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클럽
사스키아 노르트 지음, 이원열 옮김 / 박하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디너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파티와 향락을 즐기는 5명의 아내,

그녀들 덕분에 긴밀한 사업 관계로까지 발전한 돈 잘 버는 5명의 남편,

그리고 10명의 아내와 남편이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밀하게 갈구하는 본능적인 욕망.

 

이쯤 되면 이 작품의 색깔이 어떨지 충분히 연상될 것입니다.

암스테르담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서 자기들만의 부를 과시하며 살아가는 다섯 부부는

겉으로는 디너 클럽의 멤버이자 서로를 챙기고 우정을 나누는 친밀한 사이로 보이지만,

실상은 각자의 이기심과 욕망에 충실한 전형적인 탐욕덩어리에 다름 아닙니다.

아내들은 서로의 희로애락에 기꺼이 공감하고 연대하는 척 하지만,

언제든 드러낼 수 있는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채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합니다.

남편들은 넓은 아량과 여유 있는 호기로 서로의 인격과 부를 칭송하지만,

그들의 진짜 관계는 마치 돈으로 얽힌 먹이사슬마냥 복잡하고 냉정합니다.

, 아슬아슬하게 스와핑에 버금가는 파티를 벌이면서도 당장은 아무 짓도 벌이지 않지만,

아내들과 남편들은 배우자가 아닌 상대에게 본능적인 욕망을 느끼곤 합니다.

 

이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던 위선을 주고받던 그들의 불온한 일상은

화재로 인해 죽은 한 남편과 의문의 추락 사고를 당한 한 아내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두 사건을 모두 자살 또는 자살미수로 보는 대다수의 시각과 달리

화자인 카렌은 분명 베일에 감춰진 진실이 따로 있음을 확신합니다.

사실 카렌은 이 혼돈덩어리 모임 안에서도 비교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쪽에 속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사건 발생 후 모두에게서 왕따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자신들의 크고 작은 비밀을 감추고 싶어 하는 아내들과 남편들 입장에서

혼자만 바르고 잘난 척 하며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카렌이 마음에 들 리 없던 것입니다.

 

하지만 카렌 역시 당당하게 비밀을 캐고 다닐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고,

그것은 진실 찾기에 나선 그녀의 발목을 번번이 붙잡으며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스스로 깨끗하지 못한탓에 타인의 비밀과 추문을 캐는 일에 주저하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데

아마 그런 점 때문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홍보카피가

이 작품에 걸맞아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평은 후하게 쓰고도 별점을 3.5개밖에 안 준 이유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중반 정도까지는 속도도 빠르고, 긴장감도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로 전개되지만,

그 뒤로는 미스터리보다는 심리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습니다.

요약하자면, ‘사건은 안 보이고, 욕망만 그득한 스토리가 됐다고 할까요?

카렌이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 역시 좀 안이하게 처리된데다 딱 떨어지는 선명함도 부족해서

결국 마지막에 어떻게 됐다는 건데?’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중반까지가 별 5개짜리 이야기였다면, 중반 이후로는 간신히 별 3개 수준의 이야기였고,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 소개를 보니 네덜란드에서는 꽤 인기 있는 작가 같은데,

미스터리의 미덕과 뒷심이 딸린 서사 때문에 후속작이 나와도 읽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중반까지 유지된 필력만 보면 후속작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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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게임 10 : 심연 8.02
카나자와 노부아키 지음, 천선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인터넷 서점의 신간들을 검색하다가 종종 왕 게임의 새 시리즈가 나온 걸 발견하곤 했지만,

아무래도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아 늘 외면(?)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은 덕분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고 말았습니다.

기본구조는 제목대로 왕 게임그 자체입니다.

왕의 지시는 터무니없지만 절대적이고, 그 지시를 어긴 자들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대만의 한 섬에 머물게 된 한국, 일본, 대만 학생들과 교사 등에게 왕의 문자가 날아드는데,

그 문자의 골자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24시간 내에 누군가를 죽여라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왕 게임으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살해됐고,

그 원인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켈드 바이러스도 제압된 상태지만

엉뚱하게도 누군가 다시 그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대만의 한 섬에 연수를 온 학생들과 교사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터무니없는 지시가 내려오고 수많은 목숨들이 잔혹하게 죽어나갑니다.

자신이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하는 기막힌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동시에 왕이 누군지 알아내려고 고군분투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왕을 회유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지만 아무도 그 결과를 낙관 못합니다.

 

누구든 배틀 로얄이나 헝거 시리즈를 연상하겠지만,

이 작품의 최고 미덕은 어떤 메시지나 주제 없이 무한대로 폭주하는 폭력 그 자체입니다.

물론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과연 우정이나 사랑이 그 가치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

,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음으로 모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 등 유의미한 주제가 언급되지만,

그보다는 살인, 섹스, 폭력 등 선정적인 서사가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독자에 따라 이런 서사에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처럼 메시지나 여운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역시 사실입니다.

