬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백하고 얌전한 클라이맥스 덕분에

막판에 서사의 힘이 뚝 떨어진 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두 작품을 읽고 보니 B. A. 패리스의 심리 스릴러의 특징을 눈치 챌 수 있었는데,

신작에서는 이런 패턴에서 벗어난 새로운 서사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인공 역시 그레이스나 캐시와 비슷한 캐릭터로 그려지거나

그들이 겪는 공포심 묘사 위주로 스토리가 흘러간다면 조금은 식상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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