 

혹시나 해서 이 시리즈에 대한 서평들을 찾아보니 그야말로 극과 극이더군요.

아마존 재팬에서 평점 1.6을 받은 쓰레기부터 극강의 오락물이란 평가까지

중간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악평과 호평으로 갈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과도한 폭력과 말초적인 서사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달리 풀만한 곳이 없는 독자에겐 강추할 작품이고,

책읽기의 보람과 여운을 기대하는 독자에겐 조심스레(?) 접근해야 할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제가 4개의 별점을 준 이유는 모처럼 별 생각 없이 사이다 같은 폭주를 경험했기 때문인데,

이 역시 책읽기의 여러 가지 매력 중 한 가지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이 시리즈를 간식처럼 즐겨볼 생각도 있습니다.

누군가 마구 때려주고 싶을 때 콜 오드 듀티같은 게임이 간절히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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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펙트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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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경찰 스콧 제임스는 신원불명의 괴한들과의 총격 사건에서 파트너인 스테파니를 잃은 뒤

그 충격으로 심한 자책감을 느끼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임무수행이 어렵다는 상부의 판단에 따라 스콧은 경찰견 부대인 K-9으로 부서를 옮긴다.

매기는 폭발물 탐지에 탁월한 군견으로, 아프가니스탄 복무 중 폭발 사고로 파트너를 잃은 뒤

스콧만큼이나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채 파트너가 된 스콧과 매기는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끼게 되고,

둘은 스테파니를 살해한 괴한들의 정체를 밝히려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스콧이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에게는 또다시 거대한 위협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로버트 크레이스의 새 작품이라 일단 앞뒤 가릴 것 없이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이내 표지에 그려진 개의 실루엣을 보고 잠시 멈칫 했습니다.

어느 장르나 비슷하지만, 특히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동물이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면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취향 때문이었는데,

그때 생각은, 고백하자면, ‘100페이지까지만 읽어보자였습니다.

아무리 로버트 크레이스의 작품이라도 역시 취향 밖이면 중도 포기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결론은, 짐작하다시피 역시 로버트 크레이스네.’였습니다.

 

임무 수행 중 일심동체 같던 파트너를 잃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스콧과 매기는

K-9이라는 경찰견 부대에서 만나자마자 오래된 연인처럼 금세 무리가 됩니다.

서로 비슷한 상처를 알아봤기 때문일까요?

훈련과정은 물론 모든 일상에서 둘의 팀워크가 더 애틋하게 보인 것은

아마도 (번역하신 윤철희 님 말씀대로) 내내 매기를 그녀라고 지칭한 덕분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둘은 파트너이면서 연인 같기도 한, 그야말로 천생연분처럼 보였고,

둘의 연대감이 사건현장에서 발휘될 때면 사람과 개이상의 케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콧은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K-9부대에 오게 됐지만 LAPD 시절에는 우수한 경찰이었고,

그의 재능은 스테파니를 살해한 괴한들을 추적하는데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사소한 단서에서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했고,

스테파니 사건을 새로 맡게 된 충직한 동료들의 지원사격도 받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후각과 본능을 자랑하는 매기의 활약도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발씩 진실에 다가갈수록 스콧에게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듭니다.

누군가 스콧의 진실 찾기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뜻인데,

바로 그 대목에서 로버트 크레이스의 진짜배기 마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적잖은 분량이 스콧과 매기의 연대감 형성 과정에 할애돼서

엘비스 콜 & 조 파이크 시리즈만큼의 파괴력이나 스릴러로서의 희열은 덜 느껴지지만,

아쉬움은 오직 그것뿐이었고 페이지 터너로서의 힘은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스콧과 매기의 활약이 이후에도 시리즈로 계속 이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파트너를 잃은 상처를 이겨낸 두 주인공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로버트 크레이스의 작품이 연이어 출간됐는데,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그의 신작을 기다리게 됐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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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수상한 서재 1
김수안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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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사건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지만 가까스로 구조된 신의일보 기자 이한나,

건물에서 투신했다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소설가 강유진.

두 여자는 각각 병원에서 깨어나자마자 서로의 몸이 바뀐 사실을 깨닫곤 큰 충격에 빠진다.

한편, 중앙경찰서 강력팀의 박선호와 송칠범은 잔혹하게 살해당한 한 여성의 사체를 목격하곤

미제 연쇄살인사건인 '812사건'이 또다시 새로운 피해자를 낳은 게 아닌가 우려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외모나 살해수법, 살해현장 등 동일범으로 보기 어려운 흔적들이 많은 탓에

모방범죄의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광범위한 수사를 벌인다.

그러던 중 피해자가 최근 강유진이라는 여성과 자주 연락했음을 알고 그녀를 조사하는데...

 

● ● ●

 

500페이지의 묵직한 분량 안에 꽤 독특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모든 면에서 180도 판이한 두 여자의 영혼 체인지 판타지가 한 축이라면,

그 판타지와 긴밀하게 연관된 잔혹한 연쇄살인사건이 또 하나의 축으로 설정돼있는데,

작가는 쉽게 엮기 힘들어 보이는 두 축을 나름 큰 위화감 없이 잘 풀어냈습니다.

 

언뜻,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봐온 영혼 바뀌기 스토리가 떠오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작가는 초반에 독자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뛰어넘으면서 꽤나 당혹스런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출판사 소개글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대목이라 서평에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영혼이 바뀐 두 여자는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기구한 운명은 연쇄살인사건 수사를 하는 형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마는데,

특히 형사 입장에서 아무리 확실한 심증을 갖거나 합리적인 의심의 근거를 찾았다 한들,

누구에게도 사건에 관련된 두 여자의 영혼이 바뀐 것 같아.’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들의 시점으로 사건과 인물들을 지켜봐야 하는 독자 역시

내내 긴장감과 함께 어딘가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안은 채 페이지를 넘겨야만 합니다.

 

정교한 미스터리와 비현실적인 판타지의 매력적인 조합이란 점에서,

,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복잡다단한 서사를 매끄럽게 전개시켰다는 점에서

일단은 좋은 평가를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다만, 500페이지가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군살이 좀 많다는 느낌을 종종 갖게 한 점이나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후반부가 갑툭튀마냥 이질적으로 보인 점이 아쉬웠는데,

분량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좀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건의 진실에 관해서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짜맞춘 흔적이 역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특성 상 내용 자체를 많이 언급할 수 없는 작품이라 서평이 좀 두루뭉술해졌지만

재능 있는 신예 작가의 도발적인 서사가 궁금한 독자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것을 권하고 싶고,

이 작가의 후속작은 무조건 기대해도 좋다는 것으로 애매모호한 서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작품 속 콤비로 등장한 중앙서 경찰 박선호와 송칠범은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라

가능하면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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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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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 비채에서 제공받은 가제본으로 미리 읽고 쓴 서평입니다.^^)

 

리디머는 단순히 해리 홀레 시리즈 6이라는 외형 이상의 존재감이 있는 작품입니다.

시리즈의 큰 변곡점을 위한 가교 같은 작품이랄까요?

일명 오슬로 3부작이라 불린 앞선 3~5(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 스타)

해리의 파트너였던 엘렌 살해사건의 진실을 찾으면서

동시에 무자비한 연쇄살인범 프린스를 쫓는 한편의 거대한 서사였다면,

리디머는 뒤에 나올 7~9(스노우맨, 레오파드, 팬텀)을 위한 휴식시간같은 작품입니다.

 

앞선 오슬로 3부작에서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됐던 해리는

리디머에서는 나름 회복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답지 않은(?) 총명함까지 발휘합니다.

, 상대적으로 소소해 보이는 사건의 규모도 의외였고,

(짐 빔의 유혹에 잠시 굴복하긴 해도) 말짱한 정신으로 수사에 임하는 해리도 낯설어 보였고,

비장한 스릴러의 느낌보다는 깔끔한 형사 미스터리로 포장된 서사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론 요 네스뵈가 그리 쉽고 만만한 작품을 썼을 리는 만무한데,

앞서 읽은 작품들의 무게감이 너무 묵직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후속작들을 통해 해리가 어떤 고난과 상처를 겪을지 이미 잘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선

이 회복의 시간과 총명함과 깔끔함이 너무 안쓰럽게 읽힐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튼...

크로아티아에서 날아온 작은 구세주라 불리는 살인청부업자,

연이은 피살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노르웨이 구세군의 비하인드 스토리,

군나르 하겐 체제로 재편된 경찰 조직 하에서 해리가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 등

다양한 재료와 사건들로 범벅이 된 리디머는 전작들과는 달리

그리 마음 졸이면서, 또는 해리의 고통과 상처에 가슴 아파하면서 읽지 않아도 되는

꽤 편하고 재미있는 경찰 미스터리에 속합니다.

분량(618p)은 여전하지만 해리의 고뇌를 쥐어짜는 듯한 난해한 문장들도 별로 없고,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에 집착한 대목들이 별로 없는 점도 전작과 다른 점입니다.

 

리디머를 다 읽은 뒤에 든 첫 생각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다시 읽어야겠다.’였습니다.

노르웨이 여인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호주까지 날아온 32살의 팔팔한 해리(박쥐)부터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라켈의 아들 올레그를 직접 수사해야 했던 중년의 해리(팬텀)까지

순서대로 차분히 되읽다보면 해리 홀레라는 불행한 한 남자의 인생사뿐만 아니라

타고난 경찰 해리 홀레의 성장기라는 거대한 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스케일이나 깊이 면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아쉬움 때문에 곧 스노우맨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몸과 마음을 크게 다칠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해리를 지켜보는 일이

더 아이러니하고 가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뒤죽박죽 순서로 시리즈를 읽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처연함을 맛보게 되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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